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 사름벼리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에 부치는 말


이제 며칠 뒤이면 동시집이 나오고

책집에도 들어갈 테지요.

책이 나오면 새롭게 알림글을 쓰기로 하고

보도자료로 이런 글을 삼으면 어떨까 생각하며

몇 줄 적어 보았습니다.
















+ + 


아버지랑 딸이랑 함께 빚은 마음노래


아버지는 두 아이를 사랑으로 돌볼 보금자리를 찾아 숲이 그윽한 작은 시골자락 집을 마련합니다. 두 아이는 하루를 스스로 지으면서 마음껏 뛰놀고 꿈꾸면서 풀꽃나무하고 동무가 되며, 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들으며 자랍니다. 곁에서 바람이 상냥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구름은 폭신한 잠자리가 되며, 골짝물은 시원한 숨결로 온몸을 적십니다.


이름을 알고 싶은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가리키면서 묻습니다. 이름을 알고 난 다음에는 그 이름에 깃든 뜻을 알고 싶어 “그건 뭐야?” 하고 “이건 뭐야?” 하며 끝없이 묻고 거듭 묻고 새로 묻고 또 묻습니다. 이리하여 아버지는 아이들한테 수수께끼를 내기로 합니다. 마치 스무고개처럼 열여섯고개로 간추린 수수께끼입니다.


열여섯고개를 넉고개로 가르고, 넉고개는 봄여름가을겨울로 꾸며서, 겉보기로는 넉 줄을 넉 자락 이은 “열여섯 줄 동시”가 됩니다. 그러나 겉보기로만 동시일 뿐, 속으로는 수수께끼요 이야기밭입니다. 이 열여섯 줄짜리 ‘수수께끼 동시’에는 어떠한 번역 말씨나 한자말이나 영어를 끼워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두 아이는 ‘이야기가 늘 새롭게 흐르는 상냥한 마음을 사랑으로 가꾸는 씨앗을 생각으로 심는 말’을 들으면서 배우고 싶어하거든요.


가장 수수하고 흔한 말로 수수께끼를 짓습니다. 때로는 아이한테 아직 낯설 테지만, 앞으로 마주할 여러 살림살이나 숲이나 숨결하고 얽힌 낱말을 슬그머니 섞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수수께끼를 풀다 보면 시나브로 알아차릴 만한 ‘살림을 그리는 오래되면서 새로운 말’을 곁들이는 셈입니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를 쓰기로는 아버지 한 사람입니다만, 언제나 아이들이 궁금해 했기 때문에 ‘우리말로 수수께끼를 짓는 동시를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곁에서 이를 지켜보면서 살살 다독이고 달래며 다스리는 사람, 곁님이 있으니 이러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가 태어납니다.


여기에 열세 살 어린이가 그림을 맞추어서 그립니다. 스스로 궁금해서 아버지한테 물어본 낱말 하나하고 얽힌 수수께끼를 풀며 마음으로 떠올린 온갖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그림으로 옮기지요. 때로는 물감을 풀어서 물감그림으로, 때로는 연필을 쥐어 연필그림으로 빚습니다.


열세 살 어린이가 물감으로 빚는 그림에는 물빛으로 마음을 적시는 사랑어린 숨결이 흐릅니다. 열세 살 어린이가 연필로 짓는 무지개에는 ‘그저 까만 빛깔’일 뿐이 아닌 ‘무지개가 되는 까만 고요’가 함께 흐릅니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를 다른 이름으로 나타내자면 ‘마음노래’입니다. 입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닌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숲에서 길어올려 시골마을을 적시고 골짜기를 누비다가 차츰 커다란 고을이며 고장으로 뻗다가 서울에도 닿을, 숲이랑 시골이랑 서울을 나란히 이어서 어깨동무를 하고픈 ‘마음노래’입니다.


맑은 눈빛으로 나눌 이야기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노래입니다. 밝은 손짓으로 함께할 이야기밭이 되기를 꿈꾸는 마음노래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면, 서울 한복판에도 나비가 찾아가서 팔랑팔랑 눈부신 춤사위를 베풀어요. 오늘 이곳에서 마음으로 노래를 지어서 신나게 부르면, 모든 아픔도 슬픔도 괴로움도 멍울도 생채기도 짜증도 부아도 골질도 닦달도 살그마니 녹여서 포근하게 어루만질 수 있어요. 예부터 “어머니 손이 약손”이라고 한 뜻은, 가장 아름다운 약이란 언제나 포근하게 바라보면서 쓰다듬을 줄 아는 사랑이라는 수수께끼이지 싶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바로 우리가, 어른도 어린이도 같이 어깨동무하면서 부를 노래란 마음노래이면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가 된다면 찬찬히 기운을 내면서 활짝 웃음지을 만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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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 우리말 지킴이 최종규가 들려주는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5
최종규 지음, 호연 그림 / 철수와영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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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지은책

- 도란도란 노래하는 말꽃을 온누리에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최종규 글

 호연 그림

 철수와영희

 2011.10.9.



두 아이 아버지이자 아저씨인 저는 이 푸름말, 삶말, 사랑말을 보듬는 매무새를 이 책에 하나둘 담으려 합니다. 잘 따라와 주시면 좋겠어요. 따라오다가 힘들면 쉬엄쉬엄 오셔요. 너무 벅차다면 한참 쉬어도 되고, 다른 데를 들렀다가 다시 찾아와도 돼요. (8쪽)



  말이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보면 으레 ‘마음이 바로 말’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갑니다. 마음은 입을 거쳐 말로 드러나고, 얼굴을 거쳐 눈짓으로 드러납니다. 마음은 손을 거쳐 살림으로 드러나고, 발을 거쳐 나들이로 드러납니다.


  마음을 감출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감추어 거짓을 말할 수 있는지, 아니면 아닌 척할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감추면서 거짓을 말하거나 아닌 척하는 말을 한다면, 스스로 힘들고 듣는 쪽도 고단하겠지 싶어요.


  마음을 담아내는 말인 터라 스스럼없이 엮어서 들려줄 노릇이고, 스스럼없이 들으면서 받아들이고, 삭이고 달래어, 다시 새로운 말씨로 주고받을 일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말은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아끼고 우리 삶을 사랑하며 우리 삶을 살찌우는 결대로 새로워지거나 다시금 태어납니다. (19쪽)


말이란 말재주가 아니라, 내 삶을 일구는 하루하루를 곱게 들려주는 이야기예요. 글이란 글솜씨가 아니라, 내 꿈을 이루는 어제오늘을 예쁘게 나누는 이야기예요. 입으로 읊어 말이고, 손으로 적어 글입니다. 말을 하듯이 글을 쓰고, 글을 쓰듯이 말을 합니다. (27쪽)



  2011년 한글날에 맞추어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철수와영희)라는 푸른책을 선보였습니다. 이 책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인천을 떠나면서 글머리를 잡았습니다. 이오덕 어른이 마지막 삶을 아로새긴 충주 무너미마을에 머물는지, 우리 책숲이며 살림집을 건사할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던 춘천으로 갈는지, 아니면 아직 디딘 적이 없으나 앞으로 아이들이 숲을 온마음으로 품을 만한 두멧자락으로 갈는지, 이렇게 헤매던 때에 첫머리를 여미었어요.


  큰아이를 2008년에 낳았으니 아직 큰아이는 아버지가 여민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이때에 생각했지요. 어버이로서 이제껏 얼마나 슬기롭거나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게 살아왔는지 모르되, 잘잘못을 어버이 스스로 털거나 씻으면서, 오늘부터 하나씩 처음부터 새로지을 삶길을 말 한 마디에 얹는 이야기를 짓자고요.


  새롭게 쓰는 책 첫 줄을 쓰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음을 담는 씨앗인 말을 다루는 책에 ‘동무를 아끼는 눈물’이라는 숨결을 담고 싶었어요. 두 줄째를 쓰면서 웃음을 지었습니다. 마음을 나누는 징검돌인 말을 짚는 책에 ‘이웃을 사랑하는 웃음’이라는 빛을 싣고 싶었어요.



머리로 이 생각 저 생각 쥐어짜서 글을 써서는, 내가 읽어 보아도 따분하며 싱거운 글만 쏟아지지만, 나 스스로 내 삶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면서 꾸밈없이 한 줄 두 줄 적바림하노라면, 내가 내 글을 읽으면서 빙긋 웃거나 뚝뚝 눈물을 흘려요. (48쪽)



  언제나 더없이 마땅한 노릇인데요, 좋은 말이 없고 나쁜 말이 없습니다. 그저 마음을 나타내는 말일 뿐입니다. 거칠다 싶은 말, 이른바 막말이라면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바람에 마구잡이로 날뛰는 아픈 마음’이 묻어납니다. 곱구나 싶은 말, 이른바 사랑말이라면 ‘스스로 다스릴 줄 알면서 어엿하고 참한 마음’이 감돕니다.


