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은 여전히 아름답다 - 네팔인에게 배우는 인생 여행법
서윤미 지음 / 스토리닷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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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88


‘아샤·마야’는 네팔말로 ‘꿈·사랑’
― 네팔은 여전히 아름답다
 서윤미 글·사진
 스토리닷, 2017.9.28. 14000원


  어릴 적에는 네팔이라는 나라를 몰랐어요. 세계지도를 펴고서 멧골이 무척 깊고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로만 여겼습니다. 바다란 없이 온통 땅으로 둘러싸였기에, 바다를 안 끼면 답답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어요. 높은 멧골로 둘러싸인 나라에서는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으며 어떤 집에서 살려나 매우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어요. 그리고 네팔이란 나라에 ‘네팔말’이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지요.


“저 방글라데시 친구가 지어 준 이름 있는데, 아샤(Asha)라는 이름이에요.” “아샤라는 이름은 네팔에도 있어요!” “그래요? 아샤는 ‘희망’이라는 뜻이랬어요.” “네팔에서도 똑같은 뜻이에요. 희망!” 그렇게 내 이름은 다시 아샤가 되었다. 나랑 같이 네팔에 일하러 온 언니는 ‘마야(Maya)’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야는 사랑이라는 뜻이랬다. (23쪽)


  네팔이라는 나라에서 지내며, 또는 네팔을 숱하게 오가면서, 한국하고 네팔을 잇는 디딤돌이나 징검돌 구실을 한다는 서윤미 님이 쓴 《네팔은 여전히 아름답다》(스토리닷, 2017)를 읽다가 첫머리에서 네팔말 두 가지를 듣습니다. 하나는 ‘아샤’요, 다른 하나는 ‘마야’입니다. 아샤는 네팔말로 꿈이라 하고, 마야는 네팔말로 사랑이라 한대요.

  꿈하고 사랑. 꿈이랑 사랑. 두 낱말을 곱씹습니다. 한국에서는 ‘꿈’을 이름으로 삼는 분은 드물지만 ‘꿈이’처럼 뒷말을 붙여서 즐겁게 쓰곤 합니다. ‘사랑’은 이름으로 널리 써요. 뜻으로도 느낌으로도 결로도 ‘꿈·사랑’은 매우 고운 말이지 싶은데, 이는 네팔에서도 매한가지라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말이 다르고 땅이 달라도, 삶을 바라보는 마음은 서로 같구나 싶어요.


매일 1500여 명의 네팔인들이 이주 노동을 떠나며 매일 3명씩 죽어서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그날 공항에서 누군가 울고 있으면 공항에 죽은 이주 노동자의 관이 들어오는 날이라 했다. (32쪽)

이 방은 아주머니 딸이 쓰던 방인데 딸은 지금 시집가고 없다고 했다. 내가 자기 딸과 꼭 닮아 딸 생각이 난다며 손에 유채꽃 기름을 들고 들어오신 것이었다. 걷느라 힘들었을 나를 생각하며 나의 종아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시더니 유채꽃 기름으로 내 종아리를 문질러 주셨다. (47쪽)


  네팔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이 네팔에서 조용히 살림을 지으며 살기가 만만하지 않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로 떠나서 돈을 버는 젊은이가 많다고 해요. 어느 한쪽에서는 관광하러 가는 나라로 여기는 네팔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주노동자가 빠져나가는 나라인 네팔이라지요. 날마다 천오백에 이르는 네팔사람이 돈을 벌려고 제 나라를 떠나는데, 이 가운데 날마다 셋은 주검으로 네팔에 돌아온다고 해요.

  우리는 이 대목을 얼마나 알거나 느낄까요? 왜 네팔이라는 나라는 날마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제 나라를 빠져나가야 할까요?

  집에 텔레비전이나 손전화를 들여야 하기에 이주노동자가 되어야 할까요. 학교교육을 받으려면 돈이 드니 식구 가운데 누군가 이주노동자가 되어야 할까요. 현대 문명이 깃든 집을 새로 지어야 하니 이주노동자가 돈을 벌어다 주어야 할까요.


세계문화유산은 무너졌고 곳곳에 안전표지판이 즐비했다. 무너진 잔해 옆에서 사람들의 일상은 그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지진이 일어난 지 1년 반이 지난 2016년 여름, 자다가 갑자기 나는 중얼거리며 눈을 떴다. ‘네팔은 여전히 아름다운데’라며. 왜 내 입에서 자다 말고 그런 문장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눈을 뜨자마자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을 지나가고 있었다. (216쪽)


 《네팔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네팔은 예나 이제나 그대로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관광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요즈음이든, 관광이란 없던 지난날이든, 이주노동자가 되려고 네팔을 떠나는 사람이 많은 오늘날이든, 이주노동이란 없이 모두 고향마을에서 조용히 눈밭바라기를 하던 지난날이든, 네팔은 네팔답게 아름답다지요. 무시무시한 지진 탓에 네팔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이 무너지고 삶터가 쓰러진 이즈음에도 네팔은 한결같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면 네팔이라는 곳은 무엇이 아름다울까요? 네팔사람은 네팔에서 스스로 어떤 아름다움을 마주할 만하고, 네팔을 찾아나서는 이들은 어떤 아름다움을 만날 만할까요?


