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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우리말 생각 ㉡ 한글날


 해마다 시월 구일은 한글날입니다. 한글날은 퍽 오랫동안 ‘하루 쉬는 날’이었으나 이제는 안 쉬는 날로 바뀌었습니다. 안 쉬는 날로 바뀐 탓에 사람들이 한글날을 잊는지, 쉬는 날이었어도 사람들은 으레 잊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우리들 누구나 한글날을 아끼며 사랑하는 넋이었다면, 한글날이 따로 쉬는 날이 아니라 할지라도 한글날을 맞이하여 한글을 높이 기리거나 우러르겠지요. 우리들 누구나 한글날을 아끼며 사랑하는 넋이라 한다면, 대통령이나 정치권력자 몇몇 사람이 한글날을 갑작스레 ‘안 쉬는 날로 바꾸자!’ 하고 외칠 수 없는 노릇이요, 이렇게 외치다가는 대통령 자리나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한글날은 ‘한글을 기리는 날’입니다. 한글날은 우리말을 기리는 날이 아니에요. 흔히들 한글날을 맞이해서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자고 이야기하지만, 한글날이 태어난 까닭은 우리한테 우리글이 없던 설움과 아쉬움을 훌훌 털어 기쁨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한글’은 ‘한힌샘’이라는 이름을 따로 쓰면서 살았던 주시경 님이 새로 빚은 낱말입니다. 머나먼 옛날, 이 나라가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던 때에는 ‘訓民正音’이라는 이름을 썼어요. 때로는 ‘諺文’이라 했고요. 말사랑벗들이 잘 헤아리셔야 하는데, ‘훈민정음’이나 ‘언문’이 아닌 ‘訓民正音’하고 ‘諺文’이었어요.

 왜 이렇게 썼을까요? 왜 이러한 이름이 붙었을까요?

 지난날 임금님이나 신하나 사대부나 지식인들은 누구나 漢文을 썼습니다. 입으로 읊는 말은 여느 사람들 누구나 쓰는 ‘한겨레 말’을 썼을 테지만, 글로 적바림할 때에는 ‘漢文’을 썼어요. 이 또한 곰곰이 생각하셔야 하는데 ‘한문’이 아닌 ‘漢文’을 썼어요. 왜냐하면 지난날 임금님부터 지식인까지 하나같이 중국을 높이 우러르거나 섬겼거든요. 오늘날 이 나라 대통령부터 지식인까지 한결같이 미국을 높이 우러르거나 섬기는 모양새하고 닮습니다. 이리하여 요즈음 대통령이든 지식인이든, 어른들은 ‘영어’가 아닌 ‘English’를 써요. ‘한문’조차 아닌 ‘漢文’을 쓰던 때에는 ‘훈민정음’이 아닌 ‘訓民正音’을 지었고, 이러한 글로 중국말을 손쉽게 적바림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이 ‘訓民正音’은 어려운 ‘漢文’을 모르는 여느 가난한 농사꾼들한테 뭐 하나 알리려 할 때에 무척 도움이 돼요. 왜 그러느냐면, 나랏님이 뭐 하나 명령을 하거나 지시를 한달 때에는 ‘漢文’으로 종이에 글을 쓰잖아요. 여느 가난한 농사꾼들은 이 ‘漢文’을 못 읽어요.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칠 때에 들었을 텐데, 여느 가난한 농사꾼들은 글을 배우지 못했어요. 여느 가난한 농사꾼한테 글을 가르치지 않았어요. 여느 가난한 농사꾼들이 글을 배워서 나라를 뒤집을까 걱정하기도 했을 테고, 여느 가난한 농사꾼들은 권력자한테 그예 짓눌리기를 바라기도 했으리라 생각해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여느 가난한 농사꾼들이 깨닫는다면, 이른바 ‘민란’이라는 이름으로 농사꾼들이 힘을 똘똘 뭉쳐서 잘못된 사회와 제도를 바로잡거나 고치려고 일어섭니다. 그러니까 예부터 여느 가난한 농사꾼을 못 가르치도록 하려 했고, 다만 나랏님 명령과 지시사항은 잘 알아듣도록 하려는 뜻에서 ‘訓民正音’을 만들었어요.