  이래저래 보면 ‘얄궂은 한자말’이라든지 ‘엉성한 일본 말씨’라든지 ‘어설픈 영어나 번역 말씨’를 되도록 가다듬을 노릇이라는 이야기를 펴기도 합니다만, ‘이렇게 해야 바른 말씨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을 저 말로 고치자는 뜻이 아니지요. 어느 말씨를 스스로 골라서 쓰든, 그 말씨에 우리 마음을 사랑이라는 숨결을 담으려고 해보자는 뜻입니다.



착하게 생각하며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이라면 착하게 말을 합니다. 참답게 생각하며 참다이 살아가려는 사람이라면 참다이 글을 써요. 곱게 생각하며 고이 살아가고픈 사람이라면 고이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79쪽)


‘한문이라는 글을 배우지 못했고 배우지 못하도록 가로막혔던’ 여느 사람들이 펼친 문학은 책으로 적바림되지 않았습니다. 여느 사람들이 즐기는 노래 또한 책에 적바림되지 않았어요. (126쪽)



  이제는 나라에서도 비닐자루는 쓰지 말자고 하지요. 이제는 웬만한 찻집에서는 유리나 질그릇 잔에 담아 주려고 하지요. 이제는 플라스틱 그릇을 안 쓰는 사람이 부쩍 늘지요. 그런데 있지요,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를 처음 내놓은 2011년뿐 아니라 큰아이를 낳은 2008년에, 또 제가 한창 이오덕 어른 글·책을 갈무리하던 2004년, 이에 앞서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자료조사부장으로 어린이 사전을 엮던 2002년, 이러한 때에 숲살림을 말하거나 숲살림을 고스란히 살아가자는 말 그대로 살아가는 모습에 혀를 차는 분이 참 많았어요. 뭘 그리 번거롭게 구느냐 하더군요. 다른 사람들 다 쓰는데 너희는 왜 일부러 힘들게 사느냐고도 해요.


  두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천기저귀를 손수 빨아서 대주었습니다. 빨래틀조차 안 쓰고 이불을 빨았어요. 아니, 빨래틀을 집에 안 놓았지요. 유리병을 챙겨서 들고 다니고, 천바구니를 여럿 챙겨서 담았으며, 커다란 등짐에 이 살림 저 살림 빼곡하게 짊어지며 다녔습니다. 아이들 천기저귀하고 옷가지하고 포대기에다가 물병에다가 이모저모 건사하노라면 80리터 등짐으로 모자라 으레 다른 등짐을 한둘 더 들고서 움직입니다. 아이를 안고서 살짝 저잣마실을 하는 길도 마치 ‘한 달쯤 여행하는 사람’ 같은 차림이 됩니다.



‘우아(優雅)하다’가 우리말인 줄 잘못 알던 적이 있습니다. ‘우아미 가구’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아’란 ‘아름다움’을 한자로 옮긴 낱말이요, ‘미’란 ‘아름다울 美’라는 한자입니다. ‘우아미’란 ‘아름답디아름다움’이랄 수 있지만, 같은 말을 잇달아 적은 겹말이에요. (145쪽)


흔히들, ‘立場’이라는 한자말만 일본 한자말로 여기며, 이 말을 안 써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入場’이라는 한자말 또한 우리말이 아니에요. 우리말은 ‘들어옴’입니다. (150쪽)



  2008년에 태어난 큰아이가 열네 살이 되면 읽겠거니 하고 생각하며 쓴 책을 2011년에 내놓았으니, 2021년쯤이면 드디어 큰아이가 이 책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를 읽을 철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읽혀도 좋으나 먼 앞날을 그리면서 미리 마련해도 좋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말이란 씨앗이니까요. 과일나무가 되는 씨앗을 보면 참으로 작거든요. 작디작은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떡잎을 내놓고 줄기를 올리며 어느덧 가지로 뻗고 새잎에 꽃망울을 맺기까지 적어도 열 해는 더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버이나 어른이란 자리에서 살아가며 아이들한테 살림꽃이라는 말꽃을 물려주려면, 어버이나 어른이란 사람은 적어도 열 해를 스스로 담금질하면서 살아야 할 노릇이란 뜻입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지 않아요. 열 해라는 나날을 아이가 자라는 결을 지켜보면서 어버이도 나란히 자랄 노릇입니다.


  그냥그냥 읽고 지나간다면, 제가 쓴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이든 이오덕 어른이 쓴 《우리 글 바로쓰기》이든 ‘교양 인문책’으로 삼아서 ‘독후감 한 자락 쓰고 끝’이 날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말글을 짚는 이러한 책은 ‘한두 벌 읽고 느낌글을 써서 끝날 수 없’어요. 첫 쪽부터 끝 쪽까지 내처 읽을 책이 아니거든요.


  마음을 드러내는 씨앗이 될, 마음에 새롭게 심을 씨앗으로 삼을, 이러한 말글을 짚는 책은 한꺼번에 길게 읽을 수 없어요. 하루에 몇 쪽씩, 또는 하루에 한 쪽씩 읽으면서 되새겨야 비로소 마음으로 새롭게 스밉니다. 그러니까 이 책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는 ‘어른이나 푸름이 누구라도 열 해라는 나날을 두고서 조금씩 삭혀서 하나씩 맞아들이고, 스스로 더욱 키우기를 바라는 뜻’을 얹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말은 꽃이 되기도 하지만 화살이 되기도 합니다 …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고, 말 한마디로 동무를 죽입니다. 말 한마디로 서로를 아끼면서, 말 한마디로 서로를 깎아내립니다. 생각하면서 쓸 말입니다. 사랑하면서 나눌 말이에요. (192쪽)



  우리가 쓰는 말은 우리가 쓰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우리가 쓰는 생각입니다. 제가 이웃한테 쓰는 마음이 제 입을 거쳐서 말로 태어납니다. 제가 아이들하고 나누는 생각이 제 손을 거쳐서 글로 자라납니다.


  훌륭한 이웃님이라면 어느 책이든 한두 벌 읽고는 그 책에 흐르는 모든 알맹이를 하루아침에 짠 하고 펼쳐 보이겠지요.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으면 좋겠어요. 이 한자말을 저 쉽거나 부드러운 말로 고치는 일보다는, 다섯 살 어린이 눈높이에서 사랑스레 생각을 슬기로이 밝히는 낱말은 무엇일까 하고 살피면서 말씨를 가다듬으면 좋겠어요.


  교과서에 나오는 ‘어른 인문책 말씨’ 같은 한자말이나 영어를 외우기보다는, 우리가 외우지 않아도 살림새하고 숲터에서 태어난 수수한 말씨에서 한결 너르면서 깊은 생각을 길어올리면 좋겠어요.


  생각해 봐요. ‘바다’는 어떻게 태어난 말일까요? ‘하늘’은 어떻게 태어난 말일까요? ‘짓다’나 ‘그리다’는 어떻게 태어난 말일까요?


  우리는 텃말(토박이말·순우리말)만 가려서 써야 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지피는 말을 헤아려서 쓸 노릇입니다. 한자말이나 영어나 일본 말씨를 아무렇게나 쓰기에 잘못이 아니에요. 거의 모든 한자말이나 영어나 일본 말씨로는 우리가 우리 나름대로 생각을 슬기롭게 지펴서 사랑으로 풀어낼 빛이 될 씨앗이라는 말하고는 동떨어지기 쉬울 뿐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해방이 되자마자 ‘영어 배워 돈 벌기’에 빠졌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말을 널리 쓰던 공무원이 공직을 주름잡았고, 새로 권력을 붙잡으려는 사람들은 미국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일본말 쓰기’에서 ‘영어 쓰기’로 낼름 갈아탔어요. 이러는 동안 일본 말투 “무슨무슨 下에”를 “무슨무슨 아래”로 어설피 적비람했습니다. “서로의 동의 하에”나 “일본의 지배 아래서”나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서”는 모두 똑같이 일본 말투예요 … “서로 이야기해서 헤어지기로 했다”라든지 “서로 헤어지기로 했다”로 다듬습니다. (220쪽)



  말이란 삶자리에서 태어납니다. 한국말은 한국이라는 삶자리에서, 영어는 영국이나 미국이라는 삶자리에서, 일본말은 일본이라는 삶자리에서 태어나요. 모든 나라는 날씨이며 숲이며 들이며 바다이며 땅이며 하늘이며 다 다릅니다. 그래서 모든 나라는 다 다른 말을 써요.


  날씨도 땅도 철도 살림도 같다면 아마 모든 사람이 다 같은 말을 쓰겠지요. 자, 보세요. 오늘날은 서울이나 부산이나 광주나 대구나 고흥이나 양양이나 춘천이나 진주나 보성이나 과천이나 의왕이나 수원이나 거의 똑같은 모습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똑같은 ‘대기업 상표’가 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대기업 상표’가 붙은 자동차를 타며, 똑같은 ‘대기업 상표’가 붙은 가게에서, 똑같은 ‘대기업 상표’가 붙은 먹을거리를 장만해서 누리지 않나요? 이러면서 똑같은 신문에 방송에 인터넷을 들여다보지 않나요?


