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 보렴

어른들은 말을 참 함부로 한다. 저 아는 대로만 말을 한다. 어른으로서 저 아는 대로 말하면, 이 말을 아이들이 얼마나 알아들을 만할까? 새말을 짓든 오래된 말을 살펴서 쓰든, 어른만 알아들을 말이 아니라, 어린이가 같이 어깨동무하면서 바로 즐겁게 알아들을 만한 말을 찾아서 쓸 노릇이라고 느낀다. 어린이뿐 아니다. 어른 가운데에도 적게 배운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 뭇어른 누구하고라도 어깨동무할 수 있는 결을 헤아리면서 말을 할 노릇이지 싶다. 배운 사람끼리 주고받을 만한 말이 아닌, 이 별에서 삶을 짓는 사랑스러운 사람들 누구나 기쁘게 맞아들일 만한 말을 살피고 살려서 새로 지을 노릇이지 싶다. 인문책에 적힌 글이나, 교과서에 적힌 글을 보면 그저 한숨이 나온다. 도무지 이웃을 헤아리지 않는 이런 말씨로 민주나 평등이나 평화를 어떻게 가르치거나 배울 만한지 아리송하다. 2019.4.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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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발라내어

“얼마나 애썼는데!” 하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넌지시 묻는다. “참으로 애쓰셨어요. 그런데 살은 얼마나 발라내셨나요?” 하고. 내 말이 매우 뾰족할 수 있다만 굳이 묻는다. 이 물음은 그분한테 하는 말이라기보다 바로 나한테 하는 말이다. 남을 말하기 앞서 나는 우리 보금자리를, 살림을, 책숲을, 글이며 책을, 얼마나 살을 발라내면서 가꾸는가를 되새긴다. 애쓰기만으로는 턱도 없다. 살을 발라내어도 모자라도. 뼈를 깎아도 아직 멀다. 그러면, 그러면, 그러면 어떡해야 할까? 온사랑을 다할 노릇이지. 온힘으로는 이루지 못한다. 언제나 온마음을 다하는 온사랑일 적에 비로소 조금 볼 만하다. 2019.4.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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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검문

겪지 않으면 쓸 수 없기 마련이다. 겪지 않고서 쓴다면 거짓이기 마련이다. 적어도 꿈에서라도 겪어야 비로소 쓸 수 있다. 이를테면 ‘불심검문’을 겪지 않은 채 ‘불심검문’을 이야기로 쓸 수 있을까? 아마 이 낱말이 무슨 뜻인지부터 모르기 쉽고, 낱말뜻을 알아도 살갗으로 안 와닿겠지. 서태지 노래가 나올 즈음에도 길거리에서 불심검문이 흔했다. 정태춘·박은옥, 안치환, 조국과청춘, 꽃다지, 노찾사 같은 님들이 아닌 서태지조차 엉망인 나라꼴을 두고서 ‘사전 심의 철폐’에 한목소리를 보탰을 만큼, 1990년대까지 이 나라는 지긋지긋했다. 1994년을 떠올리고 1990년대가 저물던 해를 되새긴다. 그때에 젊은이가 옆구리에 책을 끼고 걸으면 전투경찰이나 사복경찰이 으레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하면서 책을 빼앗곤 했다. 나처럼 길을 걸으면서도 책을 읽는 사람은 툭하면 불심검문을 받아야 했다. 불심검문이 지겨워 길을 걸을 적에는 말랑말랑한 책을 옆구리에 끼고 걷거나 건널목에서 서곤 했다. 문득 생각한다. ‘책을 아끼고 사랑하며 즐겨읽는 젊은이’는 ‘생각이 얌전하지 않다’고 여기면서 잡아채거나 구치소·닭장차에 함부로 가두거나 책을 마구 빼앗아가던, 그런 물결이 얼마나 길었는가. 꼭 불심검문 때문만은 아니나, 이 나라는 젊은이가 책을 멀리한 채 술 마시고 노닥거리고 이쁜 옷 차려입고 놀러다니라고 참 오랫동안 부추겼고, 연속극이나 영화도 온통 노닥질투성이였으며, 아직도 이런 흐름이 꽤 짙으니, 수수하게 여느 자리에서 책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살림이란 얼마나 아득할까. 2019.4.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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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이야기란, 주고받는 말이기도 하면서, 생각하고 마음을 사랑이라는 숨결로 가다듬어서 씨앗처럼 서로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씨앗에는 온갖 삶이며 살림이 흐른다. 이제껏 살아온 나날, 오늘 살아가는 모습, 앞으로 살아가려는 길, 이를 알맞게 엮고 담기에 이야기로 피어난다. 2019.4.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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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림으로 엮고 짓기에 그림책일 텐데, 이 그림책이란, 아기부터 함께 보는 책이다. 새로운 길을 밝히는 걸음으로 아기한테는 무럭무럭 자라나는 길을 밝히고, 어린이한테는 새롭게 배우는 길을 밝히고, 젊은이한테는 씩씩하게 나서는 길을 밝히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는 슬기롭게 빛나는 길을 밝히고, 아저씨 아주머니한테는 살림을 사랑하는 길을 밝히는 책이다. 촛불이나 등불처럼, 또는 별빛이나 햇빛처럼 환하면서 따스한 이야기로 줄거리를 엮어서 그림으로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몇 마디 말을 넣어도, 아무런 말이 없어도, 오롯이 그림으로, 때로는 글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우리 삶이며 살림이란 언제나 노래처럼 피어난다고 하는 기쁜 숨결로 눈빛을 초롱초롱 밝히는 책이다. 2019.4.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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