가만히 혼자 두 시간 동안 앉아 있으니 안개가 내려앉고 이동하면서 들리는 산과 산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의 안개소리가 들린다. 마을이 잘 내려다보이는 돌에 앉아 있으니 뒤로는 바람소리만, 앞으로는 마을의 소리가 들린다. (128쪽)

대자연보다 경이로웠던 것은 결국 네팔인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나는 얼마나 내 손으로, 내 힘으로 할 줄 아는 게 있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들었다. (168쪽)


  예부터 이 땅은 고요한 아침나라 같은 이름을 얻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가 없이 해맑게 피어나는 하늘빛이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한자말로 금수강산이라고도 했어요. 비단에 그림무늬를 새기듯이 멧골이며 냇물이 아름다운 곳이었다고 해요. 비록 오늘날에는 온갖 막삽질에다가 4대강사업으로, 또 갯벌을 어마어마하게 함부로 메운 짓, 끝없는 송전탑, 고속도로, 골프장이 넘쳐나면서 눈부신 멧골이나 티없는 냇물은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그런데 있지요, 이 땅이 예부터 아름답고 고요하며 아침나라 같았다면 멧골이나 냇물만 이와 같다는 뜻은 아니라고 느껴요. 이 땅에서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꾸는 사람들이 저마다 싱그럽고 아름답다는 뜻이라고 느껴요.

  아름다운 삶터를 아름답게 가꾸기에 아름답게 노래하고 일하고 살림하면서 아이를 낳아 돌봅니다. 눈부신 숲을 정갈하게 돌보기에 기쁘게 꿈꾸고 웃고 이야기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마을마다 두레나 품앗이를 이룹니다.

  네팔이라는 나라를 놓고 예나 이제나 아름답다고 한다면, 빼어난 숲터만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라, 이 숲터를 가꾸면서 삶을 짓는 네팔사람이 더없이 아름답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문화유산이라 하면 닳을까 손상될까 만지면 안 될 것 같고,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이미지가 강하다면 네팔에 와서는 그들의 삶 속에 살아 숨쉬는 문화유산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10쪽)


  네팔말로 꿈이랑 사랑을 뜻한다는 ‘아샤·마야’를 되새깁니다. 우리는 네팔에 가서 아샤나 마야 같은 고운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네팔사람은 한국에 와서 꿈이나 사랑 같은 고운 말을 들을 수 있어요.

  아샤와 마야가 네팔을 곱게 가꾸고, 꿈하고 사랑이 한국을 곱게 돌봅니다. 사람한테 붙이는 이름으로도, 숲터나 마을이나 나라나 멧골에 붙이는 이름으로도, 아샤·마야하고 꿈·사랑은 즐거운 노래가 되리라 봅니다. 사람 사이에 숲이 있고, 숲 사이에 사람이 있어요. 사람 사이에 깊은 멧골하고 눈밭이 있으며, 깊은 멧골하고 눈밭 사이에 사람이 있습니다. 네팔도 한국도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터전이라는 이름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11.2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스토리닷 출판사에 말씀을 여쭈어 고마이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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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이 들려주는 참 쉬운 새 이야기 철수와영희 생명수업 첫걸음 3
김성현 지음 / 철수와영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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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32


보금자리에 사는 나무 심는 멋쟁이는 누구?
― 김성현이 들려주는 참 쉬운 새 이야기
 김성현 글·사진
 철수와영희, 2017.10.30. 18000원


  가을이 깊어 가면서 마을마다 까마귀가 무리를 지어 날아다닙니다. 까마귀는 가을까지는 따로따로 살지만, 추위가 찾아들면 크게 무리를 지어서 다닙니다. 까치도 여느 때에는 따로따로 살지만, 까마귀가 무리를 지어 다닐 즈음부터 커다랗게 무리를 지어요. 때때로 까마귀떼하고 까치떼가 하늘에서나 빈논에서 자리다툼을 하는데, 대단히 시끌벅적하면서 하늘이나 들을 새까맣게 뒤덮습니다.

  이 가을에는 저희 집에 숱한 새가 끊임없이 찾아들어 먹이를 찾습니다. 저희가 집에서 새모이를 따로 마당이나 뒤꼍에 두지는 않습니다. 다만 감나무에 까치밥을 잔뜩 두어요. 사다리를 받치고도 딸 수 없는 높은 가지에 맺은 감을 그대로 두는데, 이런 감이 서른 알이 넘지요. 새소리가 많이 들려서 뒤꼍 감나무를 올려다보면, 참새나 딱새 같은 작은 새부터 직박구리하고 물까치를 비롯해서 아직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 숱한 새가 서로서로 감알을 쪼겠다면서 부산합니다.


