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당신한테
 [사진은 삶이다 1] 사진을 너무 ‘가볍게’ 찍지 않는가?



 서른 해 넘도록 사진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는 ㅂ교수님을 만나뵌 자리에서 사진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 한켠으로 여러모로 씁쓸했습니다. ㅂ교수님은 당신이 몸담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힘껏 부지런히 가르치고 있지만, 그 학교 아이들은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살 속 깊숙이 파고들도록 헤아리고 있지는 못하다는 생각이 자꾸자꾸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배우는’ 아이들이니, 한 해 두 해 익어가는 동안, 열 해 스무 해 무르익는 동안 차츰차츰 거듭나거나 새로워질 수 있으리라 믿어 봅니다. 다른 문화와 예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만, 사진은 햇수를 먹지 않고서는 펼칠 수 없습니다. 세월이라는 때를 먹어야만 빛이 나게 되는 사진입니다. 한두 장 반짝하고 빛나는 사진으로 뽐내기도 하고, 신문잡지 1쪽을 채울 사진을 만드느라 발이 닳도록 뛰기도 하고 만들기도 해야 할 터이나, 빈자리 메우기로는 이야기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빈자리 메우기도 이 나름대로 남다른 이야기가 되기는 할 터이나, 빈자리를 메우는 이야기로 스무 해나 서른 해를 꾸준히 엮어 나가려는 사진쟁이가 이 나라에는 거의 없음을 돌아본다면, 사진기를 앞세운 어르신이나 새내기는 많으나, 정작 ‘사진을 한다’고 할 만한 사람은 몹시 드물지 않느냐 싶어요.

 고향이지만 고향으로 여기지 않고 멀리멀리 떨어진 채 지내던 인천으로 돌아온 지 한 해하고 아홉 달이 지났습니다. 곧 이태가 됩니다. 이 이태라는 시간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한 해 동안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다니던 때까지 머물던 고향을 몸이며 마음으로 되찾는 때였습니다. 인천사람 스스로 인천에 뿌리를 내리려 하지 않고 서울바라기가 될 뿐더러, 인천 바깥에서도 인천이 고유하고 홀로서지 못하도록 막는 흐름이 보기 싫고 견디기 싫어서 인천을 떠났지만, 이런 못난쟁이 인천으로 돌아와 거의 이태를 지내는 사이, ‘못난쟁이는 못난쟁이이기 때문에 좋다’고 새삼 느낍니다. 잘난 사람은 잘난 사람대로 좋은 모습이 있을 텐데, 못난 사람도 못난 사람대로 좋은 모습이 있습니다. 부자는 돈이 많아서 좋을 테지요. 그러나 가난뱅이는 가난하기에 좋습니다. 돈이 많아서 즐거울 부자들은 바로 돈 때문에 걱정이 큽니다. 돈이 없어서 걱정인 가난뱅이는 바로 돈 때문에 홀가분하면서 즐겁습니다. 





 돌이켜보면, 고향을 오래도록 멀리하면서 떠돌이처럼 지내 온 세월이 좋은 스승이 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처 고향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때는 또 그대로 좋았던 대목이 있었을 텐데, 고향에 머물지 않고 떠나 보냈던 삶은 또 그런 삶대로 제 마음과 몸을 살찌우거나 키워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 가지 사진감만을 붙잡고 죽는 날까지 신나게 사진찍기를 하는’ 저 같은 사진쟁이로서는, 떠돌고 맴돌고 헤매던 나날이 고향땅에서 제대로 사진눈을 트게 해 주는 밑거름이 된다고 느낍니다.

