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우리말 착하게 가꾸기 ㉦ 살려쓰면 좋은 우리말 : 살림말


 말을 할 때에 가장 살펴야 할 대목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글을 쓸 때에 손꼽아 헤아릴 대목은 무엇일까 곱씹어 봅니다.

 말을 하는 사람이나 글을 쓰는 사람이나, 말하기나 글쓰기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을 옳게 눈여겨보지 못한다고 느껴요. 말하는 알맹이와 글쓰는 속살을 찬찬히 돌아보지 못한다고 느껴요.

 말사랑벗한테는 무엇이 가장 살필 대목인가요. 말사랑벗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 어느 대목을 가장 헤아리는가요.

 생각하기 어렵다면 이렇게 해 보셔요. 말사랑벗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무엇이 가장 크거나 눈여겨볼 만한지 헤아려 보셔요. 내 삶에서 가장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고마운 대목이 무엇인지 되뇌어 보셔요.

 내가 하는 말에서 가장 마음쓸 대목이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삶인가 아닌가입니다. 내가 쓰는 글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이란 내가 가장 아름다이 여기는 삶인가 아닌가예요.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살피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살펴야 하는데, 바로 이 ‘무엇’이란 나 스스로 아끼며 사랑하는 삶입니다. 가장 빛나며 보배스러운 알맹이예요.

 할 말이 있어야 말을 하고 쓸 글이 있어야 글을 쓴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할 말이란 ‘내가 꾸리는 삶’이고, 쓸 글이란 ‘내가 돌보는 삶’이거든요. 나 스스로 내 몸을 움직여 내 땀을 바친 삶이 아니고서는 말할 만한 즐거움을 찾기 어려워요. 나부터 내 마음을 바쳐 나누는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글로 담을 만한 재미를 느끼기 힘들어요.

 물만 끓여 내놓는 컵라면 하나를 밥상에 올릴 때에도 얼마든지 숱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습니다. 컵라면 하나를 사 오는 마실길이라든지, 내 주머니에 돈이 없어 고작 컵라면 하나만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라든지, 아직 다른 밥을 할 솜씨가 없어 가까스로 컵라면 하나만 차렸다든지, 몸이 아파 다른 밥을 차리지 못하니 컵라면을 먹는다든지 하면서 온갖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수많은 반찬을 차려 놓는 밥차림을 해야만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요.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뜬구름을 잡는 글이나 말이 될 수 있어요.

 우리는 우리 삶을 사랑하는 가운데 우리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우리 이야기가 얼마나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가를 살펴야 즐거운 이야기를 얻습니다. 내가 좋아하면서, 나와 내 동무랑 이웃이 다 함께 좋아하는 착한 이야기인지 아닌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삶 사랑과 내 동무 사랑이 아리따이 깃든 참다운 이야기인가 아닌가를 짚어야 합니다. 곱게 일구는 삶으로 곱게 일구는 넋이며 곱게 즐기는 글입니다.


1. 자전거꾼 : 일하는 사람은 일꾼입니다. 놀이하는 사람은 놀이꾼입니다. 사냥을 하니까 사냥꾼이고, 글을 쓰면 글꾼이에요. 글쟁이라고도 하는데, 이와 같은 꼴로 그림쟁이와 사진쟁이라고도 합니다. 영화쟁이나 연극쟁이라고도 해요. 자전거를 타니 자전거꾼이면서 자전거쟁이입니다. 자전거를 즐기기에 ‘자전거 즐김이’라 이름을 붙여 볼 만합니다. 


2. 노래잔치 : 돌에는 돌잔치를 합니다. 예순 살에는 예순잔치를 합니다. 마을에서는 마을잔치를 하고, 학교에 처음 들어갈 때에는 첫잔치예요. 학교를 마무리 할 때에는 끝잔치나 마침잔치입니다. 태어난 날을 기려 생일잔치이고, 밥을 나누는 밥잔치입니다. 시를 즐기는 마당은 시잔치이고, 사진을 함께 나누기에 사진잔치이며, 그림을 즐기는 그림잔치에, 노래를 즐기는 노래잔치입니다. 


3. 네거리 : 예전 살던 인천 골목동네에 ‘삼거리정육점’이 있었어요. 가게는 고기집인데 밖에서 보면 고기집 아줌마가 갖은 꽃그릇을 예쁘게 벌여 놓아서 마치 꽃집처럼 보였어요. 이 고기집은 ‘세거리’ 모퉁이에 있었기에 ‘삼거리정육점’이었어요. 


4. 무너미마을 : 인천에서 살다가 충주 멧골마을로 살림을 옮겼습니다. 우리 식구들 지내는 멧골마을은 행정구역으로 광월리인데, ‘넓은벌’이랑 ‘고든박골’이랑 ‘무너미마을’이 있어요. 넓은벌이란 말 그대로 벌(들판)이 넓으니 붙는 이름이에요. 무너미마을이란 물이 넘는 마을이라 붙이는 이름이에요. 자, 그러면 고든박골은 어떠한 골(골짜기 또는 고을)이라서 고든박골이라 했을까요. 


5. 길그림 : 길을 그리기에 길그림입니다. 땅을 그리면 땅그림이에요. 저는 손으로 그림 그리기를 즐깁니다. 그러니까 손그림입니다. 손으로 글을 쓸 때에는 손글이에요. 손을 써서 말을 나눈다면 손말입니다. 


6. 골목꽃 : 골목에 난 길은 골목길입니다. 골목에 깃든 집은 골목집입니다. 골목에 피어 골목꽃이고, 골목에서 자라 골목나무입니다. 골목집에서 붙은 문패는 골목문패이고, 골목으로 동네를 이루어 골목동네이고, 골목동네에서 사는 사람은 골목사람이에요. 


7. 책방마실 : 들로 놀러가는 들놀이입니다. 물가를 찾아가기에 물놀이입니다. 산을 찾아가면 산놀이나 멧놀이예요. 이웃집을 찾아가는 이웃마실입니다. 맛난 밥집을 찾아다니는 밥집마실이에요. 저처럼 책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방마실을 합니다. 