  이러한 오늘날에는 사투리가 없어요. 고장말이 없고, 마을말이나 집말이 없습니다. 어디에 가나 띄어쓰기하고 맞춤법에 얽매인 따분하고 딱딱하며 메마른 ‘국립국어원 서울 표준말’만 도사립니다.


  우리는 고작 쉰 해 앞서까지만 해도 고장뿐 아니라 고을에서도 말씨가 갈렸고, 마을에서까지 말씨가 다 갈렸어요. 왜냐하면 고개 하나만 넘어도 날씨가 다르고, 물맛이 다르고, 나무나 풀이 다르고, 깃드는 새나 짐승이 다르거든요. 우리가 쓰는 말은 바로 ‘삶터에 따라 다르게 태어나서 자라는 마음결’이니, 다 다른 마을에서는 다 다른 마을말(사투리)이었다면, 이제 다 똑같은 도시 얼거리가 되면서 ‘다 똑같은 서울 표준말’로 바뀌면서,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틀렸니 맞느니 하는 데에서 옥신각신하고 맙니다.



한자문화권이란 없습니다. 한글문화권 또한 없습니다. 영어문화권도 없습니다. 한자란, 글입니다. 한글이란, 글입니다. 글이 문화가 되거나 삶이 될 수 없습니다. 글이란, 문화나 삶을 담는 그릇 가운데 하나입니다. (240쪽)


외국말은 외국말을 어디에서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살피면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말은 살림말입니다. 삶말인 우리말입니다. 살림말이요 삶말인 우리말은, 언제나 이곳에서 내 이웃하고 동무하고 살붙이하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말입니다. (245쪽)



  말을 바르게 쓰는 길이란 마음을 바르게 쓰는 길입니다. 그러니 억지로 바로쓰기를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즐겁게 바르게 가누면서, 마음을 사랑으로 일으켜 봐요. 생각을 기쁘게 추스르면서, 생각이 노래가 되어 흐르도록 살림을 지어 봐요.


  왜 쪽빛 바다라는 말을 썼을까 하고 생각해 봐요. 왜 앉은뱅이꽃이란 말을 썼나 하고 헤아려 봐요. 왜 꿈을 그린다 하고 말하나 하고 돌아봐요. 왜 사람·사랑·숲·슬기·새롭다 같은 낱말이 ㅅ으로 여는가 하고 곱씹어 봐요.


  우리는 스스로 수수께끼를 풀 만해요. 우리는 우리 두 손으로 하루를 가꿀 만해요. 우리가 쓰는 더없이 수수하거나 투박한 말 한 마디가 바로 우리 마음이며 생각이며 꿈을 싱그러이 북돋우는 바탕이 되어요. 도란도란 노래하는 말꽃을 온누리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가슴에 고이 품도록 징검다리가 되고 싶기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를 2011년에 선보였고, 어느덧 열 해가 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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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글쓰기 사전
최종규 지음, 숲노래 기획 / 스토리닷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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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가 지은 책


김치, 폭행, 헌책, 사전, 숲집

[왜 썼나?] 글쓰기는 숲짓기로 나아가더라



― 우리말 글쓰기 사전

 숲노래 기획

 최종규 글·사진

 스토리닷

 2019.7.22.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생기기보다는, 누구나 제 삶을 즐겁게 글로 담아내어 도란도란 나눌 수 있을 적에 아름다운 마을로 거듭난다고 느껴요.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나오기보다는, 누구나 제 살림을 기쁘게 말로 펼쳐서 두런두런 나눌 수 있을 때에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로 나아간다고 느껴요. (7쪽/머리말)



  오늘날 글을 쓰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북적거립니다. 글쓰기 강의가 넘실거리고, 글쓰기를 다룬 책이 쏟아지며, 혼자서 책을 펴내는 이웃이 늘어납니다. 이런 모습을 여러 눈길로 볼 수 있을 테지요. 저는 오늘날 이 ‘글물결’을 ‘살살이꽃’ 같구나 하고 느낍니다.


  살살이꽃은 어떤 꽃일까요? 바리데기 이야기를 보면 ‘숨살이꽃·피살이꽃·살살이꽃’이 나옵니다. 오랜 이야기에 나오는 살살이꽃하고 오늘 우리가 들녘에서 만나는 살살이꽃이 같은지는 아리송하지만, 꼭 하나는 알 수 있어요. 꽤 많은 꽃은 살살이꽃입니다. 어떤 대단한 꽃 한 송이라기보다, 거의 모두라 할 꽃은 살살이꽃입니다.


  첫째, 나물이 되지 않는 풀은 없고, 약이 되지 않는 풀도 없어요. 둘째, 살살 바람 따라 춤을 추지 않는 풀도 없답니다. 바람이 불 적에 살랑살랑, 살짝살짝, 살살 춤을 추는 풀꽃입니다. 그리고 이 풀꽃을 나물로 삼으니 피랑 살이 되고 숨이 되어요. 다시 말해, 모든 풀꽃은 살이 되고 피가 되며 숨이 되어요. 바리데기 이야기에 나오는 세 가지 약풀은 우리 둘레에 너른 풀꽃 가운데 세 가지를 스스로 알맞게 고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먼 데에서 찾지 말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이 살살이꽃은 영어로 이름을 들자면 ‘코스모스(cosmos)’예요. 아, 대단한 꽃이름이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날 글물결이 이 코스모스, 살살이꽃처럼 눈부신 모습이라고 느껴요.



[겹말 2016.9.22.] 말을 찬찬히 배우지 않거나 못하는 채 글을 쓰기만 하는 사람이 늘면서, 얄궂은 겹말이 엄청나게 나타나지 싶다. 글이란 언제나 말이고, 말이란 언제나 마음을 짓는 생각인데, 이 얼거리에서 말뜻을 차근차근 못 짚거나 못 다루기에 겹말이 나타난다. (28쪽)


[권정생 2005.6.7.] 가난하고 힘겹게 사는 사람들하고 ‘한마음 한몸’이 되지 않고서는 돕는 손길을 내밀 수 없다. 아니, 돕는 손길이 아니라 어깨동무하는 손길이 못 된다. (37쪽)



  사전이라는 책을 쓰는 사람은 글을 어마어마하게 씁니다. 더구나 날마다 쉬지 않고 쓰며, 꾸준히 씁니다. 어느 하루 더 많이 안 쓰고, 어느 하루 덜 쓰지 않습니다. 날마다 거의 비슷한 결로 씁니다. 다만, 이 얘기는 사전을 제대로 엮으려는 길을 갈 적에만 들어맞습니다. 다른 사전을 늘어놓고서 짜깁기를 하는 일꾼이라면 글을 거의 안 쓰겠지요. 장삿속에 파묻힌 사전을 쓸 적에도 구태여 스스로 글을 쓸 일이 없을 테고요.


  사전이라는 책을 쓰는 사람은 어느 나라이든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드뭅니다. 한국도 매한가지예요. 워낙 큰 덩이요, 여느 눈썰미로는 쓰거나 엮을 엄두조차 못 내는 책이 사전입니다. 더구나 사전이란 책을 한 자락 마무리를 하자면, 짧게는 이백 해나 삼백 해요, 길게는 오백 해나 즈믄 해입니다.

  꽤 벅찬 일이니, 사전이라는 책을 쓰자면 나라에서 돈을 대거나, 뜻있으면서 돈이 넉넉한 분이 뒷배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나라돈을 받은 적 없이 혼자서 사전이라는 책을 씁니다. 개미처럼 듬직한 이웃님들 작은 손길을 받으면서 차근차근 이 길을 나아갑니다.



[그림책 2019.4.5.] 새로운 길을 밝히는 걸음으로 아기한테는 무럭무럭 자라나는 길을 밝히고, 어린이한테는 새롭게 배우는 길을 밝히고, 젊은이한테는 씩씩하게 나서는 길을 밝히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는 슬기롭게 빛나는 길을 밝히고, 아저씨 아주머니한테는 살림을 사랑하는 길을 밝히는 책이다. (40쪽)


[굴 2006.2.6.] 스스로 어떻게 살아갈 적에 즐겁게 노래를 하는 살림인가를 생각하는 길이라면, 우리가 입으로 읊는 모든 말은 곧 골이 된다. (41쪽)



  사전은 금긋기를 할 수 없습니다. 사전은 치우칠 수 없을 뿐더러, 일부러 덜어내거나 보탤 수 없습니다. 사전은 차가워서도 아니되고, 뜨거워서도 아니됩니다. 어느 쪽에 몸을 담글 수 없되, 모든 쪽을 두루 헤아리는 눈길이 되어야 합니다. 매몰차게 굴어도 안 될 노릇이지만, 끈끈하게 굴어도 안 될 노릇입니다. 그리고 따가워야 하는 자리에서는 더없이 뾰족한 가시가 되어야 하고, 포근해야 하는 곳에서는 그지없이 아늑한 품이 되어야 해요.


