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견 만세 - 저마다 생애 최고의 마지막 나날을 보내는 노견들에게 보내는 찬사
진 웨인가튼 지음, 이보미 옮김, 마이클 윌리엄슨 사진 / 책공장더불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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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39



늙은 곁짐승은 늙고 느려서 사랑스럽네

― 노견 만세

 진 웨인가튼 글·마이클 윌리엄슨 사진/이보미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8.2.25.



“렉시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렉시 덕분에 우리는 항상 배를 잡고 뒤로 넘어가죠. 침 질질 흘리고, 원반 물고 밥그릇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데요. 이 아이에게 우리가 뭘 더 바라겠어요?” (24쪽)



  곁에서 늘 상냥하게 지켜보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하면서 넉넉한 품이 됩니다. 곁에서 언제나 활짝 웃으며 뛰노는 아이는 어버이한테 더없이 반가우면서 사랑스러운 숨결이 되고요. 그렇다면 곁에서 내내 지켜보면서 함께 지내는 개나 고양이 한 마리는 어떠할까요?


  예전에는 개를 놓고서 따로 ‘반려견’ 같은 말을 안 썼습니다. 개는 그저 ‘개’였어요. ‘집개’라고조차 안 했어요. 집에서 함께 지내는 개라면 그냥 개요, 집 아닌 바깥에서 개 스스로 살 적에는 ‘들개’라 했습니다.


  고양이는 웬만해서는 사람손을 안 타려 했으니 집에서 지내는 고양이는 따로 ‘집고양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를 두고는 ‘들고양이·도둑고양이’ 같은 이름이 있었으며, 요새는 ‘길고양이·마을고양이·골목고양이’ 같은 이름을 새로 받습니다.


  요새 ‘반려동물·반려견·반려묘’ 같은 이름이 새로 나오는데, 가만히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예전처럼 ‘개·집고양이’라고만 해도 되고, 새 이름을 지어 주어도 되어요. 이를테면 우리 곁에서 늘 사랑스레 어우러지는 개요 고양이인 만큼, ‘곁개·곁고양이’라든지 ‘곁짐승’ 같은 이름을 써 볼 만합니다.



입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행크의 피부 밑 여기저기에서 작고 딱딱한 덩어리가 발견돼 병원을 찾았다. 수의사가 메스로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냈는데 비비탄 총알이었다. 배, 가슴, 머리, 귀 등에 수백 개가 박혀 있었다. “행크는 큰 지혜를 가진 달라이 라마 같아요. 저는 행크가 사격 연습용으로 살았다는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행크는 그걸 다 참고 맞은 거잖아요.” (60쪽)



  사진책 《노견 만세》(진 웨인가튼 글·마이클 윌리엄슨 사진/이보미 옮김, 책공장더불어, 2018)를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늙은개’를 다뤄요. 우리 곁에서 오래도록 함께 지내고서 어느덧 흙으로 돌아갈 나이가 된, 참으로 늙어서 눈이 흐리거나 침을 흘리거나 못 달리는 개가 줄줄이 나옵니다.


  멋스럽거나 대견하거나 놀랍게 보이는 개가 아닌, 그저 나이가 들었을 뿐 사람들 곁에서 언제나 한집지기로 지내 온 개를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이들 개는 어느덧 나이가 들었을 뿐, 곁개로 두는 사람들한테는 예나 이제나 똑같이 보인다고 해요. 아니, 이들 늙은 곁개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나이가 한참 든 이 곁개가 예전에는 엿볼 수 없던 무척 깊은 기운을 나누어 준다’고 이야기합니다.


  곁개하고 지낸 사람들은 ‘어린개’였을 적에도 이 개가 팔팔하면서 철모르는 모습이 반가웠고 사랑스러웠다고 말하는데, 이 개가 늙어서 기운을 못 쓰는 요즈음에는 새롭게 반가우면서 사랑스럽다고, 엉성하거나 느리거나 잠만 자는 모습에서 그동안 미처 몰랐던 삶을 배울 수 있어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잘 달리지 못해도, 아니 아예 달리지 못해도, 밥을 먹다가 자꾸 흘려도, 짖을 힘도 없이 오래도록 잠만 자더라도, 곁개가 ‘우리 집에 함께 있는 나날’이 얼마나 고마우면서 따사로운 일인가 하고 한목소리로 말해요.


