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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온다
실러 키칭거 / 하늘출판사 / 1995년 6월
평점 :
절판




 아이한테 물려줄 ‘성교육 책’
 [푸른책과 함께 살기 78] 실러 키칭거, 《아기가 온다》(하늘출판사,1995)



- 책이름 : 아기가 온다
- 글 : 실러 키칭거
- 옮긴이 : 강영숙
- 펴낸곳 : 하늘출판사 (1995.6.26.)



 (1) 어떻게 살아가면서


 둘째를 낳아 면사무소에 들러 출생신고를 합니다. 첫째를 집에서 낳으려다가 뜻을 못 이루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가야 했습니다. 이번 둘째 때에도 집에서 낳으려다가 뜻을 못 이루며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갔습니다. 옆지기 몸이 여느 사람들만큼 못 될 뿐더러 몹시 아프고 힘든 나머지 병·의학 손길을 타고 맙니다.

 흔히 생각하기에 몸이 여리거나 아프거나 힘들면 병원이나 의학 손길을 타야 하지 않느냐 할 테지만, 몸이 여리거나 아프거나 힘들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는 안 되고 집에서 다스려야 합니다. 몸이 받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자연스러운 시골살이에 몸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궁금해 하지 않고 그냥 맞히는 예방주사인데, 이 예방주사는 몸이 아프거나 여린 사람한테 맞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방주사란 병원균을 화학조합으로 만들어서 몸에 주사바늘을 꽂아 집어넣거든요. 몸이 아프거나 여린 사람은 예방주사를 맞으면 곧바로 이 병원균 때문에 몸이 무너집니다.

 아기나 어린이한테 예방주사를 맞히는 일이란 대단히 아슬아슬합니다. 왜냐하면 아기나 어린이는 어떠한 몸인지 아직 제대로 알 수 없거든요. 어떠한 밥이 몸에 받고 어떠한 밥이 몸에 안 받는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무엇에 두드러기가 난다든지, 어떠한 몸인가를 또렷하게 알 수 없어요. 웬만큼 자라고 난 뒤라면 제법 알 테지만, 아기와 퍽 어린 아이는 알기 어려울 뿐더러 잘못 알 수 있어요. 그렇지만, 병·의학에서는 이렇게 아기와 어린이를 살피지 않습니다. 병·의학은 숫자와 통계와 보고서에 따라 모든 사람을 똑같이 다룹니다. 얼핏 보면 평등한 듯하지만 하나도 평등한 일이 아니에요. 어린이와 어른은 건널목을 건너는 품이 다르고, 바퀴걸상에 앉은 사람과 두 다리로 튼튼히 선 사람이 걷는 빠르기가 달라요. 참평등이란 사람들마다 다 다른 삶과 몸을 헤아리면서 다 다르게 돌보거나 어깨동무하는 길입니다.


.. 태아가 아직 콩알 크기 정도밖에 안 되는 임신 초기 6∼7주째에도, 이미 태아 신체의 주요 기관과 뇌는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 당신의 몸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습니다. 그 기적을 정말로 이해하고 실감하는 사람은 당신 이외에는 없습니다 … 임신은 단순히 출산만을 기다리는 기간이 아닙니다. 두 사람의 가치관을 키우며, 그것으로 자기들의 아기에게 어떤 세계를 만들어 줄 것인가, 하고 계획하는 기간입니다 … 여성은 아기가 정말로 자기 아기라는 것을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 출산 준비라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나 몸을 움직이는 법을 익히는 것만이 아니고, 두 사람이 협력해서 하나의 공동작업을 시작함을 의미합니다 … 예정일 당일에 태어나는 아기는 전체의 5퍼센트에 불과한 정도입니다 ..  (30, 39, 40, 175, 176, 244쪽)


 데즈카 오사무 님이 그린 만화책 《블랙잭》이 있습니다. 꽤 긴 작품인 《블랙잭》인데, 외과의사 블랙잭은 외과수술로 아픈 자리를 고치는 일을 하지만, 약을 아무렇게나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다만, 항생제나 약을 꽤 많이 쓰기는 하는데, 항생제를 쓰든 약을 쓰든 이러한 항생제와 약이 어떠한 성분이며 어떻게 부작용이 있으리라고 훤히 알면서 알맞게 다룹니다.

 만화책 이야기와 우리 삶 이야기는 다르다 하겠지요. 그러나, 한국땅 의사 가운데 항생제를 쓰거나 다루면서 이 항생제가 어떤 성분으로 이루어졌으며 누구한테 얼마만큼 어떻게 써야 하는가까지 낱낱이 살피는 분은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한테 항생제를 놓거나 예방주사를 놓는다면서, 이 항생제와 예방주사가 아기 몸에 어떻게 될는지를 살피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알쏭달쏭합니다.

 아기 낳는 어머니한테 항생제를 놓거나 무슨무슨 약을 쓰면 고스란히 엄마젖까지 이러한 약 기운이 스며듭니다. 아기 밴 어머니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 술 기운과 담배 기운이 아기한테 스며든다고 하는데, 항생제와 약 기운이 아기한테 스며들지 않을 까닭이 없어요. 엄마젖을 먹고 자랄 아기를 헤아린다면, 병원에서 애 어머니한테 함부로 약을 써서는 안 되며, 쓸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몹시 살피며 조금만 써야 합니다. 아기를 배었을 때에 감기약을 먹어도 안 되고, 진통제를 먹어도 안 된다 하잖아요. 아기를 낳고 나서도 다를 수 없어요.

 내 삶자리에서 돌아볼 때에도 똑같습니다. 약을 친 포도와 능금과 딸기하고, 약을 안 친 포도와 능금과 딸기가 있을 때에, 어느 포도와 능금과 딸기에 손이 갈는지요. 논둑과 밭고랑에 풀약을 치면 어떻게 될까요. 왜 무농약과 저농약과 유기농을 이야기할까요. 왜 오늘날 과자와 라면마다 엠에스지를 안 넣는다 밝히고 화학조미료를 덜 쓴다고 떠벌일까요. 과자와 라면을 비롯해 소시지나 가루젖에 화학성분이 깃들면 나쁘다고 하는 만큼, 사료와 항생제로 자란 소나 닭이나 돼지한테서 얻는 우유나 달걀이나 세겹살이라 한다면 사람들 몸에 그리 도움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까닭이란 무엇일까요.


.. 아기는 호흡을 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데, 당신의 태내에서 실제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혈액으로부터 산소를 받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것입니다 … 대부분의 아기가 7개월쯤에 들어서면은 몸을 상하 180도로 회전시킴으로서 자신이 보다 안전한 상태에 놓이도록 합니다 … 임신 후기에 들어서면 아기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대가 더 분명해집니다 … 그때까지 성장이 좋지 않았던 아기도 임신 후기에 어머니가 누워 있는 시간을 늘여 휴식을 통한 안정을 되찾으면(오후에 세 시간씩 컴컴한 방에 누워 있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반드시 성장이 좋아집니다 … 건강관리는 계속 성장하는 아기에게 가능한 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가장 건강하고 에너지가 충만된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 케이크나 과자류 등은 뱃속의 아기 건강을 위해서도 거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홍차나 커피도 설탕 없이 즐기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십시오 … 임신중, 당신의 몸은 최소한의 지방만을 필요로 합니다. 가능한 한 지방분을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 우유는 임신한 여성에게 권할 만한 식품이지만, 특별히 단백질이 부족한 경우가 아니라면 하루에 0.5리터 이상 마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량의 우유를 마시는 것은 자칫 비만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포만감 때문에 당신과 아기에게 필요한 다른 식품을 섭취할 수 없게 합니다 … 필요한 비타민은 주로 음식물에서 섭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75, 88, 93, 97, 100쪽)


 첫째를 낳아 함께 살아오면서, 이제 둘째를 낳고 함께 살아가면서, 어버이로서 내 삶을 어떻게 다스리거나 살펴야 아름다우면서 즐거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네 식구로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맞이하거나 받아들일 때에 기쁘면서 착할까 하고 헤아립니다.

 구급차로 찾아가 둘째를 낳은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는 우리한테 종이기저귀를 사 오라고 처방전을 씁니다. 갓난아기방에 아기를 가두면서 종이기저귀를 채우고 물티슈로 밑을 닦는답니다.

 병원 의사나 간호사부터 종이기저귀 성분이 어떠하고, 종이기저귀를 어떻게 만들었으며, 이 종이기저귀가 쓰레기가 되어 버려질 때에 이 땅이 어떻게 되는데다가, 나중에 아이를 비롯해 어른들한테까지 어떻게 돌아오는가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아니, 알지 못하며, 느끼지 못합니다. 물티슈는 무슨 성분일까요. 물티슈는 사람들 몸에 어떻게 스며들까요. ‘물에 적신 수건’이 아닌 물티슈는 어떠한 물을 어떠한 약품으로 다룬 화학종이일까요.

 손빨래를 못하겠으면 기계빨래를 하면 되는데, 왜 병원 간호사부터 어떤 기저귀를 쓰고 어떤 수건을 써야 하는조차 헤아리지 못할까요. 병원 간호사는 “집에 가셔서 천기저귀를 쓰시면 돼요.” 하고 말합니다. 집에 가서 천기저귀를 쓰면 된다는 이야기라면, 병원부터 천기저귀를 써야 하는 셈입니다. ‘병원은 아기를 돌보는 곳’이 아니니까 굳이 천기저귀를 안 쓰겠다 할는지 모르지만, ‘병원이 아기 몸을 걱정하는 곳’이라 한다면 종이기저귀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될 뿐더러, 천기저귀를 쓸 때에도 형광물질이 없는 천을 미리 삶아서 써야 하는 줄까지 알아야 합니다. 시골에서 살며 흙에서 거둔 먹을거리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갓 태어난 아기한테 함부로 가루젖을 먹일 수 없습니다.

 곰곰이 돌아볼 하루입니다. 바삐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더욱 곰곰이 되새길 하루입니다. 왜 바쁘고 무엇 때문에 바쁘며 어떻게 바쁜 하루인가를 곱씹을 노릇입니다. 어떻게 살아가며 어떻게 사랑하고픈 하루인가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자가용을 타는 사람은 자가용을 타서 얼마나 더 빨리 더 느긋하게 길을 가는가 모르겠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 얼마나 더 즐겁거나 더 아름다이 삶을 일구는가 모르겠습니다. 얼굴이나 몸매를 가꾸는 사람은 얼굴이나 몸매를 가꾸어 얼마나 더 착하거나 더 참다이 사랑을 꽃피우는가 모르겠습니다.


