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려고 하는 마음



  여덟 살 아이라 하더라도 순 글만 있는 책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스물여덟 살 젊은이라 하더라도 순 글만 있는 책을 잘 못 읽기도 합니다. 익숙하지 않다면 잘 못 읽고, 애써 읽더라도 빠뜨리는 대목이 많이 마련입니다.


  처음부터 아주 익숙하다는 듯이 잘 읽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설프거나 서툴지만 차츰 익숙하게 잘 읽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구름이나 바람이나 볕을 제대로 못 읽을 수 있지만, 천천히 구름이나 바람이나 볕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읽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 무엇이든 읽습니다. 읽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 종이책이건 하늘이건 날씨이건 무엇이든 읽습니다. 읽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 서로 어떤 마음이거나 생각인지 읽을 수 있습니다. 읽으려고 하는 마음이 없기에 종이책도 못 읽고, 날씨와 철도 못 읽으며, 이웃과 동무가 어떤 마음이거나 생각인지 못 읽습니다. 4348.1.3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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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5-02-01 07:22   좋아요 0 | URL
무슨 책일까요? 아하, 이전 글에 답이 있네요!

숲노래 2015-02-01 09:53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
 

사탕을 줄 수 있는 마음


  날마다 열 시간 동안 열흘에 걸쳐 배우는 자리에 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모두 몸과 마음을 기울여 힘을 크게 써야 합니다. 그러니, 주전부리를 챙겨서 기운을 차리는 이웃님이 많습니다. 나는 아무런 주전부리를 챙기지 않습니다. 나는 무엇을 배울 적에는 밥 빼고는 따로 더 먹지 않습니다. 밥때에 맞추어 쉴 적을 빼고는 물만 몇 모금 마시면서 ‘배울 이야기’에 마음을 쏟습니다. 어쩐지 나로서는 빈속일 적에 한결 홀가분하게 배웁니다.

  내 둘레에 있는 이웃님이 주전부리를 나누어 줍니다. 혼자 드셔도 되지만 으레 나누어 줍니다. 아아, 얼마나 고마운 손길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노래하듯이 기쁘게 받아 가방 주머니에 넣습니다. 나중에 고흥집으로 돌아가면 두 아이와 곁님한테 나누어 줄 생각입니다. 세 사람이 신나게 받아서 나누어 먹기를 바라면서 날마다 주전부리를 조금씩 챙깁니다. 4348.1.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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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를 하는 마음



  노는 아이가 예쁘다고 한다면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어야 합니다. 책을 읽는 아이가 예쁘다고 한다면 아이들이 온갖 책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우리 어른은 아이를 어떤 눈길로 바라보는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이가 예쁘다고 여기는 어른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이가 어느 때에 예쁘다고 여길까요. 아이가 예쁘게 자라도록 이끌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나라에서는 무상보육이나 무상급식과 같은 것을 내세우면서 교육과 복지를 외치지만, 정작 이러한 일은 교육이나 복지가 못 되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책에는 ‘아이가 예쁘게 웃고 뛰놀면서 자라는 터전’을 헤아리는 마음이 안 깃들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에 들기 앞서까지 나라에서 돈을 대준다고는 하지만, 유아원이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에서는 무엇을 하나요. 이런 곳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하면서 놀 수 있는가요. 어른들이 회사에 오래도록 붙들려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아이들을 밀어놓는 데가 아닐는지요.


  초등학교는 어떤 ‘초등 교육’을 하고, 중·고등학교는 어떤 ‘중등·고등 교육’을 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열두 해에 걸쳐 우리 아이들은 어느 곳에서나 언제나 입시교육에 얽매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부터 놀이를 빼앗기고 놀이를 잃으며 놀이를 잊습니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놀 틈이 거의 없습니다. 50분 동안 꼼짝없이 좁은 책걸상에 앉아서 교과서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작 10분 쉰다지만 뒷간에 가거나 엉덩이를 쉴 조그마한 틈입니다. 낮밥을 먹을 적에도 놀지 못합니다. 무상급식을 하니 아이들은 스텐밥판을 들고 급식실에 줄을 서야 합니다. 줄을 서서 자리에 앉더라도 이내 다른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빨리 밥그릇을 비우고 일어서야 합니다. 허울은 ‘무상’이고 ‘급식’이지만, 아이들은 밥을 먹으면서 놀지 못하고, 밥을 먹는 동안 느긋하게 수다를 떨며 놀 수 없습니다.


  도시락을 싸서 학교를 다니던 예전 아이들은 교실에서도 도시락을 풀고, 운동장 한쪽이나 나무그늘이나 풀밭에서도 도시락을 풀었습니다. 적어도 교실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었고, 마음 맞는 동무하고 바깥바람을 쐬거나 나무바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급식실에서 얼른 밥그릇 비우고 일어서야 할 까닭이 없이, 도시락을 삼십 분이고 오십 분이고 느긋하게 비워도 되었습니다.


