‘이효리 유기농 콩’과 ‘유기농 인증 신고’



  제주에서 새로운 살림을 꾸리는 이효리 님이 손수 거둔 콩을 손수 봉지에 담아서 마을장터에서 팔았다고 한다. 이렇게 누리는 시골살이 이야기를 이녁 누리집에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본 어떤 사람이 ‘유기농 인증’을 받았느냐면서 ‘국가기관 수사’를 받아야 한다면서 신고를 했단다.


  언제부터 한국에서 ‘유기농 인증’이 있었다고 이렇게 따질까? 아마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야 유기농이나 자연농이나 친환경농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테고, 시골에서 흙을 돌보면서 곡식이나 열매를 거두는 일도 모르리라. 무엇보다 ‘서울을 떠나 제주에서 예쁜 시골살이 누리는 연예인’을 샘내는 어처구니없는 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곰곰이 따지면, 이효리 님이 손수 거둔 콩은 ‘유기농 콩’은 아닐 듯하다. 유기농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눈 똥과 오줌을 거름으로 삭혀서 흙에 뿌려서 섞은 뒤 지을’ 적에 유기농이라고 한다. 다른 똥오줌이 아닌 오직 사람 똥오줌으로 지어야 유기농이다. 요즈음 ‘국가기관 인증’을 받는 ‘유기농’을 보면 사람 똥오줌으로 지은 곡식이나 열매는 매우 드물다. 생각해 보라. 사람 똥오줌을 어디서 얻는가? 시골에 사람이 몇이나 되나? 사람 똥오줌으로 ‘유기농’을 하려면 제 살림집 텃밭에나 겨우 할 수 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유기농 인증을 받는 곳은 ‘소나 돼지가 눈 똥’을 땅에 뿌려서 곡식이나 열매를 거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효리 님이 거둔 콩은 무엇인가? 내가 보기로는 ‘자연농’이라고 해야지 싶다. ‘자연농’은 무엇인가 하면, 거름을 주지 않고, 또 농약이나 비료도 주지 않고, 땅에 있는 기운과 햇볕과 바람과 빗물로 거두는 곡식이나 열매이다.


  시골에서 거두는 곡식이나 열매 가운데 가장 맛나면서 몸에 좋은 곡식이나 열매는 ‘자연농’이다. 이 다음에 ‘유기농’이다. 이 다음이 ‘친환경농’이다. ‘친환경농’은 무엇인가 하면 ‘친환경 농약’을 쓰는 곡식이나 열매이다.


  이효리 님은 ‘자연농’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야지 싶다. 그런데, 더 헤아려 보면 ‘자연농’이라는 이름도 그리 예쁘지 않다. 조금 길더라도 쪽글에 제대로 적으면 한결 나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참말 즐겁게 제대로 거둔 콩이니까.


 - 효리·상순네 숲에서 온 콩

 - 효리와 상순이가 손수 거둔 콩

 - 해와 비와 흙을 먹은 콩

 - 비료와 농약 없이 손수 기른 콩


  이효리 님은 돈이 있어서 제주에 땅을 사서 산다고 느끼지 않는다. 돈이 있어도 시골에서 안 사는 사람이 많다. 돈이 없어도 시골에 가서 사는 사람이 있다. 돈이나 이름이 있고 없고를 떠나, 스스로 어떤 이웃이나 벗을 사귀면서 삶을 누리려 하는가에 따라 보금자리가 달라진다.


  그리고, 사람들이 잘 모르지 싶은데, 엄청나게 널따란 땅떵이에서 기계로 거두는 콩농사가 아니라면, 콩밭에는 약을 안 친다. 굳이 콩밭에까지 약을 치는 일은 드물다. 콩밭에는 따로 거름을 안 주어도 된다. 거름을 낸다면 콩알이 더 굵기는 할 테지만, 시골사람도 ‘거름 안 낸 콩’이 ‘거름 낸 콩’과 견줄 수 없이 고소하면서 깊은 맛이 나는 줄 안다.


  한편, 콩잎도 맛있게 먹는 잎 가운데 하나이다. 깨밭에도 약은 거의 안 치는데, 왜 깨밭에 약을 안 치느냐 하면, 깻잎을 먹기 때문이다. 깻잎에 약을 치면 어떻게 먹겠는가. 콩잎도 먹으니 콩밭에도 참말 약을 칠 일이 없다. 마을장터에 갖고 나오는 시골 할매 콩이라면, 또 이효리 님이 조촐하게 돌본 콩밭에서 거둔 콩이라면, 얼마나 맛있고 사랑스러울까 하고 헤아려 본다. 씩씩하고 예쁜 이웃한테 사랑스럽고 예쁜 말을 들려주면서 온누리 곳곳에 푸르디푸른 숲이 늘기를 빈다. 4347.1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람과 책읽기)









..