.. 두 아기가 좁은 뱃속에서 서로를 다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어머니도 있습니다. 확실히 아기들끼리 조금은 맞부딪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기는 각기 양수가 담긴 양막 속에 격리되어, 마치 컵의 물에 떠 있는 코르크 마개처럼 둥둥 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물이 아기를 충격에서 지켜주는 것은 물론, 출산 직전까지 그들의 자유로운 운동을 보장해 줍니다. 임신 후기에 이르면 골반이 요람처럼 아기를 감싸 주므로 아기의 움직임이 한결 둔해진 것처럼 느낄 것입니다 … 건강한 아기는 산소가 부족하면 그때까지 축적되었던 다른 대사기구로 대체하여, 적어도 산소 때문에 악영향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 나갑니다 ..  (95, 345쪽)


 동생을 집으로 맞아들여 첫날을 보내는 첫째가 잘 자다가 새벽나절 잠꼬대를 합니다. 잠꼬대하는 첫째 옆에 누워 가슴을 살살 토닥이면서 소곤소곤 말을 겁니다. “착한 벼리 사름벼리, 예쁜 벼리 사름벼리 …….” 착한 마음으로 예쁜 삶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면서,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어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참말 개구지며 신나게 뛰놀아 곯아떨어진 날에는, 아직 석 돌을 꽉 채우지 못해 밤오줌을 알뜰히 못 가리는 아이인 만큼, 갓난쟁이 오줌기저귀를 때마다 가는 밤나절에 두 차례쯤 첫째를 살며시 안아다가 오줌그릇에 앉혀 쉬를 누이며 밤오줌떼기를 천천히 시켜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누나는 어린 누나대로 착하고 예쁘게 살아가고, 어린 동생은 어린 동생대로 착하고 예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어버이 된 사람부터 착하고 예쁘게 일굴 삶을 헤아리면서 더욱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내 어버이는 내 손을 잡고 길을 걷던 삶이라면, 나는 내 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걷는 삶입니다. 내 아이는 천천히 자라 이윽고 저희 아이를 새롭게 맞아들여 저희 아이 손을 굳게 잡고는 저희 삶을 씩씩하게 걸어가겠지요.

 저마다 고운 길을 찾습니다. 사람마다 고운 사랑을 찾습니다. 목숨마다 고운 넋을 어루만집니다. 이야기가 있는 내 삶과 우리 식구 삶을 따사롭게 어루만집니다.


.. 아기는 살덩어리도, 실물 크기의 인형도 아닙니다. 고통과 기쁨을 느끼는 인간으로서 탄생을 눈앞에 둔 개성 있는 ‘인물’인 것입니다 … 아기는 출산을 위해서 당신과 함께 움직이는 당신의 동지로서, 단순한 승객이 아닌 것입니다 … 머리가 미끄러져 나오면 갑자기 아기는 공간과 공기에 노출됩니다. 어깨와 가슴이 전진하면서 몸 전체가 빠져나오게 되고 폐에 공기가 흘러들어가서 처음으로 폐포가 부풀어오릅니다. 그때까지는 젖은 비닐봉지같이 달라붙어 있던 축축한 폐의 표면이 열리며 아기는 제일성과 함께 이 세상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 질의 산도를 빠져나오는 23센티미터의 여행 도중, 아기는 입과 코를 통해서 폐나 기관지에서 나오는 점액을 흘리면서 나아갑니다. 제왕절개로 태어나는 아기보다 숨을 쉰다는 새로운 작업의 준비를 잘 갖추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 태어난 것은 아기뿐만이 아닙니다. 새로운 가족이 태어난 것입니다 … 아기는 담요에 감싸서 선물처럼 어머니에게 건네야 할 물건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아 주기는 해도 마음 내키는 대로 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355∼357, 360, 370쪽)


 두 밤을 꼬박 보내야 하던 병원에 갇혀 지내던 동안 나와 옆지기와 첫째와 갓난쟁이가 들어야 하는 소리는 기계 움직이는 소리, 사람들 떠들거나 뛰는 소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새 건물 지으며 내는 소리, 텔레비전 소리 들이었습니다. 드디어 멧골집으로 돌아온 오늘 낮부터 듣는 소리는 뻐꾸기 우는 소리, 바람에 나뭇잎 떨리는 소리, 구름이 흐르는 소리, 첫째 아이 손을 잡고 흙을 밟을 때에 풀잎이 서걱대는 소리입니다. 귀가 트이고 눈이 열리며 가슴이 뻥 뚫립니다. 반가이 찾아오신 외할머니하고 둘러앉아 도란도란 밥을 먹습니다.


 (2) 어떻게 사랑하면서


 누구나 사랑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누구나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다만, 썩 좋아하지 않는다든지 그리 내키지 않지만 이끌리거나 휩쓸리기도 하곤 합니다. 때로는, 무섭거나 두려워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기도 합니다. 돈이 없다든지 적게 배운 나머지 내 꿈이나 뜻을 못 이루기도 한답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사랑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다만, 맨 처음부터 맨 나중까지 내가 사랑하는 대로 살아가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처음에는 어수룩하게 휩쓸리거나 뒹굴 수 있습니다. 나중에는 슬프거나 안타까이 휘둘리거나 나뒹굴 수 있어요.

 누구나 사랑하는 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누구나 사랑하는 대로 바라봅니다. 누구나 사랑하는 대로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대로 느끼고 사랑하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아는 만큼 볼 수 없습니다. 살아가는 만큼 보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만큼 볼 뿐입니다. 문화재를 볼 때이든 아기를 볼 때이든 짝꿍을 볼 때이든, 또 책을 읽거나 영화를 즐기거나 매한가지입니다.


.. 당신이 아기를 집에서 낳고 싶어 한다고 합시다. 그 생각을 주치의에게 전달하면 그의 반응이나 사고방식을 알 수 있습니다. 자택에서도 분만을 도와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주치의가 특별히 의학적인 이유를 들어서 거부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임신하기 전에 주치의를 바꾸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 출산할 장소를 선택할 때는, 우선 출산이나 출산 직후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합니다 … 출산 시설을 선택할 시에는 건물이나 설비, 방의 분위기, 식사 메뉴 같은 것보다 의료진과의 진료상담이 가장 중요합니다. 친절한 대응으로 안락한 분위기를 느꼈다거나 혹은 의료진이 늘 바삐 쫓기느라 무뚝뚝했다는 것 등은 병의원을 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유가 될 것입니다 … 현재 대개의 병원에서는 출산 후 아기를 어머니, 아버지와 격리시킵니다. 출산 직후 아기를 안아 볼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든가, 혹은 안아 보지도 못하고 곧 데려가는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병원의 의료진이 갓 태어난 아기와의 시간을 소중히 하는 가족에 대한 배려보다는, 그날에 끝내지 않으면 안 될 그들의 일과를 우선시키기 때문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혼잡한 산부인과 진료실에 들어서면 자기가 마치 아기를 제조하는 오토메이션 공장의 부품이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여성도 적지 않습니다. 단 2분의 진찰 시간을 위해 두 시간을 기다리는 혼잡한 외래에서는 치료법에 대한 질문이나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기분도 사그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  (46, 51, 52, 170쪽)


 사람은 목숨을 먹으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짐승도 목숨을 먹으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풀과 나무 또한 목숨을 먹으면서 목숨을 이어요. 숨이 붙을 때에는 어느 누구라 하더라도 다른 목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목숨은 오직 다른 목숨을 받아들일 때에만 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은 살덩이일 때가 있고 푸성귀일 때가 있습니다. 목숨은 물일 때가 있으며 바람일 때가 있습니다. 목숨은 흙이 되었다가 햇볕이 됩니다.

 사람은 목숨을 선물받으면서 목숨을 선물합니다. 어버이는 나한테 목숨을 선물로 주었고, 어버이로서는 내가 선물과 같은 목숨입니다. 나는 아이한테 목숨을 선물로 주었으며, 아이로서는 내가 선물과 같은 목숨입니다.


.. 골반을 흔드는 운동을 할 때는 등뼈를 단단히 유지하는 자세를 취하여야 합니다. 등뼈가 잘 유지되지 못하면 심하게 휘어져서 임신 후기가 가까워질수록 위험해집니다 … 임신 중 가장 기분 좋은 운동은 등뼈로부터 체중의 부담을 완전히 없애는 포즈입니다. ‘화가 난 고양이의 자세’라 일컫는 이 운동은 두 팔과 두 무릎으로 바닥에 엎드려서 골반을 흔드는 운동입니다 … 임신 중에는 특수한 호르몬의 분비로 장이 이완되어 활동기능이 저하하기 때문에 변비에 걸리기 쉽습니다 … 약에 의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신체에서 휴식이 필요하다고 알려오는 사인으로 받아들이는 게 현명합니다 … 임신 시간 중 처음과 끝의 3개월씩이 가장 지치기가 쉬운 때이므로, 이 시기는 무리하지 말고 가능한 한 휴식을 취하도록 합니다 ..  (128, 134, 138, 141쪽)


 목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요, 푸나무이며, 짐승입니다. 목숨에 따라 맑거나 싱그럽거나 넉넉할 햇볕이며 흙이고 물이자 바람입니다. 목숨이 목숨을 살립니다. 목숨으로 목숨을 잇습니다. 달리기를 잘해도 목숨이고, 두 다리가 잘리거나 처음부터 없어서 그저 누워만 지내더라도 목숨입니다. 갓난아기도 목숨이면서, 할아버지도 목숨입니다. 젊은 아가씨도 목숨인 한편, 젊은 사내도 목숨입니다.

 종이뭉치라 할 만한 책은 목숨이 아니라 여길 수 있습니다만, 종이가 되기까지 나무를 자르고 물을 쓰며 바람과 햇볕과 흙 기운이 깃들기 때문에 종이뭉치라 할 책 또한 얼마든지 목숨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더욱이, 종이뭉치라 하더라도 이 종이뭉치에 사랑과 믿음을 실었으면 얼마든지 목숨값을 하겠지요.


.. (출산은) 단순히 생리학적으로 어떠어떠한 일이 일어나며, 병원에서 어떻게 취급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 어떤 인간으로 어떤 식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를 묻는 것이라고 해야겠지요 … 분만은 매우 강렬한 체험으로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흐름에 맡겨 두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감동하여 열중할 수 있는 체험, 그것이 분만입니다. 분만에는 성공도 실패도 없습니다 … 임신 중에 느끼는 대개의 불안은 자기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서먹서먹한 분위기나 사무적인 대응에 대한 방어 반응에서 일어납니다. 불안에는 어엿한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 여성은 원래 수동적인 환자로서가 아니라, 자기 힘으로 낳는다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  (152, 157, 159, 196쪽)


 아이를 낳는 일이란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면서 살아가려 하느냐는 다짐과 같다고 느낍니다. 아이를 낳으려 한다면 내 짝꿍을 어떻게 사귀며 서로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려 하느냐는 다짐하고 매한가지라고 느낍니다. 아이를 낳을 어버이로 살아가려 한다면 아이 앞에서 어떤 어버이로 지내며 ‘어버이 모습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삶을 배울 아이’ 눈높이에서 내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느껴요.

 스무 살이 넘었대서 어른이 아니고, 혼인을 했대서 어른이 아니며, 아이를 낳았대서 어른이 아니에요. 아이를 둘 낳았거나 셋 낳았으니 더 큰 어른이 아니요, 나이를 더 먹었으니 더 나은 어른이 아니에요. 사람다이 살 때에 어른이고, 사람다이 살지 않으면 어른이 아닙니다. 착하게 살아야 어른이고, 착하게 살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에요. 참다운 삶을 사랑하고, 고운 삶을 아낄 때에 어른입니다. 참답지 않을 뿐더러 곱지 않게 살아간다면 어른이라 할 수 없어요.


