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말들 - 엑소포니, 모어 바깥으로 떠나는 여행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옮김 / 돌베개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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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잘하고 싶다면 한국말부터 잘하자



《여행하는 말들》

 다와다 요코

 유라주 옮김

 돌베개

 2018.9.7.



어디에서나 통하는 얕은 영어로 하는 따분한 비즈니스 토크가 세계를 뒤덮으면 참 시시할 것이다. 나는 영어를 험담하고 싶지도 않고 프랑스어를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그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묘한 장소성이, 농밀한 순간이 소중하기 때문에 국경을 넘고 싶다고 느낀다. (55쪽)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푸름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펴는 자리에 가면 저한테 곧잘 이런 말을 묻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어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고. 저는 푸름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되묻습니다. “여러분은 저한테 한국말로 물어보나요, 아니면 영어로 물어보나요? 여러분이 영어를 배울 적에 머리로 생각을 어떤 말로 갈무리를 하나요?”


  유럽에서 네덜란드사람은 영국사람‘보다’ 영어를 잘한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아마 덴마크사람도 비슷할 수 있어요. 그 나라 사람은 왜 영국사람‘보다’ 영어를 잘한다는 말을 흔히 들을까요?


  수수께끼는 하나입니다. 네덜란드에는 네덜란드말이 있고, 덴마크에는 덴마크말이 있습니다. 이 두 나라는 어린이 나이에 여러 나라 말을 한꺼번에 배워요. 네덜란드라면, 어린이 나이에 ‘네덜란드말, 영어, 프랑스말’을, 덴마크라면 ‘덴마크말, 영어, 독일말’을 배운다고 하는데요, 여러 다른 말을 가르치는 틀이 설 수 있는 까닭은 바로 ‘네덜란드에서는 네덜란드말부터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기 때문이에요. 덴마크도 그렇고요.



작은 언어를 보호하는 정책에서 중요한 사람은 시인이다. 시로 쓰이지 않는다면 그 언어는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다. (117쪽)


과거 동유럽에서 문화 통제하에 살았던 동년배 동료를 무의식중에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는데 어쩌면 동정해야 할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통제 속에서 치우친 지식만 몸에 익히며 자란 나일지도 모른다. (133쪽)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무엇보다 한국말을 어떻게 배울까요? ‘국어’라는 교과목이나 시험과목이 아닌, 이 땅에서 이웃하고 사귀면서 즐겁게 생각을 꽃피우는 이야기가 될 바탕인 말일까요, 아니면 머리에 달달 집어넣어야 하는 시험지식인 문법하고 띄어쓰기하고 맞춤법하고 표준말일까요?



한자도 결국 외래어다. 오히려 가타가나는 자기가 외부인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외래어지만 한자는 자기가 오리지널인 척 거짓말하는 외래어로 보인다. (135쪽)


모처럼 의욕을 가지고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티브이, 컵, 버스, 타월, 테이블, 도어, 커튼, 볼펜만 배우고 있으면 당연히 누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영어를 변형한 말들로만 보일 뿐이다. 더구나 이 단어가 읽기 편하다면 괜찮은데 반대로 더 어렵다. (154쪽)



  일본말보다는 독일말로 문학을 한다는 어느 일본 이웃이 쓴 《여행하는 말들》(다와다 요코/유라주 옮김, 돌베개, 2018)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이 일본 이웃이 ‘독일말로 쓴 문학’을 놓고서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갈팡질팡한다지요. 그러나 독일에서는 ‘독일문학’에도 넣고 ‘세계문학’에도 넣는대요. 다만 일본은 아직 갈팡질팡한다고 합니다.


  문득 우리 옛자취를 더듬어 봅니다. 한국에서 일제강점기라는 그 메마르고 차갑고 서슬퍼렇고 어둡던 무렵, 한국말 아닌 일본말로 문학을 편 분이 꽤 많습니다. 우리는 이 글, ‘일본말로 한국사람이 쓴 글’을 어느 문학에 넣어야 할까요? ‘일본문학’에도 넣고 한국문학에도 넣을까요, 아니면 한국문학하고 ‘세계문학’에 넣으면 될까요?