8. 시골버스 : 사람들은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탑니다. 시외버스란 “시(市) 바깥(外)으로 나가는 버스”라서 붙은 이름이에요. 고속버스란 “빨리 달리는(高速) 버스”라서 붙이는 이름이에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저는 시골을 다니는 시골버스를 탑니다. 구비구비 작은 마을을 천천히 달리는 시골버스를 타며 생각합니다. 도시에서는 도시버스라 하지 않는데 시골에서만 시골버스라 하는구나 싶습니다. 빨리 달리면 빠른버스라 할 만한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9. 빠른전철 : 인천과 서울을 잇는 급행전철이 있고, 서울과 춘천을 달리는 급행전철이 있습니다. 전철은 언제나 ‘급행(急行)’입니다. 서울과 부산을 빨리 달리며 잇는 기차길을 놓고는 ‘고속철도’라 해요. 빨리 가기에 빠른길이고, 천천히 가면 느린길입니다. 때때로 도시로 마실을 나오며 빠른전철을 타는데, 빨리 달리는 이 전철을 타며 아끼는 겨 를만큼 나는 내 삶을 얼마나 아름다이 돌보는가 곱씹어 봅니다. 


10. 나들목 : 나가고 들어오는 길목이기에 나들목이에요. 저는 퍽 예전에 ‘지하철 출입구’를 일컬어 ‘지하철 나들목’이라 말해 보았습니다. ‘출입구(出入口)’는 일본말인데, 이 일본말을 알맞게 고쳐쓰거나 가다듬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이 좀처럼 없다고 느껴서 ‘나들목’을 써 보았어요. 일본말 ‘출입구’는 “나가고 들어오는 구멍”을 가리키거든요. 우리말로 제대로 한다면 ‘나들목’이 아닌 ‘들나목’이라 해야 옳습니다. 우리 문화로는 들어오기가 먼저이고, 들어오면 나가기에 들나목이라는 얼거리로 말을 합니다. 그러나 ‘나들간’이라는 낱말이 있고 ‘나들이’를 생각하면서 ‘나들목’도 참 좋이 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11. 거님길 : 집에서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가 없어 바깥사람들이 주고받는 말마디를 따로 들을 일이 없습니다. 시골집에서 나와 도시로 마실을 나오면 어디에서고 수많은 이야기와 방송을 들어야 합니다. 버스마다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는 교통방송 사회자가 ‘차도’와 ‘인도’를 말합니다. 귀가 따갑게 이런저런 낱말을 듣다가 퍼뜩 생각합니다. 차가 다니는 길이면 찻길이고, 사람이 다니면 사람길일 텐데. 사람이 걷는 길이면 사람길이면서 거님길일 텐데. 


12. 왼돌기 : 자가용이 없는 우리 식구는 가끔 택시를 탑니다. 택시를 타며 어딘가로 찾아갈 때에 택시 일꾼한테 “왼쪽으로 꺾어 주셔요.”라든지 “요 앞에서 오른쪽으로 가 주셔요.” 하고 말씀합니다. 이때에 웬만한 택시 일꾼은 못 알아듣습니다. 으레 다시 말해 달라 묻고, “좌회전이요?”나 “우회전이요?” 하고 되묻습니다. ‘왼쪽’과 ‘오른쪽’이라는 낱말은 어느새 죽은말처럼 되고, ‘왼돌기’나 ‘오른돌기’ 같은 낱말은 마치 외국말처럼 여깁니다. 


13. 믿음집 : 하늘 높이 뾰족뾰족 솟은 예배당 탑을 볼 때면 언제나 쓸쓸합니다. 땅하고 살가이 어우러지면서, ‘주차장’ 아닌 ‘텃밭’을 일구면서 작고 소담스레 돌보는 믿음나눔집을 꾸릴 수 없는가 싶어 쓸쓸합니다. 사랑을 나누는 사랑집이 그립습니다. 믿음을 펼치는 믿음집을 꿈꿉니다. 


14. 버스길 : 나라와 지자체에서는 대단히 큰 돈을 들여 ‘버스전용차로’와 ‘자전거전용도로’를 닦습니다. 모든 길에는 사람과 들짐승과 자전거와 자동차가 함께 달릴 만하고, 서로 어울릴 만합니다. 더 힘센 사람이 더 여린 사람을 돌보듯, 더 빨리 달리는 탈거리가 더 느리게 오가는 탈거리나 사람이나 짐승을 보살피면서 사랑스레 어울릴 만합니다. 그렇지만 큰도시는 자동차가 너무 많아 따로 버스만 다닐 길, 곧 버스길이 없이는 자가용 없는 사람들은 아주 벅찹니다. 큰도시는 자전거만 다닐 자전거길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차에 받칠까 걱정해야만 합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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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우리말 착하게 가꾸기 ㉥ 살려쓰면 좋은 우리말 : 숲말


 도시에는 빌딩숲이 있습니다. 빌딩으로 숲을 이루어 빌딩숲입니다. 시골 멧자락은 나무숲이 있습니다. 들판이 있고 나무가 자라기에 시골이에요. 파랗디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거진 풀숲에 흐드러진 꽃누리가 펼쳐졌기에 시골입니다.

 도시는 사람들로 숲을 이루기도 합니다. 숱한 사람들이 온통 도시로 몰려들기에 도시는 사람숲입니다. 사람물결이요 사람바다이며 사람판입니다. 여기에, 어디를 가든 자동차가 가득하기에 자동차숲이라 할 만합니다. 이제 도시는 새로 솟는 아파트가 나무보다 키가 높은 만큼 아파트숲이기까지 합니다. 빌딩숲에 사람숲에 아파트숲에 자동차숲입니다. 더구나, 도시는 이쪽 길로든 저쪽 길로든 가게가 끊이지 않습니다. 옷가게이든 술가게이든 전화가게이든 가게들이 가득가득합니다. 도시는 가게숲까지 이룹니다.

 길바닥은 아스팔트이거나 시멘트인 도시에서는 흙으로 된 맨땅을 밟기 아주 어렵습니다. 맨땅은 아예 없다 할 만합니다. 그나마 초·중·고등학교 운동장은 흙땅에서 인조잔디땅으로 바뀝니다. 가까스로 흙을 밟을까 싶던 학교 운동장마저 싹 사라집니다.