.. 문제는 (병원에서 아기를 낳을 때에 회음부를 자른 다음) 봉합한 뒤의 통증이 아닙니다. 모두가 정말로 걱정하는 것은 성기를 자르는 행위 그 자체인 것입니다 … 남성 중에는 자기 아내를 남에게 보여주기 아까운 물건으로서, 원하는 대로 섹스를 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혹은 사회적인 조력자로서 보이지 않게 손에 쥐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한 남성은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나 아기를 갖게 된 것은 매우 기쁘지만, 배우자인 여성의 관심이 뱃속의 아기에게 향하면서 그로부터 떠나는 것은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 장시간에 걸쳐 어른에게 고주파를 들려주면 청각 장애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것처럼, 비록 짧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초음파가 태아의 청각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  (160, 166, 232쪽)


 둘째를 낳은 병원에서는 아기를 숫자로 따지기만 했습니다. 무슨무슨 검사를 하고 무슨무슨 수치를 잽니다. 무슨무슨 항생제를 놓아야 한다 말하고, 무슨무슨 처치를 며칠에 걸쳐 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어머니 품을 가장 좋아할 뿐 아니라, 어머니 품에 안겨 가장 느긋한 줄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때맞추어 아기를 씻기면 될 일이 아니라, 가장 포근하면서 따사롭고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아기를 예쁘게 씻겨야 하는 줄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병원 의사나 간호사는 ‘다 다른 어버이한테서 태어난 다 다른 고운 목숨’인 아기가 아니라, 날마다 똑같이 맞아들이는 ‘환자’로 아기를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고운 목숨으로 아기를 바라본다면, 아기 스스로 기운을 내어 바깥누리로 나오라고 북돋우겠지요. 아기 스스로 기운을 내어 작은 입을 쪼물거리며 어머니 젖꼭지를 빨라며 북돋울 테지요. 아기 스스로 기운차게 똥을 누고 오줌을 누라며 북돋웁니다.

 병원에서 패혈증을 들면서 한 주 더 입원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옆지기와 나는 아이한테는 항생제와 병원 시설이 아닌 따스한 어버이 사랑과 포근한 보금자리가 가장 좋은 손길이라고 이야기하며 뿌리쳤습니다.


 (3) 어떻게 생각하면서


 나중에 아이한테 물려주어야 할 책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아기가 온다》(하늘출판사,1995)를 읽습니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 한 권 더 장만합니다. 안타깝게 판이 끊기고 말아 헌책방에서만 찾아보지만, 헌책방이라 하더라도 이 책을 찾아보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기가 온다》는 책이름 그대로 “아기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한테 찾아오는 아기가 어떤 목숨인가를 올바로 헤아리면서 알아차리자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여성들이 자기 몸에 관한 정보를 얻거나 자기들에게 행해지는 의료의 처치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6쪽).”는 말마따나, 귓결에 듣는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내 몸을 생각하거나 사랑하면서 받아들일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 수태한 난자가 분할하여 난관을 통한 긴 여행 끝에 자궁에 도착하여 착상해서 아기로 성장해 가는 것을 생각하면 그 진행과정이 얼마나 섬세하고 복잡한 것인지, 또 어머니의 혈액 속에 감돌고 있는 화학물질에 영향을 받기 쉽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는 흔히 복용하는 화학물질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 당신 자신이 담배를 피우지 않고 연기만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니코틴은 당신의 혈액 속에 녹아들어 아기의 몸으로 흘러듭니다 … 아기는 끽연을 한다 하지 않는다를 자기 스스로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기를 위해서 선택을 대신한다는 사실도 마음속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것입니다 … 예방접종은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임신 4개월까지는 절대 받아서는 안 됩니다 … 복잡한 도시 내에서 드라이브를 할 경우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른 차의 배기가스를 마시게 됩니다 ..  (105∼108, 116, 150쪽)


 초등학교에서도 성교육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성교육을 한다지만, 성교육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면서 하는지는 더욱 모르겠습니다. 성교육을 다루는 이야기책도 매한가지입니다. 성교육은 왜 하고, 성교육 값어치는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사람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짐승도 두 갈래로 나뉩니다. 푸나무도 두 갈래로 나뉩니다. 때로는 한몸에 암컷 노릇과 수컷 노릇이 모두어지곤 하지만, 거의 모든 짐승과 푸나무는 암수가 다릅니다. 암컷 짐승과 수컷 짐승이 있으며, 암꽃과 수꽃이 있어요. 암술과 수술이 나뉩니다.

 사람은 남성과 여성, 또는 여성과 남성으로 나눕니다. 이밖에, 날씨와 자연에 따라 살결과 몸크기와 머리카락 빛깔 들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모양새가 다르더라도 똑같은 사람이지만, 다 똑같은 사람이면서 남성과 여성이 또렷하게 갈려요. 남성은 씨를 내는 사람이고 여성은 씨를 받는 사람입니다. 남성한테서 나온 씨를 받는 여성은 열 달에 걸쳐 고이 품으며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도록 몸속에서 돌봅니다. 《아기가 온다》라고 하는 이야기책은 ‘아기를 낳을 어머니가 될 사람들이 알거나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새길’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기를 낳을 때 몸을 어떻게 두어야 하는지, 아기를 낳기까지 어떤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기가 몸속에서 자라는 동안 뼈나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아기를 안은 어머니는 몸과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병·의학 처방이란 어떠한 일인지, 아기를 낳는 어머니하고 마주할 아버지는 어떠한 마음이어야 하는지 들을 골고루 차분히 들려줍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아기가 온다》는 아기를 처음 맞이하는 사람한테든 아기를 여럿 맞이한 사람한테든, 또 이제는 아기를 더 맞이하지 못하지만 딸아이나 아들아이를 둔 나이든 사람한테든 고마운 이야기동무라 할 만합니다. 아기는 나(어머니)도 낳을 테지만 내 아이(딸)도 낳거든요. 내 아이가 낳은 아이(딸)도 무럭무럭 자라서 아기를 낳겠지요. 꾸준히 대물림하면서 이어갈 ‘아기낳이 이야기’를 담는 《아기가 온다》예요.

 그러니까, 이 책은 아기 낳을 어머니가 배가 불룩해져서 읽기도 할 책이지만, 달거리를 하는 여성이나 사춘기를 거치며 ‘어른’이라는 자리에 들어설 남성 또한 함께 읽으면서 ‘참다운 성교육’을 받도록 돕는 이야기책이기도 해요.

 글로만 읽는대서 아기 낳는 일과 흐름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모든 성교육이란 사람교육이 되고 사랑교육이 되어, 아기를 아끼며 보살피는 나날을 붙안게끔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진통을 느꼈으면 몸을 피할 것이 아니라 진통과 함께 몸을 열어 갑니다 … 고양이의 분만을 관찰하면 숨을 크게 들이쉰 채 한참 동안 배에 힘을 주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배에 힘이 주어지는 감각이 오면 숨을 멈추고, 다시 조금 숨을 들이쉰 다음에 배에 힘을 주십시오 … 분만의 본질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 무릎을 잘 벌리고, 자궁이 등뼈에서 배 쪽으로 기울어지면 골반 내의 태아에게 공간적 여유가 생깁니다 … 기는 듯한 자세로 배가 앞으로 늘어진 자세를 취하면, 태아도 제대로 등뼈에서 떨어지므로 압박당하는 일이 적어집니다 … 자궁구가 8센티미터 크기로 열린 시점의 이행기라고 생각하십시오. 덥다 싶으면 추워지고, 그런가 하면 또 더워지고 뺨은 홍조를 띠고 눈은 빛납니다. 또는 몸을 앞으로 숙이면 쉬지 않고 트림이 나오거나 기분이 나쁘고 토합니다. 발이 얼음처럼 차갑거나 떨림이 심해서 멎지 않습니다 … 갑자기 이제는 글렀다는 자포자기에 가까운 심정이 싹터서, 어린애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자궁구가 완전히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배에 힘주기를 계속하면 자궁구가 열리기는커녕 오히려 붓게 되어서 아기가 빠져나오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배에 힘주기를 억제하는 것이 보다 현명합니다 … 제1기 끝무렵 10센티미터 크기로 열리면 자궁과 질이 하나가 되어 산도를 형성합니다. 드디어 배에 힘을 줄 멋진 순간이 온 것입니다. 흔히 제2기는 험난하고 살과 뼈를 깎아내는 듯한 고통스러운 시기라고 말합니다만, 당신은 그 폭풍 속으로 스스로를 내던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진통 때마다 3∼5회씩 배에 힘을 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마다 함부로 힘을 주면 쉽게 탈진이 되는데다 초조해지고, 속히 아기를 낳으려는 생각에서 무리를 하게 됩니다 … 회음절개를 피하고 싶다면 발로 일보 직전 단계에서 숨을 멈추고, 힘을 주는 대신에 촛불을 불어서 끌 때와 같은 호흡을 하면 아기가 무리 없이 빠져나옵니다 … 힘주어 밀어내지 않고 호흡으로 조직이 늘어나게끔 조절한다면 회음절개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 바야흐로 자궁구가 완전히 열렸을 무렵에 20분이나 혹은 그 이상 쉴 시간을 갖게 될 경우가 있습니다 … ‘고맙게도 쉴 수 있는’ 이러한 시간은 태아가 골반에 깊이 들어와 있지 않을 때에 나타납니다. 태아의 머리가 좀더 아래로 내려오기까지 임산부는 아무것도 시도하지 말고 기다리면 좋을 것입니다. 임산부가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하고 있는 동안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기는 자연히 내려옵니다 … 아기든 탯줄이든 잡아당겨서는 안 됩니다. 아기의 생명줄 역할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궁벽에서 태반이 떨어져 나올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 아기를 나오게 하는 것은 당신도 임산부도 아닙니다 … (아기가 태어난 뒤) 20분이 지났는데도 태반이 나오지 않을 때는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게 하고 나서 천천히 크게 숨을 내쉬게 합니다. 몇 차례 하다 보면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 탯줄을 빨리 묶어 버리면 그곳에 남아 있던 혈액이 흘러나올 수가 없으므로 여전히 태반이 크고 단단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되어서 역할을 끝내고서도 자궁벽에서 떨어져 나오기가 어렵겠지요 ..  (201, 219∼220, 274∼277, 294, 307∼312, 334쪽)


 산부인과는 아기를 받는 곳이 아닙니다. 조산소 또한 아기를 맡는 곳이 아닙니다. 아기를 받거나 맡는 곳은 집입니다. 내 보금자리가 아기를 받는 곳이며, 내 삶터가 아기를 맡는 곳이에요.

 사람들은 걱정스럽다면서 집이 아닌 산부인과나 조산소를 찾아갑니다. 아기를 받거나 맡기에 마땅하거나 알맞다고 느껴 집이 아닌 산부인과나 조산소를 찾아갑니다. 그러면, 제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집이 아기를 맞아들이기에 걱정스럽지 않도록 집을 고치거나 손질하거나 다스려야 해요.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받더라도 며칠 지나지 않아 집으로 와야 하고, 조산소에서 아기를 다루거나 보살피더라도 이내 집으로 돌아와야 해요. 아기가 훨씬 기나긴 나날을 보내야 할 뿐 아니라, 온갖 기쁨과 슬픔을 제 어버이와 함께 누리는 곳이 집입니다. 어버이 될 사람은 집을 마련할 때에 ‘내 일터하고 가까운 곳’이라든지 ‘문화와 여가를 누리기에 좋은 곳’이라든지 ‘집값이 싼 곳’이라든지 ‘부동산이 될 만한 아파트’가 아니라, 갓 태어나 함께 살아갈 아이하고 함께 보낼 나날을 웃고 울며 떠들기에 마땅하거나 알맞은 터전으로 살펴서 마련해야 합니다.