발가락 개수도 사람은 다섯 개지만 새는 보통 네 개 또는 세 개야. 가장 흔한 것은 발가락 세 개가 앞으로 나와 있고 하나가 뒤쪽을 받쳐 주는 모양이지. 이런 모양은 나뭇가지를 잡고 앉거나 사물을 움켜잡기 알맞아. (20쪽)

새는 눈이 머리뼈에 고정되어 있어서 사람처럼 눈을 움직이기 어려워. 그래서 눈을 움직이지 않고도 넓게 볼 수 있도록 진화했지. 사람의 시야가 약 200도인데, 비둘기는 316도. 멧도요는 359도라고 해. 부엉이류는 시야가 사람과 거의 비슷하지만 대신 목을 270도나 돌릴 수 있어서 좁은 시야를 극복한단다. (26쪽)


  《김성현이 들려주는 참 쉬운 새 이야기》(철수와영희, 2017)는 열 살 즈음 어린이도 새 이야기를 한결 쉽게 살필 수 있도록 쓴 길잡이책입니다. 우리 곁에 있는 새를 지켜보거나 살펴보는 사람은 어른만 있지 않아요. 어른들은 한자말로 ‘탐조’ 같은 말을 쓰는데요, 이런 말은 아이들한테 퍽 어렵습니다.

  별을 보며 ‘별보기·별바라기’라 하듯이, 달을 보며 ‘달보기·달바라기’라 하듯이, 새를 보는 일은 ‘새보기·새바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이나 생태 이야기도, 사회나 인문 이야기도, 문화나 예술 이야기도, 앞으로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모두 새롭게 쓴다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암컷은 화려하지 않고 색이 수수한 경우가 많아. 암컷이 아름다우면 번식할 때 위험에 맞닥뜨릴 수 있잖아. 대부분의 암컷은 번식 활동에 전념해야 하는데 천적의 눈에 쉽게 띈다면 잡아먹힐 수도 있거든. (39쪽)

높은 바위나 나무에 알을 낳는 새의 알은 한쪽이 긴 타원형이야. 그래야 혹시 굴러가더라도 멀리 벗어나지 않고 되돌아오니까 둥지에서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 있지. (47쪽)


  올여름에 풀을 베다가 까투리를 밟은 적 있습니다. 까투리는 알을 품느라 제가 낫으로 풀을 베다가 제 몸을 물컹 밟을 적까지 꼼짝을 안 했구나 싶더군요. 저한테 밟힌 까투리는 ‘꿔꿔꿩’ 하면서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데, 저도 화들짝 놀랐어요.

  알 품던 까투리한테 미안해서 까투리가 알을 낳은 자리 둘레는 풀을 안 벴습니다. 이튿날 슬그머니 다시 가 보니 까투리는 어느새 돌아와서 알을 품었고, 이윽고 모든 새끼를 까서 신나게 놀더군요.

  아마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에는 까투리나 장끼뿐 아니라 뜸뿍새도 쉽게 만나던 새였으리라 생각해요. 메추리알을 가게에서 쉽게 사다 먹잖아요? 이 메추리도 예전에는 참새마냥 매우 흔한 새였다고 해요. 저 또한 어릴 적에 메추리 둥지에서 메추리알을 슬쩍해서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더러 둥지를 보고, 둥지에 있는 새알을 보더라도 모두 그대로 둡니다. 한 알에서라도 더 새끼를 까서 어미새로 클 수 있기를 바라요.


무거운 이빨과 턱뼈 대신 가벼운 부리로 진화했지. 몸무게를 줄이려고 오줌을 저장하는 방광도 없어. 또한 뼈의 속이 비어 있어서 온몸의 뼈를 다 모아도 깃털을 모은 것보다 가볍다고 해. 몸무게를 최대한 줄이려고 소화력도 좋단다. (59쪽)


  아이들하고 《김성현이 들려주는 참 쉬운 새 이야기》를 찬찬히 읽습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서 새로 쓴 새 이야기입니다만, 그래도 아이들한테는 좀 어려운 말씨나 이야기가 더러 있어서, 이때에는 어른이 곁에서 새삼스레 풀어내어 다시 들려줍니다.

  갯벌이나 너른 냇가로 마실을 가지 않더라도 시골마을에서 만나는 새가 꽤 많습니다. 우리 집 나무마다 맺은 열매를 까치밥이라기보다 새밥으로 남겨서 새를 지켜봅니다. 새가 찾아들면서 어떤 소리를 내는지, 이 소리가 어떤 노래로 들리는가를 가만히 귀여겨듣습니다.

  좀 뜬금없다 싶은 자리에서 찔레싹이 돋거나 초피싹이 돋는 모습을 볼라치면, 틀림없이 새가 찔레알이나 초피알을 훑고서 이곳에 똥을 누었네 하고 어림합니다. 우리는 찔레알이나 초피알을 이곳에 안 묻었는데에도, 뜻밖이다 싶은 곳에서 이런 나무싹이 돋곤 하거든요.

