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배웅하는 마음



  아버지가 볼일을 보러 혼자 나들이를 다녀와야 합니다. 밥을 모두 차려 놓고 길을 나서는데, 큰아이가 눈물을 글썽글썽하면서 안아 달라 합니다. 왜 우니, 오늘 가서 오늘 돌아오는 길인데. 함께 갈 만한 자리라면 함께 갈 테지만, 아버지가 혼자 일을 보고 와야 하니 혼자 갈 뿐이야. 우리는 늘 함께 있고, 우리 마음은 모두 이어졌으니, 아버지가 어디로 일을 하러 다녀오든 기쁘고 사랑스럽지.


  큰아이는 대문을 밀고 나가는 아버지한테 큰소리로 인사합니다. 고샅길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큰 목소리로 인사합니다. 군내버스를 기다리는 곳에서도 아이들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눈물젖은 인사를 가슴에 폭 담으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4348.3.13.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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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3-13 12:49   좋아요 0 | URL
아이를 키우니 아이들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네요. 밤새 잠투정거리는 아이와 있다 밖에 나옵니다. 늘 함께 있고, 우리 마음은 모두 이어져있다. 뭉클합니다. ^^

숲노래 2015-03-13 18:51   좋아요 0 | URL
그럼요. 우리는 늘 마음으로 이어진 이웃들이니까요~
 

할아버지 마음



  나는 할아버지가 아니니 할아버지 마음을 모릅니다. 나는 어머니가 아니니 어머니 마음을 모릅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 내 둘레 따사로운 숨결을 헤아리거나 읽거나 느끼려 한다면, 얼마든지 헤아리거나 읽거나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생각을 쓰지 않고, 찬찬히 바라보면서 맞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어떠한 마음인지 모르기 마련입니다.


  이리하여, 나는 나 스스로도 모르고 내 둘레도 모릅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어떠한 마음인지 헤아리려 하지 않을 적에는, 나 스스로 내가 어떤 마음인지 헤아리려 하지 않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하고 스스로 묻고 스스로 길을 찾을 적에, 시나브로 내 둘레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떠한 숨결인가 하고 헤아립니다. 내가 나를 찾을 적에, 나는 나를 둘러싼 이웃과 동무가 어떠한 넋으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인가 하는 대목을 느끼고 마주하며 바라보아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와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마음도 할아버지 마음도 하나하나 헤아려 봅니다. 4348.2.1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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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그릇 이루는 마음



  밥물을 맞추어 냄비에 불을 넣습니다. 국거리를 차근차근 손질해서 차근차근 국냄비에도 불을 넣습니다. 두 가지를 끓인 뒤 가만히 생각합니다. 오늘은 어떤 풀을 썰어서 밥상에 올리면 재미나면서 맛날까 하고 생각합니다.


  봄과 여름에는 마당과 뒤꼍에서 풀이 많이 돋아서 끼니마다 새롭게 풀을 뜯고 썰어서 밥상에 올립니다. 한겨울에는 아직 새로 돋는 풀이 넉넉하지 않으니 배추나 동글배추를 썰어서 밥상에 올리곤 합니다. 때때로 갓잎을 섞습니다.


  풀을 썰고 나서 된장이나 간장으로 간을 맞추기도 하지만, 마요네즈와 케찹으로 버무리기도 합니다. 무엇으로 간을 맞추거나 버무려도 다 즐겁습니다. 늘 새로우면서 기쁜 맛입니다. 두 가지 빛깔 파프리카를 썬 뒤 통통한 배춧잎을 썰고서 꽃접시에 담아 밥상에 올립니다. 보들보들한 배춧잎을 썰고, 동글배추도 가늘게 썰어서 섞습니다. 오늘은 마요네즈와 케찹으로 해 보자 생각하면서 뽁뽁 뿌리는데, 어쩐지 이 빛깔이 마음에 들어 한동안 바라봅니다. 나는 내가 짓는 밥을 나 스스로 대견스럽게 여겨 빙그레 웃으면서 바라봅니다.


  이제 노래를 부릅니다. 부엌 한쪽에 붙인 종이에 적은 노랫말을 찬찬히 읊습니다. 내가 짓는 밥과 국과 풀에 고운 숨결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내 노래는 바람을 타고 밥과 국과 풀에 스며들고, 이 노래가 스며든 밥과 국과 풀을 먹으면서 아침저녁으로 흐뭇합니다. 4348.2.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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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2-16 14:51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이렇게 해봐야겠어요. 함께살기님 밥상사진은 건강해 보여 항상 주의깊게 보게 됩니다.

숲노래 2015-02-16 17:18   좋아요 0 | URL
있는 그대로 먹기만 해도 즐거웁구나 싶어요
꼭 이런저런 양념을 해야 하지 않고요.
송송 삭삭 썰어서
꽃접시에 담으면
늘 그대로 멋진 밥상이 되어요~
 

생각을 그림에 담는 마음



  여덟 살 큰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나는 나대로 내 그림을 다 그린 뒤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큰아이는 크레파스를 마음껏 놀립니다. 천천히 놀리다가 빠르게 놀립니다. 여덟 살 큰아이는 여덟 살에 걸맞게 마음껏 크레파스를 쥐어 신나게 놀립니다.


  그림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립니다. 그리고 싶지 않은 그림은 그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싶지 않은 그림을 억지로 그려야 한다면 몹시 싫거나 힘들어요.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기에 마음을 활짝 열 수 있습니다.


  생각을 그림에 담는 몸짓은 스스로 나아가려는 길로 가려는 몸짓입니다. 생각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손놀림은, 손수 지으려는 삶을 깊고 넓게 헤아리는 손놀림입니다. 남이 내 몫을 생각해 줄 수 없고, 내가 남 몫을 생각해 줄 수 없습니다. 저마다 제 삶을 스스로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즐거운 놀이는 아이가 손수 찾습니다. 어른한테 기쁜 일은 어른이 손수 찾습니다. 어른이 아이와 놀아 줄 수 있고, 아이가 어른 곁에서 심부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놀이는 아이가 손수 찾아서 즐기기 마련이요, 모든 일은 어른이 스스로 지어서 누리기 마련입니다. 생각을 스스로 지어서 그림을 스스로 그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철이 듭니다. 4348.2.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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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괭이밥꽃 마주하는 마음



  볼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봅니다. 왜냐하면 보려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볼 수 없는 사람은 언제나 못 봅니다. 왜냐하면 안 보려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보려는 마음과 안 보려는 마음은 늘 엇갈립니다. 보려는 마음이 되어 서로 살가이 사귀고, 안 보려는 마음이 불거지면서 서로 어긋나거나 다툽니다.


  가을에 괭이밥꽃이 핍니다. 겨울에는 피지 않습니다. 봄이 되면 새롭게 피고, 여름이 되면 흐드러지게 핍니다. 이 꽃은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 할까요. 우리는 이 작은 꽃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려 할까요.


  고작 어른 새끼손톱만 한 자그마한 꽃송이인데, 이 꽃송이를 알아보면서 걸음을 멈출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장미꽃이나 동백꽃쯤 되어야 비로소 알아볼 만할까요? 장미꽃이나 동백꽃쯤 되지 않으면 꽃내음을 맡을 수 없을까요. 문득 궁금해서 가을괭이밥꽃을 까망하양빛으로 사진 한 장 찍습니다. 까망과 하양으로 나뉜 누리에서 가을괭이밥꽃은 매우 하얗게 빛납니다. 4348.1.3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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