  아기가 집에 처음 태어나서 자랄 적을 떠올려 봅니다. 아기라는 숨결 하나는 온 집안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습니다. 아기가 자라 아이가 되고,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며, 어른은 더더 자라서 늙은 몸이 된다고 해요. 자, 이때에, 늙은 몸인 사람은 집안에서 어떤 기운이 될까요?


  예전에는 ‘늙은이’를 나쁘게 여기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오래도록 살아오며 마음 가득 넉넉히 슬기를 품은 ‘늙은 사람’은 젊은 사람하고 어린 사람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몫을 맡았고, 말을 가르치는 몫도 맡으며, 몸으로는 일을 못해도 차근차근 풀어내어 알려주는 몫을 했어요. 그리고 어렵거나 벅찬 고빗사위에서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두려움이나 걱정은 떨쳐도 된다’고 하면서 마음을 달래거나 다스리는 몫을 맡았지요.


  늙어서 몸을 못 쓰는 사람뿐 아니라, 늙어서 몸을 못 다루는 개도, 우리 곁에서 새롭게 슬기로운 마음을 북돋아 주지 싶습니다. 곁사람도 아름답고, 곁개도 사랑스럽지 싶습니다.



제이크는 사진이 뭔지 모른다. 인간처럼 사진을 보며 달콤쌉사래한 추억에 잠기지도 않는다. 젊을 때에 비해서 늙더니 추레해졌다느니 하는 말도 듣지 않는다. 개는 늙어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니까. (142쪽)



  사진책 《노견 만세》는 책이름처럼 “늙은개 멋져!”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다만, 개는, 늙어서 얌전히 쉬는 개는, 사진이 무엇인지 모를 만해요. 누가 사진을 찍든 말든 대수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는 늙을 적까지 곁에서 숱하게 찍어대는 사진을 지켜보다가 ‘이제 그만 좀 찍을 때 아닌가?’ 하고 여길는지 몰라요. 그러면서도 ‘이 늙은 개인 모습도 찍을 만하다고 여기면 얼마든지 찍어 보쇼?’ 하고 여길는지 모르지요.


  지는 꽃도 피는 꽃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지는 해도 뜨는 해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모든 목숨은 저마다 뜻있으며 사랑스럽습니다. 모든 넋은 저마다 따스하면서 넉넉하고요. 우리 곁에 있는 고운 숨결을 하나하나 짚으며 아침을 맞이합니다. 아이들은 새 아침에 더 씩씩하게 뛰어놉니다. 늙은 개는, 늙은 곁짐승은, 새 아침에도 어제 못지않게 느릿느릿 굼뜬 몸짓일 텐데, 아이들은 ‘늙었다 젊었다 어리다’ 같은 나이가 아닌, 곁에서 함께 지내는 ‘이름’을 부르면서 환하게 노래하리라 생각해요. 노래하며 맞이하는 하루이고, 노래하면서 가꾸는 살림입니다. 2018.6.8.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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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신 - 행복해지기 위한 40가지 레시피
카노 유미코 지음, 임윤정 옮김 / 그책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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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책 읽기 140


거룩한 몸한테 밥 한 그릇 바칩니다
― 채소의 신
 카노 유미코/임윤정 옮김
 그책, 2015.4.13.


“요리는 채소의 생명을 빌려 완성하는 거예요!” 나는 요리교실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33쪽)

직접 만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면 성격도 생활도 변화하고 생각도 긍정적으로 변한다. (51쪽)


  우리 몸은 늘 바뀝니다. 어제하고 오늘은 어제하고 오늘 사이에 먹은 밥에 따라 바뀐다고 해요. 여기에 어제하고 오늘 마신 물하고 바람에 따라 바뀐다고 합니다. 어제하고 오늘 어떤 생각을 했느냐에 따라, 또 어떤 몸짓으로 살았느냐에 따라 바뀐다고 합니다.

  《채소의 신》(카노 유미코/임윤정 옮김, 그책, 2015)은 밥짓기를 다루는 책이면서, 밥에 얽힌 몸하고 삶하고 넋을 함께 들려주는 책입니다. 고기밥을 먹을 적에만 다른 목숨을 먹지 않고, 풀밥을 먹을 적에도 다른 목숨을 먹는다고 찬찬히 밝힙니다. 그리고 풀이든 고기이든 우리는 늘 다른 목숨을 밥이라는 모습으로 받아들이니, 기쁘게 맞아들이고 고맙게 받아들이자고 이야기해요.