인증제도까지 아직 알기 어려웠을 텐데

인증제도를 찬찬히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잘 사는 이웃을 해코지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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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해에 걸쳐 읽은 시집 (황명걸)



  시집 한 권을 열 해에 걸쳐 읽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시집을 이렇게 읽지는 않는다. 이렇게 읽을 만한 시집이로구나 싶을 적에 이렇게 읽는다.


  2014년 오늘, 황명걸 님 시집 《흰 저고리 검정 치마》를 놓고 느낌글을 쓴다. 이 시집은 2004년에 처음 나왔고, 나는 이때부터 이 시집을 읽었다. 내 책상맡과 책시렁에서 하도 손때를 받은 탓에, 얼마 앞서 스캐너로 이 시집 겉그림을 긁으며 보니 하얀 겉종이에 가무스름한 때가 듬성듬성 끼었다.


  황명걸이라는 ‘늙은 시인’은 시집을 아주 드물게 내놓는다. 나이도 많이 자신 분이 고작 세 권 선보였다. 앞으로 이녁이 흙으로 돌아가기 앞서 한 권쯤 더 선보일 수 있을까? 더디다 못해 뜸하게 내놓는 시집이기도 하지만, 쉬 읽어치우고 싶지 않아, 시를 읽는 사람으로서 더디게, 뜸하게, 천천히, 느긋하게 하나하나 곱씹으니 어느새 열 해가 흘렀다. 시를 쓴 나날이 쉰 해가 넘는데, 내놓은 시집이 세 권이라면, 이녁 시를 읽는 사람도 쉰 해가 넘는 나날에 걸쳐 아주 차근차근 오물조물 곱씹을 만하리라 느낀다. 겨를 덜 벗긴 누런쌀을 오래오래 씹어서 단물을 쪽쪽 빨아서 먹듯이, 이녁 시집을 오래오래 씹어서 단물을 쪽쪽 빨아서 읽을 만하리라 느낀다. 4347.11.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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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뵌 이오덕 님



  어떤 일 하나가 나한테 찾아왔다. 이 일을 맡을까 말까 아직 잘 모른다. 예전에 곁님이 나한테 했던 말을 밤에 문득 떠올린다. 잠을 자면서 꿈에서 이오덕 님을 부르기로 한다. 꿈속에서 이오덕 님한테 몸소 여쭈기로 한다. 지난밤 꿈속에서 아무 스스럼이 없이 버스에서 이오덕 님을 뵌다.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모르나, 마흔 줄을 조금 넘긴 무척 젊은 이오덕 님이 버스 손잡이를 잡고 앉으셨다. 나는 옆에 앉아서 여쭌다. “선생님은 책을 어떻게 내셨어요?” “나를 내려놓았지.” “나를 내려놓는 일은 뭐예요?” “성경을 보면 나오지.” 꼭 두 마디를 나눈 뒤 이오덕 님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러고는 내 앞에 성경이 놓인다. 다시 아무 스스럼이 없이 성경을 펼친다. 왼손으로 왼쪽을 가린 뒤 살짝 손을 치운다. 손을 치운 자리에 “모든 것을 용서하라.”라는 글월이 보인다.


  책을 내는 일이란 나를 내려놓는 일이요, 나를 내려놓는 일이란 모든 것을 용서하는 일인가. 이 말과 뜻을 내 마음에 가만히 새겨 본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4347.1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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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4 0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4-11-04 07:10   좋아요 0 | URL
말씀 고맙습니다.
`꿈에 나와라 나와라` 할 적에는 안 나오시더니,
그저 아무 마음이 없는 때에
문득 나오셔서
꼭 두 마디만 하시고
바로 사라지셨어요 @.@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서태지 노래를 부른 젊은 아이들을 보다가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차면서 자기에 이불깃을 찬찬히 여미고 난 뒤, ‘슈퍼스타K6’에서 ‘서태지 노래 부르기’를 했다기에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불렀나 하고 가만히 들어 본다. 여덟 아이들이 노래를 부른다. 이 아이들은 저마다 제 결에 맞게 가락을 바꾸어서 부른다. 현장방송이라고 하던가, 아이들이 많이 어린 탓인지, 큰 무대가 낯익지 않아서인지, 참 많이 떠는구나 싶던데, 서태지가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불렀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면서 부른다고 느낀다.