 떠돌이로 지내다 보니, ‘떠돌이가 모이는 도시’인 인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고, 있는 그대로 동네사람과 만나 있는 그대로 사진을 찍게 됩니다. 낮에는 썰렁하다고 할 만큼 고요하며, 저녁에는 일찌감치 길거리 불이 꺼지며 조용해지는 ‘서울하고 이렇게 가까우면서 참 도시 냄새가 안 나기도 하는’ 인천이란 어떤 데인가를 뼈속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골목길을 사진감으로 삼아서 멋진 작품을 일구어 낸 어르신(김기찬 님)이 계셨지만, 그분 앞으로나 뒤로나 ‘골목길 사진’을 찍는 사람이 없는 까닭, 그러면서 ‘골목길 사진 어르신’이 미처 담아내지 못한 사진이 무엇인가 하는 앎, 요즈음 사진쟁이들이 골목 사진을 못 찍는 까닭, ‘골목길 출사’ 나가는 젊은 사진쟁이가 많지만 골목을 골목답게 담아내는 눈길이 보이지 않는 까닭을 하루하루 깨닫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골목 사진을 넘어, ‘한국땅에서 사진 하는 사람 매무새’에서 무엇이 잘못되거나 어긋나 있는가를 알아 갑니다. 여러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삶이 없습니다. 삶이 없으니 사진이 없습니다. 삶이 없으니 글이 없고 삶이 없으니 책을 읽지 않으며, 삶이 없으니 사람을 만나도 냄새며 이야기며 자취며 없습니다. 오로지 눈요기가 판칩니다.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며, 눈속임이 넘칩니다.

 상업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사진밭에서 거의 따돌림만 받고 있는데, 이분들한테 아쉬움이 있기는 있어도, 이분들한테 배울 대목은 꽤 많습니다. 다른 대목도 참 많이 배워야겠으나, 상업사진 하는 분들은 ‘상업사진판에서 살고’ 있습니다. 연예인을 찍건 배우를 찍건, 이런 연예인이나 배우하고 형 동생 언니 오빠 누나처럼 지냅니다. 살가운 사이입니다. 살갑지 않고서 이런 사진을 찍어내지 못합니다. 말을 트고 지내지 않더라도 늘 지켜보고 가까이하고 들여다봅니다. 한 울타리에 있어요.

 그러나 다큐멘터리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몸담은 자리에서조차 이웃이나 동무를 사귀지 못합니다.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한두 해 그 동네에서 머문다고 다큐사진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뜨내기이고 구경꾼이며 길손일 뿐입니다. 대여섯 해 머문다면 시늉은 낼 수 있을 테지요. 그렇지만 열 해나 스무 해쯤, 때로는 서른 해나 마흔 해쯤 ‘함께살기’를 하지 않고서야 다큐사진은 안 나옵니다. 함께살지 않고 찍은 다큐사진은 모두 거짓입니다. 눈가림이나 눈속임입니다. 누가 말해 주느냐? 사진이 말해 줍니다. 사진으로 찍힌 작품이 말해 줍니다. 





 늘 살아야 그곳이건 그이건 그 모습이건 찍을 수 있습니다. 야구장에서 살아야 야구 선수 사진을 찍고, 야구 이야기를 기사로 씁니다. 국회에서 살아야 정치꾼 사진을 찍고 정치 이야기를 기사로 씁니다. 축구장에서 사는 한편, 집에 있어도 텔레비전으로 축구 경기를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축구 이야기를 기사로 쓸 수 있습니다. 축구와 혼인하지 않고서 축구 이야기를 우리 눈과 귀에 찰싹 달라붙도록 감칠맛나는 이야기를 엮어내겠습니까. 우리 눈에 짠한 눈물이 흐를 만한 축구 사진을 찍어내겠습니까. 전민조 님은 《이 한 장의 사진》이라는 사진책을 신문사 사진기자일 적에 펴낸 적이 있는데, ‘이 한 장의 사진’을 찍기까지는, ‘이 한 장 사진과 얽힌 곳에서 살아낸 긴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 세월이 사진을 보여줍니다. 세월이 녹아나면서 사진으로 이야기가 엮입니다.

 다만, 사진은 즐겨야 찍을 수 있습니다. 즐기지 않는 사진은 사진이 아닙니다. 무거운 짐입니다. 괴로운 굴레입니다. 놀이가 되지 못하는 일은 일이 아니고, 일거리처럼 꾸준히 붙잡을 수 있지 않는 놀이는 놀이가 아닙니다. 일이든 놀이이든 즐겨야 하고, 즐기는 가운데 일은 일대로 놀이는 놀이대로 빛이 나고 우리 삶으로 녹아듭니다.