레시피를 기록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요리 자체를 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 이 지구에는 형태를 남기지 않은 예술이나 문명이 분명 더 많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역사로 인식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DNA에 새겨지고 후세에 전해져 지구의 기억으로써 확실하게 남아 있다. (88쪽)


  생각해 보면 책이름에 적힌 “채소의 신”이란, 우리한테 밥이 되어 주는 모든 목숨은 하느님이란 뜻이지 싶습니다. 우리가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먹는다면, 우리 몸은 ‘닥치는 대로 들어온 목숨’에 따라서 닥치는 대로 사는 몸짓이 되기 쉽다고 해요. 우리가 먹는 밥을 ‘안 좋은 것’으로 여긴다면 우리 몸도 안 좋은 쪽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채소의 신》을 엮은 분은 손수 밭에서 기른 남새를 손수 손질해서 손수 밥을 지을 적에 가장 맛날 뿐 아니라, 몸도 이러한 밥을 가장 반긴다고 히야이해요. 손수 기른 남새를 쓸 수 없을 때에는, 또 남이 기른 남새 가운데 농약이나 비료를 잔뜩 친 남새를 써야 할 때에는, 손수 기른 남새보다 더 마음을 쏟고 사랑을 담아서 밥을 지으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가끔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친 채소를 사용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무농약 채소보다 더 사랑을 담아 요리를 하려고 신경을 쓴다. (181쪽)

요리를 마무리할 때는 양념을 넣어 간을 맞춘 후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로 아름다운 빛과 함께 사랑의 향신료를 듬뿍 뿌려줄 것을 권한다. 사랑은 채소의 영양이나 맛처럼 사람이 정해 놓은 지식이나 감각을 넘어선 곳에서 마법을 부린다. (183쪽)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옛말이 있어요. 미워 보이는 아이한테 더 사랑스레 다가선다는 뜻이에요. 미워 보이는 아이일수록 사랑을 덜 받은 아이인 만큼, 우리가 더 사랑스레 다가서고 아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손수 지은 남새가 아닌, 비료하고 농약에 찌든 남새라면 더 사랑을 담아 밥을 지을 적에 우리 몸이 반기리라 느껴요. 이를테면 라면을 먹거나 햄버거를 먹을 적에도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 우리 몸에 다르게 스며들겠지요. 손수 지어서 살뜰히 차린 밥상이라지만, 즐겁지 않거나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라면 우리 몸은 이 밥을 반기기 어려울 테고요. 


“채소 하나하나, 저마다 갖고 있는 매력은 말로는 다 설명하지 못할 만큼 차고 넘칩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매력을 아직 다 알지 못할 거예요.” (143쪽)

초등학생 시절, 눈길 닿는 곳마다 논밭이 펼쳐지는 풍경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었다. 봄이 되면 분홍색의 연꽃 밭이 펼쳐졌고 여름이면 초록색 융단처럼 변했다가 가을에는 이삭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새해가 되면 수확한 쌀로 떡을 만들고 짚은 새끼줄로 엮어서 대문에 걸어두었다. (173쪽)


  남새 하나를 고이 여겨 살뜰히 다루어 밥 한 그릇을 짓고자 하는 분은 우리한테 더 나은 밥차림이나 더 멋진 밥차림이나 더 좋은 밥차림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책 《채소의 신》에는 밥차림 사진이나 그림이 하나도 없어요. 오직 글로만 밥차림을 이야기합니다.

  덧붙여 밥짓기를 배우기 앞서 ‘밥을 왜 짓는가’, ‘밥을 왜 먹는가’, ‘밥을 누구하고 먹는가’, ‘밥을 먹고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려는가’, ‘밥이 되어 주는 풀이나 고기란 무엇인가’, ‘밥을 짓는 사람을 어떻게 마주하는가’ 같은 대목에 더 마음을 기울여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채소님’을 먹는 우리 누구나 ‘사람님’이 될 수 있기를, 풀님을 먹든 고기님을 먹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님이 되기를 바라는구나 싶어요.


사람의 몸은 본래 신전 같은 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의 영혼은 신성해서 우주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우리들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신성한 신전에 공물을 바치는 것과 같다. (189쪽)


  밥을 지어 밥상을 차린 다음 아이들하고 둘러앉습니다. 아이들한테 말을 겁니다. “우리가 숟가락을 쥐어 뜨는 이 한 술은 우리 몸이 된단다. 웃으며 먹는 밥은 우리한테 웃음이 되고, 노래하는 마음으로 먹는 밥은 우리한테 노래가 된단다. 우리는 오늘 어떤 밥을 먹을까? 우리는 오늘 어떤 밥을 먹으면서 우리 몸을 어떻게 새로 바꾸는 하루를 누릴까?”