 숲다운 숲이란 없는 도시이고, 숲에 깃드는 나무나 풀이나 꽃이 없는 도시입니다. 이런 도시에서는 숲과 얽힌 말, 이를테면 풀숲이나 나무숲이나 꽃숲 같은 말은 쓰기 어렵습니다. 아니, 이런 말을 할 일이란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며 맨드라미 진달래 찔레꽃을 이야기할 까닭이란 없습니다. 어쩌면, 이 나라 도시에서 할 말이란 돈과 얽힌 말, 이를테면 돈숲·돈바다·돈하늘·돈땅·돈사람·돈일 따위일는지 모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는 볍씨나 풀씨나 꽃씨 같은 말을 쓸 일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일하는 기자로서는 풀베기나 나무베기나 벼베기 같은 말을 쓸 자리가 없습니다. 도시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으로서는 종달새나 골짜기나 산들바람 같은 말을 쓸 데가 없습니다.

 밥을 먹어야 살고 물을 마셔야 목숨을 잇는 사람입니다. 숲이 있어 나무가 자라고, 숲에서 온갖 짐승이 함께 어우러져야 사람 또한 살가운 숨결을 사랑할 만합니다. 작은 도시는 큰 도시가 되려 하고, 시골은 작은 도시로 거듭나려 하는 마당이지만, 밥을 아끼고 물을 사랑하며 목숨을 어깨동무하고 싶은 마음으로 숲말을 하나하나 되뇌어 봅니다.


1. 숲길 :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싱그러우면서 푸른 숨을 쉬지 못하기 때문에 따로 숲길을 걸으려고 합니다. 숲이란 나무가 우거져 이루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숲길을 걷는 사람들은 숲길을 걸으면서 숲길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수목원(樹木園)’에서 ‘삼림욕(森林浴)’을 한다고 여깁니다. 


2. 산타기 : 숲에서 사는 사람은 숲길을 따로 걸을 까닭이 없고, 논밭에서 구슬땀 흘리는 사람은 논밭에서 싱그러우면서 푸른 숨을 받아먹습니다. 멧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멧자락 기운을 곱게 받아안아요. 따로 ‘등산(登山)’이라는 이름으로 ‘산타기’를 하지 않아도 즐겁습니다. 


3. 멧짐승 : 멧골에는 멧쥐가 멧굴을 파고, 멧토끼가 멧집에 살며, 멧새가 멧노래를 우짖습니다. 다 함께 멧짐승이고 멧삶입니다. 멧사람은 멧골집을 마련하고 멧마을을 이룹니다. 


4. 멧나물 : 들에서 얻어 들나물이고, 멧골에서 얻어 멧나물입니다. 바다에서는 바다나물이 되겠지요. 밭에서는 밭나물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일본말 ‘야채(野菜)’에다가, 중국말 ‘채소(菜蔬)’만을 쓰는구나 싶습니다. 우리말 ‘나물’과 ‘남새’와 ‘푸성귀’를 가눌 줄 모릅니다. 사람이 키우면 남새이고, 절로 자랐으면 나물이요, 남새와 나물을 통틀어 푸성귀입니다. 


5. 콩팥 : 우리 식구는 생협(생활협동조합)에서 먹을거리를 즐겨 장만합니다. 그런데 이곳 생협에서도 ‘콩’과 ‘팥’이라는 낱말을 잘 안 써요. 으레 ‘대두(大豆)’랑 ‘적두(赤豆)’라 합니다. 멸치를 말렸으면 마른멸치일 테지만 ‘건(乾)멸치’라 쓰기까지 해요. 하기는, 여느 자리에서도 ‘말린포도’ 아닌 ‘건포도’라고만 하니까요. 


6. 누런쌀 : 모든 쌀은 맨 처음에는 ‘누런쌀’입니다. 씨눈까지 깎아내듯 하얗게 더 깎은 쌀이 되면 ‘흰쌀’입니다. 누르스름하기에 누런쌀이요, 하얗디하얗기에 흰쌀이에요. 


7. 가을걷이 : 가을날 곡식을 거두기에 가을걷이라 일컫습니다. 가을에 잔치를 한다면 가을잔치가 될 테지요. 프로야구판에서 으레 ‘가을잔치’라는 말을 써요. 경기장에서 벌이는 배구나 농구나 핸드볼은 흔히 겨울잔치라 일컫습니다. 겨울날 따스한 실내에서 놀이마당을 마련하니까요. 가을날 가을볕을 받으며 구슬땀을 흘리면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씻어 주며 가을열매 넉넉히 나눕니다. 


8. 고샅길 : 도시에서는 골목이고, 시골에서는 고샅입니다. 도시에서는 골목이 차츰 자취를 감추고, 시골에서는 고샅이 자꾸 스러집니다. 자동차가 너무 많이 는 탓이며, 아파트를 새로 올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9. 가랑잎 : 팔랑팔랑 하늘하늘 토옥 툭 살살 한들한들 떨어지는 잎이란 가랑잎입니다. 대롱대롱 건들건들 달린 잎이란 나뭇잎입니다. 


10. 큰나무 : 숱한 싸움판을 겪은 우리나라에는 큰나무가 드뭅니다. 아름드리 나무를 좀처럼 만나기 힘듭니다. 시골이라 해서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지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는 더더욱 아름드리 나무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하더라도 쉰 해나 백 해를 한 자리에서 튼튼히 서도록 하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사람들 삶터 또한 한 곳에서 쉰 해나 백 해 즈음 즐거이 뿌리내리도록 놓아 주지 않는 우리 사회입니다. 큰나무 없는 터에 큰사람이란 없고, 작은나무조차 흔들거리는 두려운 곳에 작은사람 또한 힘을 잃거나 기운을 빼앗깁니다. 


11. 오얏꽃 : 능금나무에는 능금꽃이, 대추나무에는 대추꽃이, 배나무에는 배꽃이 핍니다. 오얏나무에는 오얏꽃이 피겠지요. 이화여자대학교를 굳이 ‘배꽃대학교’로 이름 바꿀 까닭은 없습니다만, ‘배꽃’처럼 어여쁜 이름을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은 슬픕니다. 우리는 ‘오얏꽃’ 예쁜 봉우리 또한 잊거나 잃었습니다. 오얏은 사람 성씨 ‘이(李)’에만 남습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자두 이’ 씨로 써야지 싶습니다. 


12. 물놀이 : 겨울날 얼음판에서 얼음을 지치며 얼음놀이를 합니다. 여름날 물가에서 물을 가르며 물놀이를 합니다. 들에서 들판을 박차며 들놀이를 합니다. 멧자락에서 멧길을 오르내리며 멧놀이를 합니다. 