  마치 얼토당토않다 할 만한 두 갈래 길을 한꺼번에 가는 사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글길이 사전길일까요? 보기를 들어 볼게요. ‘전쟁’하고 ‘평화’라는 낱말을 올림말로 삼아서 풀이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시샘’하고 ‘사랑’이라는 낱말을 올림말로 찬찬히 짚어야 한다면, 어떻게 짚어야 할까요? ‘눈물’하고 ‘웃음’은? ‘너’랑 ‘나’는?


  얼핏 어림을 할 수 있을까요? 사전 지음이는 늘 두 갈래 길을 걷되, 차갑지도 뜨겁지 않아야 합니다만, 고요하면서 춤추는 넋이어야 합니다. 차분하게 풀이를 하되, 깐깐해야 하고, 아무렇지 않고 짚어 주되 언제나 바탕은 사랑어린 생각을 마음에 심도록 징검다리 구실을 할 노릇입니다.



[글쓰기 2018.3.8.] ‘쉽지 않다’고 여기는 마음을 버리고 ‘해본다’나 ‘하고 싶다’나 ‘한다’는 마음이 되어 보셔요. (49쪽)


[꽃 2019.3.3.] 꽃은 기다린다. 저를 눈여겨보거나 들여다보거나 바라보다가 가만히 다가와서 쓰다듬어 주기를. (59쪽)



  《우리말 글쓰기 사전》(스토리닷, 2019)이라는 책을 써냈습니다. 처음 담으려고 했던 “글쓰기 사전” 알맹이 가운데 9/10을 덜어내고 1/10만 남겨서 단출한 “글쓰기 사전”으로 묶었습니다. 어떤 분은 되묻겠지요. 이 《우리말 글쓰기 사전》이란 책이 썩 얇지 않은데, 아홉 곱절 부피로 내려 했다고?


  이 책 하나에 제 온삶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 하나로 밝히려고 한 이야기는 몇 가지 있어요. 첫째, 누구나 사전이라는 책을 쓸 수 있다는 실마리를 조용히 보여주려 했습니다. 둘째, 누구나 글을 아름답게 써서 사랑스레 나눌 만하다는 수수께끼를 가만히 풀려 했습니다. 셋째, 책 하나는 대수롭지 않으면서 대단하다는 넋을 나누려 했습니다. 넷째, 모든 책은 숲이면서 모든 숲이 책이라는 얼개를 부드러이 들려주려 했습니다.



[더 2017.6.4.] 글쓰기를 놓고 말한다면, “더 나은 글”이란 없다. 사진을 놓고 말한다면, “더 나은 사진”이란 없다. 사람과 삶을 놓고 말한다면, “더 나은 사랑”이란 없다. 우리는 아무 걱정을 할 까닭이 없다. 그저 우리 이야기를 글로 쓰면 되고, 우리 삶을 사진으로 찍으면 되며, 우리 사랑을 도란도란 나누면서 살림을 지으면 된다. (84쪽)


[마을책집 2018.12.13.] 마을책집에는 참고서나 문제집이나 교과서가 없다. 자, 보라. 참고서나 문제집이나 교과서가 없으니 책터가 얼마나 눈부신가? 우리 삶에서도 이와 같다. 참고서나 문제집이나 교과서는 안 봐도 된다. 아니, 치울 적에 아름답다. 시험점수를 높이려는 길이 아닌, 살림자리를 빛내려는 길을 가기에 스스로 눈부시기 마련이다. (108쪽)



  저는 김치를 먹을 수 없는, 또는 몸에서 받을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한국이란 나라에서는 더없이 안 만만찮은 몸이지요. 어린 날부터 늘 듣던 말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한국사람이 김치를 못 먹어?”예요.


  그렇지만 김치를 못 먹을 수 있지 않나요? 또는 김치를 안 먹어도 되지 않나요? 서른 즈음 이른 어느 날 ‘쌀로 지은 먹을거리’를 먹을 수 없는 분을 살짝 만난 적 있습니다. 그분이 그때까지 받아 온 짐이 얼마나 컸는가를 한눈에 알아차렸습니다. 김치를 못 먹는 사람보다 쌀을 못 먹는 사람이 받아야 하던 손가락질이나 눈치가 얼마나 대단했을까요?


  우리는 왜 ‘김치나 쌀이 아주 마땅하다’고 여길까요? 왜 사내는 치마를 두르면 안 되고, 왜 가시내는 머리카락을 길러야 한다고 여길까요? 뭐, 요새는 사내도 머리카락을 기르고, 가시내도 머리카락을 짧게 치기도 하지만, 아직 학교나 사회 곳곳에서는 한켠으로 치우친 눈길이 대단히 드셉니다.


  《우리말 글쓰기 사전》에 딱 한 줄로 실을까 하다가 차마 실을 수 없어 덜어낸 이야기가 있는데, 성폭행입니다. 저는 이 일을 ‘머리에서 잊기로 하면 잊히리라’ 생각했으나 아니었어요. 성폭행뿐 아니라 주먹질도 잊힐 수 없는 일입니다. 이밖에 어마어마하달 수 있는 일을 숱하게 겪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죽을 고비를 끝없이 넘고 또 넘은 나날이었어요. 거꾸로 보자면, 저는 어릴 적부터 살아남으려고 용을 쓰고 악을 쓰고 이를 깨문 나날이었습니다.



[마음 2012.3.3.] 모든 글은 먼저 마음으로 쓴다. 마음속으로 가만히 온갖 이야기를 가다듬는다. (109쪽)


[맞춤법 2017.7.11.] 아이들은 맞춤법이 틀려도 저희 하고픈 말을 글로 옮긴다. 우리 어른도 이처럼 글을 쓰면 아름다우리라 본다. (112쪽)



  사전이란 책을 쓰는 일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날마다 글종이(원고지) 500쪽을 쓰는 하루를 서른 해쯤 살아내면 누구나 쓸 만합니다. 글을 누가 어떻게 그만큼 날마다 쓰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요? 네, 물어보셔요. 스스로 물어보시면 스스로 풀잇길을 찾아냅니다.


  자, 종이에 써도 글이고, 마음에 써도 글입니다. 나뭇잎에 써도 글이며, 하늘에 대고 써도 글입니다. 숲바람을 읽어도 책읽기요, 구름길을 읽어도 책읽기입니다. 꽃노래를 읽거나 풀벌레 노랫가락을 읽어도 책읽기예요.


  넉넉히 들을 줄 알면서, 기쁘게 말할 줄 안다면, 우리는 누구나 사전쓰기를 하는 셈이요, 저마다 다르면서 새로운 글쓰기를 하는 셈입니다. 글이나 사전이나 책을 쓰는 수수께끼는 바로 이 한 가지예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숨결이 책이자 사전이면서 사랑이고 꽃입니다.



[사진 2005.5.6.] 사진을 찍고 싶으면 글을 써 보면 된다. 글을 쓰고 싶으면 사진을 찍어 보면 된다. 밥을 맛있게 짓고 싶으면 밭을 살뜰히 지으면 된다. 밭을 살뜰히 짓고 싶으면 밥을 맛있게 지으면 된다. 아이를 돌보고 싶으면 어른이 되면 된다. 어른으로 곧게 서고 싶으면 아이를 돌보면 된다. (149쪽)


[우리말 살려쓰기 2017.4.30.] ‘우리말 살려쓰기’란 무엇인가? 나는 이를 두 가지로 이야기하려 한다. 첫째, ‘말에 담는 생각을 살려서 쓰는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말’이 아닌 ‘말에 담는 우리 생각을 살리려고 힘을 기울이는 일’이 바로 우리말을 살리려는 일이라고 느낀다. 둘째, ‘마음에 씨앗으로 담을 생각이 되는 말’을 살리려고 힘을 쏟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때에 이 생각(마음에 씨앗으로 담을 생각)이란 ‘꿈·사랑·길’이라고 본다. (180쪽)



  멋을 부리는 멋글을 써도 나쁘지 않아요. 멋글을 쓸 적에는 멋이 남습니다. 자격증이나 졸업장이나 학위를 따려고 쓰는 글도 나쁘지 않아요. 이런 뜻으로 쓰는 글이라면 틀림없이 자격증이나 졸업장이나 학위를 얻겠지요.


  사랑하는 님한테 사랑을 띄우고 싶어서 사랑글을 쓸 수 있어요. 자, 사랑글을 쓰면 무엇이 남을까요? 멋이 남나요? 자격증이나 학위가 남나요? 아니지요. 사랑글을 쓰면 바로 사랑이 남습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빈틈없이 살피려는 글을 쓰면 무엇이 남을까요? 네, 마땅히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만 남겠지요.


  그러니까, 글을 쓰고 싶으면 글을 쓸 노릇입니다. 좋은 글도 나쁜 글도 없습니다. 스스로 남기고 싶은 삶이나 뜻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쓰면 될 뿐입니다. 이 삶을 사랑하고 싶으면 오직 사랑만 쓰셔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을 바란다면 오로지 꿈만 쓰셔요.