 지난날에는 이 나라에서 95퍼센트쯤 되는 사람들이 ‘글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이러니까 ‘글을 아는 사람’인 양반이나 사대부나 지식인이 ‘漢文으로 내려온 명령과 지식’를 하나하나 풀어서 알려주거나 읽어야 했지요. 나라를 다스리는 쪽에서 보자면 얼마나 힘들고 번거로웠을는지 알 만한 노릇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바로 이 한글이 있기 때문에 마음껏 생각하고 신나게 꿈을 꾸는 한편, 책이든 글이든 무어든 넉넉하게 즐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지난날 조선 나라에서는 ‘이렇게 한 나라 모든 사람이 글을 쉽게 쓰거나 읽으며 생각을 꽃피우기를 바라지 않았’어요. 나랏님이 시키는 일을 잘 따르기를 바랐고, 나랏님 뜻대로 나라를 다스릴 생각에 머물렀습니다.

 말과 글이 동떨어지기도 했고, 나랏님과 나랏사람(그러니까 ‘백성’)이 멀리 갈리기도 했던 지난날입니다. 그렇지만, 지난날에야 그러하기는 했으나, 이 한글이라는 글은 더없이 손쉽게 익혀 그지없이 알차게 쓸 만한 글이었어요. 1900년대에 이르러 이 글이 얼마나 값있고 뜻있는가를 깨달은 몇몇 지식인들은 ‘당신들은 漢文만으로도 넉넉히 당신 넋을 밝히며 당신 일자리를 얻고 당신 꿈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만, 이 ‘기득권을 스스럼없이 내려놓고는 우리글 갈고닦기를 처음으로 했’어요. 이러는 가운데 새로 붙은 이름이 ‘한글’이에요. 이리하여 1900년대 첫머리부터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한글운동을 하던 숱한 어른들은 독립운동에 똑같이 몸을 담기 마련이었습니다. 한글을 살리거나 나누거나 알리는 일이란, 이 나라 가난한 여느 농사꾼을 일깨우면서 ‘일본 제국주의자’한테 짓눌린 삶을 떨쳐 일어나도록 이끄는 일이었어요.

 오늘날에도 ‘English’가 아닌 바르고 알맞으며 고운 ‘우리말’을 제대로 살피고 익히며 가다듬는 가운데 쓰는 일이란, 참다이 나라를 사랑하고 겨레를 살찌우며 내 고향마을을 돌보는 일이라 할 수 있어요. 말사랑이란 삶사랑이고 글사랑이란 사람사랑이에요. 한글을 사랑하는 일이란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고, 우리말을 아끼는 일이란 나 스스로를 아끼는 일이랍니다.

 그런데 1900년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우리글을 갈고닦은 ‘깨우친 어르신’들은 ‘한글’이라는 새 이름까지 사랑스레 붙였지만, 이 보람을 홀로 차지하지 않아요. 맨 처음 이 글을 빚은 세종큰임금님이 ‘여느 가난한 농사꾼이 글을 익혀 꿈을 꽃피우기를 바라는 넋’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슬기를 빛내어 글을 빚어 주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온 나라 사람들이 말꽃과 글빛을 이룰 수 있는 바탕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글날은 이렇게 태어났답니다.
 

(최종규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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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우리말 생각 ㉠ 우리말과 우리 말


 우리 겨레는 다른 겨레하고는 사뭇 동떨어진 말이랑 글을 씁니다. 이를 가리켜 손쉽게 ‘우리말’이라 하는데, 이 낱말부터 ‘우리말’로 써야 하느냐 ‘우리 말’로 띄어야 하느냐를 놓고 이야기를 많이 나눈답니다. 저는 ‘우리 말’로 띄어서 적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우리말’로 붙여서 적겠어요.

 궁금한가요? 제 잣대로는 ‘우리 말’로 띄면서 이 책에서는 ‘우리말’로 붙이는 까닭이.

