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삶을 읽어나갑니다
이성갑 지음 / Storehouse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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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44


《오늘도 삶을 읽어나갑니다》

 이성갑

 스토어하우스

 2020.7.1.



책과 함께했던 나의 태도는 책방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 작품 이름은 ‘주책공사’이고, 난 이 작품 속에서 사랑과 예술을 즐기며 살아간다. (20쪽)


앤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앤의 곁에 머물렀던 이들이지 않았을까? (59쪽)


삶은 늘 초보의 순간들 연속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도 난 늘 초보다. (92쪽)


이 책 한 번 읽어 보시라. 극히 평범한 것이 지극히 위대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05쪽)


사회의 모든 구조는 책으로 수렴되고, 수렴된 모든 결과는 결국 삶으로 연결된다. 다리를 잘 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도로를 잘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265쪽)



  자리맡에 가득 쌓은 책을 하나하나 갈무리해서 치우면 어느새 새롭게 여러 책이 들어와서 그득그득 쌓입니다. 2007년 봄에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열면서 ‘집에 쌓이는 책’이 제법 줄었지만, 새로 장만해서 살피는 책은 언제나 꾸준하기에 이 책을 하나둘 여미다 보면 으레 제자리걸음이지 싶어요.


  더 많이 있어야 하는 책은 아니라고 여기지만, 새롭게 태어나는 책을 자꾸자꾸 바라봅니다. 더 많이 읽어야 하는 책은 아니지 싶으나, 새롭게 피어나는 책을 또다시 마주합니다. 《오늘도 삶을 읽어나갑니다》(이성갑, 스토어하우스, 2020)는 부산 한켠에서 마을책집을 연 분이 ‘책으로 삶을 읽다가 책집을 열며 이웃을 마주하는 하루’를 담아낸 책입니다. 누리책집에서 이 책을 만날 수 있고, ‘주책공사’라는 책집으로 마실을 가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룻밤을 들이고 길삯에 길손집삯까지 들여서 이 책을 만났습니다.


  책이란, 종이란 뭉치로만 엮지 않습니다. 글이며 그림을 종이에만 얹지 않고 마음에 먼저 얹듯, 책도 언제나 처음에는 마음으로 엮어요. 마음자리에 깊고 넓게 흐르는 이야기가 피어나기에 비로소 벼리를 짜고 글자락을 추슬러서 책으로 엮어요.


  우리는 오늘도 오늘을 읽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람이라는 눈빛을 읽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새삼스레 하루를 읽습니다. 우리는 저녁에 고요히 밤빛을 읽어요. 어른이란 몸이 되어도 그림책을 읽고, 인문책뿐 아니라 만화책을 읽어요. 종이책 곁에 놓을 살림책을 읽고, 흙책이며 풀꽃책이며 바람책을 읽습니다. 온누리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삶을 지어 저마다 즐거이 삶책을 빚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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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약국 - 마음이 아픈 당신을 위한 한 권의 처방전
강창래 외 지음, 한국서점인협의회 엮음 / 북바이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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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39


《종이약국》

 한국서점인협의회 엮음

 강창래와 열여섯 사람 글

 북아이북

 2020.9.15.



아이들과 시골에서 숲집을 그리며 사는 길이 옳은지는 잘 모릅니다만, 늘 하나를 느껴요. 아이들이 맨발로 뛰놀고 마음껏 웃으며 노래할 수 있는 곳에서 보금자리를 일군다면 넉넉한 길이겠다고요. (51쪽/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수수하게 차리든 눈부시게 차리든 대수롭지 않아요. 더듬더듬 말하든 조잘조잘 말하든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작게 거드는 손길에서 새롭게 잇는 마음이 자랍니다. (129쪽/은빛 숟가락)


좋아하는 사람하고 앞으로 쉰 해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한 적 있나요? 좋아하는 사람하고 보금자리를 새로 지으면 ‘어떻게 밥옷집 살림을 꾸리’고 ‘아이를 돌볼’는지 생각해 보았나요? (189쪽/아빠는 전업 주부)


아이한테 ‘미래 직업’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너는 밥하고 옷하고 집을 어떻게 스스로 마련하겠니? 전기가 끊어지고 돈값이 주저앉을 적에 너는 어떻게 살아가겠니?” 하고 물어보면 좋겠어요. (251쪽/10대와 통하는 농사 이야기)


