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사전에 싣는 낱말뜻은 누가 풀이할 적에 어울릴까? 어느 갈래에서 오랫동안 한길을 판 사람이 풀이해야 어울릴까? 이제껏 사전풀이는 ‘전문가’란 사람들이 붙였다고 한다. 그러면 생각해 보자. ‘아이’나 ‘기저귀’ 같은 낱말은 어떤 전문가한테 뜻풀이를 맡겼을까? ‘집’이나 ‘옷’ 같은 낱말은 어떤 전문가한테 뜻풀이를 맡겼을까? ‘사랑’이나 ‘마음’ 같은 낱말은 어떤 전문가한테 뜻풀이를 맡겼을까? ‘빨래’나 ‘빗자루’ 같은 낱말은 어떤 전문가한테 뜻풀이를 맡겼을까? ‘꾸중’이나 ‘타이르다’는? ‘돌보다’나 ‘부엌칼’ 같은 낱말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사전] 주로 어린이를 독자로 예상하고 어린이의 정서를 읊은 시 2. 어린이가 지은 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1. 어린이가 지은 시 2.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여 그들의 사고와 정서에 맞게 지은 시

[보리 국어사전] 어린이가 쓴 시. 또는 어른이 어린이 마음이 맞추어 쓴 시


세 가지 사전에서 ‘동시’ 뜻풀이를 찾아본다. 이 뜻풀이는 알맞은가? 좋은가? 어울리는가? 이 뜻풀이로 ‘동시’가 무엇인가를 헤아리거나 알아차릴 만한가? 세 사전 모두 동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동시를 어떻게 마주해야 즐겁거나 아름다울는가를 짚지 못한다. 그래서 다음처럼 새로 뜻풀이를 붙인다.


[숲노래 말꾸러미] 어린이부터 누구나 쓰고 읽고 나누고 즐기며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알맞게 줄여서 쓴 글


동시는 어린이부터 읽는다. 어린이만 읽지 않는다. 동시는 어린이부터 읽되 어린이한테 맞추지 않는다. 어린이부터 온삶을 슬기롭고 즐겁고 따뜻하고 상냥하고 사랑스럽고 곱고 기쁘게 맞아들여서 새롭게 가꾸는 길을 스스로 찾고 나누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담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전문가란 사람이 될 까닭이 없다. 우리는 살림님(살림순이 또는 살림돌이)이 되면 넉넉하다. 우리는 사랑님(사랑순이 또는 사랑 돌이)이 되면 즐겁다. 뜻풀이는 살림님이나 사랑님 숨결로 붙일 적에 어울린다. 2019.4.9.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투경찰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뭔데요?” “옆구리에 낀 책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왜 보여줘야 하는데요?” “검문 좀 받으셔야겠습니다. 그냥 못 지나갑니다.” “멀쩡히 길을 가는 사람을 왜 세워서 못 가게 합니까? 비키세요.” “안 됩니다. 이 앞에는 못 지나갑니다. 책을 보여주셔야겠습니다.” “왜 못 가요? 길을 왜 못 가게 막습니까?” “이 앞에 집회를 하는데, 거기 가는 거 아닙니까?” “무슨 집회를 한다고 그래요. 나는 서울역 옆에 있는 헌책집에 책 보러 가는 길인데.” “안 됩니다. 책을 보여주셔야겠습니다.” “뭐야 이거?” “야, 이 새끼 잡아. 저 책 빼앗아. 찢어버리고 (닭장차에) 집어넣어.” …… 한창 신문배달을 하던 1998년 어느 날 봄, 배달자전거로는 좀 멀지 싶어서 전철을 타고 서울역 앞에서 내려 서울역 언저리에 있는 헌책집에 가는 길에 전투경찰이 앞을 막아섰다. 그러더니 내가 걸어가며 읽던 책을 빼앗아서 찢어버렸고, 닭장차에 두 시간 즈음 갇혔다. 서울역 건너쪽에 있는 경찰서에까지 끌려갔고, 경찰은 “불편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한 마디만 하고 풀어줬다. 옆구리에 하나, 손에 하나, 이렇게 책 두 자락을 들고서 헌책집에 찾아가던 젊은이는 얼결에 닭장차에 경찰서에 한나절을 갇히며 갖은 막말을 들어야 했다. 1998.4.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봐

서두르지 않아도 돼. 떠오르는 글은 언제나 다 즐겁게 쓸 수 있어. 읽고 싶은 책은 언제나 다 즐겁게 읽을 수 있어. 해봐. 다 되더라. 1998.6.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크는 나무

배우려는 사람한테는 하나만 가르쳐 줄 수 없다. 둘도 셋도 넷도 열도 자꾸자꾸 가르쳐 주며 서로 신난다.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백도 쉰도 스물도 열도 아닌, 다섯도 셋도 둘도 아닌, 고작 하나조차도 가르쳐 줄 수 없다. 서로 고달프니 그저 짜증만 피어난다. 크는 나무는 해랑 비랑 바람이랑 흙을 기쁘게 맞아들인다. 크지 못하는 나무는 해도 비도 바람도 흙도 모두 손사래치겠지. 1999.10.1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뚝딱쓰기

고흥에서 인천으로 가는 일곱 시간 걸린 길에 동시 석 자락을 썼고, 인천에서 경기 양주 덕계도서관으로 가는 두 시간 전철길에 동시 석 자락을 또 썼다. 이 동시는 인천하고 양주에서 만난 이웃님한테 모두 드렸다. 양주 이웃님 한 분이 묻는 묻는다. “어떻게 동시를 그렇게 뚝딱 하고 써낼 수 있어요?” 나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대꾸한다. “잘 썼거나 못 썼거나를 따지지 않고서 써요. 저는 제가 만날 이웃님을 헤아리면서 써요. 쓰려고 생각하니 쓸 수 있어요. 이웃님이 동시를 쓰고 싶은데 뚝딱 나오지 않는다면, 스스로 너무 멋지거나 빈틈없는 동시를 써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탓이지 싶어요. 멋지거나 빈틈없는 동시를 뚝딱 써낼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니 못 쓰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어떻게 무엇을 써야 좋은가를 갈피 잡지 못한 탓이기도 해요. 그냥 뚝딱 쓰시면 되어요. 뚝딱 쓴 동시가 좋으냐 나쁘냐를 안 따지면 되어요. 이른바 ‘가치판단·평가’는 하지 말아 주시고요, 그냥 쓰셔요. 잘 썼든 못 썼든 좋으니 그냥 쓰시면 되어요. 쓰고 나서 손질하거나 고치면 되어요. 쪽종이 한 칸에 그때그때 떠오르는 이야기를 신나게 쓰셔요. 저는 열한 해쯤 늘 뚝딱뚝딱 그 자리에서 동시를 썼고, 이렇게 쓰는 사이에 뚝딱뚝딱 그 자리에서 쓰더라도 늘 제 마음을 오롯이 담는 열여섯 줄 동시를 늘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는 길을 찾았어요. 이웃님도 스스로 길을 찾는 뚝딱쓰기를 오늘부터 하시면 좋겠어요.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즐겁게 하노라면.” 2019.4.8.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