  조선 무렵에 훈민정음이란 글씨가 태어났어도 굳이 한문으로 문학을 한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한글(훈민정음)이 아닌 한문으로 쓴 문학은 중국문학일까요, 한국문학일까요, 아니면 세계문학일까요?



사투리를 하는 방식도 재미있었다. 각자가 과거에 어디에서 살았고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살아왔는지가 그 사람이 지금 하는 말 속에 남아 있다. (159쪽)



  나라 곳곳에서 중·고등학교 푸름이를 만나는 자리에 서면, 좀처럼 사투리를 못 듣습니다. 참말로 이제는 푸름이 나이쯤 되면 사투리를 아예 모르거나 높낮이(고저장단)만 살짝 남은 말씨입니다. ‘나락’ 같은 말조차 모르는 전라도 푸름이가 꽤 많습니다. 요새는 서울 이웃도 ‘싸목싸목’ 같은 전남 사투리를 고운 말씨라 여기며 받아들여 쓰기도 하지만, 막상 전라도 어린이나 푸름이는 ‘싸목싸목’이 뭔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하고 아리송해 하기 일쑤입니다.


  이 책 《여행하는 말들》을 쓴 일본 이웃은, 독일에서 갖가지 독일 사투리를 들으면서 즐겁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프랑스에서도, 또 미국이나 온누리 여러 나라에서도 ‘표준 독일말’이나 ‘표준 영어’나 ‘표준 일본말’이나 ‘표준 한국말’이 아닌, 고장마다 맛깔나게 다른 말씨를 귀로 들으면서 매우 즐거우면서 재미있다고 밝혀요. 그 사투리에는, 고장말에는, 고을말에는, 바로 그 고장이나 고을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이 손수 지은 살림결이 고스란히 묻어나거든요.



번역가가 있으니 무엇이든 국경을 넘어서 자유롭게 흐른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이 세계 대부분의 텍스트는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거나 이미 오역이 됐거나 둘 중 하나다. (162쪽)



  한국말은 엉성하면서 영어만 잘한다면, 이이는 영어만 할밖에 없습니다. 자, 그러면 생각해 봐요. 한국이란 나라에서 살아가는데 ‘한국 이웃’하고 생각을 나눌 한국말이 엉성하다면, 어떤 이야기를 펼 만할까요? 우리 스스로도 우리 이웃한테 내 뜻이나 마음을 제대로 못 펴겠지만, 이웃이 우리한테 펴는 뜻이나 마음을 얼마나 알아듣거나 알아차릴까요?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한국말부터 잘해야 하는 까닭’은 한 줄로도 갈무리할 만합니다. 내 뜻을 제대로 펴고, 네 뜻을 제대로 읽고 싶기 때문이에요.


  어느 나라 어느 말이든 홀가분하게 날아다니고 싶습니다. 표준이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나 문법이라는 굴레가 아닌, 이야기라는 꽃이 되어 훨훨 날아다니면서 즐겁고 향긋한 내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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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브르의 탐구생활 - 취미는 자연! 산나물, 노린재, 오래된 살림, 할머니를 좋아합니다
이파람 지음 / 열매하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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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92


《이파브르의 탐구생활》

 이파람

 열매하나

 2019.7.29.



지역마다 다른 놀이의 특색이 흥미롭고 재밌기만 한데, 어째서 지금은 한두 가지 방식으로만 이어지고 있는 건지 아쉽다. (42쪽)


콩알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형형색색 그 자태가 영롱하고 신비하다. 행성을 닮은 씨앗 안에는 어떤 우주가 들어 있을가? (80쪽)


고사리는 어쩐지 바다향이 나서 좋다. 산에서 맡는 바다 내음이라니. (100쪽)


이름처럼 바람이 불면 온몸으로 노래하는 생명체인 것을 나는 미안하게도 종종 잊곤 한다. (133쪽)


떡갈나무잎에 떡을 사서 쪘다는 조상님들의 지혜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152쪽)



  1970년대 무렵을 헤아리면 이 나라 시골에 아이랑 젊은이가 북적북적했다고 합니다. 1980년대에도 아직 아이랑 젊은이가 복닥복닥했다는데, 1990년대로 접어들고 2000년대로 넘어서자 어느새 텅 비다시피 하고 2010년대를 지나고 2020년대를 코앞에 두면서 마을이 아예 사라질 판이 됩니다.