  《채소의 신》을 쓴 분이 책끝에 적은 말을 되새깁니다. 우리가 밥을 먹는 몸짓이란, 거룩한 하느님인 우리 몸한테 사랑을 바치는 일이라고 말이지요. 2018.5.29.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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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집에 관한 거의 모든 것 - 흙건축가 황혜주 교수의 단단한 집 짓기
황혜주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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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41


흙으로 집을 짓는 마음 배우기
― 흙집에 관한 거의 모든 것
 황혜주
 행성B, 2017.12.22.


외국 학자들에게 한국사람들이 아파트에 사는 모습은 미스터리입니다. 한국처럼 경제 규모가 큰 나라에서 왜 아파트에 사느냐는 겁니다. 외국 학자들에게 강남 아파트를 보여주며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라고 하면 ‘이상한데?’ 합니다. (23쪽)


  흙집짓기를 건축학으로 풀어내어 널리 나누는 길을 걷는 황혜주 님은 《흙집에 관한 거의 모든 것》(황혜주, 행성B, 2017)이라는 책을 선보입니다. 이 책은 흙집을 어떻게 짓느냐 하는 이야기도 다루지만, 이보다는 흙집을 어떤 마음으로 짓느냐 하는 이야기를 두드러지게 다룹니다. 흙집을 지을 적에는 무엇보다 흙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하고, 흙을 마음으로 아낄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황혜주 님은 처음에는 콘크리트를 살피는 배움길을 걸었다는데, 아이가 태어난 뒤에 어느 날 마음이 확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녁이 다루는 콘크리트는 아이한테 좋을 수 없는 줄 처음으로 느꼈다지요. 그동안 콘크리트가 사람한테 안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건축재료 가운데 하나로만 여겼다면, 아이가 찾아온 뒤에는 아이하고 함께 생각하고 만지고 살피면서 곁에 둘 수 있는 건축재료를 찾아서 배움길을 걸어야겠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마당이라고 하는 중요한 것이 아파트에는 빠져 있습니다. 아파트는 원래 출발 자체가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집의 가장 중요한 기능―먹고 자고 씻고―만 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2쪽)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장점 이외에도 미시적으로는 우리 몸에 좋습니다. 탈취도 해 주고, 냄새도 좋고, 습기도 조절해 주고, 원적외선도 많이 나옵니다 … 그런데 이렇게 좋은 재료인 흙을 왜 안 쓸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아직도 흙을 과거의 재료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41쪽)


  《흙집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은 두 갈래 이야기를 다룹니다. 첫째는 ‘흙을 제대로 알자’입니다. 243쪽 책에서 155쪽을 이 이야기로 갈무리합니다. 흙이 무엇이고 흙이 이 별에서 어떤 발자취로 흘러온 줄 모르고는 섣불리 흙집을 짓지 않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흙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내고서야 비로소 흙집을 어떻게 지으면 되는가를 사진을 알맞게 넣어서 보여줍니다.

  어느 모로 보면 굳이 앞쪽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도 되리라 여길 수 있습니다. 흙집짓기를 바라는 이로서는 ‘흙이란 무엇인가를 배우기’가 귀찮거나 따분할 수 있어요. 이를테면 사람들이 집을 빌리거나 살 적에 ‘콘크리트란 무엇인가’를 배우지는 않기 마련입니다. ‘철근은 무엇인가’를 배운다거나 집에 쓴 온갖 건축재료를 하나하나 따지거나 배우는 사람은 드물어요.


1년에 집 한 채를 멋지게 짓는 사람하고 한 달에 몇 채씩 막 찍어내는 사람하고 누가 더 잘 지을까요? 이건 재능의 문제가 아닙니다. (53쪽)

금은보석이 귀하다고 얘기하지만, 사람은 바람, 햇빛, 어머니 같은 존재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놓치며 살고 있습니다. (55쪽)


  아이를 둔 어버이라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아이는 으레 맨발로 뛰어놀고 싶습니다. 아기는 으레 맨몸으로 기어다니면서 놀고 싶습니다. 자, 이 아이들을 콘크리트 바닥에서 맨발이나 맨몸으로 뒹굴도록 둘 만할까요? 아이들이 흙바닥에서 맨발이나 맨몸으로 뒹굴도록 두면 어떨까요? 나무로 짠 바닥에서 아이들이 맨발이나 맨몸으로 뒹굴면 어떠한가요?