왜 우리나라 입시 지옥은 이다지도 무시무시할까요? 혼자만 잘되는 길이라면 배움이 아니겠지요. 스스로 기쁘게 노래하면서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이기에 배움이겠지요. 306쪽/히틀러의 딸)


비슷하기에 다른 말이 서로 어떻게 얽히며 새로운 결하고 맛이 되는가를 밝히는 사전을 차근차근 읽다 보면, 이제부터 우리말을 제대로 배워서 새롭게 쓰자는 생각이 들어요. (331쪽/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책을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제 누구나 책을 말합니다만, 예전에는 기자하고 평론가 아니고서는 책을 안 말하다시피 했습니다. 아니, 예전에는 기자하고 평론가 아닌 사람이 책을 말하면 “넌 책을 모르잖아?” 하면서 비웃었습니다. 예전에는 ‘즐겁게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책을 말하면 “근데요, 그건 그대가 모르는 소리이고요?” 하고 대꾸하는 기자하고 평론가가 수두룩했습니다.


  곰곰이 보면 예전에는 기자하고 평론가에다가 작가 빼고는 거의 누구도 책을 써서 내놓기 어려웠습니다. 예전에는 대학교 이름값이나 스승 이름줄에 따라서 ‘등단’을 하지 않는다면 책을 못 내는 판이었고, ‘등단’한 결하고 맞물리는 출판사에서 겨우 책을 내었으며, 이러한 책은 교수나 스승이 붙임글(소개 또는 추천)을 적어 주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기자, 평론가, 작가, 시인, 소설가, 예술가, 교사, 강사, 학자 …… 같은 이름을 붙인 분들이 책을 대단히 많이 냅니다. 이웃집 아주머니나 옆집 아저씨가 책을 낼 수도 있지만, 퍽 드물지요. 마을 할머니나 시골 할아버지도 책을 쓸 수 있으나, 펴내는 길은 만만하지 않아요.


  열일곱 사람 목소리로 책을 들려주는 《종이약국》(한국서점인협의회·강창래와 열여섯 사람, 북아이북, 2020)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구미에 깃든 〈삼일문고〉를 비롯해 나라 곳곳 마을책집이 뜻을 모아서 꾀한 ‘종이약국 서가’에서 비롯했습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 다르게 일하는 사람들이 다 다른 책을 들려주면서 다 다른 이웃한테 다 다른 삶을 밝히는 징검다리로 책을 바라보면 좋겠다는 뜻이었어요.


  저도 이 책에 한몫 거들었습니다. 나라 곳곳 마을책집이 저마다 다른 삶길에 맞추어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흐르는 저마다 아름다운 책을 고루고루 가누어서 나누려는 몸짓은 더없이 사랑스럽거든요.


  어린이도 푸름이도 어른도 삶책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사람도 시골사람도 살림책을 곁에 두면 좋겠습니다. 많이 배운 이도 적게 배운 이도 사랑책을 마음에 담으면 좋겠습니다. 이름난 책이 아닌 아름다운 책을, 잘 팔리는 책이 아닌 두고두고 싱그러운 책을, 일본스러운 한자말이나 번역 말씨가 춤추는 책보다는 수수하게 어린이랑 어깨동무하는 착한 말씨로 들려주는 책을 함께 즐기면 좋겠어요.


  도서정가제를 놓고 여러 말이 오갑니다. 말이란 마음껏 흐를 노릇입니다. 이때에 가만히 생각해 봐요. 책하고 얽혀 말썽거리는 ‘책값’ 때문이 아닙니다. 책으로 돈벌이만 꾀하며 사재기나 베스트셀러 조작을 하는 몇몇 출판사, 샛장사(중계상·도매상)로 장난을 치면서 출판사·독자 모두 등치는 몇몇 일터, 공급율을 안 낮추고 광고를 안 넣으면 너희 책은 안 팔겠다고 배짱을 부리는 몇몇 누리책집, 그리고 책을 사읽지 않으면서 보도자료를 베껴쓸 뿐이라 책마을을 영 모르는 숱한 신문·방송 기자하고 평론가, 이 모든 고인물을 좀 치워내야 하지 않을까요?


  아름다운 책을 만날 적에는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일해서 아름답게 번 돈을, 아름답게 내미는 손길로 아름다이 품에 안고서, 아름다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이 책을 만나는 분들은 숲노래가 쓴 《책숲마실》을 함께 읽어 주시면 좋겠어요!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68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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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말들 -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서점에서 배웠다 문장 시리즈
윤성근 지음 / 유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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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28


《서점의 말들》

 윤성근

 유유

 2020.4.14.