 이야기책 《아기가 온다》는 한 사람이 사람다이 살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할 만한데, 이 가운데 새로운 목숨을 새로운 마음이 되어 새로운 사랑으로 보듬자고 하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아기를 걱정없이 낳기만 하’면 끝이 될 아이낳기가 아니요, 아기를 배기 앞서 내 짝꿍하고 어떻게 지내는가를 돌아보아야 하는 줄을 이야기하고, 아기를 배기 앞서를 넘어 여느 때에 나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아기를 맞이할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 자라야 합니다. 아기를 받아들일 아버지는 어린 날부터 아버지로 커야 합니다. 성교육이란 ‘어머니 되기 배움’이자 ‘아버지 되기 배움’입니다. 남자답게와 여자답게가 아니라 아버지답게와 어머니답게입니다. 남자다운 길을 걸을 사람이나 여자다운 길을 거닐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어린 날’부터라 해서 아이들이 어린 날부터 애늙은이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에요. 아이들은 제가 ‘사내’요 ‘계집’인 줄을 느끼면서 제 몸을 알뜰히 여기며 곱게 사랑하는 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서로를 괴롭히거나 따돌리거나 푸대접해서는 안 되고, 서로를 보듬거나 어루만지거나 어깨동무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 임산부의 출산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소중한 체험입니다. 가까운 장래에 (산부인과에서) 임산부 자신이 출산하는 동안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 아무리 우수한 기계가 있다 하더라도 아기를 낳는 것은 임산부입니다 … 모니터 같은 기계가 망가진다 해도 아기를 낳는 일에 지장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 임산부에게 스스로 약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만큼 출산에 있어서 나쁜 영향도 없습니다 … 누구를 위한 출산인지를 염두에 두십시오. 병원의 스태프나 기계들은 바로 임산부와 아기를 돕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 아기를 어디에서 낳을지, 어떻게 낳을지는 당신 이외의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결단입니다 … 기술이 출산의 체험을 망쳐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 기계가 따뜻한 애정이 담긴 인간관계의 대행을 맡아 버리면 인간관계는 파괴되고, 대신 그 자리는 기계가 차지하게 됩니다 … 30년 전이라면 자연에 맡겼을 출산의 흐름이 오늘날은 산부인과에 의해 관리되고, 그것을 위한 방책이 줄기차게 모색되고 있습니다 … 임산부 전원에게 의례적으로 점적을 하는 병원의 대부분이, 임산부는 가만히 침대에 묶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릅니다 … 회음절개로 인해서 생기는 통증은 제2도 열상일 때의 통증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 모성은 학습을 통해 익히는 것이 아니라, 산후 감정의 고양과 함께 당신 자신의 일부로서 정착시켜야 할 것인데, 이것을 고려해 주는 병원은 별로 없는 듯합니다 … 아직도 많은 병원에서는 출산 후의 몇 시간은 임산부와 신생아를 의학적으로 처치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이에 검사를 행하여, ‘정상’으로 판정될 때만이 사회생활로 돌아가도 좋다고 하는 구조라고나 할까요? ..  (300∼306, 326∼327, 332∼333, 368, 370쪽)


 한국에도 산부인과는 많고 의사는 많으며 전문가 또한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한테 찾아오는 아기를 믿고 사랑하면서 이야기 한 자락 따사로이 풀어내는 사람은 퍽 드물다고 느낍니다. 병·의학 지식만 늘어놓는 이야기가 아니라, 병·의학 지식을 삶으로 옳게 엮어 살가이 풀어내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또한, 의학 교재나 전공 과목 수험서 지식이나 정보에 얽매이는 ‘아이낳기’가 아닌, 아이와 어머니를 아름다이 사랑할 줄 알며, 아이 몸과 어머니 몸을 착하게 돌볼 줄 아는 슬기로운 빛깔과 무늬를 아로새길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옆지기와 나는 《아기가 온다》를 차근차근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 한 권을 더 장만했습니다. 한 권은 우리 집에 남겨 아이가 무럭무럭 큰 뒤에도 돌아보도록 하고, 다른 한 권은 아이가 무럭무럭 큰 다음에 ‘첫째가 자라고 살아온 나날을 밝혀 적은 육아일기’에 얹어서 선물로 줄 생각입니다. 여기에 《자연출산법》(고오다 미쓰오 씀)을 하나 더 얹어서 선물로 주면, 어버이로서 조금이나마 할 몫을 한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둘째가 태어났으니 둘째 몫으로 한 권을 더 사 놓아야겠군요. 딸아이인 첫째뿐 아니라 아들아이인 둘째도 아이를 어떻게 낳고 아이를 낳기까지 어머니 될 사람을 어떻게 아끼며 사랑해야 하는가를 담은 책을 알뜰히 읽어 새겨야 아름다우니까요.


.. 산실의 조명을 낮추어서 침착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 온화한 출산은 아기가 탄생하는 순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온화한 출산은 진통기를 지날 무렵이나 산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용하고 침착한 환경으로 바꾸어 주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 아기를 위한 배려 깊은 환경이란, 즉 당신에게 포근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 빛이 너무 강렬하면 당신도 불안해질 뿐만 아니라, 아기도 눈부신 전등불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온화한 출산이 되기 위해서는 불빛을 필요 최저한으로 억제해야 합니다 … 이제껏 아기는 비인간적인 병원의 눈부신 광선에 노출되어서 마치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듯이 취급되어 왔습니다 … 인생은 기쁨으로 충만해 있고, 태어나는 것 또한 환희입니다. 출산은 그러한 환희에 찬 체험인 것이지요 …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서 아기를 안아올리는 것은 가장 멋진 출산을 해냈기 때문입니다 … 온화한 출산을 하는 곳에서는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어루만져 줍니다. 굳이 마사지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손이 움직여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 아기가 수유하는 동안 줄곧 젖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세 좋게 먹고 나서 잠시 쉬고, 또 마시기 시작하는 것은 아기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지요 … 아기가 6개월경까지 필요로 하는 것은 모유인데, 음식물로 대신 공급한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이 못 됩니다 … 분유는 그 어떤 제품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모유를 ‘흉내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358∼360, 402∼403, 405쪽)


 《아기가 온다》를 읽다 보면, 왼쪽과 오른쪽 빈자리에 깨알같은 글씨로 ‘아기를 낳은 여느 어머니’ 생각을 짤막하게 붙입니다. 여느 어머니들 목소리를 생생하게 귀담아 들으며, 나 또한 여느 어버이로서 내 아이한테 무슨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줄 수 있을까 어림해 봅니다.


- 바보처럼 보이겠지만, 인류 역사 이래 내가 아기를 낳는 최초의 인간인 양 자랑스럽습니다. (38쪽)
- 자연스럽게 출산할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한 준비도 돼 있습니다. 내가 희망하는 대로의 출산은 병원을 통해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1쪽)
- 의사를 만나기까지 대기실에서 세 시간이나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데리고 온 임산부는 정말로 딱해 보였습니다. 그곳에는 망가진 목마 이외에는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거든요. (61쪽)
- 아기는 몇 천 년이나 되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탄생을 되풀이해 왔습니다. 그런데도 임신한 사실로 이렇게 일대 사건처럼 소동을 피우는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165쪽)



 둘레에서는 아이를 낳았으니 돈을 더 벌어야 하지 않느냐 하고 말하지만, 아버지인 나는 달리 생각해요. 아이를 낳았으니 돈보다 사랑을 아이하고 나눌 수 있도록 아이랑 더 오래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한결 따스한 목소리로 고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하루하루를 빛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은 앞으로 언제든지 벌 수 있어요. 돈이야 무슨 일이든 해서 언제라도 벌 수 있어요. 그러나, 아이가 한 살일 때는 꼭 한 해뿐이에요. 아이가 두 살일 때도 꼭 한 해뿐이에요. 아이가 세 살일 때나 네 살일 때도 한 해뿐입니다. 나는 아이 온 하루를 온통 아이하고 보낼 수 없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아이와 더 오래 더 깊이 사랑을 나누면서 살고 싶어요. 아이가 먹을 밥을 손수 마련하고, 아이가 입는 옷을 손수 빨래하며, 아이 가슴을 토닥이며 새근새근 재우고 싶어요. 같이 뛰고 같이 놀며 같이 일하고 같이 밥먹으며 같이 잠들고 싶어요.

 첫째가 태어났을 때에도, 둘째가 태어났을 때에도,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꼭 한 가지만 바랐습니다. 부디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살아 다오. 씩씩하고 튼튼하며 바르게 자라 다오. 첫째 네 이름은 ‘사름벼리’란다. 둘째 너는 ‘산들보라’란다. (4344.5.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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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이야기 2011.봄 - 12호
한살림 엮음 / 한살림(월간지)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내 삶은 어디에 어떻게 있습니까
 [책읽기 삶읽기 47] 한살림 펴냄, 《살림이야기》 2011년 봄호



 거룩한 자연이나 아름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있습니다.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사진을 찍건 춤을 추건 노래를 하건 영화를 하건 …… 멀리멀리 돌아다니면서 이야깃거리를 살피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도시 한켠에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습니다.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또 춤이든 노래이든 영화이든, 거의 모두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즐깁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즐기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은 거의 없습니다. 시골에서 자라나 도시에서 누리거나 즐긴다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 또한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시골사람이 시골에서 살아가며 언제나 마주하는 살가운 자연 터전을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담았을 때에, 이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을 오롯이 알아채거나 느끼는 도시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도시사람은 ‘도시사람 눈길로 쓴 글과 그린 그림과 찍은 사진’을 알아볼 뿐입니다. 도시사람으로서 시골사람이 시골사람 삶에 따라 시골사람 눈길로 일군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을 알아보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문화나 예술에는 나라나 겨레가 따로 없다고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문화나 예술에는 나라나 겨레가 따로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있습니다. 문화나 예술에는 삶이 따로 있습니다. 저마다 꾸리는 삶에 따라 문화나 예술이 달라집니다. 저마다 꾸리는 삶에 따라 교육과 정치가 달라집니다. 저마다 꾸리는 삶에 따라 종교와 사회가 달라집니다.


.. 요즈음 우리가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콩은 그 원산지가 만주와 한반도이다. 미국은 1901년부터 1976년 사이에 한국에서 5천 496점이나 되는 재래종 콩을 수집하여 갔다. 그 가운데 미국의 일리노이 대학에만도 남한 재래종 3천 483점 북한 재래종 78점 등 3천 561점이나 된다. 이는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콩 유전자원 1만 8천 905점의 18.8%나 된다 … 우리 나라 콩의 유전자로 미국은 콩 178품종을 육종했다. 이것은 미국이 육종한 466개 콩 품종의 38.2%나 된다. 미국이 콩을 육종하는 데 중국, 한국, 일본에서 가져간 35품종이 95%의 유전인자를 제공했고 … 미국에서 수집해 간 우리 나라의 콩 유전자원들은 1987년 이후에야 농촌진흥청 종자은행에서 대부분 다시 들여와야 했다 ..  (65쪽)


 같은 한국땅에서, 기름값 치솟는 걱정을 안 하면서 까만 자가용을 운전사 딸린 채 싱싱 모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한국땅에서,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이웃이 있습니다.

 같은 한국땅에서, 손가락에 물이나 흙 한 번 안 묻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한국땅에서 재개발로 헐릴 동네 한켠 빈집 돌을 골라 텃밭을 일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한국땅이지만, 누군가는 가난한 벌이와 살림에 걸맞게 생협 물건을 알뜰히 즐깁니다. 같은 한국땅이라지만, 누군가는 가난한 벌이와 살림인 나머지 ‘생협은 돈있는 놈들 놀음놀이일 뿐’이라 말하고는 등을 돌립니다.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에서 빚은 문화나 예술이라서 멀리해야 하지 않습니다. 한국과 견주어 나라살림이 조그마한 베트남이나 네팔이나 라오스라 해서 한국과 견주어 문화나 예술이 덜 떨어지거나 어리숙할 수 없습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요, 한국한테는 문화선진국 같다는 미국이니까, 문화이든 예술이든 한껏 거룩하거나 드높거나 대단하지 않습니다.