 즐길 수 있으니 늘 곁에 두고, 늘 곁에 두니 삶입니다. 저절로예요. 억지가 하나도 깃들지 않습니다. 스스럼이 없습니다. 샘솟아 납니다. 철철 솟아나며 흘러넘치는데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어차피 철철 샘솟아 흘러넘쳐도 다시 땅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솟아나는 밑물이 될 뿐 아니라, 다시 흙을 거쳐 땅밑 깊숙하게 파고들면서 더 싱그럽고 맑고 맛난 물로 거듭나거든요. 그래서 사진 한 장이란, 저절로 찍히는 사진이어야 합니다. 저절로 찍히자면 사진이 제 삶이어야 합니다. 늘 붙잡는 삶이어야 합니다. 이리 보아도 사진이고 저리 보아도 사진이어야 합니다. 훌륭한 소설 하나 엮어낸 분이 이리 보아도 소설이고 저리 보아도 소설이듯, 사진쟁이는 이리 보건 저리 보건 사진이 되어야 합니다. 값비싼 장비를 어깨에 메고 있다고 사진쟁이입니까? 훌륭한 장비를 비싼 사진가방에 챙겨 놓고 으스댄다고 사진쟁이입디까? 지금으로서는 널리 이름을 날리는 유명인사로 우쭐거린다고 이이가 사진쟁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을 줄 압니까? 지금은 돈도 벌고 이름도 얻고 사진판에서 힘도 낼 테지요. 그러나 이이 작품은 기껏 한 장조차도 사진 역사에 새겨지지 못합니다. 부스러기입지요. 끄나풀입지요. 알맹이 빼먹은 과자봉지와 같습니다. 





 우스갯소리처럼, ‘두 손은 가볍게 봉투는 두툼하게’라고 말하는데, 그예 우스개이긴 하지만, 우스개로만 들리지는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겉보기로는 으리으리 보일지 몰라도 속알맹이가 형편없다면 하나도 안 반갑거든요. 겉보기로는 수수하거나 초라하기까지 하더라도 속알맹이가 야무지거나 다부지다면 더없이 반가워요. 세상 어느 일이든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는데, 사진찍기에서도 그럴싸하게 보이는 작품을 애써 만들어 내려고 하면 지금 바로 보기에는 참 멋져 보일 수 있습니다. 남들 앞에서 자랑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럴싸한 사진을 못 찍는 사진쟁이가 있을까요? 남들 다 찍을 수 있는 그럴싸한 사진을 자기도 한두 장 찍었다고, 내 이름값이 올라가기라도 할까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님처럼 ‘기막힌 모습 하나’를 찍어내는 사진을 수없이 모은들, 이런 사진이 사진으로 값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사진으로 살지 않으면 모두 부질없습니다. 헛것 헛일 헛품 헛사진입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밥하기를 삶으로 받아들이고 빨래하기를 삶으로 받아들이며 아이키우기를 삶으로 받아들일 때에는, 밥과 빨래와 아이가 새삼스럽습니다. 훌륭합니다. 우리한테 맛난 된장찌개 끓여 주는 어머님들 손맛이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바로 삶을 모두 바친 밥하기에 있습니다. 그 비싼 세탁기로 보송보송 말린 빨래라 해도 어머님이 손으로 빨아서 말리고 개어 놓은 빨래만큼 느낌이 보드랍지 못합니다. 바로 삶을 모두 바친 빨래하기이기 때문입니다. 똑똑함을 넘어서 슬기롭고 해맑은 아이들이 자라날 수 있는 까닭은, 아이한테 온통 바친 아름다운 어버이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조기교육 때문에 죄다 갖다 바치는 삶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즐거울 어버이 삶을 깨달아 서로서로 돕고 나누는 삶으로 꾸리는 어버이이기에, 아이들이 슬기롭고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 한 장이 아름다우려면, 또 우리가 나누려는 사진이 빛나려면, 그리고 우리가 보여주는 사진이 어설픈 자랑거리나 섣부른 돈지랄이 되지 않도록 하자면, 사진을 삶으로 곰삭여야 합니다. 사진을 삶으로 녹여내야 합니다. 곰삭이지 않는 사진은 사진이 아닙니다. 녹여내지 않은 사진은 사진이 아닙니다. 흔한 말로 용두질입니다. 거친 말로 술주정입니다. 짜증 섞인 말로 미친 짓입니다. 한 마디로 웃기는 장난입니다.