서점 주인은 서점 그 자체이며 서점으로 들어가는 또 다른 문이다. (21쪽)


서점은 도시의 소음을 거두는 숲과 같다. (37쪽)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걷다가 크고 작은 서점을 자주 만나는 동네에 방문했을 때, 나는 마음이 든든해지고 선한 예감으로 충만해진다. (55쪽)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는 게 일인데, 그래서 나는 목적보다는 의미를 선택했다. (89쪽)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것이 하나 있다. 자유다. 학교는 자유를 가르쳐 주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빼앗으려고 했다. (97쪽)


큐레이션 시대는 금방 지나갈 것이고, 서점은 그야말로 다시 책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던 때로 돌아가야 한다. 책 무더기는 평범한 무더기가 아니다. 이런 무더기 속에서라면 주인이 아니라 손님들의 큐레이션 능력이 제대로 빛날 수 있다. (137쪽)



  미닫이나 여닫이를 활짝 젖히면 우리 보금자리로 무엇이 들어오나요. 햇살이며 햇빛이며 햇볕이 소복소복 들어오는지요. 멧새가 철 따라 다르게 노래하는 살림결이 들어오는가요. 여름을 맞이해 짙푸른 나뭇잎이라든지 겨울을 앞둔 싯누런 가랑잎이 들어오나요.


  모시나 쑥이나 고들빼기나 소리쟁이나 달걀꽃을 낫으로 석석 베어 눕혀 놓으면, 아직 푸른물이 가득한 이 아이들을 맨발로 밟을 적에도 싱그럽지만, 푸른물이 사라지고 흙으로 돌아가려고 바싹 마를 적에도 산뜻합니다. 기계로 잘게 쳐내면 느끼지 못하는 숨결입니다. 손으로 다스리는 살림이라면 두 손을 비롯해 온몸으로 온숨이 밀려들지요.


  서울 한복판은 어떤 곳일까요. 한때 서울 한복판에서 지내며 날마다 몇 군데씩 책집마실을 다닌 적 있는데, 이제 와 돌아보노라면, 서울처럼 커다란 고장에서 책집은 냇가나 우물가처럼 쉼터예요. 빽빽한 집이며 시끄러운 자동차로 출렁대는 큰고장에서 작은 숨결인 사람 하나가 몸을 쉬고 마음을 달래는 터가 바로 책집이지 싶습니다. 《서점의 말들》(윤성근, 유유, 2020)은 서울 은평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알맞춤한 자리에 홀가분히 책집을 가꾸는 지기 한 분이 여민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책집이란 어떤 곳인지, 책으로 둘러싼 조촐한 자리가 사람들한테 어떤 빛을 나누어 주는지 두 갈래로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먼저, 책집지기가 읽은 책에서 몇 대목을 옮깁니다. 다음으로, 책집지기가 책집에서 일하고 살아오며 마주하고 겪은 일을 맞물려 놓습니다. 책이 들려주는 목소리하고, 책집이 속삭이는 말소리하고, 책집지기가 이야기하는 노랫소리를 같이 밝히는 셈입니다.


  얼핏 헤아리자면 ‘책집이 무슨 말을 하지?’ 하고 갸우뚱할 만합니다. 책집은 찻집이며 떡집이며 옷집처럼 그저 가게 가운데 하나일 텐데, 무슨 입이 있어서 말을 하느냐고 물을 만해요. 그러나 “책집도 말한다”고 느껴요. 손에 쥔 책은 숲에서 자라던 푸른 숨결로 우리한테 속삭이듯, ‘책이 된 나무’를 품은 책집은 마치 ‘나무를 품어 자라게 한 숲’ 같은 숨결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흐르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싶습니다.


  한자말로 치면 ‘-방(房)’이나 ‘-점(店)’입니다만, 한국말은 ‘가게’를 ‘집’이란 낱말로 가리키곤 해요. 그저 사고파는 자리인 가게라는 틀을 넘어서, 우리가 포근하게 어우러지면서 살림을 하고 쉬며 하루를 누리는 보금자리라는 뜻을 담아 ‘집’을 붙이지요. 이런 책집이 크고 작게 마을 곳곳에, 골목 한켠에 깃든다면, 아무리 커다란 고장이더라도 숨을 돌리고 몸마음을 추스르면서 하루를 새롭게 짓는 눈을 뜨는 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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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살다, 책에 산다 - 온 나라 책공간 탐구서
책마을해리 엮음 / 기역(ㄱ)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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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600


《지역에 살다, 책에 산다》

 책마을해리 엮음

 기역

 2019.5.9.