 일본사람이 빚든 중국사람이 빚든 네팔사람이 빚든, 아름다운 문화는 아름답습니다. 영국사람이 일구든 덴마크사람이 일구든 나우루사람이 일구든, 사랑스러운 예술은 사랑스럽습니다.


.. 캘리포니아에서 사는 동안 사시사철 흔하게 서는 직거래 장터에 동네 마실 가듯 드나들었다. 여름이 되어 토마토 철이 시작되면 ‘가보(heirloom)’ 토마토가 장에 나온다.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초록색, 검붉은 색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색깔에 모양도 울퉁불퉁, 크기도 제각각인 토마토를 보면서 처음에는 말뜻 그대로 저게 조상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보도 아닌데 토마토에 무슨 저런 이름을 붙였을까 싶었다. 알고 보니 이들이 재래종이었다. 여러 가지를 먹어 보니 맛도 조금씩 다 달랐다. 일반 토마토가 공장에서 찍어낸 듯 작고 동그란 것과 크고 둥글넓적한 것과 계란처럼 갸름한 것, 대충 이렇게 세 종류뿐이고 색은 다 똑같은 ‘토마토’색인 것에 비해 이 다양한 토마토들은 제각각 오묘한 매력으로 음식 만드는 재미, 먹는 재미를 주었다. 조금만 생각을 기울여 봐도 토마토뿐 아니라 작물들의 획일화는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 ..  (101쪽)


 잡지 《살림이야기》 2011년 봄호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한살림에서 철에 한 번 내는 잡지인 《살림이야기》 2011년 봄호는 모두 열두 권째 나왔고, 열두 권째에서는 ‘씨앗, 콩 심은 데 콩 났으면’을 특집으로 삼습니다. 특집으로 삼은 만큼 150쪽이 살짝 넘는 살짝 얇다 싶은 잡지 1/3을 ‘씨앗 이야기’로 가득 채웁니다. 생각해 보면, 잡지에서는 ‘특집 기획’으로만 한 권을 다 채워도 됩니다. 특집으로 삼는 기획 꼭지를 더 많이 다루거나 담을수록 잡지 알맹이가 한결 돋보이거나 빛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생태와 환경을 다루는 잡지로 《녹색평론》이 있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있으며 《함께 사는 길》이 있습니다. 《녹색평론》은 생태환경과 정치철학을 둘러싼 지식인들 넋을 다루는 지식 잡지이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녹색연합에서 펴내는 기관지이며, 《함께 사는 길》은 환경운동연합에서 내는 기관지입니다. 《살림이야기》는 한살림에서 내는 기관지입니다. 올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이라는 작은 환경모임에서 《초록숨소리》라는 잡지를 새로 내놓습니다. 책방에서는 다루지 않고 회원한테만 보내는 잡지입니다. 모두들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내 삶터가 어떠하고 내 삶은 어떠한가를 찬찬히 돌아보자는 뜻을 다룹니다.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온갖 갈래 갖은 모양이니까, 여러 목소리로 숱한 삶을 다루는 잡지가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다만, 아직까지 몸을 더 낮추거나 마음을 더 다소곳하게 숙이는 잡지는 없다고 느낍니다. 생각뿐 아니라 삶을 함께 가다듬으려 하는 잡지는 좀처럼 태어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지식으로나 생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을 테지만, 지구별을 사랑하고 한국땅을 아끼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동무나 삶동무가 되도록 나아가는 생태환경 잡지가 있다고 말하기는 퍽 힘듭니다.


.. 산후조리는 어떻게 할 건지, 조리원은 정했는지, 도우미의 도움은 얼마간 받을 건지 등 육아휴직을 맞고 아이를 만날 때까지 별 생각 없이 쉴까 싶었더니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게 많다 ..  (134쪽)


 아이는 환자가 아닌 어머니가 낳습니다. 아이는 어머니 혼자 밸 수 없습니다.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 혼자, 또는 여자가 도맡아서 돌볼 수 없습니다. 아이는 마냥 귀여움만 베풀어 키우는 목숨이 아닙니다. 아이는 ‘작은 어른’이나 ‘작은 사람’이 아닙니다. 아이는 ‘앞으로 수험생이 될 사람’이 아니고, ‘예비 실업자’나 ‘예비 회사원’ 또한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녹색평론》이든 《작은 것이 아름답다》이든 《함께 사는 길》이든, ‘사람이 사랑을 하며 살림터를 일구어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가장 크게 돌아보며 아껴야 좋을까’ 하는 대목에서는 살짝 비껴 서는지 모릅니다. 예전 정부이든 오늘 정부이든 끔찍한 막개발과 쇠삽날을 들이미니까, 이런 바보짓을 가로막으려는 일에 소매를 걷어붙이느라 바쁠 수 있습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나 유전자조작 먹을거리라든지 발굽병 같은 굵직굵직한 이야깃거리에 귀가 쫑긋할 만합니다. ‘green’이든 ‘wellbeing’이든 ‘草綠’이든 ‘綠色’이든 ‘eco’이든 ‘생태’이든 ‘환경’이든 하는 자리에만 머물밖에 없는 이 나라 모습인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다른 어느 잡지보다 생태환경을 다루는 잡지라면 생각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온몸으로 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지식조각을 많이 보여주거나 수많은 수치와 통계와 자료를 들이밀며 ‘왜 환경운동을 해야 하는가’ 하는 목소리를 외칠 수 있습니다만, 이에 앞서 내 삶이 먼저 튼튼히 서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는 환자가 되어 병원에서 낳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 몸이 너무 나쁘거나 힘들면 환자 대접을 받으며 병원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아이를 밴 어머니는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살림집에서 따스한 사랑과 너른 믿음을 받으며’ 태어나도록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산후조리를 하는 까닭은 아이를 낳은 어머니 몸을 빨리 추스르는 데에도 뜻이 있지만, 오직 사랑을 받으며 홀로서기를 할 아이와 함께 살아갈 집식구로서 제 몸과 삶을 돌아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산후조리이든 아이키우기이든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가 해야 할 일이고, 어버이뿐 아니라 집식구가 다 같이 해야 할 일입니다. 집에서 식구들이 사랑을 나누지 않는다면, 조리원이든 도움이이든 부질없습니다. 아이한테는 돈으로 사랑을 사서 줄 수 없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바깥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를 일찍부터 어린이집이나 보육원에 맡길 수 없습니다.

 육아휴직이라 한다면 서너 달이나 대여섯 달이나 한두 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육아휴직이란 대여섯 해쯤 되어야 비로소 육아휴직이라 할 만합니다. 어머니 혼자만 할 육아휴직이 아니라 아버지가 함께 해야 할 육아휴직입니다.

 이쯤 되면 ‘둘 다 돈을 안 벌고 집에 붙으면 어떻게 먹고사는가?’ 하고 걱정스러워 하겠지요. 그래요, 이러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환경과 생태를 생각하고 사랑하면서 살자고 이야기를 합니다. 돈을 벌어 돈을 써서 집살림을 일구는 나날이 아니라, 돈을 벌지 않더라도 집살림을 일구면서 아이와 집식구를 나란히 사랑하는 나날이 되자는 뜻에서 생태환경 잡지를 냅니다.

 아이는 꼭 집에서 낳아야 하지 않습니다. 정 힘들면 아기가 돌이 안 되었어도 보육원에 맡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아이하고 살아가더라도, 어버이 사랑이 무엇이요, 어버이 삶이 어떠하며, 어버이가 벌어들이려는 돈을 어떤 일을 누구와 어디에서 어떻게 하면서 벌어들이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흙을 일구며 살던 지난날 사람들은 아이를 논밭 둘레에 풀어 놓으면서 어버이 일을 했습니다. 아이한테 어린이집이란 논이나 밭이나 산이나 들이나 냇물이나 바다였습니다. 오늘날은 어린이집이나 어린이책도서관에서 ‘생태환경 지식을 보여주는 그림책’을 읽힙니다.

 누구나 밥을 먹습니다. 누구나 바람을 마십니다. 누구나 물로 이루어진 몸을 물을 들이키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밥도 바람도 물도 자연에서 비롯합니다. 도시는 자연이 아닙니다. 도시에서 살아야 하면 도시에서 살아야 하고,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아름답거나 빛나는 삶을 일굴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살든 밥과 바람과 물이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하며, 이 모든 목숨을 어루만지는 햇볕은 어떻게 아끼며 받아들여야 좋을까를 깨달아야 합니다. ‘씨앗, 콩 심은 데 콩 났으면’을 특집 기획으로 삼은 《살림이야기》 2011년 봄호는 참 좋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씨앗 한 알을 심어 열매를 맺는 흙일꾼 이야기는 한 꼭지조차 깃들지 못했습니다. 석 달에 한 권 내는 철잡지라 한다면, 씨앗 한 알을 심어 석 달 동안 가만히 바라보면서 ‘씨앗을 심어 거두는 이야기’ 한 꼭지쯤 실을 수 있었을 텐데요. (4344.5.7.흙.ㅎㄲㅅㄱ)


― 잡지 ‘살림이야기’ 2011년 봄호 (한살림 펴냄,2011.3.1./5000원·정기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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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 - 누구나 꿈 꾸는 세상
후루타 야스시 지음, 요리후지 분페이 그림, 이종훈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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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을러서 무너지는 나라는 없다
 [책읽기 삶읽기 53] 후루타 야스시·요리후지 분페이,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서해문집,2006)



 나우루공화국 이야기를 다룬 책으로 《낙원을 팝니다》(여름언덕,2006)와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에코리브르,2010) 두 가지가 한국말로 옮겨졌습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나우루 이야기를 살피며 책으로 쓰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두 가지 책이 한국말로 옮겨졌으니 고마운 노릇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온누리 모든 이야기를 언제나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사람 눈길에 걸맞게 써내야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언제나처럼 나라밖 사람들이 빚은 이야기만 찾아서 듣다 보면, 나 스스로 온누리를 바라보는 눈썰미가 한쪽으로 길들거나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오늘날 영어를 무엇보다 도드라지게 다루면서 초등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까지 영어를 가르치지만, 정작 초등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까지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게 가르치지 못하거든요.

 나우루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우루라는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잊었습니다. 스스로 잊었다기보다 나우루섬에서 큰돈을 얻어내려는 이웃나라에서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서 나우루를 차지하고 이곳 사람들을 식민지 노예로 다루었으니 오랜 나날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바보처럼 되고 말았다 할 수 있을 텐데, 나우루섬에서 살아가던 사람은 모자라지도 않았고 넘치지도 않았어요. 나우루섬이 온누리에서 가장 아름다울 섬인지 아닌지 모를 노릇입니다만, 나우루섬은 나우루섬에 깃들어 오래오래 살아온 사람한테는 가장 알맞거나 몹시 아름다울 섬이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배를 곯는 사람이 없던 나우루섬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없어도 전쟁이나 다툼이 일어나지 않던 나우루섬입니다. 경찰이나 학교나 군대가 없어도 도둑이나 미움이나 따돌림이 생기지 않던 나우루섬입니다.

 서양 나라와 일본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서 인광석을 캐낼 때부터 나우루섬은 평화가 깨지고 사랑과 믿음이 사라졌으며 아름다운 빛줄기가 스러졌습니다.