[종이 2008.8.25.] 아이가 우리한테 오고서야 기저귀를 눈여겨본다. 이때까지 기저귀가 무엇인지 제대로 짚지 못했다. 사전에 실린 말뜻으로는 ‘기저귀’를 바라볼 수 있었어도, 아이 샅에 기저귀를 대는 살림을 짓고서야 비로소 ‘기저귀’가 그냥 낱말 하나가 아닌 엄청나게 오래며 깊은 삶이 넓게 스민 사랑인 줄 깨닫는다. (211쪽)


[책쓰기 2015.1.8.] 나는 왜 글을 쓰고, 이 글을 왜 묶어서 책으로 펴내려 하는가. 이웃과 동무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곁에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들한테 새로운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231쪽)



  글을 써도 돈도 되고 책도 잘 팔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네, 이러한 생각이 나쁘지 않고, 이러한 생각대로 이루는 사람도 제법 있어요. 그렇다면 또 물어볼게요. 글을 써서 돈도 벌고 책도 잘 팔려서 무엇을 이루거나 누리고 싶나요? 돈도 벌면서 사랑도 얻고 싶나요? 그런데 글 한 줄로 책을 엮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참사랑을 조금이라도 생각할 수 있던가요? 사랑보다 돈이 앞서는 터라, 사랑은 그저 허울어린 껍데기 입말림으로 그치지 않던가요?


  사랑으로 쓴 글은 사랑이 물씬 배어나옵니다. 돈바라기로 쓴 글은 돈냄새가 풀풀 납니다. 이름값을 노리고 쓴 글은 이름내음이 고약하게 넘치지요. 논문이나 학위를 노리고 쓴 글을 보셔요. 얼마나 겉치레가 자르르 흐르는가요? 신문 사설이나 논설을 보셔요? 얼마나 겉발림이나 허풍이 반드르르 흐르는가요?



[푸름이 1991.9.27.] 어느 분 글에서 얼핏 ‘푸름이’란 낱말을 읽는다. 푸름이? 푸름이가 뭐지? 아, 그래, 그렇구나. ‘청소년’은 한자말이었구나. ‘푸름이’가 바로 우리를 가리키는 이름이네. 와, 멋지다. ‘어린이’처럼 ‘푸름이’로구나. 그래, 출판사 이름도 ‘푸른나무’였네. 다 그런 뜻이었네. (266쪽)


[학번 2000.3.25.] 나는 대학교를 그만두었으니 고졸이다. 고졸로 살아가는 사람한테 자꾸 “그래도 대학교에 들어갔다가 그만두었다니까 학번이 있을 거 아니에요? 몇 학번이에요?” 하고들 물어본다 … 학번을 묻는 그들은 학번으로 줄을 세우려는 뜻이 뼛속까지 새겨졌다고 느낀다. (272∼273쪽)



  글쓰기를 다루는 책을 쓰면서 구태여 《우리말 글쓰기 사전》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냥 글쓰기가 아닌 “우리말 글쓰기”입니다. 그냥 글쓰기를 말하지 않고 “글쓰기 사전”으로 말합니다.


  마음에 생각을 심는 말을 옮긴 글이 요즈음에는 꽤 많이 사라졌다고 느낍니다. 서로서로 아름다이 살림을 가꾸는 이웃으로 어깨동무하려는 뜻을 펴는 말을 옮긴 글도 요사이에는 퍽 많이 없어졌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에요.


  토박이말이 아닌 ‘우리말’을 찾자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 삶터에서 우리 사랑으로 나누는 말’을 찾자는 소리입니다. 남이 쓰는 말을 따라가지 말자는 소리입니다. 남 눈치를 보지 말자는 소리입니다. 오직 ‘우리 스스로’ 마음을 바라보면서 ‘우리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찾아서 차곡차곡 글쓰기를 노래하자는 소리입니다.



[헌책 2004.7.1.] 모든 책은 헌책이다. 모든 책은 새책이다. 모든 책은 삶이다. 모든 책은 사랑이다. 모든 헌책은 새책이다. 모든 새책은 헌책이다. 모든 헌책은 웃음이다. 모든 새책은 눈물이다. 모든 책은 씨앗이다. 그냥그냥 말놀이를 해본다. (286∼287쪽)



  물어볼게요. 글씨를 잘 써야 좋은 글이던가요? 이름난 출판사에서 펴낸 책이어야 좋은 책이던가요? 널리 알려진 사람이 썼기에 좋은 글이던가요? 널리 알려진 사람이 쓴 책이라서 좋은 책이던가요?


  누가 썼든 좋은 마음이 흘러야 좋은 글이지요? 어느 출판사에서 펴냈든 좋은 생각이 가득해야 좋은 책이지요?


  글씨가 삐뚤빼뚤이어도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글맛이 다르고 줄거리가 달라요. 글씨는 반듯하더라도 마음이 없다면 글맛도 없을 뿐 아니라 아무 줄거리가 없겠지요.


  요즈막에는 ‘캘리그래프’라는 영어를 써서 번듯번듯 손글씨를 뽐내곤 하는데요, 캘리그래프가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만, 그냥 ‘우리 손글씨’를 수수하고 투박하게 쓰면 더 좋겠습니다. 자랑할 일도 없고, 숨길 일도 없어요. 생채기를 감출 까닭도 없지만, 또 내세울 까닭도 없겠지요.


  우리는 마음을 나누려고 말을 해요. 글이라고 다를까요? 글도 같아요. 잘 보이려고 쓰는 글이 아니고, 잘 팔리거나 많이 읽히려고 쓸 글이 아니에요. 돈이 되도록 쓸 글조차 아닙니다. 그저 하나예요. 너랑 내가 마음으로 만나는 징검다리가 되도록 쓸 적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면서 즐거운 글입니다.



[글씨] 마음에 씨가 있어 ‘마음씨’이다. 말에 씨가 있어 ‘말씨’이다. 글에도 씨가 있으니 ‘글씨’이다. 우리는 어떤 결이나 무늬나 빛이나 넋으로 글에 씨를 담으면서 노래할 수 있을까. (311쪽)

[나] 네가 스스로 너다움(나다움)을 가꾸면서 환하게 빛내기에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있다. 거꾸로 보아도 같다. 내가 스스로 나다움을 돌보면서 눈부시게 밝힐 수 있기에 너는 나를 사랑할 수 있다. (312쪽)

[돈] 서로 즐겁게 일하면서 나누는 이음고리로 돈이 있다. 내 일삯을 돈으로 받고, 네 일삯을 돈으로 준다. 때로는 마음으로 일값을 치르고, 때때로 푸성귀나 열매나 뜨개옷이나 손글월로 일값을 주거니받거니 한다. (315쪽)



  《우리말 글쓰기 사전》이라는 책은 제가 한글을 처음 익힌 1982년부터 2019년 사이에 쓴 글 가운데 추려서 손질해서 엮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이동안 수첩이나 공책을 꽤 잃거나 빼앗겼어요. 때로는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던 날도 있어 마음에 눈물로 새기기도 했습니다.


  종이에 적은 글은 종이에 적은 대로 애틋하더군요. 마음에 새긴 글은 마음에 새긴 대로 아프데요. 애틋한 마음은 애틋하게 손질했습니다. 아픈 마음은 아프게 가다듬었습니다. 그리고 꽤 많이 잘라냈습니다. 아직은 다 털어내거나 밝힐 수 없기에 지우기도 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뚜렷하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가 1982년부터 2019년 사이에 쓴 모든 글은 언제나 한 가지가 밑바닥에 흐르더군요. 바로 ‘사랑’이요, ‘꿈’이요, ‘노래’였어요. 여기에 ‘숲’이자 ‘사람’이고요.



[사랑] 사람답게 살아가는 슬기롭고 상냥하면서 새로운 숨결이 드러나는 길이 사랑이라고 느낀다. (324쪽)

[이오덕] 박정희 독재가 서슬퍼렇게 새마을운동으로 모든 시골을 무너뜨리던 무렵, 제발 그런 짓을 멈추고 아이들을 참답게 사랑하며 가르치는 터전이 피어나기를 꿈꾸면서 ‘참교육’이란 말을 처음 썼다. (331쪽)

[치마바지] 바지를 품은 치마. 치마인 척하는 바지. 치마랑 바지를 함께. 마음껏 치마멋을 즐길 수 있는 옷. 자전거를 달릴 적에 든든하면서 거뜬하다. 치맛속을 들여다보려는 응큼한 사내를 한칼에 물리칠 수 있다. (338쪽)



  사랑을 하려고 태어난 이 별에서, 꿈을 사랑스레 이루려고 걷는 이 별에서, 노래하며 사랑을 꿈꾸는 이 별에서, 숲을 이루는 보금자리인 이 별에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걸어가려고 하는 이 별에서, 어제도 오늘도 모레도 글을 씁니다. 그저 사랑을 담아서. 오직 꿈으로. 참말로 노래하면서. 언제나 숲바람을 마시고, 사람이라는 숨결을 빛내면서. ㅅㄴㄹ




한 줄 써도 노래

두 줄 적어도 노래

석 줄 그려도 노래

닷 줄 적바림해도 노래


또박또박 글씨를 쓰고

똑똑히 글월을 적고

또렷이 글발을 그리고

오롯이 글자락 적바림하지


마음에 담아서 가꾸는

고요하며 환한 씨앗 같은

생각을 우리 눈으로 보며

같이 나누려는 글이야


말을 담은 그림이지

노래를 실은 무늬이지

꿈을 얹은 사랑이지

뜻을 품은 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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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새롭게 살려낸 한국말사전 3
최종규 지음, 숲노래 기획 / 철수와영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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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올립니다.