 사진 한 장 찍어내는 손가락은 아주 가볍게 움직여 살짝살짝 눌러야 합니다. 그러나 손가락에 들어가는 힘만 가벼워야지, 손가락에 힘 살짝 주기까지는 무던히도 땀 빼고 용 쓰고 부대끼는 삶이 밑바닥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땀흘리지 않고 무슨 삶이 있겠으며, 내맡기거나 내던지지 않고 무슨 삶을 이루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사귀고 껴안고 어깨동무할 때에도 제 몸과 마음을 모두 바쳐야 뜻을 이루는데, 자기 스스로 흐뭇하고 이웃 모두한테도 흐뭇하도록 할 만한 사진을 이루어내고자 한다면, 사랑하는 사람한테 몸과 마음을 바치듯 사진한테도 바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치지 않고서 기계 장난만 하려고 한다면, 바치지 않고서 뻔한 틀거리로 시늉만 내려고 한다면, 모두모두 쓰레기로 그칩니다. 아니, 사진 쓰레기만 수두룩하게 쌓아 놓고서, 참되게 사진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맙니다. (4342.1.3.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인천 골목길과 부산 골목길
 ― ‘부산 책방골목잔치 마실’을 앞두고 쓰는 편지



 열 해쯤 앞서부터 해마다 한두 차례 부산 나들이를 하고 있습니다. 부산사람이 아니면서 부산을 바라보는 동안, 부산 삶터가 나날이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해마다 새삼 느낍니다. 인천과 마찬가지로 산등성이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골목집은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층층집들만 가득가득 솟아나고 있습니다. 인천이라는 데에도 층층집만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 층층집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곳에 서 있을 수 있을까요. 허물린 골목집은 ‘오래되어서 위험하기’ 때문에 허물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돈을 뽑아내려는 건설업자와 공직사회가 ‘재개발 법’에 따라서 밀어냈을 뿐입니다. 골목길에서 살던 사람들 또한 몇 푼 안 되는 돈에 휘둘리면서 스스로 제 삶터를 내동댕이쳤습니다. 무턱대고 밀어대는 사람도 딱하지만, 밀어댄다고 해서 돈에 휘둘리는 골목사람도 안쓰럽습니다. 우리들은 이 짧은 한삶을 보내는 동안 왜 그리도 돈에만 목을 매달아야 하는지요? 러시아 큰스승 톨스토이 말을 빌지 않더라도, ‘한 사람한테는 얼마나 넓은 땅과 많은 돈과 높은 이름이 있어야 하는가?’ 하고 묻고 습니다.

 막말로, ‘재래시장’을 없애고 ‘쇼핑센터’를 들이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만, 쇼핑센터를 짓기까지 쏟아부어야 하는 돈은 돈이 아닌가요. 쇼핑센터를 굴리는 데 들어갈 어마어마한 전기와 자원은 돈이 아닌가요. 물건을 사고파는 시세차익으로 돈을 뽑아내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우리 땅을 고이 일구면서 알맞춤하게 얻고 넉넉하게 나누며 살아가는 일이란 아무 보람이 없을는지요.