〈검은책방흰책방〉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광주에 내려와, 문학을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만든 책방이지만, 지금은 글을 쓰는 이들이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다. (29쪽)


“책방을 하고자 마음먹었을 때 다른 지역에는 예쁜 책방들이 많은데, 그럼 우리가 책방을 만든다면 어떤 색깔을 품어야 할까, 생각해 봤어요.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라는 결론에 도달했죠.” (36쪽)


“책방을 운영하면서 마음 아픈 순간이 있다면 어른들이 갖는 그림책에 대한 편견을 마주할 때예요. 그림책은 부모가 아이에게 읽어 주는 책이고, 아이들만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그림책에는 인생이 함축되어 있어요.” (55쪽)


어느 한 노선을 정하지 않더라도, 그저 내가 위로 받은 책, 내가 도움 받은 책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필요로 하는 모든 이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르를 취급한다. 그야말로 만물책방이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서점, 〈잘 익은 언어들〉에서 당신이 찾던 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5쪽)



《지역에 살다, 책에 산다》(책마을해리 엮음, 기역, 2019)를 마을책집에서 장만해서 읽었다. 읽으면서 자꾸 허전하다가 끝이 났다. 뭔가 이야기가 나올 만하지 싶더니 끝이 난 셈일까. 무엇보다도 이 책은 ‘누가’ 어디에서 왜 어느 곳으로 찾아갔느냐 하는 알맹이부터 빠졌다. 어떤 뜻으로 어떠한 곳을 찾아가서 무슨 말을 듣고 나누려 하는가 하는 줄거리도 빠졌다. 인터뷰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고, 방문기인지 아닌지 알쏭하다. 서둘러 엮은 티가 나고, 엉성하게 맺은 모습이 가득하다. 조금 더 따져 본다면, ‘마을하고 책을 잇는 징검다리나 실타래나 이야기’를 갈무리하지 못했구나 싶다. 다 다른 책터가 다 다른 책집이나 책숲으로 마을에 흐르는 결을 느긋하게 돌아보려 했다면, 사뭇 다른 책이 태어났으리라 본다.


마을에서 사는 ‘먹물 아닌 마을사람’은 ‘마을’이란 이름을 쓴다. 서울에서조차 요새는 일본 한자말 ‘동네’를 안 쓰고 ‘마을’로 바뀐다. 그런데 ‘마을사람 아닌 먹물’은 하나같이 ‘지역’이란 한자말을 쓰려 한다. 모든 말마디를 추스르기 어렵더라도, 앞세우는 말 한 마디는 찬찬히 생각하면 좋겠다. 첫이름을 어떻게 지어서 부르느냐부터 길이 갈리지 싶다. 마을스럽게, 숲이 일렁이는 고을답게, 숲에서 얻은 나무로 일군 책터스럽게, 큰고장이건 시골이건 싱그러이 춤추는 하늘같은 숨결이 흐르기를 바라는 뜻답게, 마을책하고 마을책살림을 노래하기를 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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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 - 문장으로 쌓아 올린 작은 책방 코너스툴의 드넓은 세계
김성은 지음 / 책과이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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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125 책읽는 사람은 밥도 잘 먹지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

 김성은

 책과이음

 2020.2.12.



변두리에도 삶이 있다. 다들 중심을 보느라 정신이 없지만, 변두리에도 분명한 존재들이 있다. (16쪽)


책방을 열기 전까지는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느껴 본 경험이 별로 없다. 굳이 떠올리자면 첫 손녀가 딸이라는 소리에 충격을 받아 수화기를 놓쳤다는 할머니의 대사 정도. (28쪽)


그렇게 두 사람에게 시집을 한 권씩 팔아, 첫날 16000원의 매출을 만들었다. 처음인데, 첫날인데, 이 정도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다. (47쪽)


꽤 많은 사람이 어설프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회사 일을 멈추고 책방을 열 수 있었다. 너르고 멋진 공간에 화려한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비싼 가구들로 채우는 일이 아니어도 괜찮겠다고. (108쪽)


마음이 조급한 시기엔 음식뿐 아니라 글자도 제대로 먹고 소화하지 못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 더 많이, 더 빨리 읽고 싶은 마음으로 자신을 닦달하던 계절이 있었다. (116쪽)



  서울이란 고장이 가운데를 차지하면 어쩐지 다른 모든 고장은 바깥이나 테두리나 언저리가 되는구나 싶습니다. 왜 서울은 “인천 언저리”나 “동두천 바깥”이나 “수원 귀퉁이”나 “하남 구석”이 아닌 이 나라 한가운데를 차지해야 할까요. 서울에 들어가야 내세울 만하고, 서울에 못 들어가면 초라할까요?