13. 맹꽁이 : 맹 꽁 맹 꽁 운대서 맹꽁이입니다. 사람은 왜 사람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려나요. 요새는 사람이라는 낱말은 뒤로 밀리고 ‘인간(人間)’이라는 낱말만 흔히 들립니다. 우리는 왜 사람이라 말하지 못하고 인간이라 말하려나요. 까매서 까마귀요 하얘서 해오라기인데, 짐승한테 붙이는 이름과 사람한테 붙이는 이름에는 어떠한 느낌과 빛깔과 마음과 삶과 사랑과 믿음을 담았으려나요. 


14. 함박꽃 : 함박꽃을 보면 말 그대로 함박꽃답구나 하고 느낍니다. 함박눈을 보면 그야말로 함박눈이네 하고 절로 입이 벌어집니다. 입이 함박만 해지며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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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우리말 착하게 가꾸기 ㉤ 살려쓰면 좋은 우리말 : 일말


 낱말책에는 ‘밥하기’하고 ‘밥짓기’라는 낱말이 안 실립니다. 이 책을 여기까지 읽은 말사랑벗들은 이제 어렴풋이 느끼리라 생각하는데, 남녘땅에서 낱말책에 안 실린 낱말은 글로 적바림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는지 떠오르나요.

 낱말책에 안 실린 낱말 ‘밥하기’하고 ‘밥짓기’는 남녘나라 말법에 따른다면 ‘밥 하기’하고 ‘밥 짓기’처럼 띄어서 적어야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두 가지 낱말을 띄어서 적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여느 사람들 또한 두 가지 낱말을 띄지 않습니다. 그저, 책이나 신문 같은 데에서는 두 낱말을 으레 띄어 놓습니다.

 ‘밥하다’라는 낱말은 낱말책에 실립니다. 그래서 ‘낱말책에는 안 실린 낱말’이기는 하지만 ‘밥하기’는 살그머니 붙인 채 적바림해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낱말 씨끝이 바뀐다고 여기면서 ‘밥하- + -기’로 여기면 됩니다.

 ‘일하다’와 ‘놀다’라는 낱말도 낱말책에 실립니다. 이리하여 ‘일하기’랑 ‘놀기’ 또한 넉넉히 붙여서 쓸 만합니다.

 날마다 먹는 밥이요, 날마다 내 손으로든 어머니 손으로든 할머니 손으로든 아버지 손으로든 밥을 차려서 나란히 먹거나 혼자 먹거나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날마다 누구나 먹는 밥이고, 날마다 누구나 밥상을 차리지만, 정작 ‘밥하기’ 같은 낱말은 낱말책에 실리지 못합니다. ‘밥짓기’하고 ‘밥짓다’ 같은 낱말도 매한가지입니다.

 낱말책에는 ‘요리(料理)’라는 낱말이 실립니다. 요리를 하는 사람은 ‘요리사’입니다. 한자말 ‘요리’ 뜻풀이를 찾아보면 “여러 조리 과정을 거쳐 음식을 만듦”으로 나옵니다. 다시금 ‘조리(調理)’라는 낱말을 찾아봅니다. 이 한자말은 “요리를 만듦”을 뜻한답니다.

 다시금 무언가 어렴풋이 느낄 말사랑벗이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요리를 만듦”이 ‘조리’라 한다면, 이 말풀이는 엉터리입니다. 왜냐하면 ‘요리’란 “음식을 만듦”이라고 풀이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풀이를 살피면 “조리 = 음식을 만듦을 만듦”이 되고 말아요. 거꾸로 ‘요리’ 말풀이도 엉망입니다. “여러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거쳐 음식을 만듦”이 ‘요리’가 되거든요.

 한 번쯤 곰곰이 짚어 볼 일입니다. 우리네 낱말책은 낱말풀이가 이다지도 얄궂은데 왜 도무지 바로잡히지 않을까요. 우리들은 우리말을 담은 낱말책을 뒤적일 때에 이 같은 낱말풀이가 얄궂다고 느끼기는 하는가요. 우리는 우리 삶을 알뜰살뜰 낱말책에 담아서 즐거이 나누는 길을 걸을 수 없는가요.

 요리를 하는 사람은 요리사라면, 밥을 하는 사람은 ‘밥꾼’이나 ‘밥지기’입니다. 살림을 하는 사람이 살림꾼이듯, 밥짓기 하는 사람은 밥꾼이거나 ‘밥짓기꾼’입니다. 농사를 짓기에 농사꾼이라면, 농사를 짓는 일이란 ‘농사짓기’나 ‘농사하기’입니다. 사람들 누구나 밥을 먹으려면 농사를 지어야 하니까, 밥하기와 밥짓기라는 낱말만큼 대수로우면서 소담스럽다 할 낱말이 ‘농사짓기’하고 ‘농사하기’이지만 이 낱말도 낱말책에는 안 실립니다. 그래도 밥만 먹고 살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인지, 고기를 잡는다는 ‘고기잡이’는 낱말책에 실려요. 옛말로 ‘농사(農事)’는 ‘여름지이’라 했고, 농사짓는 사람을 일컬어 ‘여름지기’라 했습니다. 어쩌면 토박이말로 ‘여름지이’와 ‘여름지기’와 ‘여름짓다’를 살릴 수 있을 테고, 이러한 낱말을 살린다면 아주 반갑습니다. 다만, 살리는 낱말은 살릴 낱말이고, 두루 쓰는 낱말은 두루 쓰기 좋도록 가꾸어야 아름답습니다.

 우리 둘레 말삶을 더 돌아보면, ‘식수(食水)’나 ‘생수(生水)’란 낱말은 버젓이 쓰이면서 낱말책에 냉큼 실리지만, ‘마실물’이나 ‘먹는샘물’ 같은 낱말은 여태껏 낱말책에 안 실립니다. ‘생수’는 일본말이기에 ‘먹는샘물’로 고쳐써야 한다고 정부에서 틀을 세운 지 한참 지났으나, 이러한 틀을 낱말책에 알뜰히 담지 못해요. 그나마, ‘먹을거리’는 낱말책에 실어 놓으나, ‘마실거리’는 낱말책에 없습니다. 고작 ‘음료수(飮料水)’ 한 마디만 실립니다.