  가을에 참새가 나락 같은 곡식을 쫀다고 싫어하는 분이 많은데, 가을 한 철을 빼고는 새는 숱한 날벌레랑 풀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고, 나무씨를 곳곳에 퍼뜨리는 구실을 하니, 마냥 싫어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새 한 마리는 엄청난 벌레 사냥꾼이자, 나무를 심는 멋쟁이라고 느껴요.


어떠한 경우든 새를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해. 새가 많은 곳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재미로 새를 날려 보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간혹 가다가 더 멋진 사진을 찍겠다고 새의 둥지를 망가뜨리거나 새를 괴롭히는 사람들도 있더라니까. (126쪽)


  곧 추위가 온 나라를 덮습니다. 눈이 온 땅을 덮고 먹이가 줄어들 겨울에 이 나라에서 숱한 멧새가 부디 포근하고 넉넉히 겨울나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마다 다른 숱한 새는 우리 이웃이자 동무입니다. 숲과 마을과 지구라는 얼거리를 튼튼히 지키는 크고작은 새를 살가운 눈으로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새가 넉넉히 살아갈 수 있는 곳은 사람도 넉넉히 살아갈 수 있는 곳이지 싶어요. 새가 고이 둥지를 틀 수 있는 곳은 사람도 아늑하면서 정갈하게 집을 가꿀 만한 곳이지 싶어요. 새가 지어서 알을 낳아 지내는 곳을 ‘둥지·둥우리·보금자리’라 하는데, 우리는 예부터 이 세 마디 ‘둥지·둥우리·보금자리’라는 이름을 ‘사람이 사랑스럽고 넉넉하게 살림을 이루는 집’을 빗대는 자리에 썼어요.

  옛날 옛적 사람들은 사람 곁에 있는 새가 얼마나 대수로운가를 잘 알고 느껴서 이렇게 여러 이름(새집을 일컫는 이름)을 짓고, 이 이름을 사람집을 빗댈 적에 썼다고 느껴요. 새한테도 사람한테도 모두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있는 터전으로 나아가는 길에 이쁜 책 하나를 길잡이 삼아서 곁에 둡니다. 2017.11.15.물.ㅅㄴㄹ

[보금자리]
1. 새가 알을 낳거나 깃들이는 곳
2. 짐승이 잠을 자거나 들어가서 사는 곳
3. 사람들이 지내기에 매우 포근하고 아늑한 곳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서)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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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버섯 도감 한눈에 알아보는 우리 생물 5
최호필.고효순 지음 / 자연과생태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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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30



숲을 가꾸는 이쁜 곰팡이인 버섯

― 화살표 버섯 도감

 최호필·고효순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7.5.28. 28000원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살며 아이들하고 자전거를 몰아 숲길을 달리다가 버섯을 처음 만나던 때를 두고두고 떠올립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그때 숲버섯을 딴 일을 또렷이 떠올려요.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이하면, 여름으로 접어들면, 가을이 깊으면, 때랑 철이랑 날에 따라 다른 버섯이 돋는 숲은 그야말로 나물밭이라 할 만합니다. 아니 버섯밭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쩌면 버섯숲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이 그렇듯 버섯도 다른 생물과 유기적으로 공존하며 생태계의 한편을 담당합니다. 그중에서도 나무의 구성물질인 리그닌과 셀룰로오스를 분해해 생태계 순환의 큰 고리 역할을 합니다. 살아 있는 나무와 영양을 주고받으면서 나무의 생장을 돕기도 하고 때로는 살아 있는 나무에 침투해 큰 피해를 입히기도 하지요. 그런가 하면 수많은 곤충의 먹이가 되고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어 곤충이 번식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4쪽)



  버섯숲이란, 버섯골이란, 버섯밭이란 얼마나 넉넉하고 아름다운 자리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버섯은 풀이 아닌 곰팡이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하다는데, 막상 이 곰팡이라는 버섯으로 밥을 짓거나 국을 끓여 보면 얼마나 맛나면서 냄새가 그윽한지 몰라요. 더구나 버섯은 구워서 먹어도 맛나지요. 버섯만 따로 굽든, 고기하고 함께 굽든, 더덕이나 당근이나 감자랑 함께 굽든, 이래저래 맛을 한껏 끌어올립니다.


  제가 집에서 버섯구이를 하면 아이들 수저질이 매우 잽쌉니다. 밥그릇을 뚝딱 비우지요. 이 놀라우며 반갑고 고마운 버섯을 다룬 《화살표 버섯 도감》(자연과생태, 2017)을 찬찬히 넘기면서 이 땅 곳곳에서 숲을 가꾸는 몫을 살그마니 맡는 버섯을 새삼스레 헤아려 봅니다. 640쪽에 818가지 버섯을 놓고서 3,500장에 이르는 사진을 보여주는 엄청난 도감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버섯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4000∼5000종으로 추정합니다. 그중 현재까지 1900여 종이 보고되었고 여기에 버섯 책자나 인터넷 게시물 등을 통해 확인 가능한 버섯까지 더하면 2300여 종 이상에 이릅니다. (4쪽)



  숲에서 버섯을 따신 분은 아마 다들 알 텐데, 숲버섯은 곧 녹습니다. 버섯이 땅에 살짝 뿌리를 박고 피어날 적에는 싱싱한데, 이 숲버섯은 사람 손에 닿아 땅에서 떨어지면 이내 녹아요.


