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려면

우리 스스로 책을 읽으려면, ‘똑같은 아파트’를 버리고 ‘다 다른 골목집’을 찾아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 스스로 책을 가까이하려면, ‘똑같은 자가용’을 버리고 ‘다 다른 자전거와 두 다리’를 찾아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 스스로 책을 사랑하자면, ‘똑같은 바깥밥’을 버리고 ‘다 다른 집밥’을 찾아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 스스로 책마다 담긴 고운 빛줄기를 가슴으로 껴안으려면 ‘똑같은 돈’을 버리고 ‘다 다른 눈물과 웃음’을 찾아야 한다고 느낀다. 2008.12.18.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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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 주자, 주자

모든 땀과 슬기를 모두어 글 하나 써내어 나누듯, 나한테 있는 모두를 주자. 늘 주자. 날마다 주자. 자전거는 중학교 들어가는 처남한테 주자. 자전거 손질하는 연장도 주자. 나한테 연장이 더 있어야 하면, 새로 사지 뭐. 내가 새로 사서 처남한테 줄 수도 있지만, 손때가 묻은 자전거와 연장을 주자. 새것은 아직 나한테도 익숙하지 않아서 어찌어찌 쓰는지 잘 모르니, 애써 준다 한들 제대로 못 쓰일 수 있지만, 내 손을 탄 자전거와 연장은 어디를 어떻게 손질하면 되는 줄 아니까, 언제든지 매만지면서 잘 쓸 수 있지 않겠는가. 자전거 닦는 걸레도 한 장 마련해서 함께 주자. 2009.2.19.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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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쓴 글

우리 아버지가 조선일보에 글을 하나 쓰셨다. 국민학교 평교사를 지내다가 교장으로 일하는 아버지는 이해찬을 가장 싫어하는데, 다른 까닭도 있겠으나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느끼기에는 아버지가 교장으로 일하기 앞서 교장정년제를 펴고 교원정년을 굳혀 버려서 무엇보다도 가장 싫어한다는 느낌이다. 왜냐? 이녁 아들하고 마주앉아서 술잔을 들 적마다 바로 이 얘기만 몇 시간씩 끊임없이 하니까. 아버지, 교장으로 계시지 말고 평교사로 일하셔도 되지 않나요? 아버지, 교원정년을 두는 일이 그렇게 나쁜가요? 아버지, 연금 좀 적게 받아도 되지 않나요? 아버지, 몇 해쯤 일찍 교단을 떠나 아버지 마음으로 새롭게 꿈 하나를 키워서 살아도 되지 않나요? 2003.5.29.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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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렁쿨렁

사전을 살피면 ‘쿨렁쿨렁’을 두 가지로만 풀이해 놓는다. 그러나 내가 어릴 적부터 듣고 보고 겪은 ‘쿨렁쿨렁’은 좀 다르다. 큰비가 퍼붓고 나서 마을이 온통 물에 잠겨서 무시무시하게 흐르는 물살이라든지, 큰비가 쏟아질 적에 냇물이 가득 넘치면서 흙물로 시뻘겋게 흐르는 물살에서 바로 이 ‘쿨렁쿨렁’을 느꼈다. 어릴 적에는 헤엄을 잘 못 쳤고 물이 무서웠다. 그래서 나한테는 오래도록 ‘쿨렁쿨렁 = 무섭고 출렁거리는 너울’이란 느낌이었다. 이러다가 헤엄질이라든지 물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새롭게 익힌 뒤에는 물살이 무섭지 않을 뿐더러 ‘쿨렁쿨렁’도 무서운 느낌인 낱말이 아니더라. 요새는 ‘쿨렁쿨렁 = 거침없이 잔뜩 일어나는 새로운 생각’으로 느낀다. 쓸거리가 쿨렁쿨렁 쏟아진다든지, 사전을 쓰고 엮으면서 새로운 낱말이 쿨렁쿨렁 밀려든다든지, 이런 느낌이다. 2019.3.2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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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그 어른은

