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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쓴다


 시를 쓴다. 좋은 사람이 앞으로 좋은 꿈을 이루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마음 가득 바라면서 시를 쓴다. 좋은 사람 삶꿈을 헤아리며 쓴 시는 작은 종이에 천천히 적바림해서 선물로 준다.

 시를 쓴다. 나한테 선물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로 쓴다.

 또 시를 쓴다. 옆지기와 아이들한테 선물하고픈 이야기를 시로 쓴다.

 이 나라 모든 아이들이 함께 읽어 주기를 바라면서 시를 쓰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나라 어느 아이들을 만나더라도 찬찬히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시로 담자고 생각한다. 맨 먼저 내가 함께 살아가는 두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 두 아이들이 앞으로 마주할 온누리 아이들을 떠올린다. 모두들 사랑스러운 꿈과 결과 눈빛과 손길로 어깨동무할 좋은 누리가 어떤 모습일까 하고 곱씹으면서 시를 쓴다.

 시를 하나 써낼 때면 기운이 많이 빠진다. 내 기운을 써서 담는 글줄이니까. 내 사랑을 들여 엮는 글월이니까.

 시를 쓰고 난 다음 자리에 드러누워 생각에 잠기다 보면, 어느새 새 기운이 돋고 새 사랑이 자란다. 해마다 맛난 열매를 베푸는 나무들처럼, 시쓰기란 해마다 맛난 마음밥을 나누는 일이로구나 싶다.

 푸성귀와 나무는 한 해에 한 차례 제 몸을 바친 선물을 몸밥으로 내준다면, 사람은 시를 쓰면서 언제라도 제 마음을 온통 쏟은 선물을 마음밥으로 나누는구나 싶다. 시를 쓰기로 다짐하면서 참 좋다. 내가 시골에서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는 호미질일 테고, 바로 이 시쓰기이다. (4344.11.8.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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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녹여서 쓰는 글


 힘겨운 아픔을 삭여서 쓰는 글이라고 해서 나쁘지 않아요. 고단한 나날을 울면서 쓰는 글이라고 해서 나쁘지 않아요. 괴로운 눈물을 곱씹으며 쓰는 글이라고 해서 나쁠 수 없어요. 다만, 힘겨운 아픔을 쓰든 고단한 나날을 쓰든 괴로운 눈물을 쓰든, 따순 사랑을 녹여서 쓰는 글일 때에 가장 좋아요. (4344.11.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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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값등록금 글쓰기


 예방주사 맞히는 돈을 나라에서 대도록 하는 일은 복지가 될 수 없습니다. 예방주사가 어떤 주사인가를 살피고, 예방주사 성분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며, 예방주사 맞은 아이들 몸이 어떻게 나빠지는가를 헤아린다면,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예방주사를 거저로 맞힐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바라지 않아요.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어버이로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합니다. 대학등록금이 비싸다며 반값등록금을 정책으로 삼아 달라 목소리가 높습니다만, 대학등록금은 아예 없거나 이대로이거나 해야 한다고 느껴요. 대학등록금을 반토막으로 줄인대서 값이 싸지 않아요. 더구나, 대학등록금을 반토막으로 잘라야 할 까닭이 없어요. 무엇보다 대학교가 대학교답게 슬기로운 곳이 되어야 하고, 대학교를 다닌 아이들이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넋을 건사하도록 이끄는 곳이 되어야 해요. 대학교가 대학교답지 않은데 반토막 등록금을 이룬다 해서 나아질 일이 없어요. 등록금을 반토막으로 깎는 데에 돈을 쓸 노릇이 아니라, 대학교 다스리는 데에 옳게 쓰면서 도서관 북돋우는 데에 돈을 제대로 써야 해요. 굳이 나라에서 돈을 대야 등록금이 낮아지지 않아요. 대학교 얼거리를 확 뜯어고쳐야 등록금이 낮아지면서 참다운 대학 교육이 이루어져요.