 머리말에서 따로 밝히지 않았는데, 시골 아저씨는 이 책을 쓰면서 책이름이 영 못마땅했답니다. ‘아니,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을 다루는 이야기책인데, 이런 책에 ‘通하다’처럼 얼토당토않게 얄궂은 외마디 한자말을 버젓이 집어넣을 수 있담?’ 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굳이 드러내지 않았어요. 이 책을 내놓아 준 출판사에서 나온 다른 책들이 하나같이 “10대와 통하는 ……”으로 책이름을 삼았거든요. 이런 흐름에 아저씨 혼자 팔뚝질을 하면서 모난 돌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책이름은 못마땅한 그대로 두되, 왜 못마땅해 하는가를 찬찬히 다루고 싶었어요.


 10대와 만나는 우리말
 10대와 어깨동무하는 우리말
 10대와 어우러지는 우리말
 10대와 마음 나누는 우리말
 10대와 나누는 우리말
 10대와 이야기하는 우리말
 10대와 이어지는 우리말
 10대와 사이좋은 우리말
 10대와 사랑하는 우리말
 ……


 좋거나 잘 어울리는 이름은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어요. 생각할 때에 얻는 좋은 이름이에요. 생각하며 사랑할 때에 비로소 깨닫는 좋은 이름이고요. ‘通하다’는 우리말이 아닌 일본말, 낱낱이 따지자면 일본 한자말이지만, 이런 말마디를 오늘날 우리 어른들은 너무 함부로 써 버릇해요. 우리 어른들부터 이런 말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우리 어른들부터 이런 말버릇을 못 고치고 말아요. 익숙하다는 대로 그냥 쓰고, 젖어든 대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씁니다.

 어찌 보면 자잘한 말버릇이겠지요. 그런데 자잘한 말버릇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뒤틀린 사회나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교육’을 바로잡을 수는 없겠지요. 노상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어른들이지만, 정작 ‘작다 할 만한 말투 하나 살가이 추스르지 못하’며 살아가잖아요.

 우리들이 옳고 바른 삶터를 꿈꾼다면, 우리가 늘 쓰는 말부터 옳고 바른 말이 되도록 땀흘려야 한다고 느껴요. 가장 낮고 가장 초라하며 가장 구석진 자리부터 차근차근 가누면서 아름다운 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요, 우리 어른들은 이처럼 말과 삶이 어긋나 있답니다. 말과 삶이 어긋난 바람에 착한 말이나 참다운 말이나 고운 말을, 다른 누구보다 어른들이 가장 못 써요. 우리 말사랑벗들이 ‘외계어’나 ‘통신체’를 쓴다고 나무라는 어른들이지만, 정작 이 어른들 가운데 ‘일제강점기에 스며들거나 퍼진 일본 제국주의 말마디’를 말끔히 털어낸 분은 거의 없어요. 쓰지 말아야 할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 말투나 서양 번역투나 영어 따위를 멋대로 뇌까리는 사람은 바로 어른이에요. 푸름이가 아닙니다. 어린이 또한 아니고요. 어른이 잘못 쓰거나 엉터리로 쓰는 말을 듣거나 읽어야 하는 푸름이랑 어린이가 똑같이 잘못 쓰거나 엉터리로 쓰고 맙니다. 푸름이와 어린이 가운데 ‘우리말’로 적어야 옳으냐 ‘우리 말’로 적어야 옳으냐를 제대로 가눌 벗은 거의 없으리라 보는데, 어른도 매한가지예요. 아니, 어른부터 제대로 가누지 못해요.


 우리말 / 우리글 / 우리나라
 우리 옷 / 우리 집 / 우리 겨레 / 우리 춤 / 우리 노래


 낱말책을 살피면 꼭 세 낱말, ‘우리말’이랑 ‘우리글’이랑 ‘우리나라’는 붙여서 씁니다. 이 나라 이 땅에서만 쓰는 말과 글이라 해서 ‘우리말’이랑 ‘우리글’을 붙이도록 하고, 덩달아 ‘우리나라’를 붙이도록 해요.

 ‘우리나라’를 붙이도록 한 까닭은, 사람들이 이 낱말을 자주 쓰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자주 안 썼다면 안 붙였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자주 쓰는 ‘신나다’ 같은 낱말은 여태껏 한 낱말이 못 된답니다. 자주 쓰기는 하지만 ‘문학책이나 신문이나 논문에 이 낱말(신나다)이 자주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보기글이 모자라’서 붙일 수 없다고 해요.