  모든 것이 서울에 우루루 몰린 흐름이니, 시골을 빨리 떠나서 서울로 가려는 물결이 되었다고 할 만해요. 1950년대나 1930년대에도 시골을 떠나 서울로 간 사람은 제법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많던 시골 어린이하고 시골 젊은이가 감쪽같이 빠져나간 지는 이제 서른∼마흔 해 언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안 ‘서울살이를 노래하는 책’이 참으로 많이 나왔어요. 거의 모든 책은 서울살이를 바탕으로 썼다고 할 만해요. ‘시골살이를 노래하는 책’은 드문드문 나왔지요. 그런데 이제는 서울내기가 시골내기로 삶을 바꾸는 흐름이 차츰 늘면서 ‘시골을 새로 읽고 누린 기쁨’을 담아내는 책이 부쩍 늘어납니다.


  더는 서울에서 견딜 수 없다고, 이제는 서울에서는 스스로 사람다운 사랑을 나누기 어렵다고 여긴 젊은 이웃님 두 분은 《이파브르의 탐구생활》(이파람, 열매하나, 2019)이라는 책을 선보입니다. 서울살이가 꼭 나쁘거나 메마르다고는 할 수 없어요. 사람이 아주 많으니 더 살갑게 어우러지는 한마당이 서기도 합니다. 다만, 서울에서 마당 있는 느긋한 보금자리를 꾸미기란 좀처럼 안 쉬운 일이에요. 서울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 터전을 찾기도 만만하지 않아요. 시골에서라면 집을 사고 땅까지 살 돈으로 넉넉하지만, 서울에서는 전세값을 대기에도 빠듯한 판입니다.


  모든 것, 이른바 물질문명이 넘실거리는 서울입니다. 극장도 많고 책집도 많고, 찻집이며 옷집이며 밥집도 많아요. 굳이 전화를 안 걸고 손전화 단추를 톡톡 눌러도 집까지 튀김닭이며 피자를 갖다 주는 도시예요.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가게도 적고, 값도 비싸고, 무얼 사다 먹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서울에 없고 시골에 있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 바로 별입니다. 싱그러운 바람입니다. 맑은 물입니다. 깊은 숲입니다. 멧새와 철새가 늘 다르게 들려주는 노래입니다. 철마다 새로 깨어나는 풀벌레는 철마다 다른 노래잔치를 벌입니다. 봄부터 가을이 저물 때까지 개구리도 우렁차게 노래를 베풀어요. 무논에서만 개구리가 노래하지 않아요. 겨울잠에 들기 앞서 참개구리는 풀숲 한켠에 깃들어 마지막 가을노래를 베풉니다. 게다가 바람이 쉬잉 불면 나무가 춤을 추면서 새로운 노래를 들려주기도 해요. 가랑잎이 떨어지는 소리는 마치 북소리 같아요.


  시골집 마당이나 텃밭이나 뒤꼍을 누린다면, 따로 심은 푸성귀가 없더라도, 온갖 풀을 나물로 삼을 만합니다. 새로 돋는 나뭇잎도 즐거운 나물입니다. 감잎이나 뽕잎을 비롯해, 쑥잎이나 쇠무릎잎도 즐겁게 덖어서 찻물로 우려서 마실 만해요. 수세미가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면, 싱그러운 설거지 수세미도 얻지만, 통통한 수세미를 썰어서 말리면 수세미 찻물을 얻기도 해요.