 나우루사람을 함부로 탓할 수 없습니다. 오랜 나날 식민지살이를 하면서 제 땅을 잃고 노예가 되어 인광석을 캐는 일만 해야 한 사람들한테 ‘너희는 왜 너희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못 깨달았는가?’ 하고 따질 수 없습니다. 광부로만 일해야 하면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던 일이나 흙을 일구어 푸성귀와 곡식을 얻던 일을 모조리 빼앗기거나 잃은 사람한테 ‘너희는 왜 너희 삶터를 어여삐 지키면서 작고 착하게 사는 길을 걷지 않았느냐?’ 하고 따질 수 없어요. 땅임자라 하는 이는 땅임자대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니까 나우루섬을 망가뜨리고, 땅임자 아닌 여느 사람은 ‘탄광 품팔이꾼(임금노동자)’이 되어야 했기에 고기잡이와 흙일구기를 잃었습니다.


.. 인광석을 탐내는 나라들이 세계 곳곳에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 이곳에 도착한 나라는 독일이었습니다. 그 다음엔 영국이 들어와서 인광석을 운송하기 위해 철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섬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바다 저편에서, 본 적도 없는 나라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그 틈에 오스트레일리아 군대가 들어와 이 섬을 점령했습니다 ..  (14∼15쪽)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서해문집,2006)는 짧은 글에 단출한 그림을 붙여 나우루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낙원을 팝니다》하고 《나우루공화국의 비극》은 글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찌 보면, 굳이 글로 길디길게 나우루섬 앞뒤 발자취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아도 된다 할 수 있어요.

 줄거리를 살핀다면, 세 권 모두 이렇게 엮습니다. (1) 나우루섬은 아름답고 살기 좋았다. (2) 유럽 나라들이 식민지를 넓히는 전쟁을 벌이며 나우루섬 인광석을 알아냈다. (3) 인광석을 ‘거저로’ 빼앗을 수 있는 나우루섬을 식민지로 삼으려고 유럽 나라끼리 다투었다. (4) 일본이 세계대전에 끼어들며 나우루섬에 전쟁과 식민지가 그치지 않았다. (5)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식민지 정책을 이었다. (6) 나중에 나우루섬이 독립을 하지만, 서양 나라들은 나우루섬 역사와 문화를 헤아리지 않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나우루섬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정치와 행정 조직을 세운다. (7) 정부 공무원을 꾸리면서 경제개발을 외쳐야 했고, 경제개발을 앞세워 나우루공화국도 문화와 교육과 복지를 키우려 하다 보니 돈이 많이 있어야 했다. (8) 인광석을 캐서 팔면 돈이 된다. (9) 조용히 작게 살아가는 길을 잊고, 서양 민주주의 틀을 그대로 받아들인 나우루공화국은 인광석 장사를 이어 나간다. (10) 나우루섬이 공화국으로 독립하기 앞서 유럽과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 제국주의자들이 인광석을 많이 캐 갔다. 그래도 꽤 인광석이 남았기에 나우루공화국 정치꾼은 걱정하지 않았다. (11) 드디어 인광석이 바닥났다. (12) 나우루공화국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13) 이제 나우루섬에는 아름다운 자연도 넘치는 돈도 사라졌다.


.. 나우루 사람들은 줄곧 노동자였습니다. 그들이 받은 임금은 생산된 인광석의 5퍼센트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 채소나 과일을 재배하던 경작지는 점차 광석 채굴장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이 섬에서는 어느 곳을 파더라도 인광석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경작지가 없어져도 맛 좋은 통조림을 살 수 있는 돈이 엄청나게 들어왔습니다 ..  (16, 26쪽)


 줄거리를 헤아리자며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우루섬을 다루는 세 가지 책 또한 줄거리를 곱씹자며 읽을 수 있습니다. 나우루공화국에서 일어난 일을 발판 삼아 우리 터전을 곰곰이 돌아보며 거울로 삼자고 할 수 있겠지요. 경제개발이나 황금만능주의나 자연보호를 곱씹는 좋은 밑거름으로 여길 만합니다. 아니면, 또다른 지식이나 상식 하나로 나우루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를 펼치고, 이와 같이 줄거리를 마무리지어도 좋을는지 궁금합니다. ‘조용히 착하게 살던 사람들’을 식민지로 부리며 괴롭히던 사람들을 찬찬히 꿰뚫는 이야기를 옳게 다루지 못한다면 무슨 보람이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나우루섬 사람들은 돈에 길드는 바람에 제 보금자리를 잃거나 잊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땅 사람들은 얼마나 제 보금자리를 아끼거나 돌보거나 사랑한다 할 수 있으려나요. 한국땅 사람들은 돈에 안 길든 착하거나 참답거나 아름다운 사람이라 할 만한지요.

 이 나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도시로 몰려듭니다. 도시로 몰려든 이 나라 사람들은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들어 얻는 일자리란 ‘돈을 더 많이 벌어 돈으로 집을 사고 옷을 사며 밥을 사는 삶’을 꾸리는 일자리입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허구헌날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라고 외친들 무엇 하겠습니까. 제주 삼다수 물을 마시고 강원 평창 물을 마시며 깊은 동해 물을 마시면 무엇 하려나요. 정작 어느 도시사람이고 물을 맑게 아끼거나 돌보는 삶이 아니잖아요.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열폐수도 바닷물을 더럽힙니다. 수많은 공장에서 흘리는 폐수도 바닷물을 더럽힙니다. 주한미군 기지도 땅을 더럽히지만, 한국사람이 살아가는 여느 살림집에서 버리는 똥오줌과 생활폐수도 땅을 더럽힙니다. 이제는 유기농(친환경) 먹을거리를 먹어야 하고, 초·중·고등학교에서 친환경무상급식을 해야 한다고 외치기는 하지만, 정작 내가 날마다 누는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도록 하는 시설이나 제도란 하나도 없을 뿐더러, 어느 새 아파트도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도록 시설을 갖추지 않을 뿐더러,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 스스로 내 똥오줌을 거름으로 일구려고 땀흘리지 않습니다. 내 똥오줌은 물에 흘려 버리면서 유기농이나 친환경을 말하는 삶이란 얼마나 엉터리인 줄을 깨닫지 않고, 깨닫지 않으니까 고치거나 바로잡지 않아요.


..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들어진 나라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쳐야겠습니다. 약 100년 사이에 이 섬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누린 반면 경작지와 고유한 문화는 많이 잃었습니다 ..  (114쪽)


 나우루섬 사람들은 고작 백 해 사이에 아주 다르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백 해가 아닌 쉰 해 만에 바뀌었다 해도 틀리지 않고, 서른 해 만에 바뀌었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한국땅 사람들은 오늘날 어떤 모습 어떤 삶 어떤 나날인가를 돌아볼 노릇입니다. 하루하루 일구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되새길 노릇입니다. 불쌍하거나 딱한 나우루공화국일 수 없습니다. 어리석거나 게으르다 할 나우루공화국일 수 없어요.

 이 나라 대한민국은 식량자급율이 30%가 되지 않습니다. 콩이 몸에 좋다느니 무어라느니 하지만, 콩 자급율은 10%나 될까요. 밀 자급율은 1%가 안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맥주를 그렇게도 많이 마시지만, 보리 자급율은 몇 %가 될까요. 한국에서 거둔 보리로 맥주를 만드는 술 회사가 한 군데라도 있겠습니까. 제아무리 맑은 물을 땅에서 퍼서 빚는 맥주라 하더라도, 어떤 보리를 어느 나라에서 사들여 쓰는지를 살필 줄 아는 한국사람은 없습니다.

 나우루공화국은 사람들이 게을러터졌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석유로 돈을 버는 나라 또한 사람들이 게을러지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를 어마어마하게 만들 뿐 아니라 군대 또한 어마어마하게 꾸려서 끝없이 전쟁을 일으키면서 먹고사는 몇몇 나라들 또한 사람들이 돈이 넘쳐 게을러지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아요.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내 삶이 무엇인 줄을 깨닫거나 느끼지 못하니까 무너집니다. 톨스토이 말이 아니더라도, 나와 내 식구한테 땅이 얼마만큼 있으면 스스로 흙을 일구어 먹고살 만한가를 모를 뿐더러, 돈을 벌며 살더라도 내가 갖출 돈이 얼마쯤이면 내 삶과 삶터를 예쁘며 알차게 일굴 수 있는가를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않으니 무너집니다. 나우루섬은 공화국도 식민지도 관광지도 아닌 그저 나우루섬입니다. (4344.4.20.물.ㅎㄲㅅㄱ)


―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 (후루타 야스시 글,요리후지 분페이 그림,이종훈 옮김,서해문집 펴냄,2006.5.1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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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
제니 매카시 지음, 이수정 옮김 / 알마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의학 만능’이라는 편견과 싸우는 엄마들
 [책읽기 삶읽기 51] 제니 매카시,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알마,2011)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라는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덜컥 이 책을 장만합니다. 예방접종 이야기를 다루는 새로운 책이 나왔다고 생각했고, 이제 좀 예방접종 말썽거리를 살피는 사람들이 생겼나 싶어 반갑기 때문입니다.


.. 시어스 박사는 한 명의 아기에게 허용되는 알루미늄의 양이 20마이크로그램인데도 불구하고 출생 당일에 주사하는 B형 간염 예방 백신 하나에만 무려 250마이크로그램에 달하는 독소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결국 아기들은 만 2세가 될 때까지 총 1875마이크로그램의 알루미늄이 함유된 예방주사를 맞게 된다 ..  (10쪽/추천글-제이 고든)


 그런데,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라는 책은 예방접종 말썽거리를 다루는 책이 아닙니다. 예방접종 이야기는 추천글에 적힌 두 줄이 끝입니다. 더욱이, 예방접종 성분 이야기 또한 이 두 줄이 모두입니다.

 예방접종 성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요, 말썽이 되는 성분은 알루미늄·포름알데히드·페놀·치메로살(에틸수은)·에틸렌글리콜·염화젠제토늄·젤라틴·글루타민산염·네오마이신·스트렙토마이신 ……이며 끝이 없는데, 이런 이야기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문득 궁금해서, 간기를 들여다봅니다. 2008년에 미국에서 《mother warriors》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책이 2011년 한국에서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셈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처음 나온 이 책은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가 아니라 “싸우는 어머니들”입니다. ‘의학 만능’이나 ‘의학 맹신’하고 ‘싸우는 어머니들’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인 셈입니다.


.. 다른 병원을 찾아가 보기로 결심하고 나는 저명한 뇌신경 전문의를 만났다. 에번을 진료한 그가 정중하게 내 손을 잡더니 말했다. “안됐지만, 아드님은 자폐증입니다.” ..  (19쪽)


 261쪽에 이르는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뒤쪽에 ‘내 아이는 자폐를 타고나지 않았다’와 ‘예방주사가 때로는 위험할 수 있다’와 ‘자폐는 치유할 수 없는가?’라는 세 마디가 적힙니다.

 그래, 이 책은 ‘자폐 아이가 생기는 까닭’을 ‘의사나 정부나 공공기관이나 과학자나 기자’나 어느 누구나 가르치거나 밝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 스스로 ‘자폐가 왜 생기는가’를 찾아내려 애쓰면서 ‘자폐를 고치려는 눈물겨운 싸움’을 들려줍니다.