..

숲노래 지은 책

  모든 사람이 저마다 사전을 쓴다면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숲노래 기획

 최종규 글

 철수와영희

 2019.10.9.



우리말이 우리말답게 되거나 빛나거나 일어나거나 퍼지거나 날아오를 수 있도록, 한국이란 나라에서 살며 한국사람으로 쓰는 한국말이 슬기롭고 사랑스러우면서 넉넉하고 따사로운 한국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배움수첩을 씁니다. 그리고 이 배움수첩을 살짝 들추어서 이웃님하고 수다를 떨고 싶어요. 같이 배워 보자고, 어렵지 않다고, 어렵다는 생각이 아니라 즐겁게 처음으로 배운다는 생각을 하자고, 우리는 아직 우리말·한국말을 배운 적이 없는 줄 기쁘게 받아들여서, 이제부터 새롭게 배우자는 수다를 떨고 싶습니다. (7쪽)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철수와영희, 2019)이라는 사전을 써냈습니다. 2019년 10월 9일을 펴낸날로 찍은 한국말사전입니다. 예전에 익히 말한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국어사전’ 아닌 ‘한국말사전’이란 이름을 씁니다. ‘국어’란 한자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우두머리가 아시아 여러 나라를 군홧발로 내리누르면서 억지로 쓰도록 시킨 말이거든요. 일본 우두머리가 한국 중국 대만한테 쓰라고 시킨 ‘국어 = 일본말’입니다. 이런 자취가 짙게 밴 ‘국어’이니 ‘국어사전’이란 말을 도무지 쓸 수 없기도 하거니와, 국립국어원 같은 곳도 앞으로 이름을 고쳐야 한다고 느껴요.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었듯 새 이름을 지을 노릇이라고 여겨요.


  그나저나 《우리말 꾸러미》(‘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을 줄인 이름)는 철수와영희 출판사에서 석 자락째 펴내 주는 “새롭게 살려낸 한국말사전”입니다. 《우리말 꾸러미》에 앞서 2016년에 《비슷한말 꾸러미》를, 2017년에 《겹말 꾸러미》를 펴내 주었습니다.


  석 자락째인 《우리말 꾸러미》에는 ‘우리말’이란 이름을 넣었습니다. 왜 ‘우리말’이라 했느냐 하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 지어서 쓰는 우리 생각을 담은 우리 사랑으로 가꾸는 말’을 들려주고 싶었거든요.



“이런 가을숲을 보면 다들 ‘단풍’이라 말하는데, 너무 흔한 말 같아요. 최종규 씨가 좀 다른 말을 지어 줄 수 없나요?” 빙그레 웃었습니다. 제가 왜 ‘단풍’ 말고 새말을 지어 주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으니까요. 다만, 정 ‘단풍’이란 한자말을 안 쓰고 싶다면 새말을 스스로 지으면 된다고, 가을숲을 바라보는 느낌을 그대로 담으면 된다고 얘기했어요. 그러니 “그래도 좀 지어 주시지요?” 하시기에 “저는 이 가을숲을 보면 마치 무지개가 숲에 내려왔구나 싶어요. 늘푸른나무, 노란나무, 빨간나무, 앙상나무, 참말 ‘가을무지개’ 아닌가요?” (20쪽)



  《우리말 꾸러미》 첫 꼭지는 ‘가을무지개’입니다. 전남 고흥으로 찾아온 어느 방송국 일꾼이 불쑥 한 가지를 물었어요. 미리 알려주지 않고 불쑥 물었는데요, ‘단풍’이란 한자말이 너무 흔하다 싶어서 가을빛이나 가을맛을 제대로 나타내기 어렵다고 여긴다더군요. 이러면서 저더로 그자리에서 바로 새말을 하나 지어 달라 합디다.


  좀 딱했습니다. 어느 말이든 스스로 아쉽다고 여기면 스스로 지으면 됩니다. 남이 지어 줄 노릇이 아니에요. 남이 지어 준 말이 그분한테 얼마나 알맞거나 즐거울는지는 참 모를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싫은 티를 내고 싶지 않았어요. 갑작스레 묻는 말이었지만, ‘단풍’이라는 낱말이 한자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우리 집 아이들도 이 한자말을 못 알아듣겠네 싶더군요.


  저는 방송국 일꾼한테 알려줄 새말이 아닌, 우리 집 아이들이 가을빛이며 가을맛을 새롭게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어 그자리에서 바로 새말 하나 ‘가을무지개’를 지었습니다.


가을무지개 : 가을이 깊으면서 숲이나 들에 달라지는 알록달록한 빛깔. ‘단풍’이란 말처럼 나뭇잎이나 풀잎이 저마다 다른 빛깔로 바뀌면서 곱게 어우러지는 모습

별무지개 : 높다란 하늘에서 알록달록하게 온갖 빛깔이 어우러지면서 흐르는 기운. 이른바 ‘오로라’라고 한다

밤무지개 : 밤하늘에 뜬 별을 찬찬히 살피면 별빛이 하나가 아니라 다 다른 줄 알아차릴 수 있으니, 노랗고 빨갛고 푸르고 불그스름하고 파르스름한 갖가지 별빛이 그야말로 곱게 어우러지기에, 이러한 별잔치를 가리킨다. ‘미리내’나 ‘은하수’라고도 할 수 있다



  가을이 깊은 멧자락을 바라보면 온갖 빛깔 나뭇잎이며 풀잎을 볼 수 있어요. 이 잎빛은 무지개 같아요. 제가 보기로는 그렇습니다. 하늘이 아닌 숲에 드리운 무지개가 바로 가을빛이네 싶어서 ‘가을무지개’란 낱말을 지었고, 이렇게 지은 낱말에 뜻풀이를 처음으로 붙였지요.


  이렇게 새말을 짓고 뜻풀이를 붙이고 보니, 덩달아 다른 말이 떠올라요. 밤에 보는 여러 아름다운 빛 가운데 ‘오로라’가 있어요. 비록 한국에서는 오로라를 못 본다지만, 북극 쪽으로 가면 볼 수 있다지요. 우리 숲집에서는 밤에 늘 미리내를 맨눈으로 봐요. ‘미리내(← 은하수)’는 텃말이 있으니 굳이 새로 안 지어도 될 테지만, 아이들한테 오로라를 이야기하자니 새말이 더 있어야겠네 싶었어요. 그래서 마치 별처럼 하늘을 채우는 반짝이는 빛이기에 ‘별무지개’란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이러고서 ‘미리내’한테도 슬쩍 ‘밤무지개’란 이름을 더 붙여 보았어요.



글을 쓰는 어른으로 살며 ‘원고지’란“글을 쓰는 종이”일 뿐인 줄 뒤늦게 알아챘어요. ‘색종이’는 ‘빛(빛깔)’을 넣었을 뿐이요, ‘이면지’는 ‘뒤’를 쓸 수 있을 뿐이더군요. (25쪽)



 둘레에서 흔히 쓰듯 저도 그냥그냥 ‘원고지’란 말을 쓰며 지냈는데,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면서 아버지가 하는 일이 궁금해서 물어봐요. 그래서 “응, 오늘은 아버지가 원고지에 글을 써서 보내려고.” 하고 말했지요. 아이들은 “원고지? 원고지가 뭐야?” 하고 되물어요.


  아차 싶었습니다. 둘레에서 흔히 쓰더라도 우리 집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한테는 하나같이 낯선 말일 수밖에 없어요. 글쓰는 어버이를 둔 아이라 하더라도 원고지란 말이 낯설 수 있어요. 그래서 바로 말을 바꾸었습니다. “아, 그러니까, 글을 쓰는 종이, 그래 ‘글종이’에 글을 쓰려고. 모든 종이에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릴 수 있잖니? 그런데 따로 ‘글종이’라 할 적에는 글씨가 얼마나 되는가도 살피고, 글씨도 또박또박 알아보기 좋으라고 이렇게 칸을 넣어. 이렇게 칸을 넣어서 글을 쓰도록 하는 종이를 ‘글종이’라고 해.”