  인천이란 고장에서 나고 자라며 어릴 적부터 “서울로 가라. 구석빼기 인천에 남지 마라.” 같은 말을 귀에 신물이 나도록 들었습니다. 서울로 못 가고 인천에 있으면 뭔가 재주가 없거나 덜떨어지거나 어수룩하거나 바보이거나 멍청하거나 모자라다고 여기는 눈치였습니다. 이때마다 되물었어요. “그러면 시골에서 인천으로 온 사람한테 인천은 뭐지요?”라든지 “이 고장을 사랑해서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한테 인천은 뭐지요?” 하고.


  이렇게 되물으면 “네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리야. 앞에서는 ‘이 귀퉁이가 좋아서 뿌리내린다’고 하지만, 돈을 벌고 이름을 얻으면 하나같이 여기를 뜨고 서울로 갈 텐데?” 하면서 비웃는 말을 들었습니다.


  돈이며 이름이 있기에 더더욱 서울로 안 갈 만하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돈이며 이름이 없더라도 즐겁게 서울 아닌 곳에서 하루를 노래하고 사랑하면서 살림을 지으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김성은, 책과이음, 2020)은 처음에는 ‘귀퉁이·끄트머리·언저리·바깥·구석’이라고 여기던 동두천에 어느새 스며들면서 이 고장을 아끼는 손길로 마을책집까지 연 이야기를 다룹니다.


  참말로 어느 날 갑자기 동두천에 꽂혔다고도 할 만합니다. 비록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마을책집을 척 열고서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갖추고, 여러 손님을 마주하며, 이런저런 책수다를 꾀하고, 영화를 함께 보기도 하며, 바야흐로 주섬주섬 갈무리한 글을 조곤조곤 엮어서 책까지 내놓았으니, “어느 날 갑자기”란 이름이 어울립니다.


  한국이란 나라에서만 보자면 서울은 틀림없이 가운데일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시아란 눈으로 본다면? 뭍하고 바다를 품은 지구라는 별로 본다면? 지구를 비롯한 숱한 별이 가득한 온누리라는 눈으로 본다면?


  곰곰이 보면 복판도 귀퉁이도 없습니다. 가운데도 바깥도 없어요. 모든 곳은 스스로 복판이면서 귀퉁이로구나 싶어요.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어떻게 품느냐에 따라서 가운데도 되지만 구석빼기도 되는구나 싶습니다.


  우리는 이쁘장한 사람을 흉내내어 얼굴이나 몸매를 뜯어고쳐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름값 높은 사람들이 쓴 글을 흉내내어야 글쓰기를 할 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가용을 안 몰아도 됩니다. 우리는 오 억원이든 십 억원이든 이런저런 아파트에 안 살아도 됩니다.


  동두천 마을책집 〈코너스툴〉처럼 스스로 일어나는 마음으로 보금자리를 가꾸면 될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너스툴〉이 길어올린 《어느 날 갑자기, 책방을》이란 책처럼 마음에 와닿는 책을 마주하고 오늘 하루를 우리 손으로 또박또박 글로 여미면 넉넉하다고 생각합니다.


  남한테 잘 보이려고 책을 읽지 않습니다. 멋져 보이려고 옷을 입지 않습니다. 자랑을 하려고 자동차를 몰까요?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를 만나려고 책을 쥡니다. 마음을 사랑하는 빛을 스스로 지으려고 오늘 이곳에서 밭자락을 일구거나 책집을 돌보거나 집안일을 붙잡습니다.


  책읽는 사람은 밥을 잘 먹습니다. 다만 남들이 많이 읽으니 따라 읽으려고 하면, 이런 몸짓으로는 밥을 못 먹겠지요. 얹히겠지요. 멧새 소리를 마음으로 품고, 바람에 날리는 풀잎에서 피어나는 푸른 내음을 마음으로 담습니다. 앞으로 남북녘이 하나되는 날에 동두천이란 고장은 북녘 고장하고 남녘 고장을 잇는 살뜰한 징검다리가 될 만하리라 생각해요. 아름다운 고장에 아름답게 마을책집이 깃듭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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