 나쁜 법도 법이라서 지켜야 한다 이야기하고, 알맞지 않아도 이렇게 하기로 다짐했으면 서로 지켜야 한다 이야기하합니다. 말사랑벗 또한 이 나라 어른들이 마련한 말법을 고스란히 따르면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라든지, 책방에 가득한 책을 들여다보면, 모두들 맞춤법과 띄어쓰기와 표준말을 다루는 이야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푸른 벗님들이 푸른 꿈과 넋과 슬기를 꽃피우도록 이끄는 이야기로 거듭나는 책은 쉬 만날 수 없어요.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풀어놓을 수는 없고, 또 ‘우리말’하고 ‘우리 말’ 가운데 어느 쪽이 맞느냐는 이야기만 놓고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기까지 해요. 이 작은 책에서 이 이야기를 모두 다룰 수는 없어요. 구태여 다루어야 하지는 않지요. 다만, 한 가지는 밝힐게요. ‘우리말-우리글-우리나라’처럼 새 낱말을 빚어서 쓰는 틀이 마련되었다면, 말사랑벗들은 ‘우리책-우리꿈-우리학교-우리겨레-우리민족-우리영화-우리땅-우리바다-우리하늘-우리산’ 같은 말도 나중에는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2011년 오늘은 못 쓸 테지만, 2050년이라든지 2111년에는 누구나 이렇게 쓸 수 있답니다. 말법은 삶터와 사람에 따라 달라지거나 거듭납니다. 우리말은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아끼고 우리 삶을 사랑하며 우리 삶을 살찌우는 결대로 새로워지거나 다시금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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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와영희' 출판사에서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라는 책을 내기로 했습니다. 이 책에 넣을 글을 꾸준히 쓰는데, 이제부터 이곳에 하나씩 걸치려 합니다. 이곳에 글을 걸치면서 '이대로 나아가면 좋을까, 더 가다듬으면 한결 나을까' 하는 이야기를 조금 더 널리 헤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은 아무쪼록 아낌없이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이 글을 잘 엮어내어 좋은 책 하나로 태어나도록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머리말 : 푸른말·삶말·사랑말


 저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아저씨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인천 도화동 골목동네였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골목동네에서 골목벗하고 사귀며 지내다가 이때부터 인천 연수동이라는 아파트마을로 옮겨 지냈습니다. 1991년 일인데, 이무렵까지 지내던 골목동네도 아파트이기는 했는데, 5층짜리 아파트였고, 연탄을 때는 살림집이었습니다. 제가 집을 나서며 학교로 가는 길에는 ㅈ이라는 커다란 식품공장이 인천 앞바다로 흘려보내는 쓰레기물이 냇물을 따라 코를 찌르는 냄새를 풍기며 흘렀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는 여름날 시원하게 물을 뿜는 작은 못이 있었고, 예전에 인천에서 시외버스를 타는 곳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가 있었으며, 기찻길을 따라 색시집이 줄지어 있었어요. 학교로 갈 때면 언제나 연탄공장 뒤쪽 기찻길을 밟으며 하나 둘 셋 …… 백 이백을 셌습니다. 탄을 가득 싣고 까만 먼지를 날리는 기차가 지나갈 때에는 병마개를 철길에 얹어 놓고 납짝쿵을 했습니다.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뀐 국민학교를 다닌 해가 1982년부터 1987년입니다. 이동안 국민학생은 버스삯으로 60원을 치르다가(1982년) 90원을 치릅니다(1987년). 그러니까 이때에는 10원짜리 쇠붙이 돈닢 하나조차 몹시 알뜰히 건사해야 했어요. 10원짜리이든 1원짜리이든 철길에 올려놓을 만큼 돈이 넘치는 동무는 없었답니다.