 그런데, 정작 글쓴이 제니 매카시 님이 ‘식이요법’으로 자폐 아이를 고친다고 말은 하면서도 ‘어떤 식이요법을 어떻게 했는지’는 한 줄로도 나오지 않아요. ‘독소를 없애야 한다’고는 말하지만, 독소가 무엇이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받아들일밖에 없는 수많은 독소는 무엇인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 이제는 어딜 가 봐도, 엄마들이 유전자 연구를 더 많이 해 달라고 간청하지 않는다! 이 엄마들은 장누수증, 발진, 극심한 알레르기, 음식 등에 관해 적극적인 연구를 해 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도와줘야 할 대상은 바로 그들이다. 과학이 부모를 따라가는 속도가 이렇게 느리다는 사실이 슬프고도 답답하다. 과학자들은 부모들과 마주앉아 대화를 나눌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유전자 연구와 눈맞춤 개선에만 매달리고 있다 ..  (165쪽)


 예방접종 이야기를 다루지 않으면서도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 같은 책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요. 책 껍데기를 보면 자잘한 글로 “병원에서는 아홉 가지 질병을 예방하는 주사를 네 대 놓았다고 설명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엘리아스는 심한 발작성 경련을 일으켰다.” 같은 이야기가 적힙니다. 한국에서도 흔히 겪음직한 이야기입니다. 예방접종을 하루에 여러 대 놓거나 며칠 사이에 여러 가지를 놓는 일이 참 흔합니다. 그런데, 예방접종을 이렇게 했을 때 아이 몸이 어떻게 바뀔는지를 살피거나 따지는 연구란 없습니다. 의사도 간호사도 보건소 공무원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책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에서도 예방접종이 어떻게 말썽거리이며, 예방접종 성분이라도 어떻게 되는가를 알아보려 하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예방접종 성분을 알아보려 한들 의사나 간호사나 보건소 공무원 아닌 여느 사람들이 알기란 몹시 힘듭니다. 병원에서 약 처방을 하더라도 약 성분이 무엇인지는 알 노릇이 없습니다. 아이가 넘어져서 피가 날 때에 바르는 연고조차 연고에 깃든 성분이 무엇인가를 낱낱이 밝히지 않습니다.

 어머니를 비롯해 아버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값싼 라면이든 과자이든, 봉지를 들여다보면 라면이나 과자를 만든 성분을 낱낱이 적습니다. 햄이든 소시지이든 어떤 합성원료와 화학약품과 인공색소를 넣었는지 꼼꼼이 밝힙니다. 이렇게 성분을 밝히지 않으면 어떠한 라면이나 과자도 팔 수 없어요. 그렇지만, 예방접종은 성분을 아무한테도 아무것도 안 밝히지만 버젓이 맞힙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초등학교는 ‘예방주사 안 맞힌 아이’는 못 들어오게 막습니다. 초등학교에서도 예방주사를 꾸준히 맞힙니다.

 요즈음은 ‘친환경 무상급식’이 유행말처럼 떠돕니다. ‘친환경’이 아니고서는 아이한테 함부로 먹이면 안 되는 줄을 겉훑기로나마 알기는 합니다. 그러면 ‘친환경’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나 어른이 먹는 밥에는 ‘어떠한 성분이 깃들면 안 될’까요. 화학조미료(MSG)가 나쁜 줄을 안다면, 화학약품이 사람(어른이든 아이이든) 몸에 좋을 수 있을까요.


.. 나는 자폐증은 대부분의 경우 예방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우선 예방 백신에서 독소를 제거하고 예방주사의 횟수를 줄이면 된다. 그리고 살충제나 중금속 같은 환경 독소에 아이를 노출시키지 않아야 한다. 이미 여러 연구 결과에서 예방 백신의 독소와 환경 독소가 자폐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졌다. 그런데 왜 언론에서는 이를 대대적으로 다루지 않는 걸까? … 이제 부모들은 운 좋게 건강해서 독소를 원활하게 제거할 수 있는 아이들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을 위해 안전한 예방 백신을 만들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  (214∼215쪽)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www.selfcare.or.kr)’이라는 누리집이 있습니다. 예방접종은 안전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몹시 위험하기 때문에 태어난 누리집입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모임은 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예방접종이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예방접종을 놓는 의사나 간호사나 보건소 공무원 가운데 ‘예방접종 성분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아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아마, 거의 모든 의사나 간호사나 보건소 공무원은 예방접종 성분을 모를 뿐 아니라, 구태여 알려 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예방접종 성격이 무엇이고, 예방접종을 하면 내 몸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헤아리는 의사나 간호사나 보건소 공무원은 몹시 드물겠지요.

 예방접종을 다루는 책은 《예방접종 어떻게 믿습니까》(스테파니 케이브 글,차혜경 옮김,바람 펴냄,2005) 한 권하고, 《예방접종, 부모의 딜레마》(그레그 비티 씀,김윤아 옮김,잉걸 펴냄,2006) 한 권에다가, 《백신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팀 오시 씀,오경석 옮김,여문각 펴냄,2006) 한 권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예방접종 이야기를 다룬 책이 아직 이 셋 말고는 더 없습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예방접종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쓰지도 못합니다. 세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읽는다면 예방접종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 읽는다면 예방접종 때문에 돌림병이 자꾸 생길 뿐 아니라 사라지려던 병마저 새삼스레 크게 번지는 줄을 알 수 있습니다.

 제니 매카시라는 미국사람이 낸 책은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이 책은 이 책에 걸맞게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의학 만능’이라는 편견과 싸우는 엄마들”이든 “‘의학 맹신’과 싸우는 엄마들”이든, 아이가 아이답게 자라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의학 만능’과 ‘의학 맹신’하고 싸우느라 지치거나 고단한 어머니들 이야기를 살포시 느끼도록 올바른 이름으로 고쳐서 다시 내놓아야 합니다. (4344.4.16.흙.ㅎㄲㅅㄱ)


― 예방접종이 자폐를 부른다 (제니 매카시 씀,이수정 옮김,알마 펴냄,2011.3.21./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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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
프리먼 하우스 지음, 천샘 옮김 / 돌베개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자동차를 버릴 수 없는 사람들
 [환경책 읽기 29] 프리먼 하우스, 《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



- 책이름 : 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
- 글 : 프리먼 하우스
- 옮긴이 : 천샘
- 펴낸곳 : 돌베개 (2009.12.21.)
- 책값 : 12000원


 (1) 자동차와 삶


 우리 식구가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간다 했을 때에 둘레에서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작은 짐차 하나라도 장만하라’입니다. 도시에서 살던 때에도 우리 식구는 ‘작은 자동차 하나라도 마련하라’는 이야기를 으레 들었습니다. 책방마실을 하면서 책을 가방에 잔뜩 짊어지거나 두 손에까지 끈으로 묶어 낑낑대며 들고 다니는 일은 어리석거나 몸이 힘든 일이니, 자가용을 몰라고 했습니다.

 자가용을 모는 사람이 많고, 새 차로 갈아타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금 묵었으나 퍽 괜찮은 헌 차도 꽤 되겠지요. 적은 돈으로도 자가용 한 대 마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헌 차라 하더라도 50만 원이고 100만 원이고 200만 원이고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다달이 내야 할 기름값은 누가 대 주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몰면 그저 앞만 보며 찻길을 달려야 합니다. 골목동네 한켠을 우리 자가용 한 대가 더 차지하며 서는 일이 썩 내키지 않습니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작은 짐차 하나라도 있으면 읍내 마실이든 어디를 다니든 퍽 수월합니다. 그런데 짐차 하나는 자가용보다 훨씬 비쌉니다. 집부터 읍내까지 버스삯이 1150원이고, 오가는 거리는 16킬로미터입니다. 버스삯이나 기름값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어쩌면 기름값이 더 든다 할는지 모르고, 자가용이나 짐차가 있으면 읍내에 마실을 갔을 때에 졸립다며 잠들려는 아이를 고이 눕히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리 힘들이지 않으며 다닐 수 있어요. 아마, 읍내뿐 아니라 조금 먼 시내까지 다닐는지 모르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한테 자가용이나 짐차가 없기 때문에 멀리 나다닐 일이 적은지 모릅니다. 우리한테 자가용이나 짐차가 없으니 늘 걷습니다. 자전거에 수레를 달고 아이랑 마실을 다니기도 하지만, 자동차가 없기 때문에 늘 자동차 없는 흐름에 맞추어 하루하루 살림을 꾸립니다.


.. 오늘날 우리 대부분은 풍요로운 자연 양식의 체계 속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쉽게 이해하지 못하며, 우리가 배우는 학문들로 더욱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생물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자연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이 감소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형성되었다 ..  (26쪽)


 우리 집에 자동차가 있다면 책을 장만해도 더 많이 장만했을까 헤아려 봅니다. 어쩌면, 책방마실을 할 적에 한결 느긋하게 책을 장만하겠지요. 백 권이든 이백 권이든 걱정없이 실을 테니까요. 그런데, 책방마실을 하며 책을 백 권쯤 사들이면 이 책을 언제 다 읽으려나요. 아니, 한꺼번에 책을 백 권쯤 장만할 돈이 어디에서 솟아날는지요.

 시골집에서 읍내 나들이를 자주 하면서 과일도 자주 사고 뭣도 자주 산다면, 이렁저렁 사는 돈은 어디에서 샘솟을까요. 자동차가 없다고 찻삯을 적게 쓴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만(때때로 택시를 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굴리면서 들어야 하는 목돈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굴리면, 자동차를 굴리는 만큼 들어야 할 목돈을 벌자며 다른 돈구멍을 찾아야 하고, 무엇이든 더 돈이 될 길을 걸으려고 용을 써야 합니다.

 더 많이 누리면서 더 많이 써야 하니까, 더 많이 거머쥐어야 하고 더 많이 벌어들여야 합니다. 더 많이 누리면서 더 많이 쓰는 동안, 더 많이 쓰레기를 내놓고 더 많이 땅과 물과 바람을 더럽힙니다.

 자가용을 몰든 짐차를 몰든, 자동차를 몰면서 이 자동차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를 살피는 사람이 있기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자가용이나 짐차를 몰면서, 우리 터전 물과 바람과 흙이 나날이 어느 만큼 더러워지는가를 깨닫는 사람이 있기나 있는지 궁금합니다.


.. 인간의 목적 때문에 최근에 급격히 변한 시골에 가 보면 그 전의 풍경을 상상하기가 힘들 것이다. 예를 들면, 완전히 벌목된 숲속에서 누가 예전의 짙푸른 숲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 변해버린 자연환경 속에서 자신들이 없애버린 문화와 견줄 만한 삶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  (70, 220쪽)


 자가용을 몰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걸립니다. 아이는 다리가 몹시 아프다 할 때에만 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안고 가방을 짊어진 채 걷습니다. 사진기는 목에 걸고 어깨에는 천으로 짠 바구니를 맵니다. 따로 하는 운동이란 없습니다. 따로 하는 운동이라면 가방 짊어지기요, 아이 안기입니다. 천천히 걸어다녀야 하는 만큼, 내가 살아가는 마을을 찬찬히 둘러봅니다. 천천히 걸어야 하는 만큼, 도시로 볼일 보러 나올 때에는 골목에서고 큰길 거님길에서고 머리가 어지럽고 어수선합니다. 두 다리로 걸으며 살아야 하는 만큼, 두 다리로 걸으면서 내가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즐거울까를 온몸으로 돌아봅니다. 두 다리로 거닐며 사람을 마주하기에, 나는 내 두 다리로 느낀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자동차로 움직이고 자동차로 짐을 나르는 사람들은 따로 ‘자동차 없이 몸을 써서 땀을 빼거나 살을 빼는’ 일을 해야 하기 일쑤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동차를 몰아 골프를 즐기는 곳을 드나드는데, 여느 때에 자동차를 안 타고 살아가는 살림을 꾸린다면, 애써 골프를 하든 달리기를 하든 헬스클럽에 다니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느 때에 두 다리로 걷고, 두 손으로 집일을 하면 골프이든 공차기이든 헬스클럽이든 부질없습니다. 아니, 스스로 집일을 하다 보면 골프라든지 헬스클럽이라든지 할 겨를이 있을 수 없겠지요. 집일과 집살림을 꾸리면서 내 아이를 내 손으로 돌보는 나날을 보낸다면, 집에서 복닥이는 나날로도 기운이 쪼옥 빠져 저녁나절에 그대로 곯아떨어질 테지요.