  가게에서 파는 버섯은 여러 날 둘 수 있습니다. 가게까지 오는 데에도 하루 안팎 걸렸을 테고요. 쉽게 녹는 숲버섯을 헤아리면, 또 잘 안 녹고 오래 가는 ‘가게버섯’을 생각하면, 우리 몸을 이루는 먹을거리란 더없이 놀라우면서 대단하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숱한 숲버섯 가운데 우리가 아는 버섯은 참말 없구나 싶어요. 《화살표 버섯 도감》을 엮은 분들이 머리말에서 밝히기도 하는데, 거의 5000가지나 있다고 하는 숲버섯 가운데 우리는 몇 가지 이름을 알까요? 알려지지 않은 숱한 버섯은 숲에서 어떻게 나고 스러질까요?



생태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태 관련 교육도 많이 있으나 풀과 나무, 곤충 등에 대한 교육이 주류를 이루고 버섯은 제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버섯을 교육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더러 쉽게 보고 배울 수 있는 자료가 충분치 못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5쪽)



  예부터 숱한 버섯을 사람들이 잘 살피고 가려서 밥살림에 보탰어요. 요새는 가게에 놓는 몇 가지 버섯을 빼고는 우리가 잘 알거나 살피기는 퍽 어려워요. 집에서 길러서 먹을 수 있는 버섯도 있을 테지만, 숲마실을 하면서 문득문득 만나는 이쁜 곰팡이인 버섯을 만나서 즐겁게 먹는 길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밥살림에 버섯을 보태지 않더라도, 숲이 새롭게 태어나도록 돕는 작은 목숨붙이인 버섯이기에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반갑게 지켜볼 수 있어요.


  버섯마다 어떻게 다르고 어떤 대목을 살펴보면 좋은가를 화살표로 콕콕 짚으며 알려주는 도톰하면서 알뜰한 《화살표 버섯 도감》을 책상맡에 놓습니다. 숲마실을 다녀오면서 버섯 사진을 찍으면 이 도감을 뒤적이면서 우리가 만난 숲 이웃을 헤아려 봅니다. 2017.10.3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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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탐미기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시루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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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4


아름다운 이웃인 나비를 그림에 담다
― 나비 탐미기
 우밍이 글·그림·사진
 허유영 옮김
 시루 펴냄, 2016.7.19. 14000원


  나비가 알 낳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애벌레가 번데기를 튼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번데기를 벗고서 깨어나는 나비를 보기는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다만, 알을 낳든 번데기를 틀든 나비로 깨어나든, 동영상이 아닌 맨눈으로 코앞에서 지켜보기란 어려울까요, 아니면 쉬울까요?


요즘 나는 나비를 관찰할 때 그림을 그려 답을 찾아내려고 한다. 우리가 나비를 상품으로 여기면 마음속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것을 표본으로 만들고 시장 논리에 따라 판매할 것이고 … 우리가 나비라는 생명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그것을 내적 가치를 지닌 특별한 생명으로 여긴다면 오직 거래, 수집, 연구 수단으로 나비를 잡고 인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11쪽)


  마당에서 나비를 지켜보며 놀던 큰아이가 ‘나비 알낳기’를 처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큰아이는 나비가 알을 낳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몇 해 동안 좀처럼 ‘나비 알낳기’를 못 보았어요. 어쩌면 느긋하게 살펴보지 못한 탓에 못 알아보았을 수 있어요. 다른 놀이가 더 재미있어서 나비 날갯짓에 숨은 뜻을 몰랐을 수 있고요.

  우리 집에서 깨어나는 나비가 몇 가지 있는데, 이 가운데 파란띠제비나비 한 마리가 후박나무하고 초피나무 사이를 매우 잰 날갯짓으로 넘나들었습니다. 큰아이는 이런 잰 날갯짓을 궁금해 하면서 한참 지켜보았고, 나비가 문득문득 스치듯 지나간 자리마다 작은 알이 하나씩 남은 모습을 알아차립니다.