 2011년을 맞이하면서 서른일곱 나이가 된 저는 멧기슭에 자리한 시골집에서 네 살 난 딸아이를 옆지기랑 함께 키웁니다. 옆지기 몸에는 둘째가 자랍니다. 집일은 아이 아버지인 제가 도맡습니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나 아파트마을이 싫어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 곧바로 집을 박차고 나와, 대학교가 있는 서울로 갔는데, 충주 멧골마을로 들어가 네 해 반을 지내고서 인천으로 돌아와 세 해 반을 살다가, 다시 충주 멧골마을로 들어와 살아갑니다. 이동안 혼자 살림을 꾸렸는데, 제 조그마한 살림집에는 빨래하는 기계나 텔레비전은 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밖에 자동차라든지 청소기라든지 전자레인지 같은 전기 먹는 물건을 집안에 안 들입니다. 자동차가 없으니 아이하고 읍내에 마실을 갈 때에는 시골버스를 탑니다. 때로는 자전거에 아이수레를 붙이고 낑낑 끙끙 영차영차 하면서 산을 타고 구비를 돌아 읍내 저잣거리 마실을 해요.

 기계로 하는 빨래를 안 하니까 제가 하는 빨래는 마땅히 손빨래일 테지요. 예전에는 누구나 손으로 빨래를 했으니 ‘손빨래’라는 낱말은 없었어요. 이리하여 예전 낱말책, 그러니까 ‘국어사전’에는 ‘손빨래’라는 낱말은 안 실렸는데, 이제는 이 낱말을 낱말책에 실어 놓습니다.

 요즈음 손으로 종이에 글을 적어 띄우는 동무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지난날 손빨래라는 낱말을 쓰지 않았듯이 ‘손글씨’라는 낱말 또한 안 썼어요.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셈틀, 그러니까 ‘컴퓨터’를 켜서 글을 쓰니, 손으로 애써 글을 쓸 때에는 따로 ‘손글씨’라는 낱말로 가리킵니다. 그러면 이 낱말 ‘손글씨’는 낱말책에 실렸을까요? 어때요? 실렸으려나요, 안 실렸으려나요?

 두 아이를 돌보며 살아갈 아버지이자, 동무들한테는 아저씨일 제가 하는 일은 글쓰기와 사진찍기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합니다. 널리 팔리는 글을 쓰지 못하고, 사람들이 즐겨찾는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제가 사랑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제가 쓰는 글은 이 책을 읽을 동무들이 마주할 ‘우리말’ 이야기에다가 ‘책과 헌책방’을 다루는 글입니다. 제가 찍는 사진은 헌책방 사진에다가 골목길 사진이랑 우리 아이 자라나는 모습 사진이에요. 그닥 돈 될 만한 글이 못 되지요. 그렇지만 저는 돈이 될 글보다는 제 삶을 살찌울 글을 좋아합니다. 백만 사람이 찾아 읽어 줄 글을 쓰기보다는 다문 백 사람이나 열 사람이 찾아 읽어 주더라도, 제 글을 읽어 주는 사람들이 스스로 힘을 쓰고 마음을 기울여 삶을 한결 아름다이 가다듬는 기운과 넋과 슬기를 몸소 빚도록 어깨동무하고 싶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나 하고 더듬어 보면, 저도 잘 떠올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굳이 떠올릴 만한 이야기는 아닐는지 몰라요. 그래도 한 가지 생각해 보면, 1998년이었나 이오덕 선생님을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저는 1995년부터 혼자 글을 쓰고 엮어서 ‘우리말 소식지’를 주마다 내놓았고, 이 소식지를 이오덕 선생님한테도 부쳤는데, 어느 날 저한테 전화를 거시더니 만나고 싶다 하셨어요. 이때 저는 신문배달을 하면서 먹고 살았기에, 일을 쉬는 낮을 틈타 과천으로 전철을 타고 찾아갔습니다. 나어린 젊은이를 마주한 선생님은 두 시간 즈음 조곤조곤 도움말을 들려주었는데, 이리 해라 저리 해라 하는 말은 한 마디 없었습니다. 꼭 두 대목만 짚으면서 앞으로도 기운 내어 잘 해 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때 들은 두 대목은, ‘가끔씩’하고 ‘불리다’입니다. ‘가끔’이라는 낱말은 ‘-씩’을 붙이면 겹말이 된다 했고, ‘불리다’는 잘못 쓰는 말일 뿐 아니라 ‘부르다’ 같은 낱말도 아무 자리에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일깨워 주었습니다.