  1등을 뽑는 경연 무대이기는 하지만, 점수를 못 받으면 떨어지는 무대이기는 하지만, 서태지 노래를 이렇게 불러서야 어떻게 들어 줄까? 가슴을 찢으면서 새롭게 춤을 추고 피와 웃음을 뱉어내는 노래를 밍숭맹숭하게 불러서야,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노래방이라는 곳이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적에 ‘노래 못 부르는’ 내 동무들이 노래방에서 멱을 따면서 부르던 노래보다 못한 노래를 듣다가 끈다. 주어진 임무이니까 노래를 부른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주어진 임무라 하더라도 가슴을 열어 웃음과 눈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노래로 삶을 찾고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길’을 걸을 수 있을 텐데.


  ‘가수 되기’만을 바라는 셈일까? ‘가수 되기’를 이룬 다음에는 무엇을 할 생각일까?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그리고 텃밭에 씨앗을 심거나 푸성귀를 뜯어서 밥을 차리거나, 즐거움을 빚는 길에는 ‘아주 작은 손길’이 깃들면 된다. 이 작은 손길을 젊은 아이들이 부디 잘 새기고 살펴서 즐겁게 노래꽃으로 피울 수 있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4347.10.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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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산초등학교 어머님



  오늘(2014.10.13.) 아침 열한 시에 ‘순천 송산초등학교 어머님’ 여덟 분이 우리 도서관에 찾아오셨다. 두 시간 남짓 도서관에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면소재지 밥집으로 옮겨 조금 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송산초등학교’ 이름은 낯설지 않았는데, 어머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앞서 ‘학교 발자취’를 따로 찾아보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어머님하고 나눌 이야기만 생각했다. 오늘날 학교는 아이들한테 입시교육만 시키는데, 이런 입시교육에서 어버이 스스로 벗어나서 아이한테 ‘밥·옷·집을 스스로 가꾸거나 짓는 즐거운 삶’을 몸으로 보여주고 알려줄 때에 제대로 ‘배우고 가르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국말이 걸어온 길’과 엮어서 나누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문득 돌아보니 오늘 나눈 이야기는 ‘국립국어원’이나 ‘한글학회’나 ‘우리 말글 모임’에서는 도무지 나누지 못한 이야기였다. 학자나 지식인이나 전문가나 연구자나 운동가는 ‘학교에서 책으로 배운 지식’에 얽매인 탓에 스스로 생각을 열지 못한다. 몇 가지 낱말을 옛책에서 자료를 뒤져 ‘말뿌리(어원)’ 캐기는 하지만, 정작 우리가 늘 쓰는 가장 쉽고 너른 낱말은 어떤 낱말조차 말뿌리를 알지 못한다. ‘하늘’ 말뿌리가 무엇인지, ‘사람’ 말뿌리가 무엇인지, ‘쑥’이나 ‘마늘’ 말뿌리가 무엇인지 알거나 밝힐 수 있는 지식인이나 학자는 아무도 없다.


  송산초등학교 어머님들이 모두 돌아가신 뒤, 문득 떠올라서 송산초등학교라는 곳을 길그림으로 살피고 학교 누리집에도 들어가 본다. 이러면서, 이곳 송산초등학교가 한때 분교로 바뀌었고 전교생이 열한 아이까지 줄었으나, 이제 학생이 백스물로 늘었으며, 분교에서 본교로 다시 바뀐 ‘거의 처음’이라 할 놀라운 곳인 줄 알아낸다. 아니, 우리 집을 고흥으로 옮길 무렵 이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데, 고흥으로 옮길 무렵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이쁜 곳이 가까이 있구나 하고 느낀 그곳 어머님들을 오늘 만난 셈이니, 여러모로 즐거웠고 놀라웠다. 4347.10.1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람과 책읽기)


기사 1 http://news.donga.com/3/all/20101028/32173318/1


기사 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94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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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3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4-10-13 21:35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만화책은
찬찬히 고르거나 살피시기 힘들리라 생각해서
제가 즐겁게 읽은 작품 가운데
`예나 이제나` 아름다운 작품을 선보이는 분이 빚은
단편만화를 골라 보았어요.

이분은 <아기와 나>로 한국에 이름을 알렸고,
요즈음은 <순백의 소리>라는 대단한 작품을 연재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