 여느 자리에서 여느 삶을 꾸리는 여느 사람이 일하고 놀며 복닥이면서 주고받는 말마디가 제대로 사랑받지 못합니다. 말글학자는 말글학자대로 사랑하지 않고, 여느 자리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인 우리들 또한 알맞고 착하게 사랑하지 않습니다.


1. 손빨래 : 빨래는 예부터 손으로 했습니다. 기계로 빨래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나라에 빨래기계가 들어온 지 몇 해쯤 되었으려나요. 기껏 스무 해 남짓 되었을까 싶고, 서른 해나 마흔 해 앞서만 해도 빨래란 으레 손빨래입니다. 오늘날에는 손으로 빨래하는 일이 거의 자취를 감추다 보니, 사람이 손으로 하는 빨래는 ‘빨래’가 아닌 ‘손빨래’가 됩니다. 발로 밟는 이불빨래를 가리켜 ‘발빨래’라 하지 않는데, 여느 빨래만큼은 ‘손빨래’가 되고 맙니다. 기계로 빨면서 ‘기계빨래’라 하지 않을 뿐더러, 빨래를 해 주는 기계는 ‘빨래기계’가 아닌 ‘세탁기(洗濯機)’이고, 빨래를 해 주는 곳은 ‘빨래집’이 아닌 ‘세탁소(洗濯所)’입니다. 


2. 아이키우기 : 모든 어버이는 아이를 낳아 기릅니다. 내 아이를 낳아 기르든 다른 살붙이나 이웃 아이를 보살피든 어버이 되는 사람은 아이를 맡아 기르며 돌봅니다. 아이를 키우니까 ‘아이키우기’요, 아이를 기른다면 ‘아이기르기’이며, 아이를 돌본다면 ‘아이돌보기’인데, 학문이나 보건이나 복지로 넘어서면 ‘육아(育兒)’가 됩니다. 


3. 구멍가게 : 조그마한 가게라서 구멍가게입니다. 요즈막에는 ‘나들가게’라는 이름을 붙여 마을 작은 살림터를 돕는다고 합니다. ‘나들가게’라는 낱말도 좋습니다. 마을에 있기에 ‘마을가게’라 할 만하고, ‘동네가게’라 해도 잘 어울립니다. ‘수퍼’나 ‘수퍼마켓’은 미국에서 찾을 노릇입니다. 


4. 저잣거리 : 크고작은 도시와 온 나라 시골마다 ‘마트(mart)’가 치고 들어왔습니다. 시골에서마저 농협은 ‘하나로’라는 고운 이름을 앞에 달기는 하나, 뒤꼭지에는 ‘마트’를 붙여 ‘하나로마트’입니다. 아직 시골 저자는 ‘장(場)마당’이라 하는데, 날마다 가게를 여는 장삿집이 모인 도시에서는 ‘저자’나 ‘저잣거리’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재래시장(在來市場)’이라는 이름만을 씁니다. 


5. 밥집 : 머리카락을 손질하거나 깎을 때에는 머리집이나 머리방에 갑니다. 책을 볼 때에는 책집이나 책가게나 책방에 갑니다. 차를 마시려고 찻집에 갑니다. 술을 자시는 어른은 술집에 가요. 밥을 밖에서 사다 먹을 때에는 ‘밥집’에 갑니다. 


6. 밤샘 : 지난날에는 공장 일꾼들한테 밤새도록 일을 시키며 들볶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밤새도록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에 빠듯하거나 아이를 가르치기에 벅차다고 합니다. 이른바 ‘철야(徹夜)’와 ‘야근(夜勤)’입니다.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쓰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나날이 되고 맙니다. 일도 공부도 놀이도 온통 밤샘입니다. 밤일이요 밤공부요 밤놀이입니다. 


7. 풀약 : 나와 내 살붙이가 먹을 밥을 거두는 땅이라 한다면 그리 안 넓어도 되고, 애써 풀약을 칠 까닭이 없습니다. 자동차를 굴려야 하고, 아이들을 대학교까지 넣어야 하며, 온갖 물건을 사들여야 하니까 더 넓은 땅을 일구어 더 많은 곡식을 거두어야 하고, 이러는 동안 풀베기나 풀뽑기를 손으로 할 수 없어 풀약을 칩니다. 풀은 풀약을 먹으면서 죽고, 풀하고 이웃한 곡식은 풀약을 함께 먹고 자라면서 사람들 몸뚱이에 수은이며 납이며 카드뮴이며 차곡차곡 쌓입니다. 삶이 고단하면서 살림살이가 고단하고, 살림살이가 고단하다 보니 일거리가 고단하고, 일거리가 고단한 탓에 넋 또한 고단한 만큼, 나날이 나누는 말마저 고단하고야 맙니다. (4343.12.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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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우리말 착하게 가꾸기 ㉣ 살려쓰면 좋은 우리말 : 사랑말


 우리 식구들 살아가는 시골마을에서는 읍내 장날에 맞추어 바깥마실을 합니다. 읍내 마실을 한다고 읍내 모든 곳을 두루두루 누비지는 않습니다. 읍내로 마실을 할 때면 새삼스레 보거나 느끼는 모습도 많아요.

 저번에는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함께 마실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음성읍 끝자락에 자리한 ‘무지개 아파트’를 보았습니다. 시골 읍내에도 아파는 참 많으며 새로 짓는 아파트 또한 많은데, 이 가운데 수수하며 시골스러운 이름이 붙는 곳이 더러 있어요. 시골 아파트라 하면 영어보다는 토박이말을 사랑할 듯하다고 여길 만할까요? 시골 아파트라 해서 토박이말을 잘 쓰지는 않아요. 되레 영어나 한자말 이름이 많다 할 수 있어요. 도시 아파트라 해서 영어나 한자말 이름이 많을까요? 외려 ‘개나리 아파트’라든지 ‘진달래 아파트’라는 이름을 만나기도 합니다.

 다만, 아파트 이름으로 ‘무지개’나 ‘개나리’나 ‘진달래’를 쓰는 곳은 크기가 작아요. 영어나 갖가지 바깥말을 섞어서 쓰는 ‘xi’나 ‘來美安’ 같은 아파트들은 크기도 큽니다. 요사이는 ‘에코메트로’나 ‘에코빌’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더라고요.

