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벅
2019.5.31. 이웃이 있으니 글을 써서 나눌 수 있다. 이웃이 있기에 책을 지어서 같이 읽을 수 있다. 이웃이 있으니 우리가 저마다 삶을 사랑하며 갈무리한 글로 엮은 책을 푼푼이 돕거나 거들면서 널리 꽃피우도록 나아갈 수 있다. 나도 처음으로 텀블벅이라는 곳에 내 새로운 책 하나를 올린다. 어떤 이웃을 만날 수 있을까. 어떤 분이 나하고 이웃이 될까. 우리는 어떤 눈빛으로 만나면서 어떤 사랑으로 책 하나를 주고받는 멋진 사이로 피어날 수 있을까. 새로운 길에 서면서 ‘텀블벅’이라는 자리에 이름 하나 새로 붙여 보고 싶다. 이를테면 ‘두레자리·두레마당·두레터’로. ‘두레판·두렛길·두렛돌’로. ‘징검다리·징검돌’로.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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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뽑기 2019.5.16. 

마을 어르신이 마늘밭에서 뽑은 마늘을 짐차에 싣는 일을 거들면 좋겠다고 찾아오셨다. 올해로 아홉 해째인가 여덟 해째인가. 해마다 이맘때에 마을싣기를 거든다. 마을싣기를 거들고서 마늘밭에 흩어진, 줄기가 끊어진 알마늘을 주워서 한쪽으로 모은다. 밭에 쪼그려앉아 일하던 아지매가 “저그 마늘 좀 뽑아 보시겠소? 두 손으로 살살 잡아뿔면 나와부려.” 한 손은 줄기 아래쪽을, 한 손은 바닥에 닿도록 알뿌리 위쪽을 잡고서 가만히 당긴다. 쏘옥 하고 뽑힌다. 쪼그려앉아서 하다가 밭자락에 무릎을 꿇고서 뽑는다. 땅에 무릎을 꿇고 마늘을 뽑으니 등허리도 펴지고 햇볕도 좋고 마늘내도 다 좋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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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8

책이란 뭘까? 물어보기로 한다. 눈을 감고서 하나하나 찾아가서 물어본다. 바람은 “가볍게 가볍게”, 밤이 깊어 이 골 저 골에서 노래하는 소쩍새는 “나는 그냥 노래할래.”, 무화과나무는 “나야.”, 개구리는 “이 물 좀 마셔 봐.”,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에 흐드러진 흰민들레꽃은 “따뜻해.”,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은 “하하하.”, 흙은 “풋, 몰라서 묻니?”, 담을 이루어 준 돌은 “돌고 돌아서 여기에 왔어.”, 내 곁에 가득 있는 책은 “반가워. 네 손길을 기다린다.”, 연필은 “늘 너랑 같이 있고 싶어.”, 거미는 “모두를 잇고 모두 사로잡고 모두 품에 안을래.” 다들 제 목소리로 책이란 무엇인지 들려준다. 더없이 고맙다, 책은. 2019.4.28.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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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 1

다들 글을 써서 나누거나 올릴 적에 ‘-하다’ 꼴로 맺는다. 이런 글결이 내키지 않아 ‘-합니다’처럼 부드럽게, 말하듯이 글을 쓰니 나더러 “무슨 글이 그렇게 공손해? 여자 같잖아?” 한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공손하게 글을 쓰지 않아요. 말을 하듯이 썼을 뿐입니다. 우리가 말을 할 적에 ‘-하다’로 끝을 맺나요? 아니지요?” 하고 묻는다. “아니, 그래, 말을 할 적에 ‘-하다’로는 안 하지. 그런데 글은 다르잖아. 글에서 왜 ‘-합니다’나 ‘-해요’ 하고 끝맺으면서 써?” “말을 할 적에 그렇게 하니까요. 글결이 말결하고 다르면 겉을 가리는, 참모습을 숨기는 이야기가 되리라 느껴요.” 1994.5.6. ㅅㄴㄹ


합니다 2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서 내가 ‘-하다’로 끝맺는 글을 안 쓰니 매우 거북해 한다. 다른 시민기자는 모두 ‘-하다’로 끝맺을 뿐 아니라, 다른 어느 신문이든 ‘-하다’로 끝맺을 뿐인데, 왜 나 혼자 ‘-하다’로 끝맺지 않고 ‘-합니다’나 ‘-해요’로 끝맺느냐고, 내가 쓰는 글결을 고쳐 달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다 다르고, 다 다른 사람은 말씨도 다를 테고, 말씨가 다른 만큼 글결이 다르지 않을까요? 다 다른 시민기자가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른 목소리로 다 다른 이야기를 다 다른 글로 실어서 새로운 이야기판을 열겠다는 곳이 오마이뉴스 아닌지요?” “그 말은 맞는데, 아무래도 최종규 기자님 글은 적응이 안 돼.” “적응하지 마셔요. 왜 적응을 해야 하나요? 제가 쓰는 글에서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읽으면 될 뿐입니다. 저는 ‘-하다’로 끝맺는 글을 도무지 못 쓰겠습니다. 입으로 그렇게 말하는 일이 없는데, 입으로 안 하는 말을 어떻게 글로 쓰나요?” 2002.2.22. (덧말 : 내 글결을 도무지 봐주기 힘들다고 하는 편집기자가 많았지만, 시민기자 이웃님은 내 글결을 지켜보면서 한 분 두 분 ‘-하다’란 글결을 버리고‘-합니다’로 넘어왔다. 이제 무척 많은 분들이 신문글에서도 ‘-합니다’를 쓴다. 사건이나 사고를 다루건 정치나 경제를 다루건 구태여 ‘-하다’로 쓸 까닭이 없는 줄 느끼는 분이 꽤 늘었다고 느낀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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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살 걷자

“너! 이리 와!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했는데 왜 뛰었어!” “네? 저요? 전 안 뛰었는데요?” “뭐야? 너 여기서 뛰었잖아!” “아니요. 뛴 아이는 저기 가는 애고요, 저는 서둘러야 할 일이 있어서 달렸어요.” “뭐, 뭐, 뭐라고? 야, 뛰거나 달리거나 똑같아!” 무슨 교사가 ‘뛰다’하고 ‘달리다’도 모를까? 게다가 내 앞에서 마구 뛰어논 저 아이는 붙잡지 않고, 발소리를 죽이며 살살 달린 나만 붙잡고서 꿀밤을 먹인다. 교사란 어른들은 바보투성이다. 골마루에서 달린대서 아슬하거나 다치지 않는다. 달리기에 시끄럽지 않다. 쿵쿵 뛰니까 시끄럽고 다칠 수 있겠지. 잰걸음으로 가야 할 때도 있고, 사뿐사뿐 달릴 수도 있다. 조용한 학교를 이루고 싶으면 “뛰지 말 것!” 같은 으름장은 내버리고 “살살 걷자”나 “살살 다니자”라고 부드럽게 말하면 확 달라지리라. 1985.5.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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