 여기에서 다른 대목을 더 생각합니다. 신문마다 방송마다 대학등록금 노래를 부르는데, 이 나라 모든 푸름이가 대학교에 가지 않아요. 대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가 아주 많아요. 대졸자 아닌 고졸자로 삶을 일구는 아이가 대단히 많아요.

 어느 신문이고 방송이고 ‘대입시험 대비 기사’를 잔뜩 꾸립니다. 대학입학정보를 아주 많이 싣습니다. 고등학교만 마친 채 사회살이를 할 푸름이를 생각하면서 기사를 꾸리거나 이야기를 엮는 매체는 아주 드물어요.

 인문책이든 사회과학책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고등학교만 마친 눈높이로 즐거이 읽을 만큼 쉬우면서 알맞고 아름다이 엮는 인문책이나 사회과학책은 얼마나 될까요. 인문책이나 사회과학책은 하나같이 ‘대학생부터 읽으라는 눈높이’로 맞출 뿐 아니라, 대학생이 학교에서 듣고 배우는 말마디부터 딱딱하거나 메마르거나 어렵거나 여느 삶하고 등지는 말마디로 굳는구나 싶어요.

 정부가 잘못해서 대학등록금이 비싸지 않습니다. 정부를 나무란대서 대학등록금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삶을 밝힐 수 있으면 됩니다. 대학교를 가야 하지 않습니다. 대학교를 가야 하는 사람이 있듯, 대학교를 안 가도 될 사람이 있어요. 아름다운 삶과 너그러운 사랑과 따사로운 사람을 그린다면, 반값등록금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겨를 못지않게 여느 자리 수수한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 수수한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4344.11.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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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겪은 대로 글쓰기


 어릴 적 어머니 곁에서 손빨래를 배운 버릇 그대로 내가 아버지 되어 살아가는 오늘 손빨래를 합니다. 내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어린 나날 옆지기 어머님하고 함께 살아오면서 보고 배운 결에 따라 오늘 손빨래를 합니다.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난 아이들은 저희가 받은 사랑을 따사로운 손길과 마음길로 나눕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라난 아이들은 이웃이나 동무가 나누는 사랑을 받을 때에도 어수룩하지만, 이 아이들 스스로 둘레 이웃이나 동무한테 따사로이 사랑을 나누는 길을 잘 모릅니다.

 내 어버이가 나한테 베푼 밥차림 입맛이 오래도록 혀에 맴돕니다. 나는 내 혀에 맴도는 입맛을 떠올리면서 내 아이한테 밥상을 차려서 베풉니다. 나는 내 몸에 좋다고 느끼는 밥을 즐거이 먹습니다. 남들이 좋다고 추켜세운달지라도 나는 내 몸에 좋다고 느끼지 못하면 하나도 반갑지 않은 밥입니다.

 내 보금자리 샘가에서 뛰노는 푸른개구리를 바라보면서 ‘푸른개구리는 이렇게 생기고 이만 한 크기로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충청북도 멧자락에서 푸른개구리는 날이 추워 벌써 자취를 감추었기에 충청북도에서 살아가던 때에는 시월이 막바지로 달릴 때에 푸른개구리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라남도 아랫녘에서는 샘가에서 함께 물놀이를 하는 푸른개구리를 바라봅니다. 십일월에도 푸른개구리를 본다면 나는 이곳에서 십일월까지 푸른개구리 이야기를 할 테지요.