 처음에 ‘에코메트로’나 ‘에코빌’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에는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이 또 얄궂게 이름을 붙이는구나 하고 여겼습니다. ‘에코라이프’니 ‘에코우먼’이니 ‘에코러브’라느니 ‘에코북’이라느니, 더구나 ‘에코북시티’라는 말까지 나돌아요.

 환경운동이란 자연 터전만 곱게 지키자는 흐름이 될 수 없습니다. 환경운동이란 자연과 사람과 삶이 한결같이 아름다우면서 참답고 착하도록 이끄는 흐름이 되어야 올발라요. 그런데 ‘환경사랑’조차 아닌 ‘에코러브’라 하거나 ‘푸른환경’이 아닌 ‘그린에코’라 하거나 ‘환경책’이라 않고 ‘에코북’이라 하면 어떻게 될까요. ‘환경마을’이나 ‘환경사랑마을’에서 살 수는 없을는지요. ‘푸른마을’이나 ‘푸른책마을’이나 ‘푸른꿈책마을’이나 ‘푸른사랑책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살아갈 수 있어요.

 ‘綠色’은 일본 빛이름입니다. ‘草綠’은 중국 빛이름이에요. 한국 빛이름은 ‘푸름’이나 ‘풀빛’입니다. ‘綠色’이란 ‘풀(綠) + 빛(色)’이고, ‘草綠’이란 ‘풀(草) + 푸름(綠)’이에요. 우리들이 이 나라에서 이 터전과 이 겨레를 사랑하면서 벌일 환경운동이라 할 때에는 참다이 한겨레 삶터에 걸맞게 어깨동무하는 일마당이 될 수 있어야 아름다워요. 삶과 터와 사람과 사랑과 말과 글을 한동아리로 살필 수 있어야 슬기롭습니다.

 참다운 살림집이란 사랑스러운 살림집이라고 생각해요. 착한 환경운동이란 믿음직한 환경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고운 말글이란 따스한 말글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들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만 예쁘장하게 꾸밀 노릇이 아니라, 우리 삶을 꾸밈없이 사랑하거나 아끼는 가운데 말과 글 또한 꾸밈없이 사랑하거나 아껴야 한다고 느껴요. 우리 스스로 내 삶을 꾸밈없이 사랑하거나 아끼는 결을 고스란히 환경운동으로 옮기고 책읽기로 옮기며 공부와 살림살이로 옮겨야 한다고 느껴요.

 두 가지 사랑말을 곱씹어 봅니다.


1. 책사랑 : 저는 책을 만들거나 쓰거나 읽는 일을 해요. 좋은 짝꿍하고 살림을 꾸리기도 하고, 어여쁜 아이를 돌보기도 하지만, 일찍부터 해 온 일은 책마을 책손으로 지내다가 책마을 일꾼이 되며 책을 만지는 일이에요. 저로서는 ‘책사랑’이라는 낱말을 퍽 예전부터 즐겨썼습니다. 저한테는 책사랑일 텐데, 아마 말사랑벗한테는 영화사랑이나 그림사랑이나 사진사랑이 될 수 있어요. 게임사랑이라든지 농구사랑이나 야구사랑이나 배구사랑이 될 수 있겠지요. 탁구사랑이나 수영사랑이 될 수 있고, 가야금사랑이나 기타사랑이 될 수 있어요. 노래사랑이나 춤사랑도 있습니다. 연극사랑이나 손말사랑이 있어요. 하느님사랑이나 부처님사랑이 있을 테고, 교회사랑이나 학교사랑도 있겠지요. 동무사랑이나 스승사랑이 있고, 동네사랑이랑 마을사랑이 있어요. 걷기사랑이나 자전거사랑이 있을 테며, 여행사랑이라든지 빨래사랑이라든지 있을 테지요. 말사랑벗한테는 어떤 사랑이 가장 애틋한가요. 말사랑벗이 가장 좋아하거나 즐기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누군가는 외국어사랑을 할 만하고, 누군가는 역사사랑을 할 만합니다. 철학사랑이나 과학사랑을 해 볼 만합니다. 문학사랑이나 로봇사랑도 좋아요. 엄마사랑 아빠사랑 누나사랑 언니사랑 동생사랑 오빠사랑 모두 좋고요. 사랑을 하기에 ‘사랑’을 한다고 이름을 붙입니다. 어쩌면 말사랑벗 가운데에는 이름 두 글자가 ‘사랑’인 벗이 있겠네요. 최사랑이나 송사랑이나 김사랑이나 박사랑이나 전사랑이나 이사랑이나 고사랑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사랑’이라는 이름은 어릴 적에도 예쁘고 푸름이일 때에도 예쁘며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어도 예쁘다고 느낍니다. 듣는 사람부터 즐겁고, 말하는 사람 또한 기뻐요. ‘사랑’ 두 글자를 혀에 얹어 살며시 내보낼 때에 보드라우면서 따사로운 기운이 서린다고 할까요. 저는 책사랑을 하는 가운데, 헌책방사랑을 함께 합니다. 그래서 헌책사랑이라는 말도 쓰고, 한동안 〈헌책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 조그맣게 소식지를 낸 적 있어요. 마땅한 노릇일 테지만, 〈우리말사랑〉이라는 이름을 달고 소식지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짝꿍사랑인 사람사랑을 하고, 우리 집 두 아이를 아끼는 아이사랑을 합니다. 이와 함께 저와 옆지기를 낳아 길러 주신 어버이를 헤아리는 어버이사랑을 해야지요. 제가 뿌리내리며 지내려는 시골마을을 아끼는 시골사랑과 멧골사랑을 할 생각이며, 땅사랑 흙사랑 텃밭사랑 고구마사랑 감자사랑 나락사랑 배추사랑 무사랑도 하면서 살아야지요. 집식구들 함께 끓여 먹을 동태찌개를 앞에 둔다면 찌개사랑이 될 테고, 그러고 보니 날마다 밥사랑을 하는군요. 설거지사랑도 하고 걸레사랑도 하며 기저귀사랑도 합니다. 아, 이곳저곳 둘러보고 돌아보노라면 온통 사랑이네요. 버스를 타면 버스사랑이고 기차를 타면 기차사랑입니다. 이웃을 마주하면 이웃사랑이요, 제주섬 마실을 하면 제주사랑이며 섬사랑인데, 인천 골목동네 마실을 하면 인천사랑이자 골목사랑입니다. 사랑 아닌 일이란 없고, 사랑 없이 이룰 일이란 없어요. 이처럼 내 삶이 온통 사랑인 가운데 말사랑을 하고 글사랑을 합니다. 이야기사랑을 꽃피웁니다. 