관람객들은 여과지도 붙이지 않은 손전등을 반딧불에 마구 비추어대고 주전부리를 손에 든 채로 전시관을 어슬렁거린다. 그들 중 반딧불과 진정 교감하려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 왕얼룩나비와 함께 찍은 사진은 그들에겐 그저 남에게 뽐내기 위한 종이 한 장일 뿐이다. (27쪽)


  나비가 낳은 알을 처음으로 알아본 큰아이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온 식구를 부릅니다. 여기에 알이 있고 저기에 알이 있다면서 손가락을 가리킵니다. 큰아이는 날마다 알을 쳐다보는데, 며칠 지나고 나니 알이 모두 사라졌다고 합니다. 슬픈 낯빛인 큰아이를 달래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얘야, 나비가 왜 나뭇잎 하나에 알을 하나만 낳는 줄 아니?” “아니. 몰라.” “그러면 생각해 보자. 나비가 나뭇잎 하나에 모든 알을 다 낳았어. 그런데 이 나뭇잎이 똑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그 알은 다 죽어?” “그래. 다 죽지. 그래서 나비는 나뭇잎 하나에 알을 하나만 낳아. 그렇게 온갖 잎마다 알을 하나만 낳으려고 매우 부산하게 날갯짓을 하면서 알을 낳을 만한 잎을 살피지.” “그렇구나.” “네가 찾아낸 알은 어쩌면 다른 벌레가 먹이로 삼았을 수 있어. 그렇지만 모든 알이 다 벌레먹이가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해. 우리가 못 본 자리에는 틀림없이 나비가 낳은 알이 살아남았을 테니까.”


나는 배추흰나비를 잃어버린 밭두렁에서 채소들이 얼마나 외롭게 자랄지 상상할 수 없었다. (45쪽)

래리가 말했다. “올해 설에 저어새를 보러 갔는데, 가는 도중에 길가에 노점상이 많았어. 저어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 주변에 가 보니 저어새 구이는 말할 것도 없고, 없는 것 없이 다 팔고 있더라니까. 빈난공업단지, 툰텍스화학단지, 메이능저수지가 전부 완공되면 그 노점상들이 저어새 기념 머그잔이나 연노랑나비티셔츠, 가방 같은 걸 팔게 되겠지.” (71∼72쪽)


  대만사람 우밍이 님은 지난 2000년에 《나비 탐미기》(시루 펴냄)를 썼다고 해요. 이 책이 2016년에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나비 전시관에서 일하는 동안 사람들이 나비를 얼마나 못살게 구는가를 지켜보았고, 전시관장은 나비를 언제나 한낱 돈푼으로만 여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대만 곳곳을 누비면서 나비를 살필 적마다 대만이 일제강점기였을 적에 일본 학자가 얼마나 대만 나비를 꼼꼼히 살펴서 적바림했는가를 새삼스레 느꼈다고 합니다.

  한국도 대만하고 엇비슷합니다. 한국 나비를 놓고도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가 깊고 넓게 살폈어요. 한국 사회는 그무렵 식민지살이를 해야 하기도 했습니다만, 나비 한살이를 눈여겨보거나 아끼는 손길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려웠어요.


날개를 펼치면 10cm도 넘는 그 거대한 나비를 어째서 보지 못하는 걸까? 온몸이 검은 그 나비를 밤낮이 바뀐 아둔한 박쥐로 오인해서일까? 아니면 먹색 날개를 가진 새로 착각해서일까? 어쩌면 눈을 크게 뜨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92쪽)

나비들과 사귄 후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그들이 휴대용 스피커를 들고 또는 소풍을 즐기기 위해 도시락을 싸 들고 오는 나들이객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103쪽)


  여름이 저무는 즈음 시골마다 뻥 뻥 하는 소리가 곳곳에 울려퍼집니다. 총을 쏘는 소리입니다. 노루가 밭으로 들어온다면서 이 마을이나 저 마을이나 총을 쏩니다. 총알을 재워서 쏘는지 빈 총으로 소리로만 쏘는지 모르나, 아침 일찍 뻥 뻥 소리가 나고, 해질 무렵까지 이 소리가 이어집니다.

  아무래도 시골에 어린이나 젊은이는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만 계시니 밭 언저리에서 총을 하루 내내 쏠 수 있구나 싶습니다. 마을에 어린이나 아기가 산다면, 또 젊은이가 북적거린다면, 노루나 멧돼지가 밭에 드나든다고 해서 함부로 총소리를 내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노루를 미워하며 총소리를 내는 시골에서는 나비도 몹시 싫어합니다. 나비로 깨어나기 앞서 애벌레일 적에 잎을 얼마나 갉아먹느냐면서 싫어하지요. 그렇지만 애벌레에서 나비로 거듭나기에, 나비는 수없이 많은 ‘열매 꽃가루받이’를 해내요. 사람 손이 닿기 어려운 자리에 맺는 꽃마다 살포시 앉아서 꽃가루를 조금 먹으면서 꽃가루받이를 살뜰히 해 줍니다.


그 후 일본군은 계획적으로 숲을 죽이고 철거하고 운반했으며 그 증거로 나무 처형장으로 향하는 철도와 도로를 남기고 떠났다. 뒤이어 들이닥친 국민당 정부는 산맥과 강을 독살하고 마구잡이로 갈라놓았다. 산소와 하늘은 재벌들에게 독점당하고 재벌들은 그 대가로 몇 푼 안 되는 이자를 내놓으며 스스로 해친 땅을 ‘보호하는’ 자비를 베풀었다. (128쪽)


  나비는 그저 겉보기로만 날갯짓이 고운 목숨일까요? 나비가 알을 낳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까요? 나비 애벌레는 몽땅 잡아서 죽여야 할까요? 오직 사람만 있고 벌도 나비도 잠자리도 새도 사라져야 할까요?