  아스팔트를 깐 길바닥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기를 바랄 어버이가 있을까요?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아스팔트 바닥을 맨발로 다니면 다치기 쉽습니다. 이와 달리 흙바닥에서는 넘어져도 무릎이 까지는 일이 없습니다. 도시에서 아이들은 양말에 두꺼운 신을 꼭 챙겨서 돌아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숲이라든지 흙마당에서는 양말도 신도 홀가분하게 벗고서 돌아다니거나 놀 만해요.


바깥에 있는 공기가 흙벽을 타고 들어온다기보다 실내 공기가 흙 속에 들어가서 정화되어 나옵니다. 그래서 표면 부분에 흙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73쪽)

시멘트 같은 것은 이론상으로 100여 년 정도밖에 가지 못하는 데 반해서 흙집은 이론상으로 만 년 이상 가도 문제가 없거든요. (74쪽)


  우리는 누구나 집에서 지냅니다. 밤에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지어 먹습니다. 집에서 잠만 자더라도 집이라는 곳은 아늑해야 합니다. 아늑한 집일 적에는 잠만 자고 바로 나가야 하더라도 참으로 포근하면서 즐거운 터전이 됩니다. 《흙집에 관한 거의 모든 것》 같은 책을 흙집짓기를 바라는 어른뿐 아니라, 무럭무럭 자라는 푸름이도 함께 읽으면 좋겠구나 싶습니다. 앞으로 어떤 꿈을 이루도록 나아가면 즐거울까 하고 헤아리는 길에 ‘먹고 자고 입는’ 살림살이도 함께 살피며 배우면 좋겠어요. 즐거운 우리 집에서 즐겁게 꿈을 키웁니다. 2018.5.3.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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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스케, 아스파라거스는 잘 자라요? - 그림 그리는 농부
오치 다이스케 지음, 노인향 옮김 / 자연과생태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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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205


흙 만지고 그림 그리며 개구리랑 동무하는
― 다이스케, 아스파라거스는 잘 자라요?
 오치 다이스케/노인향 옮김
 자연과생태, 2018.4.23.


“매일 아스파라거스를 키우니 형도 이제 프로네.” 그 말에 기쁘면서도 쑥스러웠다. 칭찬을 받으면 괜히 쑥스러워진다. 게다가 아스파라거스는 내가 키우는 게 아니라 알아서 자라니까. (12쪽)


  요 며칠 집안에 쑥내음이 물씬 흐릅니다. 그런데 이 쑥내음은 들이나 밭에서 뜯은 쑥내음하고 달라요. 부침개나 버무리를 하는 쑥내음하고도 다릅니다. 바로 차로 끓여서 쑥내음입니다.

  고흥살림 여덟 해가 되는 올봄 우리 집 마당이나 뒤꼍에서 자라는 쑥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어요. 차를 으레 사다가 마셨습니다만, 우리 집에 흐드러지는 쑥을 뜯어서 말리고 덖어 ‘우리 집 쑥차’를 마실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큰아이하고 바지런히 쑥을 뜯었습니다. 여러 날 처마 밑 그늘에서 말렸어요. 이러고서 스텐웍으로 말린쑥을 덖었지요. 초시계를 앞에 놓고서 90초를 헤아리면서 아홉 벌 덖기를 했습니다.

  커다란 솥이 아닌 28센티미터 스텐웍으로 덖자니 오래 걸렸는데, 덖어서 뜨거운 쑥을 두 아이가 바지런히 뒤집어 주어 한 시간 반이 지나서 드디어 끝. 그리고 이 쑥차를 물을 끓여서 살짝 식힌 뒤 넣으니 온 집안에 새롭게 향긋한 냄새가 퍼집니다.


지식이 부족하고 요령도 없어 일하는 속도는 더뎠지만 친구와 함께했기에 즐거웠고 과정 하나하나에 내 생각을 담을 수 있어서 뿌듯했다. (16쪽)

농사를 시작했을 무렵, 서둘러 괭이질하던 나를 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농사는 천천히 하는 거야.” (31쪽)


  《다이스케, 아스파라거스는 잘 자라요?》(오치 다이스케/노인향 옮김, 자연과생태, 2018)를 읽으면서 우리 집 쑥차를 마십니다. 우리 집 쑥차 내음하고 맛을 누리고 보니, 사월비가 그치면 여린 쑥을 또 신나게 뜯어서 쑥차를 더 덖어야겠다고 느낍니다. 아스파라거스를 키우면서 그림을 그리는 일본 젊은 흙지기처럼, 우리 살림살이도 흙하고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면서 글노래를 길어올리면 더 재미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스파라거스를 가꾸면서 얼마나 자랐는가를 살피고, 알맞게 솎아서 내다 파는 흙지기 손은 늘 아스파라거스 냄새가 나겠지요. 흙내음하고 아스파라거스 냄새가 섞인 손으로 붓을 쥐어 그림을 그리면, 젊은 흙지기이자 그림지기가 붓을 놀려서 태어나는 그림에도 아스파라거스 냄새에 흙냄새가 밸 테고요.