2. 사랑편지 : 일본사람이 빚은 예쁜 영화에 붙은 이름은 ‘Love Letter’입니다. ‘러브레터’조차 아닌 ‘Love Letter’입니다. 일본사람은 한국사람 저리 가라 할 만큼 영어를 사랑합니다. 아마 일본사람은 일본말로 ‘라부레또’라 했겠지요. 그나저나 이 일본사람 영화를 한국사람이 즐기도록 들여오면서 ‘Love Letter’라는 이름을 고스란히 살렸고, 한글로 적어도 ‘러브레터’일 뿐입니다. 우리말로 알맞게 ‘사랑편지’라 적바림하지 않아요. 그래도 요사이에는 ‘사랑편지’라는 낱말을 그럭저럭 쓰기는 쓴다는데, ‘러브레터’라는 낱말처럼 두루 사랑받으면서 쓴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러브레터’라고 말을 하거나 글을 써야 무언가 사랑스러운 마음을 나눈다고 여기지, ‘사랑편지’라는 이름으로는 썩 사랑스럽다고 느끼지 못하는가 봐요. 참말로, ‘사랑소설’이라는 이름조차 없이 ‘연애소설’입니다. ‘사랑영화’나 ‘사랑연속극’이라는 이름은 없고 ‘멜로물’이나 ‘애정영화’입니다. ‘사랑노래’는 낡고 ‘러브송’은 싱그러운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를 사랑해요”는 시답잖고 “알러뷰 코리아”는 귀여운지 알쏭달쏭합니다. ‘사랑라디오’는 고리타분하기에 ‘러브 에프엠’이라는 이름이 붙는지 아리송해요. 왜들 이렇게 우리 스스로 사랑을 나누지 못하며 살아가나요. 왜들 이렇게 나부터 사랑을 길어올리면서 오순도순 나누지 못하며 지내는가요. 이 나라가 사랑나라로 거듭나고, 이 누리를 사랑누리로 추스르며, 이 터를 사랑터로 가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을 담아 사랑글을 쓰고, 사랑글을 엮어 사랑책을 내놓으며, 사랑책으로 사랑넋과 사랑얼을 함께할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제 조그마한 사랑꿈과 사랑빛을 담아 사랑편지 몇 줄 적바림합니다. (4343.12.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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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우리말 착하게 가꾸기 ㉢ 살려쓰면 좋은 우리말 : 푸른말


 말만 예쁘장하게 쓰는 사람이 있어요. 삶이나 매무새는 하나도 예쁘장하지 않을 뿐더러, 넋이나 얼 또한 조금도 예쁘장하지 않을지라도 말만큼은 예쁘장하게 쓰는 사람이 있어요.

 어린이문학을 하던 이원수 님 이름을 아는 말사랑벗은 몇 사람이나 있으려나요. 말사랑벗들은 어릴 적부터 이원수 님 동요나 동시나 동화를 읽었는가요. 읽은 벗님이 있고, 이름을 모르는 벗님이 있겠지요. 이원수 님은 《얘들아 내 얘기를》이라는 수필책을 어린이가 읽도록 1975년에 내놓은 적 있는데, 이 책에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이름을 붙인 짧은 글이 실렸어요. “마음이 곧은 사람은 곧은 글을 쓰고, 마음이 슬픈 사람은 슬픈 글을 쓰고, 성격이 괄괄한 사람은 괄괄한 모양의 글을 쓴다.”고 하면서, 글을 읽으면 이 글을 쓴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헤아릴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말사랑벗들은 말만 참 예쁘장하고 삶은 엉망이거나 짓궂거나 미워 보이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요. 참말 말은 훌륭하거나 멋진데, 하는 모양은 엉터리인 사람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원수 님은 “그러나 그 속에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생각은 없었다. 그 시를 쓴 사람을 나쁘다고 한 것은 그가 속은 좋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좋은 듯이 꾸미고 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고 덧붙입니다.

 저 또한 이와 같이 생각하고 느끼며 살아갑니다. 제가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는 오로지 제 삶 테두리입니다. 제가 살아가는 그대로 이야기를 엮어서 나눌 뿐입니다. 저부터 아름다이 살아가지 못하면서 아름답다 싶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요. 저부터 더 착하게 살아가지 않으면서 착한 마음이나 넋을 이야기할 수 없어요. 저부터 집에서고 밖에서고 어디에서고 바르며 고운 말을 즐겨쓰지 않는다면, 이 책에서만 바르며 고운 말 이야기를 적바림할 수 없어요.

 푸른말을 생각합니다. 푸른말이란 말사랑벗님이 보내는 10대라는 나이에 둘레에서 들으면서 말사랑벗님 스스로 쓰는 말을 일컫습니다. 푸름이가 쓰는 말이기에 푸른말이에요. 또한, 내 삶과 넋을 푸르게 가꾸고픈 꿈으로 쓰는 말이 푸른말이에요.

 나이로 치면 10대 푸름이가 쓰는 말이지만, 나이를 넘어 누구나 푸른 모두를 사랑하고플 때에 쓰는 푸른말입니다. 옷차림만 푸름이답기보다 마음차림부터 푸름이다우면 좋겠고, 나이를 세는 밥그릇으로만 푸름이가 되기보다 사랑을 담는 마음그릇부터 푸름이다우면 좋겠어요.


1. 배움집 : 우리는 ‘학교(學校)’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이 한자말은 한자말이라기보다 그냥 우리말이 되었기에 굳이 한자를 밝힐 까닭이 없어요. 초등학교는 ‘초등학교’이지 ‘初等學校’가 아니고, 중학교는 ‘중학교’이지 ‘中學校’가 아닙니다. 그런데 학교는 어떤 곳일까요. 배우는 곳이지요. 배우는 곳이기에 ‘배움곳’이나 ‘배움터’일 테고, 건물이 선 학교뿐 아니라 마을이나 집 어디에서나 사람들 누구나 배우기에 ‘배움마을’이요 ‘배움집’이며 ‘배움누리’이고 ‘배움마당’입니다. 