  놀이는 교과서로 가르치지 못합니다. 놀이는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가르치지 못합니다. 놀이는 텔레비전이나 책이 가르치지 못합니다. 놀이는 오직 너른 터와 넉넉한 겨를과 느긋한 마음이 어우러져야 태어납니다. 강당이나 체육관이 있어야 아이들이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교과서나 수업이나 건물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신나게 뛰고 달리고 구르면서 땀을 흘릴 빈터가 있어야 합니다. 학교는 건물을 늘리지 말고 빈터와 나무그늘을 늘려야 합니다. 마을은 시멘트길이나 아스팔트길이나 주차장을 늘리지 말고 풀밭과 숲정이를 늘려야 합니다. 집에는 마당이 있어야 하고, 마당 둘레에는 텃밭과 나무가 어우러져야 합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곳이 어른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이고, 아이와 어른이 함께 살림을 지을 수 있는 곳입니다. 4347.1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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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만지는 마음



  모과나무 겨울눈과 복숭아나무 겨울눈과 매화나무 겨울눈은 모두 다릅니다. 눈으로 보아도 다르고, 손으로 만져도 다르며, 코를 갖다 대며 냄새를 맡아도 다릅니다. 동백꽃과 장미꽃은 서로 다릅니다. 눈으로 보아도 다르고, 손으로 만져도 다르며, 코를 갖다 대며 냄새를 맡아도 다릅니다. 농약과 비료를 뿌린 밭자락 흙이랑, 풀이 스스로 돋아 우거진 밭자락 흙이랑, 사람들 발길에 꾹꾹 눌린 밭자락 흙이랑, 모두 다릅니다. 눈으로 보아도 다르고, 손으로 만져도 다르며, 쪼그려앉아 냄새를 맡아도 다릅니다.


  내 옷과 곁님 옷과 아이들 옷은 서로 다릅니다. 눈으로 보아도 다르고, 손으로 만져도 다릅니다. 복복 비벼서 빨 적에도 다르고, 물기를 짤 적에도 다르며, 빨랫줄에 널 적에도 다릅니다. 잘 말라서 걷을 적에도 다르고, 찬찬히 갤 적에도 다르며, 옷장에 놓을 적에도 다릅니다.


  꼭 눈으로 보아야 다 다른 줄 알아채지 않습니다. 꼭 손으로 만져야 다 다른 줄 느끼지 않습니다. 꼭 냄새를 맡아야 다 다른 줄 깨닫지 않습니다. 이 지구별에는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능금나무에서 능금알을 따든, 유자나무에서 유자알을 따든, 똑같은 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무가 제 결을 고이 살려서 산다면, 나무꽃이나 나무열매는 모두 다릅니다. 그러나, 도시에 내다 팔려고 틀에 맞추려고 하면, 꽃이며 열매는 모두 똑같아야 합니다. 달걀도 모두 똑같아야 하고, 고기 살점도 모두 똑같아야 합니다. 울퉁불퉁하거나 크게가 다 다르면, 도시 사회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 똑같아야 한다는 도시 사회에서는 사람들도 거의 엇비슷합니다. 차림새가 엇비슷하고, 학교나 회사는 아예 똑같은 옷만 맞춰 입히며, 머리카락 모양도 똑같이 맞추도록 윽박지릅니다. 나중에는 얼굴과 몸매를 뜯어고쳐서 생김새까지 엇비슷합니다. 이러다 보니, 도시 사회에서는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책을 즐겁게 읽기보다는, 다 같은 책을 모두 똑같이 읽으며 베스트셀러 키우기로 휩쓸리고, 다 똑같은 책을 다 똑같은 눈길과 느낌으로 읽도록 부추기니, 다 다른 생각이나 마음이나 꿈이 자라지 못합니다.


  눈으로 보아도 다르지만, 이제 눈으로 보면서 다른 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손으로 만져도 다르지만, 이제 손으로 만지면서 다른 느낌을 입으로 말하거나 글로 쓸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마음을 열어 생각을 기울이면 다 다른 줄 알아챌 테지만, 마음을 열거나 생각을 기울여도 오늘날에는 사람들 마음과 생각이 거의 같거나 아예 똑같은 틀에 갇혀서 벗어날 줄 모르지 싶습니다. 4347.11.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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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사는 마음



  큰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작은아이는 큰아이가 노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우리는 한집에서 함께 삽니다. 우리는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습니다. 우리는 한집에서 한목소리가 됩니다. 우리는 한집에서 한마음이 됩니다.


  가을바람이 불면 다 함께 가을바람을 마십니다. 봄바람이 불면 다 같이 봄바람을 마십니다. 여름햇살이 뜨거운 다 함께 땀을 흘립니다. 겨울볕이 포근하면 다 같이 신나게 춤을 춥니다.


  나무를 함께 바라봅니다. 꽃과 풀을 같이 들여다봅니다.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같이 걸어서 다니며, 서로 마주보면서 빙그레 웃고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칠 수 있다면, 아이한테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아이한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면, 아이한테 가르칠 것이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살면서 아침마다 새롭게 하루를 열고 저녁마다 고즈넉하게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4347.11.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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