자연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지려는 노력은 내게도 생기를 준다. 밥처럼 금방 내 배를 부르게 하지는 않지만 코로 들이마신 공기가 폐를 지나 온몸으로 돌 듯 서서히 나를 건강하게 한다. (32쪽)

노미쓰 씨는 자연과 하나되어 채소를 키운다. 산으로 둘러싸이고 물이 지척에 흐르는 밭에서 맑은 날이든 비 내리는 날이든 하늘과 흙을 느끼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일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다 풍요롭고 편안해졌다. (37쪽)


  젊은 흙지기는 흙을 만지기 앞서까지 흙일을 잘 몰랐다고 합니다. 어깨너머로 이녁 아버지를 바라보며 살던 무렵에는 어렴풋하게 헤아렸겠지요. 손수 흙을 만지고, 괭이를 쥐고, 푸성귀를 건사하면서, 비로소 일손을 깨닫고, 흙내음하고 풀내음을 몸으로 맞아들일 뿐 아니라, 풀살림을 새롭게 배웠으리라 느껴요. 이러면서 그림을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까지 새로 북돋았지 싶습니다.

  그림을 좋아해서 그림만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는 손하고, 풀을 함께 좋아하면서 아침에는 풀을 만지고 저녁에는 붓을 쥐는 손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는 사뭇 다르지 싶어요. 비가 오는 날 비를 느끼고, 햇볕이 내리쬐는 날 햇볕을 느끼며, 바람이 부는 날 바람을 느끼는 손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그림으로 자라날 테고요.


할아버지가 되어도 이 에너지나 마음을 간직하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지금처럼 두근두근하며 살고 싶다. (88쪽)

농사를 짓느라 그림 그리는 시간이 없어 괴롭다는 내 말에 선생님은 작품을 만들 때는 시간보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솔직하게 반응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100쪽)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청와대에 텃밭이 있어 나랏일을 건사하다가 쉬는 틈에 호미를 쥐는 대통령이 있다면 하고요. 군청에 텃논이 있어 군청일을 다스리다가 쉬는 결에 삽을 들어 물길을 잡는 군수가 있다면 하고요.

  그리고 더 생각합니다. 새벽이나 아침으로는 흙을 만지고, 낮이나 저녁에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해가 진 밤에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하루를 우리 모두 누릴 수 있으면 어떠할까 하고요. 아무리 바쁘더라도 집집마다 텃밭을 돌볼 만큼 자그마한 마당이 있으면 어떠할까 하고요. 커다란 도시에 있는 커다란 건물에 깃든 회사도 주차장만 곁에 두지 말고 텃밭이나 꽃밭을 함께 곁에 두고서, 하루에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흙을 만지면서 숨을 돌려 보면 어떠할까 하고요.

  아주 작은 푸성귀 한 줌을 손수 기르면서 책상맡에 앉아 일을 할 때에는 누구나 마음이 달라질 만하지 싶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도 하루에 삼십 분쯤 텃밭이나 꽃밭을 돌보는 틈을 누리면 배움길이 한결 새로울 만할 테고요.

  어쩌면 느긋한 마음을 흙한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어쩌면 싱그러운 바람 한 줄기를 하늘한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어쩌면 따뜻하며 고마운 햇볕 한 줌을 새삼스레 배울 수 있어요.


우거진 나무 사이를 걷다가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잎에는 초록색 잎만 있는 게 아니다. 약간 노란빛을 띠는 연두색 잎도 있고, 빛이 닿아 희끄무레한 잎도 있고, 그림자가 드리워 깊어진 갈색 잎도 있다. (108쪽)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종이를 펼치면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던 이미지로 가득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태어난 이런 스케치는 언젠가 그릴 그림 씨앗이 된다.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내가 얻는 씨앗은 식물 씨앗만이 아니었다. (117쪽)


  흙일을 끝내고 종이를 펼치는 밤이 되면 여느 때에는, 그러니까 흙일을 하지 않던 지난날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가 가득 펼쳐진다는 흙지기이자 그림지기입니다. 아스파라거스를 가꾸며 풀씨를 얻기도 하고, 아스파라거스랑 흙이랑 바람이랑 비랑 하늘이랑 해한테서 ‘그림으로 그릴 마음 씨앗’을 함께 얻는다는 흙지기이자 그림지기예요.