새벽마다 일찍 잠이 깬다. 겨울이 지나면서 개구리가 깨어났고 웅크리던 새들도 기운을 찾았다. 새벽 네 시 반쯤 되면 창밖은 환하고 새들 우는 소리로 귀가 따갑기까지 하다. 아침 햇빛은 지난날 공납금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쩔쩔매던 아이들 머리에, 오늘날 시험점수 따는 공부에 떠밀리는 아이들 머리에, 학교를 떠나거나 학교에서 쫓겨난 ‘말썽 아이’란 딱지를 받은 아이들 머리에 고루 비춘다. 그렇지만 새벽별 보고 학교에 가서 저녁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머리에는 비추지 못하겠지. 체육시간마저 아깝다 해서 바깥에 내보내지 않고, 오로지 책상 앞에만 묶어 두니까요. 교사가 되는 꿈을 꾼 적 있다. ‘내가 학교를 다니며 겪은 일’을 한 아이만이라도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그 젊은 나이에 배우고 익히고 받아들일 것’을 즐겁게 부대낄 수 있도록 힘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교대에 들어가려면 ‘제도권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시험점수 따기 공부를 시키며 닦달하는 지식’을 다시 머리에 넣어야 하더군. 언젠가 서울교육대학교 도서관을 찾아갔을 때, ‘아무도 빌려가지 않는 책’하고 ‘뻔질나게 빌려가서 닳고 닳은 책’을 보았다. 교대에서 ‘아무도 빌려가지 않는 책’은 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숱하게 ‘선생들이 압수해 갔던 책(시험공부에 걸리적거리니 보지 말라며 빼앗은 책. 하이네 시모음, 소설 《원미동 사람들》도 빼앗긴 책이었어요)’이요, ‘시험문제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다룬 책’이었다. ‘뻔질나게 빌려가서 닳고 닳은 책’은 ‘교대에서 학점을 따고 강의를 들을 때 쓰는 교재’였고. 더러 ‘대여점에서 빌려 보는 소설책’도 ‘닳고 닳은 책’이 되곤 하고. 아직 힘알이 없는 멧개구리 뒤뚱걸음을 보았다가, 곧 깨어날 개구리알이 얼마나 있나 들여다보다가, 새벽부터 부지런히 울어대는 저 작은 새가 박새인지 콩새인지 살펴보다가, 새잎을 틔우려는 나무를 하나하나 손으로 만져 보다가, 오늘도 구름 한 조각 없는 하늘이지만 온갖 쓰레기를 내뿜는 사람들 탓에 먼지띠가 짙게 끼어 뿌옇게 보이는 하늘은 언제쯤 파래질까 생각하다가, 아, 철쭉이 피었네? 수유는 진작 폈지? 살구꽃이 곧 터질 듯 말 듯이라는데, 복숭아꽃도 피겠구나. 보리싹 뜯어먹고 쑥 뜯어먹고 민들레와 씀바귀도 캐어 먹으면서 참말 봄이 왔구나 하고 느낀다. 지난 2003년 8월 25일에 이오덕 어른이 이 땅을 떠난 뒤로 세 해째 되었다. 어른 살아 계실 적에 딱 한 자리 뵌 일은 있지만, 오로지 책으로 배우고 책으로만 스승이었습니다. 함께 어깨를 걸고 다부지게 일할 동무가 보이지 않고, 이런 까마득한 벼랑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아찔할 적마다 한결같은 목소리로 만날 수 있던 책 스승이었다. 책으로만 만나는 스승이기에 자칫 ‘책에만 묻힐’ 아슬아슬함이 있기도 할 테지만, 나한테는 정약용도, 박지원도, 홍대용도, 이규보도, 허균도, 김시습도 책으로만 만나는 스승. 이분들은 언제나 ‘이분들이 한 일을 책에 적힌 글월로 읽기’보다 ‘책은 안 읽어도 좋으니, 어느 한 가지라도 얻은 것이 있으면 바로 몸으로 옮기며 네 깜냥대로 받아들이며 부대끼라’고 이야기한다. 다만 이런 이야기, 깨우침, 앎이나 슬기도 책으로 남아 우리한테 다가올 테지. ‘교육자 이오덕’이 우뚝 설 때까지 이분한테 ‘스승이 된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책도 많이 읽으셨을 테고, 아이들과 부대끼며 많이 배우고 겪기도 하셨을 테며, 시골학교에서 숲을 언제나 벗삼기도 하셨겠지. 그러고 보면 나한테 스승인 것은 사람이 남긴 책도 있지만, 우리 모두가 태어나도록 한 숲터, 이웃사람, 새소리와 바람소리와 파란 하늘이기도 하겠네.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누구하고도 열린 마음으로 부대낄 수 있다면, 배울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거듭날 수 있겠네. 이오덕 어른은 우리한테 스승으로 있기보다 말동무로, 살구와 오디를 함께 따먹고 감을 함께 주워먹는 놀이동무로, 숲터에서 땀흘려 제몫을 다하는 일동무로 함께 살아가고 싶으셨구나 싶다. 그래, 이제 봄이다. 이 봄을 봄기운 그대로 마음껏 느끼면서 ‘이오덕 어른도 듣고 좋아하셨을 새소리’로 새벽을 열고 쑥을 뜯어 찌개를 끓여 아침을 먹자. 2006.4.12.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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