  이제 바람이 되고 싶던 서울내기는 ‘이파람’이란 이름을 새로 지었다고 해요. 둘레에서 이파람 님을 ‘이파브르’란 새이름으로 불러 주기도 한대요. 무엇이든 낯설지만, 낯설기에 더 들여다보면서 배우고 싶은 이파람 님은, ‘풋풋한 파브르 살림’을 꾸리는 재미를 누린다지요. 이 재미진 하루는 어느새 글로 피어납니다. 텃밭살림 못지않게 글꽃살림을 짓습니다.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에서 배운 적 없는 숲살림이나 들살림을 몸으로 부대낍니다. 숲이나 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책이 아니라 눈이랑 손으로 마주합니다. 시골로 삶자리를 옮겼다면 즐겁게 숲을 껴안으면 좋겠어요. 그냥그냥 서울살이가 좋더라도 마음눈을 뜨고서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별빛을 같이 나누면 좋겠어요. 다같이 ‘풋풋한 파브르’가 되어 들꽃내음을 누리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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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고다 아야 지음, 차주연 옮김 / 달팽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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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46


《나무》

 고다 아야

 차주연 옮김

 달팽이

 2017.10.27.



똑똑 하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다. 사방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조릿대잎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14쪽)


나무가 목재로 쓰이기 이전의 살아 있는 모습에도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거늘 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인가. (47쪽)


나는 참지 못하고 나뭇조각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폭한 듯 삼각형으로 갈라진 굽이는 강렬한 편백나무 향기를 내뿜었다. (68∼69쪽)


삼나무는 도대체 무엇을 양분으로 삼을까? 그것은 태양과 비, 즉 햇빛과 물뿐이다. (90쪽)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서 있을 때의 생명과 잘려서 목재가 된 이후의 생명 이렇게 두 번의 생명을 갖는다고 한다. (163쪽)


(나무는) 그저 젊은 목수를 압박하지만은 않는다. 압박하면서 그와 동시에 젊은 목수의 담력과 지혜를 키워 주고 있다. (170쪽)



  우리 집에 있을 적에는 언제나 우리 집 나무 기운을 받아들이고, 우리 기운을 나무한테 보냅니다. 우리 집을 떠나 여러 고장을 돌아다닐 적에는 여러 고장을 싱그러이 보듬는 나무가 퍼뜨리는 기운을 헤아리면서, 여러 고장에서 살뜰히 피어나는 나무한테 반갑다는 눈빛을 띄웁니다.


  나무 곁에 서서 줄기를 포근히 안으면 포근한 기운이 가슴을 거쳐 온몸으로 흐릅니다. 나무 앞에 서서 줄기에 손을 고요히 대면 고요한 기운이 손을 지나 온마음으로 물결칩니다. 저는 나무한테서 기쁜 웃음을 받고, 저는 나무한테 즐거운 노래를 띄웁니다.


  《나무》(고다 아야/차주연 옮김, 달팽이, 2017)를 읽으며 생각했어요. 나무 한 그루가 얼마나 깊은 숨을 품고서 우리 곁에 있는가를 느끼고, 나무 한 그루 곁에서 얼마나 깊은 사랑을 지으면서 새롭게 나누는가를 돌아봅니다. 오롯이 나무한테 바치는 글이자, 옹글에 나무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담은 책 한 자락입니다.


  나무가 있기에 책걸상을 짜고, 집을 짓고, 종이하고 붓을 얻고, 땔감으로 겨울을 나고, 우리 터전을 푸르면서 맑게 돌보는 길을 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은 나무한테 무엇을 돌려줄까요? 우리 사람은 숲에 무엇을 심을까요?


  나무가 살 터를 자꾸 밀어없애거나 짓밟는 사람은 아닌가요? 나무가 자랄 땅을 쉬잖고 밀어붙이거나 짓이기는 사람은 아닌지요? 조그마한 씨앗 한 톨이 우람한 나무가 됩니다. 작은 사람 하나가 아름다운 마을을 이루고 사랑스러운 고을로 피어납니다. 나무도 숲이 되고, 사람도 숲이 됩니다. 이야기도 숲이 되고, 노래도 숲이 됩니다. 모두 숲이면서 빛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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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옥 :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 우리 여성의 앞걸음
박남옥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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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80


《박남옥,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마음산책

 2017.10.30.