  나뭇잎을 새로 가리는 눈을 키웁니다. 나무마다 풀잎 빛깔이 다른 줄 깨닫습니다. 철마다 풀잎 빛깔이 또 다른 줄 알아차립니다. 더구나 아침저녁으로 풀잎 빛깔이 조금씩 다른 줄 느끼기까지 합니다. 해가 어느 만큼 드느냐에 따라 같은 나무나 풀이라도 잎빛이 또 다른 줄 헤아립니다.

  이리하여 그림으로 담는 모든 삶에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흐를 만하구나 하고 찬찬히 배웁니다.


몸도 마음도 쉴 틈이 없지만 이런 일상이 나쁘지 않다. 개구리나 메뚜기와도 더 친해진 것 같고. (169쪽)


  개구리하고 차츰 가까이 지내면서 개구리 마음을 그림으로 옮겨 봅니다. 메뚜기하고 조금씩 가까이 지내면서 메뚜기 마음을 그림으로 담아 봅니다.

  무당벌레하고 꾸준히 가까이 지내면 무당벌레 마음도 그림으로 빚겠지요. 나비하고 가까이 지내면서, 사마귀나 딱정벌레하고 가까이 지내면서, 거미하고 참새랑 가까이 지내면서, 차근차근 새로운 마음을 그림으로 얹어 볼 만합니다.

  우리 곁에는 누가 있을까요? 우리 둘레에는 어떤 숨결이 흐를까요? 우리는 이웃을 어떠한 눈으로 마주하면서 하루를 지을까요?

  《다이스케, 아스파라거스는 잘 자라요?》는 상냥한 눈길, 상냥한 손길, 상냥한 마음길을 흙한테서 배워 그림으로 옮기는 기쁨을 누리는 젊은이 삶을 부드러이 밝힙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일본 젊은 흙지기+그림지기가 빚은 이 책은 한국에서 먼저 나왔다고 합니다. 아직 일본에서는 이 글·그림꾸러미가 책으로 안 나왔다는군요. 이 대목도 참 재미있습니다. 2018.4.2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숲책)

* 이 글에 붙이는 그림은 책에 실린 그림이고, 자연과생태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맙게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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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지어요
김혜경 지음 / 김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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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44


물맛·바람맛 따라 다른 밥맛을 잊으면
― 밥을 지어요
 김혜경
 김영사, 2018.2.9.


내가 직접 만든 음식을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선물할 음식을 직접 만든다는 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없이는 좀처럼 하기 힘들다. (174쪽)


  날마다 밥을 지어서 먹는 살림을 누립니다. 우리 집 아이들마냥 어릴 적에는 으레 어머니가 차려 주시는 밥을 먹는 하루였고, 오늘 우리 집 아이들을 거느리는 어버이로서는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어서 차리는 하루입니다.

  아무리 고되거나 바쁘더라도 아이들 끼니를 건너뛸 수 없는 노릇입니다. 어버이가 다른 일을 하느라 혼자 끼니를 건너뛰기는 하더라도 아이들은 밥때를 챙겨 줍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 흐름이 조금씩 바뀝니다. 아이 스스로 밥상을 챙기도록 이끕니다. 쌀을 아이들이 손수 씻어서 불리고는, 스스로 밥물을 맞추어 끓이도록 이릅니다. 아직 아이들이 국이나 찌개를 끓이지는 못하나, 아이들을 불러서 국물간을 보라 하고, 밑반찬이나 김치를 할 적에 으레 옆에 앉히거나 세우니, 조금씩 어깨너머로 익히는 칼놀림이나 도무질도 있겠지요.


아파트로 이사한 뒤로 엄마는 김장 때마다 뭔가 못마땅해하셨다. 동치미 맛이 제대로 안 난다며 물 탓을 하셨다. 전에는 약수를 길어다가 김장을 했는데 그 물을 쓰지 않으니 맛이 안 난다는 것이었다. (22쪽)

물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약수에 따라 밥맛은 물론 밥의 색도 다르다. (35쪽)


  《밥을 지어요》(김혜경, 김영사, 2018)를 읽습니다. 이 책은 밥책일 수 있습니다. 밥짓기를 어떻게 즐거이 해 볼 만한가를 단출하게 알려주어요. 사진하고 길잡이글을 알맞게 넣습니다. 그리고 밥차림 이야기 사이사이에 ‘밥을 지어서 먹는 하루’를 돌아보는 이야기를 넣습니다.