 더 많은 돈이 아닌 더 넉넉한 사랑이 그립습니다. 더 큰 집이 아닌 더 따스한 믿음이 그립습니다. 더 빠른 자동차와 고속철도가 아닌 더 애틋한 나눔이 그립습니다. 더 높은 이름이 아닌 더 아름다운 마음결이 그립습니다. 똑똑한 사람도 나쁘지 않을 터이나, 착한 사람이 훨씬 반갑습니다. 얼굴 예쁘장한 사람도 싫지 않으나, 다소곳하게 이웃을 헤아리거나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이 더욱 고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천 배다리 골목길에서는 돈보다는 사랑을, 큰 집보다는 따스한 믿음을 느낍니다. 날마다 사진기를 어깨에 걸치고 ‘동네 마실(제가 사는 집이 골목집이니 사진 찍으러 다니는 일은 동네 마실이 됩니다)’을 다니면서, 둘레 이웃들한테 반가운 사진 한 장 고맙게 얻습니다. 아기자기 꾸민 꽃그릇을 보고, 예술품과 다를 바 없이 매만진 꽃줄기와 벽과 울타리와 문간을 봅니다. 손때 묻은 이름패를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이 땅에서 뿌리내린 사람들 숨결을 느낍니다. 우체통이 비맞아 슬지 말라며 플라스틱 달걀판을 얹은 모습을 보면서, 그저 꾸밈없이 즐기면서 살아가는 맛이 무엇인가를 곱씹습니다. 시멘트 길바닥이지만 아이들이 맨발로 뛰놀아도 발을 다치게 할 병조각이나 쓰레기가 없도록, 골목사람 스스로 아침저녁으로 골목길을 비질하는 그 품새가 거룩하여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따라 배운다고,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오순도순 어울리는 골목집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아이들은 이웃사랑과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배웁니다. 이웃이 누군 줄도 모르며 쇠문 철컥철컥 닫아걸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에만 빠져들게 되는 층층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나 하나만 잘 되기’를 배우면서 외돌토리가 되어 갑니다. 아이들이 ‘이름나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야 ‘인생 성공’은 아닐 테지요. 아이들이 ‘이름나고 서울에 있는’ 큰 회사에 들어가 억대 연봉을 받아야 ‘인생 역전’은 아닐 테지요.

 부산 광안리 모래밭이 어느새 시멘트로 덮이고 찻집과 술집으로 떡발린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맨발로 디딜 모래밭이 차츰 줄어들고, ‘비싸디비싼’ 기름을 먹는 자동차를 굴려서 기나긴 다리를 건너야 바다를 내다보며 즐길 수 있게 되는 부산 삶터가 가슴을 무너지게 합니다. 우리가 즐기는 문화라 한다면, 자동차가 없는 사람도 즐기고 돈이 없는 사람도 즐기며 자전거로 일터를 오가는 사람도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자전거가 지나갈 수 없을 뿐더러, 걸어서 오갈 수 없는 다리도 다리일까 생각해 봅니다. 자전거가 느긋하게 달릴 수 없을 뿐더러, 아이들이 길바닥에 금을 긋고 놀이를 할 수 없는 동네가 참말 사람 사는 동네가 맞는지 여쭈어 봅니다. 아이들한테 고무줄놀이를 빼앗고 인터넷게임을 가르친 이들은 바로 우리 어른입니다. 아이들한테 술래잡기를 빼앗고 텔레비전에 푹 빠지게 가르친 이들은 바로 우리 어른입니다. 아이하고 손을 마주하면서 실뜨기놀이를 하는 틈조차 내지 못하는 우리 어른입니다. 아이한테 책 하나 읽어 주지도 못하도록 돈 버느라 바쁘지만, 아이한테 들려줄 ‘우리 어른들 살아온 이야기’ 하나 제대로 되새기지 못하는 우리 어른입니다.