강엿을 꺼내려고 손을 대어 보기도 전에 항아리 뚜껑만 떨어져 깨졌다. 그 소리에 뛰어나온 엄마는 속이 상해서 나를 깨양나무에 묶어버렸다. “작은아버지야아! 최 석사야아!” 나는 살려 달라고 울며 외치며 요동을 쳤다. 몸을 틀어대니 끈이 풀어져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갔다. (20쪽)


그대로 집에 가면 좋으련만 나는 이삼일에 한 번꼴로 삼덕동 파출소 앞 헌책방에 들러야 했다. 시간이 많은 날은 본정 안 골목의 헌책방인 태양당서점까지 진출한다. 시나리오, 영화잡지, 미술책 …… 돈이 모자라서 짜증이 날 뿐이지 책 사는 기쁨이란 정말 대단했다. (47쪽)


1955년 1월 6일에 나는 또 녹음실로 찾아갔다. 이번에는 대답 내용이 바뀌어 “연초부터 16mm에다 여자 작품을 녹음할 수는 없다”라고 한다. 녹음실 책임자 이름은 지금 잊었지만, 위의 말은 녹음 조수들이 나에게 한 말이다. (162쪽)


영화광이라면 누구가 기본이겠지만 나도 좋아하는 영화는 보통 두세 번 보고 다섯 번, 열 번 보게 되는 영화도 있다. 그중 1936년 독일 기록영화 〈민족의 제전〉은 스무 번쯤 본 것 같다. (219쪽)


김신재, 홍은원, 이제 두 사람 다 저세상으로 가고 나 홀로 남아서 생각한다. 인생이란 별거 아니었다는 생각과 인생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하는. (267쪽)



  지난날 얼마나 많은 가시내가 사내하고 싸워서 울타리를 허물어야 했는가를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무렵 이 땅에서 살지 않았고, 가시내라는 몸을 입은 오늘이 아닌, 사내라는 몸을 입은 오늘이거든요. 그렇지만 제가 살지 않은 그 지난날에 숱한 가시내가 숱한 사내하고 부딪히면서 흘린 피땀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길을 고요히 눈을 감고 돌아볼 수 있습니다. 눈을 감고서 그때 그분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그리면 뜻밖에도 그 아픔이며 슬픔이며 눈물이 마치 그림처럼 줄줄이 머리에 떠오르더군요.


  대단했구나, 엄청났구나, 놀라웠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러다 눈을 뜨면 어느새 마음에 확 떠올랐던 그림이 모조리 자취를 감춥니다. 다시 눈을 감고 고요히 있으면 어느덧 아까 그 그림이 다시 떠오르면서 주루룩 흐릅니다. 높다란 울타리를 허물던 손길을, 모진 가시울타리를 맨손으로 무너뜨리던 눈물자국을 하나하나 되새깁니다.


  《박남옥,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박남옥, 마음산책, 2017)이라는 책은 박남옥이라는 분이 남긴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입니다. 책이름처럼 한국에서 첫 여성 영화감독으로 지낸 나날을 바탕으로, 1923년부터 2017년 사이에 어떤 삶을 지었는가 하는 애틋한 노래가 흐릅니다.