  《나비 탐미기》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를 떠올립니다. 말썽거리가 터졌다 하면 닭이고 달걀이고 수십만 수백만 목숨이 땅에 묻혀서 죽어야 하는 사회 얼거리를 떠올립니다. 알맞게 먹고 나누는 사회보다는 더 돈이 되는 길로 나아가는 사회 얼거리를 떠올립니다.

  《나비 탐미기》를 쓴 대만사람 우밍이 님은 잠자리채를 안 쓰려 한다고 합니다. 사진기조차 안 챙기려 한다고 합니다. 나비를 지켜보거나 살필 적에 오로지 두 눈으로 살피면서 종이에 연필로 그림을 그려 넣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가장 투박하고 수수하면서 더딘 길을 가는 셈이겠지요. 잠자리채로 낚아채면 더 가까이에서 손으로 쥐면서 지켜볼 수 있을 텐데, 나비를 따라서 숲을 헤매고 온 골짜기를 오르내린다고 합니다. 사진기로 찍어 놓으면 그림 그리기가 한결 수월할 테지만, 나무 곁에 서거나 앉아서 한참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그들(나비)의 엄지손가락만 한 문신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처럼 지면에 닿을 듯 가깝게 엎드려 아주 조금씩 느리게 움직이며 눈을 최대한 그들 가까이 가져다 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야성적인 붓터치이자 생명의 먹물이 퍼진 모습이다. (156쪽)

세잔 작품의 복제품을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림 실력이 세잔보다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그것은 영혼을 선과 색채 속에 가두어버린 그림일 뿐이다. 황세줄나비도 복제할 수 없는 자연의 경치다. (31쪽)


  큰아이는 나비가 알을 낳은 모습을 지켜본 뒤, 오래오래 들여다본 다음, 즐겁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나비가 어떻게 날갯짓을 하며 알을 낳는지 그리고, 나비가 알을 낳은 잎을 그렸어요. 아이는 마음에 담은 우리 집 나비를 그림으로 옮겨서 앞으로 새로운 목숨(애벌레)이 깨어나서 즐겁게 잎을 갉다가 번데기를 틀고, 바야흐로 고운 나비가 다시금 태어나기를 꿈꿉니다.

  나비를 그림으로 담으면서 나비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동무인지를 생각합니다. 나비를 담은 그림을 바라보면서 나비가 얼마나 아름다운 이웃인지를 헤아립니다.

  그림에 담으려고 오래도록 지켜봅니다. 그림으로만 담을 생각이기에 억지로 잡지 않습니다. 그림에 담고 싶기에 나비 날갯짓을 따라서 함께 들길이나 숲을 달립니다. 그림으로 담은 뒤에는 따뜻한 눈길로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우리가 나비뿐 아니라 둘레에 있는 사람들을 따사로이 바라보며 넉넉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참으로 좋을 텐데 싶습니다. 기쁨도 평화도 사랑도 따사로우며 넉넉하게 바라보는 눈길에서 피어나리라 봅니다. 2017.8.29.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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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산책
노인향 지음 / 자연과생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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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29


달콤한 바람 마시는 마실길에 책을 읽다
― 섬마을 산책
 노인향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7.8.7. 12000원


  어릴 적에 바람이 달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여느 때에는 바람이 매캐한 곳에서 늘 지내야 했기에 달디단 바람을 느꼈구나 싶어요.

  제가 어린 날을 보내고 국민학교를 다니던 마을에는 화학공장하고 연탄공장이 있었어요. 아침 낮으로 늘 이 앞을 지나다니며 코가 뚫어지는구나 하고 느꼈지요. 이러다가 갯벌이 보이는 바닷가로 나가면 바람이 시원하다고 느꼈습니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 시외버스를 타고 당진 시골에 나들이를 갈 적에는 바람맛이 참 다르네, 바람이 달구나 하고 느꼈어요. 고작 여덟아홉 살 아이 코에도 시골바람은 달았습니다. 모깃불 태우는 밤이 지나고 새벽이 찾아올 즈음, 뜨끈뜨끈한 온돌과 달리 종이 한 장만 댄 나무문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또 얼마나 달았나 모릅니다.


달뜬 마음을 가득 안고 노두길로 첫발을 내딛으려는 찰나 왼쪽 해변에서 “퐁퐁”, “다다다” 하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돌려 보니 서서히 드러나는 펄에 점점이 박힌 돌이 가득하다. 돌에서 소리가 날 리는 없고, 뭔가 싶어 갯벌로 내려가는 순간 돌멩이 위에서 수많은 무언가가 다시 “퐁퐁”, “다다다” 뛰어간다. 짱뚱어 새끼들이다. (36쪽)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서울에서 일하면서 지내는 노인향 님이 쓴 《섬마을 산책》(자연과생태,2017)을 읽다 보면 섬마을 나들이를 하면서 ‘달콤한 바람’을 마시는 이야기가 곳곳에 흐릅니다. 시골내기 어린이로 살던 무렵에는 바람이 달콤한 줄 몰랐다고 해요. 서울내기 어른으로 살다가 섬마실을 하며 ‘어릴 적 늘 마시던 바람’이 참말 달콤했네 하고 깨닫는다고 합니다.