.. 우리가 정확하게 무엇을 잃어 가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 슈퍼마켓에서 사람들이 접하는 풍요에 대한 환상을 … 야생의 보존이라는 개념을 저녁식사에 올라온 음식이나 일상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  (119, 123쪽)


 자동차를 얻어서 타야 할 때에는 얻어서 타야 합니다. 자동차를 몰아야 할 때에는 무척 고맙다고 여기며 몰아야 합니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들기까지 어마어마한 자원을 쓰면서 지구별을 더럽힙니다. 자동차 한 대를 굴리자면 어마어마한 자원을 써서 땅밑에서 석유를 뽑아내는 한편, 이 석유를 자동차에 넣기까지 어마어마하게 지구별을 더럽히면서 경유나 등유나 휘발유를 가려야 하는데다가,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 굴리면 배기가스라든지 ‘바퀴가 닳으며 흩날리는 고무 먼지’라든지 어마어마합니다.

 자동차를 스스로 몰든 얻어서 타든, 늘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내 몸을 덜 쓰면서 내 짐을 덜도록 해 주는 자동차인 줄 헤아려야 합니다. 타야 할 때에는 고맙게 여기면서 타고, 안 타도 될 때에는 흐뭇하면서 호젓하게 내 몸을 즐겨야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땅을 깨닫고, 내가 선 자리를 느끼며, 내가 이웃한 사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땅은 고속도로가 아닙니다. 무슨무슨 고속도로로 이 나라를 나눌 수 없습니다. 크게 보자면 서울이고 인천이고 경기도이고 충청남도이고 충청북도이며 강원도와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이자 제주도입니다. 작게 보면 서울 은평구이고 인천 동구이며 경기도 평택입니다. 충청남도 예산이고 충북 음성이요 강원 횡성입니다. 더 작게 보면 인천 동구 송림3동이고, 충북 음성 생극면입니다. 더더 작게 보면 인천 동구 송림3동 5번지이자, 충북 음성 생극면 도신리입니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몇 시간 만에 달릴 수 있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서울과 부산 사이에 어떠한 마을과 자연이 있으며, 이 마을과 자연에는 어떠한 사람과 목숨이 살뜰히 어우러지며 살아가느냐가 대수롭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한 목숨 두 목숨이 어여쁩니다.


 (2) 내 마을을 지키려는 땀방울


 이야기책 《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를 읽습니다. 미국에서도 연어를 살리려고 여러모로 애쓰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한국에서도 연어를 살리자며 여러모로 애쓰곤 합니다.

 연어 한 마리가 냇물에서 알을 깨고 태어나 머나먼 바다를 두루 돌다가 다시 냇물로 돌아오는 흐름을 살리거나 건사할 수 있을 때에 연어를 지키는 일이 마무리됩니다.

 연어가 냇물에서 알을 낳자면 냇물이 깨끗해야 합니다. 연어가 냇물에서 알을 낳자면 둑이나 댐이 없어야 합니다. 연어가 냇물로 돌아오자면 바다에서 한두 해나 여러 해 동안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바다가 넉넉한 삶터이자 놀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얻으려는 생각으로 냇물과 냇가를 더럽히거나 망가뜨리면 연어는 알을 낳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예 씨가 마르고 맙니다. 사람들이 바닷가에 끝없이 공장이나 발전소를 세우고 말면, 연어는 바다에서도 숨이 막힙니다.


.. 토착민들은 더 많이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뒤를 이은 통조림공장 소속의 어부들은 더 많이 잡을 수 있는 여건에서, 분명 그렇게 하였다 … 미국 초기의 인공 양식장은, 생산적인 어종은 인간의 소비량을 조달하기 위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래되어야 한다는 유럽적 사고에 기초해 있었다 ..  (87, 105쪽)


 연어를 너무 많이 잡아먹을 때에도 연어는 씨가 마를 테지요. 그렇지만 연어가 깃들 냇물을 더럽힌다면, 더욱이 냇물뿐 아니라 냇물이 맑게 흐를 수 있도록 냇물이 깃든 멧자락을 어지럽힌다면, 냇물은 남아도 냇물이 냇물다울 수 없습니다. 멧자락에 나무들이 푸르게 우거지면서 멧짐승이 오붓하게 살아갈 때에야, 비로소 냇물 또한 맑고 시원하게 흐릅니다. 나무 없고 멧짐승 없는 멧자락 냇물에 어떤 연어가 찾아올 수 있겠습니까. 연어를 되살리자면 냇물을 되살려야 하고, 나무와 멧짐승이 되살아나도록 사람이 숲에서 떠나야 합니다. 사람이 숲을 아껴야 합니다. 사람이 아파트나 도시나 쇼핑센터나 자동차를 아끼지 말고, 숲을 아껴야 합니다. 더 많은 학교와 더 많은 공공기관과 더 많은 재개발과 더 많은 고속도로와 더 많은 댐과 더 많은 발전소 따위가 아니라, 더 많은 숲과 더 많은 논밭과 더 많은 작은 집이 있어야 합니다.

 자가용을 몰수록 스스로 살림을 꾸리는 길하고 멀어집니다. 자가용을 몰지 않을수록 나 스스로 내 살림을 꾸리는 길하고 가까워집니다.

 자가용을 몰수록 내 보금자리를 덜 사랑하고 맙니다. 자가용을 몰지 않을수록 내 보금자리를 한결 찬찬히 돌아보며 사랑합니다.


.. 교과서에 찬양하는 국가와 왕국의 역사, 정치경제적 형세 같은 것들은 우리가 장소와 실제적인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인간의 공동 선택권을 가치 있게 판단하는 데 필요한 역사는 대부분의 경우, 미국의 경우,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역사이다 … 물속에 발을 담그고, 파손되어 벗겨진 개울둑이나 그 위의 마른 비탈들을 재무장하기 위해 거대한 바위와 통나무들을 옮기고 조림하는 작업은 인간 공동체가 야생의 과정과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  (200, 202쪽)


 《북태평양의 은빛 영혼 연어를 찾아서》를 읽으며, 이 책을 쓴 분이 참으로 ‘북태평양을 빛내는 눈부신 넋’인 연어를 헤아리는가 아리송했습니다. 왜냐하면, 북태평양 연어 이야기보다 ‘연어가 연어답게 살 수 없도록 냇물과 멧자락과 바다를 더럽히는 사람들’ 이야기가 잔뜩 나올 뿐더러, 연어 삶터를 되살리려는 사람들 이야기가 또 잔뜩 나오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연어를 쫓아낸 ‘돈에 눈이 먼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또 연어를 다시 불러들이려는 ‘자연에 눈을 뜨려는 사람’ 이야기를 펼치면서, 얼마든지 북태평양을 빛내는 눈부신 넋이 무엇인가를 밝힐 수 있으리라 봅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잃으면서 무엇을 얻는지를 살필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무엇을 내동댕이치면서 나 스스로 무엇을 거머쥐려 하는가를 톺아볼 수 있습니다.


.. 자연의 치유력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위안을 얻었고, 감사하는 마음과 고결한 감동을 느꼈다. 지구는 스스로를 치유한다 ..  (214쪽)


 나는 자전거를 즐겨탑니다. 옆지기는 자전거를 배울 즈음 첫째를 낳고, 이제 좀 첫째가 자라서 아버지가 수레에 태우고 함께 자전거를 탈까 싶더니 둘째를 뱁니다. 둘째가 태어나고 어느 만큼 자라 첫째는 스스로 자전거를 타거나 아버지 자전거 뒤에 안장을 하나 덧붙여 태운 다음 둘째를 수레에 실을 무렵에, 비로소 옆지기도 자전거를 찬찬히 배우며 함께 움직일 수 있으리라 꿈꿉니다.

 자전거라는 물건은 처음부터 공장에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자전거라는 물건도 사람들이 저마다 한 대씩 뚝딱뚝딱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공장에서 만드는 자전거인데,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품과 자원과 돈을 헤아리자면, 자전거 백 대를 만들고도 더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이삼백 대는 거뜬히 만들 수 있겠지요.

 나는 자전거를 혼자서 손질할 수도 있으나, 되도록 자전거집에 가서 자전거를 손질합니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자전거집이 자전거를 팔 뿐 아니라 손질해 주면서 먹고살 만큼 살림을 꾸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을에서 삼사백 집쯤 자전거를 타면서 두어 달에 한 번씩 자전거를 손질하며 손질값을 치르면 자전거집은 그닥 많이 버는 살림은 아닐지라도 그럭저럭 걱정없이 먹고살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자전거 타기가 익숙하지 않다면 걸어다니면 됩니다. 걷다가 힘들면 버스를 타면 됩니다. 버스를 타기에는 짐이 많거나 다리가 아프면 택시를 부르면 됩니다.

 내 살림을 돌보면 됩니다. 내 몸을 살피면 됩니다. 내가 깃든 마을이 작게 작게 예쁘게 이어지도록 가꾸면 됩니다.


.. 그러나 기업은 기업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지에서 생명을 존중하는 척하지도 않았고, 토지에 기반을 둔 기업들조차도 자신들의 소유지가 다른 생명체에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신 주주들에 대한 지급 능력이 떨어지지 않게 유지하는 데만 급급했다. 기업의 경영진들은 개벌지가 훗날엔 다시 자라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런 행위가 유역의 야생 생태계 집단을 영원히 근절할 만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231쪽)


 북중미에 살던 토박이들은 먹을 만큼만 연어를 잡았지, 깡통에 담아서 팔거나 돈을 잔뜩 벌어들일 꿈으로 연어를 마구 잡아대지 않았습니다. 북중미 토박이는 연어 터전까지 빼앗으며 사람 터전을 늘리지 않았습니다. 곰이나 새나 숱한 들짐승과 날짐승은 연어를 모조리 잡아먹을 듯 달려들지 않았습니다. 배가 부를 만큼만 잡아먹었습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얼마나 몰면서 살아가나요. 우리는 전기를 얼마나 쓰면서 살아가나요. 써야 할 때에는 써야 할 물건이고, 다루어야 할 때에는 다루어야 할 기계입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비롯한 갖가지 물질문명을 얼마나 써야 하기에 이토록 쓰는지 아리송합니다. 우리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야 하고, 이렇게 많이 번 돈은 또 어디에서 얼마나 써야 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북태평양에서든 한국에서든, 연어를 살리는 길은 과학자나 생태학자나 환경운동가나 공무원이나 지식인이나 전문가나 기자나 교수 손에 달리지 않습니다. 연어를 살리는 길은 책이나 지식이 아닌 내 삶에 달립니다. 자동차가 있으면 대형마트에 가서 연어 몇 마리 값싸게 사들여서 냠냠짭짭 먹겠지요. (4344.4.6.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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