 


겉종이 : 겉을 이루거나 싸거나 덮은 종이. ‘표지 ·겉표지· 겉장’을 가리킨다

그림종이 : 그림을 그리는 종이. 그림을 그리기 좋도록 깨끗한 종이. ‘도화지’를 가리킨다

글종이 : 글을 쓰는 종이. 글을 쓰기 좋도록 칸을 넣은 종이. ‘원고지 ·원고용지’를 가리킨다



  제가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살림을 꾸리지 않았어도 이렇게 새말을 지었으려나 하고 돌아보면, 뭐 그래도 그럭저럭 짓기는 했겠다고 느껴요. 그렇지만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 말이 많았으리라 봅니다. 여느 어른으로서는 그냥 쓰는 말이 아이들한테는 모두 낯설거나 어려울 수 있는 줄 깊이 못 살폈겠다고 느껴요.



어느 때부터인가 방송이며 책이며 ‘리액션’이란 영어가 넘칩니다. 뭔가 커다란 몸짓이나 말씨로 대꾸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듯 여기는 바람이 불기도 하는데, 영어 ‘리액션’은 한자말 ‘반응’을 가볍게 밀어냅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우리가 흔히 쓰던 ‘맞장구’나 ‘맞장단’이란 말씨를 까맣게 잊어버리게 내몰아요. (82쪽)



  저는 집에 텔레비전을 안 둡니다. 1994년부터 텔레비전 없는 살림을 꾸립니다. 바로 1994년부터 스스로 한국말을 처음부터 새롭게 익히는 길을 걸었고 이때부터 ‘우리말 배움 수첩’을 썼어요.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2년부터 교과서 귀퉁이나 수첩 한켠에 조금씩 ‘우리말 배움 적바림’을 끄적이곤 했지만, 제대로 틀을 갖추어서 쓴 때는 1994년입니다.


  가만히 보니 텔레비전을 제 삶자리에 못 들어도록 하던 그무렵부터 말이랑 글을 한결 깊고 넓게 보는 눈을 틔울 만했구나 싶습니다. 텔레비전이 나쁘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텔레비전을 켜면 그저 멍하니 들여다보고 말아요. 그러나 책을 손에 쥘 적에는 스스로 종이를 넘기고, 스스로 글줄을 훑어야 하며, 스스로 줄거리를 꿰어야 하고, 스스로 이야기를 갈무리해서, 스스로 모든 슬기를 추슬러야 하더군요.



맞짓 : 누가 하는 말이나 몸짓을 받아서 들려주는 말이나 보여주는 몸짓

맞장구 : 1. 마주보면서 치는 장구 2. 누가 하는 말이나 몸짓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하는 말이나 몸짓. 때로는 더 크게 보여주기도 한다

맞장단 : 1. 마주 쳐 주는 장단 2. 누가 하는 말이나 몸짓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하는 말이나 몸짓. 때로는 더 크게 보여주기도 한다



  사람들이 ‘리액션’이란 영어를 그토록 흔히 아무 데에서나 쓰는지 까맣게 몰랐습니다. 어느 날 서울에 이야기마실을 갔다가 ‘리액션’이 되게 흔한 말이란 얘기를 듣고서 뒷통수를 긁적였습니다. 이러면서 생각했지요. 누구보다 우리 집 아이들한테 어떤 말씨를 알려주면 좋을까 하고 헤아렸습니다.


  처음에는 ‘맞짓’ 같은 말을 지어 보는데, 얼결에 오랜 말이 떠올랐어요. 바로 ‘맞장구’하고 ‘맞장단’입니다. 이런 말을 떠올리고 보니 ‘맞가락’ 같은 새말을 지어도 좋겠다고 느꼈습니다. ‘맞몸짓’이나 ‘맞말’ 같은 말을 써도 어울릴 테고요.



옷을 흔히 물려입으며 ‘물림옷’이란 말을 써요. 어버이가 물려주는 글씨(글)는 ‘물림글씨·물림글’이 될 테고, 물려받는 ‘물림일’도 있겠지요. 2018년 가을에 서울시는 ‘오래가게’란 이름으로 오래된 가게를 기리는 일을 한다고 밝힙니다. ‘오래가게’란이름도 좋습니다. (90쪽)



  《우리말 꾸러미》는 1992년부터 맞닥뜨리면서 생각한 새로운 말결을 120 갈래로 나누어서 갈무리한 사전입니다.1992년부터 2019년 사이인 만큼 자그마치 스물여덟 해치 ‘우리말 배움 수첩’을 단출하게 간추린 셈입니다. 몇 만에 이를 우리말 이야기가 있으나 이를 고작 120 가지로 추려서 엮었으니까요.


  긴 나날을 살아온 만큼 《우리말 꾸러미》를 제법 두툼하게, 그러니까 1200 가지 이야기를 담은 참 두꺼운 사전으로도 엮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두꺼운 사전이 되면 자칫 ‘그때그때 알맞게 새말을 짓는 일’을 누구나 하기 어렵다고 여길 수 있겠다고 느꼈어요. 단출하게 엮는 가벼운 사전을 선보인다면, ‘이럴 때에 이 말을 살려서 써도 좋겠네’ 하고 생각할 이웃님이 있을 테고 ‘나라면 이럴 때에 좀 다르게 말을 살려서 써 보고 싶네’ 하고 생각할 이웃님이 있으리라 보았습니다.



물림가게 : 물려받거나 물려주는 가게. 집안에서 물려받을 수 있고 남한테서 물려받을 수 있다

물림일 : 물려받거나 물려주는 일

물림옷 : 물려받거나 물려주는 옷

오래가게 : 오래된 가게. 꽤 많은 나날이 지나도록 물려받거나 물려주면서 이어온 가게

오래집 : 오래된 집. 꽤 많은 나날이 지나도록 물려받거나 물려주면서 이어온 집



  ‘물림’하고 ‘오래’란 낱말을 놓고서 새말을 차곡차곡 엮던 무렵, 서울시에서 ‘오래가게’란 이름으로 오래된 가게를 북돋우는 일을 했습니다. 서울시 벼슬아치하고 저하고 아무 끈이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비슷한 때에 서로 비슷한 말을 놓고서 새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구나 싶어요.


  자, 생각해 봐요. ‘오래가게’가 있다면, 이런 오래가게가 모인 곳은 ‘오래마을’이곤 합니다. 오래마을이라면 ‘오래골목’이 있을 테고, 오래골목을 걷다 보면, 이 길이 ‘오래길’이라고 느낄 만해요.


  여기에서 생각을 뻗으면 ‘고전’이란 책을 ‘오래책’이란 말로 담아내어도 재미납니다. 그리고 ‘오래마을’이란 이름에는 ‘장수초’ 같은 말도 담아낼 만해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이웃님이 어느 날 “예전부터 ‘사회’라는 이름을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한테 ‘사회’가 무엇인지 어떻게 가르쳐야 좋을까요?” 하고 여쭈셨어요. 그래서 ‘사회(社會)’라는 일본 한자말을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 헤아려 보았어요. (120쪽)



  저도 어릴 적에 ‘사회’란 말이 참 아리송했습니다. 도무지 뭐가 뭔지 종잡기 어려웠어요. 어른이란 나이가 되고도 한참 지난 어느 날, 사전이란 책을 한참 쓰던 어느 때, 어느 이웃님이 조용히 물은 한 마디를 듣고서 ‘사회’라는 일본 한자말이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샅샅이 알아보았습니다.


  지난날 일본 지식인은 영어 ‘society’를 제대로 옮겨내려고 백 해가 넘는 나날을 들였으며, 숱한 일본 지식인이 머리를 맞대어 드디어 ‘사회’란 한자말을 엮었다지요. 그런데 지난날에 새로운 말을 끝없이 지어내며 새로운 나라를 세우거나 가꾸려 하던 그 일본 지식인은 이제 자취를 감춥니다. 이제 웬만한 한국사람도 다 알다시피 일본은 영어를 ‘재패니쉬’로 바꾸어서 말합니다. 스스로 새말을 짓지도 않고, 오랜 일본말을 쓰지도 않아요. 영어로 툭툭 내뱉습니다. 이런 흐름을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따르곤 해요.



삶터 : 살아가는 터. 삶을 이루는 터. 사람이 모여 삶을 짓거나 가꾸거나 누리는 터. 집, 마을, 두레, 모임, 고을, 고장, 나라, 지구라는 별처럼, 사람이 작게 모이거나 크게 모여서 이루는 모든 터를 두루 아우르는 말

삶자리 : 살아가는 자리. 살아가며 이루는 자리. 사람이 모여 삶을 짓거나 가꾸거나 누리는 자리

삶길 : 살아가는 길. 살아가며 이루는 길. 사람이 모여 삶을 짓거나 가꾸거나 누리는 길

삶켠 : 살아가는 어느 한켠. 살아가며 이루는 어느 한켠. 사람이 모여 삶을 짓거나 가꾸거나 누리는 어느 한켠



  수수하게 생각하면 오히려 새로운 길이 나오곤 합니다. 살아가는 터이기에 ‘삶터’예요. 때로는 ‘삶자리’라 할 수 있어요. 이 얼거리를 생각하면 ‘보금자리’라는 말도 ‘보금터’나 ‘보금숲’처럼, 때로는 ‘보금마을’이나 ‘보금책’처럼 새롭게 살려서 쓰는 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툭하면 ‘장유유서(長幼有序)’란 말을 꺼냈습니다. 어른들이 슬기롭고 아름다우면서 훌륭하다면, 굳이 이런 중국말을 들먹이지 않아도 ‘어른먼저’를 몸이며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펼 만하다고 느껴요. (142쪽)



  어른을 먼저 섬겨야 한다면 ‘어른먼저’ 같은 말을 지어서 쓰면 되어요. 한국말이란 이렇습니다. 한자말이나 영어도 이와 마찬가지예요. 어느 나라 말이나, 수수한 결을 그대로 살려서 새말을 짓습니다. 이리하여 아이를 먼저 아끼려는 마음은 ‘아이먼저’란 낱말로 담아낼 만해요. 내가 먼저 하겠다면 ‘나먼저’로, 네가 먼저 해도 좋다면 ‘너먼저’라 하면 좋아요.