2. 스승 : 해마다 5월 15일 하루만 ‘스승날’이라 하면서 ‘스승’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다른 때에는 ‘교사’나 ‘선생’이라고만 해요. 우리한테는 좋은 낱말 ‘스승’이 있지만 좀처럼 이 낱말을 못 쓰며 살아요. 참다운 스승, 곧 참스승이 없기 때문인가요. 내 마음에 참스승을 못 모시며 살아가기 때문일까요. 


3. 동무 : 북녘사람들은 나이나 계급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동무’라고 불렀다 합니다. 그래서 1950년대부터 남녘땅 사회와 학교에서는 이 낱말 ‘동무’를 몹쓸 낱말로 여기고 말았어요. ‘어깨동무’ ‘길동무’ 하듯이 동무일 뿐인데요. ‘사랑동무’ ‘마음동무’ ‘공부동무’ ‘놀이동무’처럼 우리들은 좋은 벗님, 그러니까 너나들이를 사귀면 좋을 텐데요. 


4. 골마루 : 건물이나 집에서 나무로 바닥을 댄 거님길을 골마루라 합니다. 옛날 학교는 나무로 지어서 ‘복도’ 아닌 ‘골마루’였어요. 그런데 아파트에서도 ‘마루’이고 ‘부엌’은 똑같아요. 솥을 걸어야만 부엌이 아니고, 시멘트로 바닥을 대었어도 ‘골마루’랍니다. 


5. 푸름이 : 이름만 푸름이로 쓴다 해서 참으로 푸른 사람 푸른 꿈 푸른 날 푸른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지는 않지만, ‘청소년’이라는 이름에서는 푸른 빛깔과 맑은 무지개를 떠올리기 너무 어려워요. 


6. 사랑매질 : 예부터 학교에서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얼차려를 하거나 매질이나 주먹질을 했습니다. ‘체벌’이라고도 하는데, 참말 사랑을 담은 매질이라면 이름부터 ‘사랑매질’이라 붙여서, 거짓없이 사랑을 담은 손길로 우리들을 어루만지면 고맙겠어요. 


7. 개밥도토리 : ‘왕따’는 일본말이라 ‘집단 따돌림’이라 써야 한다고들 하는데, 이 나라에도 예부터 ‘개밥도토리’랑 ‘돌림뱅이’가 있었어요. 일본에서 들어온 못된 짓이 아니라, 우리한테도 우리들 살갑고 사랑스러운 벗을 괴롭히던 슬프며 못난 삶이 있었습니다. 


8. 건널목 : 나어린 아이들은 건널목을 건널 때에 손을 높이 들도록 시킵니다. 키가 작아 ‘자동차에 탄 어른들 눈에 잘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건널목 앞에서 얌전히 서거나 기다리는 어른은 몇이나 되나요. 아이들은 어른들 차 모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중에 어른이 되어 차를 몰 때에 똑같이 슬픈 빛으로 차를 몬다고 느껴요. 날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건널목 앞에 서면 무섭습니다. 


9. 징검돌 : 시골 아저씨는 말사랑벗한테 징검돌 하나입니다. 말사랑벗이 저 같은 아저씨 한 사람을 밟고 새길을 걸으면서 슬기로우며 예쁜 넋을 북돋우면 좋겠다고 느낍니다. 징검다리를 이루는 징검돌입니다. 나중에 말사랑벗님들이 씩씩하며 훌륭한 어른이 된다면 또다른 징검돌 노릇을 해 주셔요. 디딤돌이나 받침돌이나 밑돌 노릇도 좋아요. 걸림돌은 되지 말아 주셔요. 


10. 길잡이 : 가시밭길을 꿋꿋이 헤치면서 뒷사람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을 일컬어 ‘이슬떨이’라 합니다. 이슬떨이만큼 대단하게 살 수 없어도 길잡이 노릇으로도 즐겁습니다. 길잡이가 못 된다면 길동무로도 좋고, 그냥 길손이 되어도 괜찮아요. 


11. 꿈날개 : 꿈에 날개를 답니다. 생각에도 날개를 답니다. 마음에도 날개를 달아요. 이야기에도 날개를 달고, 책이나 글이나 선물이나 꽃이나 나무한테도 날개를 달아 봅니다. 


12. 삶이야기 : ‘판타지’란 어떤 이야기일까 생각해 봅니다. 어른들은 우리가 읽을 문학을 손수 쓰거나 나라밖에서 들여오면서 ‘판타지문학’이라는 이름을 쓰는데, 우리 삶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라면 꾸밈없이 ‘삶이야기’라 해도 되고, 우리 꿈을 마음껏 펼치는 이야기라면 수수하게 ‘꿈이야기’라 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3. 셈틀 : 아저씨도 ‘컴퓨터’라는 낱말을 쓰지만, 때때로 ‘셈틀’이라는 낱말을 쓰곤 합니다. ‘셈 + 틀’이라 셈틀이고, ‘셈’이란 ‘세다’에서 비롯했으며, ‘세다’는 ‘헤다’에서 온 말이요, ‘헤다’는 ‘헤아리다’로 가지를 뻗었습니다. ‘헤아리다’란 ‘생각하다’입니다. 그러니까, ‘셈틀’이란 ‘생각틀’이요 ‘꿈틀’이기도 합니다. 


14. 빛슬기 : 아저씨하고 아줌마는 첫째 딸아이 이름을 ‘사름벼리’라고 지었습니다. 아저씨랑 아줌마는 어버이 성씨를 둘 다 안 쓸 마음으로 딸아이 이름을 지으며 ‘사름’을 성으로 삼고 ‘벼리’를 이름으로 삼았어요. 호적에 올릴 때에는 아버지 성을 넣어야 했는데, 여느 자리에서는 아버지 성을 뺀 ‘사름벼리’라고만 불러요. 티없이 고우면서 꾸밈없이 어여삐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름 넉 자에 담았어요. ‘빛슬기’라는 낱말은 푸름이로 살아가는 말사랑벗들이 빛과 같은 슬기를 몸소 일구면서 나누면 좋겠다는 꿈을 담아 새로 지어 봅니다. ‘꿈슬기’를 지을 수 있고 ‘참슬기’라든지 ‘멋슬기’라 지어도 되겠지요. 더 많은 지식보다는 더 따스한 슬기와 더 너그러운 빛깔을 사랑해 주면 기쁘겠어요.

(최종규 . 2011 -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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