  지은이 박남옥 님은 싸울 때에는 더없이 당찬 싸울아비입니다. 사랑할 적에는 그지없이 고운 사랑님입니다. 일할 때에는 가없이 듬직한 일꾼입니다. 놀이할 적에는 이보다 신바람나는 한마당이 없다 싶도록 재미난 놀이벗입니다. 그야말로 온삶을 온힘을 다해 바친, 걸음걸이 하나하나가 그저 역사요 숨결이며 영화입니다. 이녁이 감독으로 찍은 영화는 딱 하나라지만, 이녁이 걸은 길이야말로 둘도 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영화로구나 싶어요. 부디 저 하늘나라에서 즐겁게 새로운 영화를 찍으시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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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만들어도 괜찮을까 - 생명과학의 딜레마를 고민하는 철학 강의
시마조노 스스무 지음, 조해선 옮김 / 갈마바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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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53


《생명을 만들어도 괜찮을까》

 시마조노 스스무

 조혜선 옮김

 갈마바람

 2018.12.5.



여전히 많은 아이가 약물을 복용하고 있으며 부모도 이를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약물을 사용하면 어떤 종류의 사회 적응력이 생긴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어른이 정한 특정 사회 규범에 따르도록 아이의 성격을 약으로 ‘고치는’ 것이다. (39쪽)


애초에 약에 의존해 활력을 불어넣고 사회성을 키우는 것이 과연 건전한 방법일까. 이는 더 바람직한 아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산만한 아이를 ‘질병’의 차원에서 파악해 약으로 행동을 통제하는 방식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할 문제다. (48쪽)


(영화 《멋진 신세계》에서) 노동계급인 아이가 책을 보거나 읽고 ‘재미있다’고 느끼면 전기 자극으로 격렬한 고통을 준다.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면 노동에 방해가 되므로 독서를 싫어하도록 조건을 설정하기 위해서다. (100쪽)


인간의 ‘시작’ 단계의 생명을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생명을 고쳐서 새로 만드는 기술이 발전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194쪽)



  새벽에 일어나서 뒤꼍에 서니 풀잎이며 나뭇잎마다 이슬이 가득합니다. 해가 하늘로 솟으면 이 이슬은 간곳없겠지요. 밤이 지나고 새벽이 이슥할 즈음 내려앉는 이 이슬방울이란, 여름에 풀하고 나무가 싱그러이 살아가도록 하늘이 내린 고운 손길이지 싶습니다. 숲이 늘 푸른 까닭은 이슬을 보면 쉽게 알 만해요.


  사람이 물을 안 준대서 숲이 마르지 않아요. 바람에 실린 아주 작은 물방울은 골골샅샅 날아다니다가 푸나무 잎에 내려앉기 마련이고, 바람결 그대로 푸나무를 짙푸르게 돌보는 셈입니다.


  《생명을 만들어도 괜찮을까》(시마조노 스스무/조혜선 옮김, 갈마바람, 2018)를 읽으며 숲하고 사람 사이를 생각합니다. 숲처럼 사람도 바람결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적에 사람답게 사는 숨결은 아닐까요? 사람은 숲다운 마음으로 하루를 지을 적에 아름답게 빛나는 목숨은 아닐까요?


  물 한 모금이 몸을 살리지 싶습니다. 이런 약 저런 약이 아니라, 바로 물 한 모금이, 또 바람 한 줄기가, 몸을 따스하면서 넉넉히 어루만지지 싶어요. 왜 그러잖습니까, 병원에서 더는 고치지 못하는 몸일 적에 물이며 바람이 맑은 시골이나 깊은 숲으로 깃들면, 뜻밖에도 아무런 병원치료나 약이 없이도 몸이 낫는다고 말이지요.


  우리는 지나치게 약을 써대면서 몸이 외려 더 망가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바람읽기를 잊고, 물읽기를 잃으면서 그만 의약산업과 병원산업은 키우는 돈벌이는 했되, 정작 우리 몸을 끝없이 망가뜨릴는지 모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처음 태어났을 적에는 아무도 안 아프지 않았을까요? 사람이 사람답게 숲바람을 맞아들이고 숲이슬을 받아들이면서 살림을 지을 적에는 배고픈 이가 없이 모두 넉넉하고 즐겁지 않았을까요? “생명을 만들어도 괜찮을까?” 하고 묻는 책은, 우리가 무엇을 잊거나 잃으면서 두 손에 무엇을 쥐었는가를 차분히 묻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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