 우리말 소식지를 낸답시고 버둥대던 저로서는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렇지만 고작 스물네 살짜리 앳된 젊은이가 무엇을 제대로 알겠습니까. 더군다나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제도권 학교에서 제도권 교과서를 달달 외면서 제도권 말하고 글에 온통 젖어든 몸과 마음이었는데요.

 늘 그렇지만, 이렇게 큰 어르신을 한 번 만나뵌 뒤로 제 글과 말을 더 찬찬히 헤아리며 지냅니다. 내 어릴 적에 이웃 어른한테서 듣던 말을 곰삭이고, 내 어릴 적에 내 골목동무랑 나누던 말을 돌이킵니다. 내 몸에 나 스스로 아로새긴 살아숨쉬는 말을 곱씹고, 내 둘레 곱고 고마운 분들 몸에 살포시 깃든 싱그러운 말을 귀기울여 듣습니다.

 어쩌면, 1998년 어느 날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뵌 자리에서 더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다 잊었는지 모릅니다. 고작 두 대목만 떠올린다 할 수 있어요.

 이 책을 읽어 줄 반가운 ‘말사랑 푸른벗’ 님들 또한 비슷하지 않으랴 생각합니다. 저는 ‘청소년’이라는 낱말보다 ‘푸름이’라는 낱말을 좋아하고, 이 책을 읽을 푸름이들은 ‘말사랑 푸른벗’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단출하게 ‘말사랑벗’이라 해도 되겠지요? 아무튼, 이 책에 적바림한 모든 이야기를 샅샅이 머리에 담는다거나 달달 외워야 하지 않으니까요, 즐겁고 홀가분하게 읽어 주면 고맙겠습니다. 앎조각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 내 슬기를 가다듬으면서 내 생각힘을 북돋우는 책으로 삼아 주면 기쁘겠어요. 우리 말사랑벗 누구나 좋은 밑말을 다스리면서 밑넋과 밑삶을 알차게 가꾸어 주면 반갑겠어요.

 ‘밑말’이나 ‘밑넋’이나 ‘밑삶’ 같은 말이 좀 낯설려나요. 퍽 어려우려나요. 이 낱말은 낱말책에 안 실린 낱말인데, 가끔 이런 낱말을 써 보곤 해요. ‘밑말’이란 말 그대로 밑이 되는 말, 밑바탕이 되는 말입니다. 내가 하는 말을 새로 태어나도록 이끌거나 새삼스레 일구는 밑바탕이 되는 말이 밑말이에요. 이와 마찬가지로, 밑넋이라 한다면 말사랑벗이 고우면서 참답고 착한 넋을 일구는 밑바탕이 되는 넋이에요. 더 똑똑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더 고운 사람이 되면 좋겠고, 더 참다우면서 더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에 이 책이 길동무가 되도록 힘쓸 생각이에요. 그러면 ‘밑삶’이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 만하지요?

 우리 말사랑벗뿐 아니라 모든 푸름이가 쓰는 말을 일컬어 ‘푸른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푸름이를 비롯해 어린이와 어른 모두 쓰는 말이란 ‘삶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들이 서로서로 아끼고 믿으며 기대거나 도우면서 나누는 말이란 ‘사랑말’이라고 생각해요.

 두 아이 아버지이자 아저씨인 저는 이 푸름말, 삶말, 사랑말을 보듬는 매무새를 이 책에 하나둘 담으려 합니다. 잘 따라와 주시면 좋겠어요. 따라오다가 힘들면 쉬엄쉬엄 오셔요. 너무 벅차다면 한참 쉬어도 되고, 다른 데를 들렀다가 다시 찾아와도 돼요. 언제나 곁에 놓고 쓰다듬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요.

 말사랑벗들이 둘레 어른한테서나 다른 동무한테서나 좋은 말과 넋과 삶을 받아들이거나 눈여겨보면서 말사랑벗들 마음밭을 알뜰살뜰 일구면 참 기쁘겠습니다. 따순 손길을 내미는 말을 아끼고, 너른 마음을 펼치는 글을 사랑해 주면 더욱 기쁘겠어요. 자, 이제부터 함께 손을 맞잡고 맑으면서 고운 길을 걸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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