아이먼저 : 아이가 먼저 하거나 가거나 쓰거나 누리도록 자리를 내주는 일이나 몸짓

어른먼저 : 어른이 먼저 하거나 가거나 쓰거나 누리도록 자리를 내주는 일이나 몸짓

나먼저 : 다른 사람보다 내가 먼저 하거나 가거나 쓰거나 누리려고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일이나 몸짓

이웃먼저 : 나보다 이웃이 먼저 하거나 가거나 쓰거나 누리도록 자리를 내주는 일이나 몸짓



  우리는 누구나 사전을 쓸 수 있습니다. 아니, 우리가 미처 못 느낄 뿐, 우리는 언제나 저마다 다르게 사전을 쓰며 살아갑니다. ‘사투리’가 바로 사전이에요. 글로 옮기지 않더라도 말로 쓰는 사전이에요. 고장마다 결이 다른 말씨가 바로 고장마다 다 다른 사람이 이녁 살림살이를 바탕으로 ‘입말로 쓴 사전’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결은 사람마다 다르니, 누구는 ‘아쭈?’라 하고 누구는 ‘어쭈?’라 하며 누구는 ‘어쭈쭈?’라 할 수 있어요. “밥을 먹다”를 놓고도 “밥을 묵다”나 “밥을 무욱다”처럼 달리 말하지요.



사전을 보면 ‘큰사람’이란 낱말이 나옵니다. 이와 맞물려 ‘작은사람’은 없어요. 사전에 ‘큰이·작은이’는 나오는데 피붙이 사이를 가리키는 뜻으로만 풀이합니다. 그렇지만 됨됨이나 마음결이나 솜씨나 재주가 뛰어나거나 훌륭한 사람만 있지 않아요. 널리 기리거나 섬기는 ‘큰사람’도 있으나, 앞으로 피어날 ‘작은사람’도 있어요. (189쪽)



  큰사전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사전을 우리 슬기로 조그맣게 쓰면 되어요. 다만 우리가 쓰는 사전은 어떤 전문사전이나 백과사전이 되기보다는, 살림사전이나 사랑사전이 되면 좋겠습니다. 생각사전이나 마음사전이 되면 더 좋겠어요.


  더 크게 엮지 않아도, 더 많이 담지 않아도 좋아요. 더 작게 엮어도 좋으며, 조촐하게 엮는 말 한 마디마다 짙고 푸지게 즐거운 사랑을 담으면 좋겠어요. 《우리말 꾸러미》는 이 나라 모든 이웃님이 저마다 다른 사전을 즐겁게 쓰는 길에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라는 사전입니다.



큰별 : 1. 커다란 별 2. 솜씨나 재주가 뛰어나거나 훌륭해서 널리 섬기거나 기리는 사람

작은별 : 1. 작은 별 2. 솜씨나 재주가 살짝 뛰어나거나 훌륭한데 아직 널리 알려지거나 도드라지지 않은 사람. 앞으로 솜씨나 재주가 자라서 널리 알려지거나 도드라질 사람



  저는 언제나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말을 짓고 뜻풀이를 붙이며 보기글을 씁니다. 우리 집 아이들도 바라보고 이웃집 아이들도 마주합니다. 때로는 열 살 아이 눈높이로 새말을 엮으려 합니다. 때로는 여덟 살이나 다섯 살 아이 눈빛으로 새말을 지으려 해요.


  아이들은 언제나 그자리에서 바로바로 새말을 스스로 엮어요. 어른들처럼 ‘알거나 들은 낱말이 많지 않’거든요. 아이 나름대로 아는 몇 가지 바탕말을 이모저모 엮어서 나타내어요.


  이런 아이들 말놀이를 눈여겨보고 귀담아듣는다면 한국말이 한결 산뜻하면서 쉽고 이쁘리라 생각해요. 국어 전문가 몇몇 사람이 지어서 퍼뜨릴 한국말이 아닌, 나라 곳곳에서 수수한 우리들이 저마다 다른 살림을 바탕으로 ‘저마다 같은 사랑’으로 지은 말이 넘실넘실할 날을 기다리는 마음이에요.



‘무침’은 양념을 한 곁밥입니다. 양념을 해서 풀을 무쳤으면 ‘풀무침’, 양념을 해서 나물을 무쳤으면 ‘나물무침’이에요. ‘콩나물무침·시금치무침·떡무침·톳무침’을 할 만해요. 양념을 안 하고 섞으면 ‘버무리’입니다. ‘풀버무리’도 ‘나물버무리’도 즐길 만해요. (213쪽)



  2019년에 《우리말 꾸러미》를 선보인다면, 새로운 2020년에는 《손질말 꾸러미》를 선보이려고 한창 애씁니다. 《우리말 꾸러미》는 새로 맞아들이는 삶자리에서 어떻게 우리말을 살려서 쓸 만한가 하는 대목을 이야기로 엮고서, 뜻풀이를 모았다면, 《손질말 꾸러미》는 숱한 자리마다 흘러넘치는 ‘이 말씨로는 좀 아쉽네’ 싶은 대목을 살살 긁어 주는 사전이 되도록 엮으려 해요.



풀무침 : 양념을 하고서 풀을 고루 섞은 먹을거리. ‘샐러드’를 가리킨다

풀버무리 : 양념을 안 하고서 풀을 고루 섞은 먹을거리. ‘샐러드’를 가리킨다

과일무침 : 양념을 하고서 과일을 고루 섞은 먹을거리

과일버무리 : 양념을 안 하고서 과일을 고루 섞은 먹을거리



  ‘무침’이 있고 ‘버무리’가 있어요. ‘범벅’도 있고 ‘비빔’도 있지요. 다 다르게 누리는 살림입니다. 이 다 다른 살림을 오늘날 우리 사전은 얼마나 살뜰히 담아내었을까요? 어쩌면 아직 하나도 안 담아내지는 않은 모습 아닐까요? 국립국어원을 비롯해 모두들 백과사전으로만 치닫고 ‘한국말사전’하고는 멀어지는 모습은 아닌가요?



모든 한국사람이 모든 자리에서 아주 말끔하도록 오로지 한국말만 써야 할 일은 없다고 여깁니다. ‘한국말’이란 바구니에 깃들 말을 너무 솎아낼 수 없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 물결이나 흐름을 멈추어 놓고서 곰곰이 생각할 때라고 여겨요. 새물결로 나아갈 길목이라고 여겨요. 우리는 여태 어느 하루도 우리 나름대로 생각을 지어서 우리가 즐겁게 나눌 말을 지으려고 애쓰거나 힘쓰거나 마음쓴 적이 없는 줄 깨달아야지 싶어요. 이제부터 우리 나름대로 우리가 쓸 말을 우리 손으로 짓는 길에 힘이나 마음을 쓸 뿐 아니라, 사랑도 쓰고 돈도 쓰고 생각도 쓰고 슬기로운 눈빛도 쓰면서 틈틈이 ‘즐겁게 나누며 곱게 빛낼 한국말’을 짓는 일도 하면 훨씬 좋으리라 봅니다. (327쪽)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서 ‘국어’ 수업을 하고 시험을 치릅니다. 그러나 이런 수업이나 시험으로는 한국말을 알거나 익히기 어렵다고 느낍니다. 언제나 맞춤법이며 띄어쓰기이며 말법에만 얽매이고 시험점수를 더 잘 따는 데에 기울고 말아요.


  이제는 한국말을 ‘생각을 담아내어 마음을 주고받는 그릇이자 씨앗’이라는 대목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렵게 꼬는 말이 아니라, 즐겁게 나누는 말을 찾아나서면 좋겠어요. 온갖 딱딱한 말법으로 묶는 말이 아닌, 어깨동무하는 싱그러운 살림자리에서 길어올리는 따스하고 고운 말로 거듭나도록 마음을 쓰면 좋겠어요.


  이제는 한국말을 가르치고 배울 때라고 느껴요. 국어가 아닌 한국말을, 이 나라 바람이며 햇볕이며 흙이며 숲을 담아내는 말을, 차근차근 되새기면서 가꾸고 누릴 때라고 느껴요. 고맙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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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놀이 동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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