 가만히 보면 어쩔 수 없구나 싶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들한테는 우리 삶이 없으니, 우리한테 고유한 문화 또한 없습니다. 부산에 가 보아도 ‘여기가 부산이구나!’ 하고 느낄 만한 집이나 길이나 사람이 없습니다. ‘했어예’ 하는 말투 하나로, 말 높낮이(억양) 몇 가지로만 부산을 느껴야 한다면, 인천사람이 구태여 부산까지 나들이를 가야 할 까닭이 어디에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거꾸로, 제 고향 인천이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저 같은 사람이 깃들어 사는 골목집을 와장창 때려부수고, 맨숭맨숭 재미도 없고 비싸기는 우라지게 비싼 층층집만 잔뜩 짓는 재개발을 밀어붙여서 끝내 뜻을 이루어 버린다면, 부산에 계신 여러분들을 인천으로 부를 수 없을 뿐더러, 불러도 재미가 없습니다. 지금은 돈 한푼 안 들이고도 두 다리로 걸어다니면서 얼마든지 ‘인천 마실’을 즐길 수 있지만, 앞으로는 자가용을 끌고 돈 쓰고 다녀야 비로소 ‘인천 마실’을 맛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아직까지 부산에는 자갈치시장이 있고 어마어마한 개미소굴 같은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저잣거리가 있을 뿐 아니라, 보수동 헌책방골목이 있습니다. 보수동 헌책방골목은 서울 청계천에서도 사라지고, 대구와 광주와 대전에서도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있는 헌책방골목이 꿋꿋하면서도 아름답게 꾸려지고 있습니다. 또한, 해마다 ‘책방골목잔치’까지 엽니다. 부산국제영화잔치도 볼 만한 자리일 텐데, 저로서는 부천에서도 하고 전주에서도 하고 또 어디어디에서도 똑같은 꼴로, 그예 판박이로 이루어지는 영화잔치보다는, 제주는 제주대로 강릉은 강릉대로 청주는 청주대로, 인천은 인천대로, 또 부산은 부산대로 모두 다른 맛으로 꾸려 나가고 있는 헌책방이 깃든 그 골목 그 거리를 두 다리로 사붓사붓 걸어다니며 사진도 몇 장 찍고 책도 몇 권 고르면서 마음과 생각과 얼과 넋을 살찌우는 ‘부산 마실’이 더없이 반갑고 신납니다. 그래서, 이참에 ‘인천 골목길’을 찍은 사진을 들고 부산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그러면서, 다음해에는 부산에서 ‘부산 골목길’을 사진으로 찍는 분들이 사진꾸러미를 어깨에 짊어지고 인천으로 나들이를 와서 사진잔치 한 번 열어 주면 얼마나 재미날까,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울까 하면서 혼자서 꿈을 꾸고 웃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돈을 갖다 앵겨도 바꾸지 않을 아름다운 골목에서 왁자지껄한 놀이마당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이 놀이마당을 앞으로도 이 나라 아이들한테, 이 가운데 누구보다도 부산 아이들한테 싱그럽고 푸르게 물려주면서, 먼 뒷날에는 아이들이 제 나름대로 새롭게 꾸며 나가도록 널리 베풀어 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4341.9.4.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짜장면을 맨 처음 만든 집은 ‘썩어’ 간다
 [배다리 골목길 이야기 23] 중국사람 거리 ‘공화춘’



 그대로 두면 퍽 멋들어진 옛 ‘중국사람 거리 중국집’으로 남을 텐데, 이러한 집들이 얄딱구리한 페인트 떡발림에 시달리면서 ‘차이나타운 관광지 짜장면집’으로 바뀌고 있다. 엊그제 모처럼 ‘중국사람 거리’로 나들이를 갔다. 옆지기가 해바라기씨를 먹고 싶다고 해서 부러 나들이를 갔다. 중국사람들은 해바라기씨를 참 좋아해서 이곳에는 중국에서 바로 들여온 해바라기씨를 크기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누어서 판다. 우리는 이 가운데 가장 큰 놈으로 샀다. 그래 보아야 3000원. 껍질째 먹어도 되지만 너무 짜다. 껍질을 벗겨 먹으면 알맹이는 아주 작다.

 중국사람 거리에 들른 김에 중국 보리술도 두 병 산다. 한 병에 1500원이 안팎인데, 630들이 보리술을 이만한 값으로 사마시는 값은 무척 싼 편. 그러면 이 보리술을 중국에서 들여올 때는 얼마라는 소리일까.

 새 고무신을 신은 탓에 뒷꿈치가 다 까지고 발등도 빨갛게 부어오른다. 신던 고무신이 아주 닳아서 새 고무신으로 옮겨신는데, 이때마다 늘 발앓이를 한다.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아까 지나온 길을 다시 걷고 싶지 않아 안쪽 골목으로 걷는다. 이 골목까지는 관광지 개발을 하지 않아서 조용하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왁자지껄 시끄럽고 한쪽은 아주 한갓지다. 지금 우리 동네 재개발로 다 쓸려나가면 차라리 이리로라도 옮겨올까? 그런데 여기는 재개발 안 하나? 에휴.