  우리는 밥만 먹는 사람이 아니기에, 밥책이라 하더라도 밥짓기 길잡이만 다루기보다는 ‘밥을 짓는 마음’이나 ‘밥을 나누는 마음’이나 ‘밥을 지어온 길’ 같은 곁이야기를 나란히 다루면 한결 재미있구나 싶어요. 밥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쓴이 삶자락을 돌아보면서 오늘 내가 가꾸는 밥살림을 돌아볼 만해요.


혼밥을 차리기 위해 일부러 장을 볼 필요까지는 없다. 사실 장을 보고 나면 너무 피곤해져서 밥상을 차릴 기력도 없다. 집에 있는 자료와 늘 쟁여두는 밑반찬만으로도 충분히 근사한 나만의 밥상을 차릴 수 있다. (84쪽)

밥상 차리기는 종합예술에 가깝다. 먼저 계절, 날씨, 가족의 건강 상태와 취향, 근래의 식단, 냉장고 속의 재고 상태까지 고려한 뒤 치밀한 전략하에 통찰력을 갖고 오늘의 식단을 구상한다. (92쪽)


  《밥을 지어요》를 쓴 분은 물맛을 제대로 느낀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합니다. 물맛이 좋지 않으면 간장이며 동치미를 담글 수 없고, 물맛이 안 좋으면 밥맛도 좋기 어렵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저도 물맛을 느낀 지 고작 열 몇 해입니다. 수돗물하고 샘물하고 냇물이 저마다 맛이 다른 줄은 알았으나 도시에서 살 적에 그냥 수돗물로 밥을 지어 먹었을 뿐이에요. 곁님을 만나고서 ‘수돗물로 지은 밥은 너무 맛이 없고 냄새가 난다’고 하는 말을 듣고서야 코를 킁킁이면서 돌아보았어요. 도시살림으로서는 스스로 무디어 버리는 셈 아닌가 하고. 아니 도시살림이든 시골살림이든 물맛 밥맛 풀맛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느끼지 못한다면, 밥살림을 한다는 말을 못 꺼내겠구나 하고요.

  예부터 장맛은 물맛뿐 아니라 ‘바람맛’이라고 했습니다. 어디에서 어떤 바람이 드나드는 결에 말리고 삭히는가에 따라 장맛이 달라진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장맛뿐 아니라 벼맛도 이와 같을 테지요. 고장마다 물이며 바람이 다를 테니 벼가 자라면서 품는 맛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나물이나 열매도 이와 같아요.

  고속도로가 가로지르는 곁에서 자라는 벼하고, 자동차 지날 길 없는 두멧자락 논에서 자라는 벼는 바람맛이며 물맛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농약을 머금은 벼하고, 아이들 노랫소리를 머금은 벼도 맛이 다를 테고요.


“올해는 꼭 사먹어야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는 으레 다짐한다. 목이 아프니까, 이제 허리도 아프고, 손목은 또 어떤가? 식구도 얼마 없는데 남편까지 점점 바빠지질 않나? 작년에도 남았으니, 겨우 요만큼 할 거면 차라리 사먹는 게 싸지. 김장하지 않을 이유는 이렇게 해마다 늘어가지만 나는 또 어느새 배추와 고춧가루를 주문하고 있다. (198쪽)


  《밥을 지어요》라는 책 하나는 흔하거나 수수한 이야기에다가 흔하거나 수수한 밥차림을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흔하거나 수수한 밥살림 이야기야말로 우리가 늘 잊거나 잃어버리는 무척 커다란 이야기일 수 있어요.

  날마다 밥을 먹는 우리는 물하고 바람을 함께 먹는 삶이에요. 풀하고 흙도 함께 먹지요. 나비 날갯짓하고 제비 날갯짓이며 개구리 노랫소리도 함께 먹을 테고요. 우리는 밥 한 술이나 국 한 술에서 얼마나 너른 물이며 바람이며 흙이며 풀에 서린 맛을 느낄까요? 끼니마다 밥은 먹지만, 마음으로 먹으며 삶을 살찌우는 즐거움을 잊는다면, 밥을 짓는 사람 손길뿐 아니라, 밥이 되어 준 이 땅 뭇목숨에 담긴 사랑도 잊는 셈일 수 있습니다. 2018.4.1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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