 인천 골목동네 마실을 하면서 곧잘 석류나무를 보았습니다. 탱자나무도 보고 호두나무도 보며 대추나무도 보았습니다. 나는 내가 본 대로 생각하고 본 대로 이야기하며 본 대로 느낍니다. 보지 못하고서는 생각하지 못하며, 겪지 못하고서는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한 번 읽고 나서 참 좋았다고 떠올리는 사람들 책을 다시금 찾아서 읽습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거나 알지 못하는 사람들 책은 일찌감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쓴 책하고 견주어 손이 덜 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겪지 못한 이야기는 눈으로 읽든 머리로 읽든 알아차릴 수 없으며, 느낄 수 없는데다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맑은 누리를 겪지 못하고서는 맑은 넋을 알 수 없어요. 밝은 보금자리를 겪지 못하고서는 밝은 보금자리를 헤아릴 수 없어요. 머루와 다래를 손수 따서 맛보아야 머루맛과 다래맛을 압니다. 쑥을 뜯고 달래를 캐서 먹어야 쑥맛과 달래맛을 알아요. 낫을 쥐어 나락을 베어야 낫질을 알겠지요. 짐을 짊어지고 멧등성이를 오르내려야 땀흘리는 고단함을 알 테지요.

 겪을 수 있어야 쓸 수 있어요. 겪는 삶이어야 글을 쓰는 삶이에요. 겪을 수 있어야 그림을 그리고, 겪을 수 있을 때에 사진을 찍으며, 겪는 자리에 선 뒤에야 노래를 부를 수 있어요.

 가을을 느끼며 가을 이야기를 씁니다. 시골자락 할매와 할배랑 어울리며 시골자락 할매와 할배 이야기를 씁니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을 맞으며 산들바람 이야기를 씁니다. 나뭇잎 나부끼는 푸른바람을 쐬면서 푸른바람과 가을잎 이야기를 써요. 밤새 풀벌레소리를 듣기에 풀벌레소리 이야기를 쓸 수 있습니다. 맨발로 흙땅을 달리고 나서 맨발에 밟히는 흙내음과 흙살 이야기를 써요. (4344.10.2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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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하기와 글쓰기


 둘레 사람들이 흔히 ‘최종규 씨는 집에서 손빨래를 하지 않고 기계빨래를 하면 글을 쓸 겨를을 더 낼 수 있지 않겠어요?’ 하고 묻습니다. 이렇게 걱정해 주는 이야기는 아주 고맙습니다. 날마다 두어 시간씩 빨래하는 내 삶을 돌아본다면, 나는 참으로 오랜 나날을 빨래하기로 보낸다 할 수 있으니까요.

 여기에다가, 밥을 차리고 치우며 아이들한테 밥을 먹이는 품을 누군가 해 준다면 얼마나 홀가분할까요. 밥을 하자면 먹을거리를 읍내 저잣거리로 찾아가서 장만해야 하는데, 이 몫을 누가 해 준다면, 자전거를 타고 나가든 읍내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든 하면서 내 품을 덜어 준다면, 집안을 쓸고닦아야 하고, 집살림을 돌보는 일을 다른 사람이 해 준다면, 나로서는 아주 느긋할 수 있겠지요.

 이것저것 하자면 하루에 집일로 쏟는 품은 참 많습니다. 집일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면 글쓰기라든지 책읽기에 더욱 마음을 기울이겠지요.

 그러나,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집일을 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때에, 내 글이 한결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이들하고 복닥이는 나날을 보내지 않을 수 있다면, 책방마실을 마음껏 즐기면서 책읽기를 아주 신나게 할 수 있을까 참말 모르겠습니다.

 아주 조용한 곳에서 책상 앞에 앉아 원고지를 붙잡으면 온누리를 따사롭게 비출 살가운 글을 가득가득 길어올릴 수 있는지 그야말로 모르겠어요. (4344.10.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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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10 13:37   좋아요 0 | URL
저두 정말 같은 생각을 해봅니다. 딱 제 생각을 써주셨어요.
집안일을 천천히 하지 않고 나아갈 때, 과연 나의 삶이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예전에 너무나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마트와 외식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때
돈의 여유는 조금 있었지만 과연 행복하고 여유로왔나, 사랑스러웠나 하는 지점에서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숲노래 2011-10-10 17:54   좋아요 0 | URL
앞으로는
마음 착한 사람들이
마음 착한
고운 길을
슬기로이 깨달아 주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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