 수풀이 우거진 어느 중국집 앞을 지난다. 이곳은 그예 조용히 있네, 하는 생각으로 지나가다가 이 집에 붙어 있는 빛바랜 간판에 눈길이 쏠린다. 앗, 아니, 여기는 ‘공화춘(共和春)’ 아닌가? 1905년에 세워진, 우리 나라에서 맨 처음으로 짜장면을 빚어서 팔던 그 가게!

 그런데 어이하여 이렇게 수풀이 우거진 빈집, 썩어가는 집, 쓰러져가는 집이 되었지? 이곳 공화춘을 인천시에서는 2006년 4월 14일에 등록문화재 246호로 지정해 놓기도 했다는데, 등록문화재로 지정은 해 놓고 이렇게 내버려 두어도 되는가? 이게 무슨 문화재라고? 중국사람 거리에서 1번지라고 할 공화춘을 이렇게 엉망으로 다 쓰러져 가게 해 놓고 무슨 ‘차이나타운 관광특구’ 따위를 만든다고?

 이곳 공화춘은 1984년에 문을 닫고, 지금은 인천역에서 올라오는 가운데길 세거리 한복판에 새 건물을 지어서 새로운 모습으로 들어서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옛자리 공화춘은 틀림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옛자리 공화춘은 중국사람 거리를 대표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은 이렇게 버려두고서 무슨 역사를 말하고 문화를 말하고 관광을 말할 수 있겠는가. 문화재임을 알리는 빗돌 하나 없고, 이 앞을 또는 이 옆을 지나다니는 어느 누구도 이곳이 ‘공화춘’ 옛자리임을 알지를 못한다.

 돈으로 처바를 수 없는 역사요 문화재이다. 돈으로 다시 세울 수 없는 문화요 살림집이다. 돈으로 사람을 끌어들일 없는 관광지이고, 돈으로 사람들 눈길을 받을 수 없는 관광상품이다.

 엊그제 지역신문(인천일보 2008.4.16.)을 보고 인천연대(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보도자료(2008.4.15.)를 보니, 인천시는 ‘2009인천세계도시엑스포’를 하려다가, 중국에서 세계공인을 받아 하는 행사와 겹치게 되어서, 이름도 ‘2009인천세계축전’으로 바꾸었다고 나온다. 그런데 이 행사를 한다면서 그동안 128억이라는 예산을 썼는데 이 가운데 65억을 조직위 147명한테 인건비를 주느라고 썼다고 나온다. 2009년 9월에 한다는 ‘인천세계축전’에서 무엇을 할는지 아직 아무것도 잡히지 않고, 며칠 동안 할는지도 잡히지 않은 가운데, 또 어디에서 어떻게 한다는지 틀거리도 없다고 한다. 오로지 돈만 썼다. 돈을 쓸 곳이 없어서 이곳에 퍼붓는가? 인천이라는 곳을 세계에 알리고, 아니 세계에 알리기 앞서 나라안에 알리고, 아니 나라안에 알리기 앞서 인천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무언가 알리거나 나누려고 하는 데에는 돈을 얼마나 쓰고 있을까. 품은 얼마나 들이고 있을까. 마음은 얼마나 쏟고 있을까.

 어쩌면, 문화며 삶이며 역사며 집이며 예술이며를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공화춘에 어줍잖게 손을 대지 않고 수풀만 우거져 있도록 내버려 둔 편이 나은지 모른다. 괜히 돈쟁이들이 돈으로 처바른답시고 잘못 건드렸다가 첫모습마저 잃어버리거나 망가지면 더욱 큰일이다.

 쓸쓸해 보이지만, 쓸쓸하지 않은 옛 공화춘인지 모른다. 조용히 해바라기를 하면서 가게 앞 푸나무하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면서 그 자리에서 흙이 되어 가는 옛 공화춘인지 모른다. 이제는 주차장처럼 쓰이고 있어, 이 앞을 지나가면서도 옛 공화춘임을 알아보기 어렵게 된 형편. 발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꿉벅 숙여 인사를 한다. (4341.4.18.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