농어는 민박집 아저씨가 잡아온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아주머니가 직접 기르고 담근 것이다. 세상에는 값비싸고 흔하게 먹을 수 없는 진미도 많다지만 팍팍한 식당 밥을 주식으로 삼는 이에게는 이런 소박한 밥상이 가장 귀하고 맛나다. (50쪽)

별똥별은 이 하늘 저 하늘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고 밤하늘에 선명한 선을 그었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전쟁이 난 것처럼” 휘황찬란한 하늘은 보지 못했지만 “별이 지나가는 길”을 수십 번이나 본다는 것만으로도 말도 못하게 마음이 벅차오른다.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순간이다. (57쪽)


  섬마을로 나들이를 다니면서 섬밥을 먹습니다. 섬에서 거둔 남새에 섬에서 낚은 물고기로 차린 섬밥입니다. 대단할 것 없는 수수한 차림인 섬밥이라지만, 서울내기 어른으로서는 이 수수한 섬밥이야말로 맛나면서 고맙다고 이야기합니다. 느긋하게 받아서 느긋하게 누리는 밥상입니다. 서둘러 그릇을 비워야 하지 않습니다. 빨리 먹고 일어나야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밥알 하나 나물 한 점 천천히 헤아리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섬마실을 다니면서 마주하는 별이란 무엇일까요. 별은 섬이나 시골에만 뜨지 않아요. 비록 서울에서는 별을 보기에 만만하지 않다지만, 서울 하늘에도 별은 언제나 있습니다. 건물에 가리거나 불빛에 막힌다고 하더라도 애써 찾으려고 하면 ‘서울별’도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바쁘게 다니지 않을 수 있는 자리가 되고서야 비로소 별을 마주합니다. 땅바닥이나 풀밭이나 평상에 드러누워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비로소 별빛이 온몸으로 스며듭니다. 낱말이나 지식으로만 아는, 또는 책이나 영상이나 영화에서 보는 별똥별이 아닌, 맨눈으로 지켜볼 수 있는 별똥별은 매우 달라요.


배 시간이 다 되어서 그만 가 봐야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살아온 세월만큼 투박하지만 따뜻한 손으로 내 등을 두드린다. 그리고는 “그래, 가 봐라. 그리고 내년에 또 온네이.”라며 손을 흔들어 주신다. (79쪽)

깊은 산골에 살던 어린 시절, 도시에서 온 손님들이 이따금 “공기가 달다”고 했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공기가 아이스크림도 아닌데 어떻게 달다는 것인지. 그런데 뭍에서 뱃길로 2시간 반이나 떨어진 섬에 서서 비로소 나는 그들의 말에 공감한다. (84쪽)


  여름이 흐릅니다. 일찌감치 말미를 얻어 여름마실을 다녀온 분이 있을 테고, 이제부터 말미를 받아 여름마실을 다녀올 분이 있을 테지요. 마실길에 《섬마을 산책》이라는 책 한 권을 챙겨 보면 어떠할까 싶습니다. 혼자 마실을 다닌다면 때때로 혼자 생각에 잠길 즈음 가방에서 꺼내어 읽을 만합니다. 아이를 이끌고 마실을 다닌다면,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이 곯아떨어진 뒤에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면서 가만히 꺼내어 펼칠 만합니다.

  섬마실을 떠날 적에만 《섬마을 산책》을 읽어 볼 만하지 않아요. 섬마실에서는 나하고 다른 눈과 다리와 손과 마음으로 섬을 느끼는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들마실이나 숲마실에서는 들이나 숲을 이루는 터전에서도 누리는 달콤한 바람처럼 섬에서 어떤 달콤한 바람으로 기쁜 이야기를 적바림했는가를 헤아립니다.


돈대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붕붕 소리를 내며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니는 녀석들이 보인다. 풍이다. 꽃무지과 곤충인 풍이는 딱지날개를 벌리지 않고 옆에 있는 틈 사이로 속날개를 내밀며 난다. 처음에는 녀석들이 내는 이 날갯짓 소리에 벌인 줄 알고 깜짝깜짝 놀랐다. (146쪽)

열여섯. 한창 다른 세상이 궁금할 나이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이들이 또 하나같이 소리친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 다시 대청도로 올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괜스레 코끝이 찡해진다. (164∼166쪽)


  며칠 말미를 얻기에도 바쁜 몸이라면 이곳저곳 마실을 다닐 적에 자칫 바쁘게 움직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말미란 우리가 여느 때에 매우 바쁘게 살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느긋하고 스스로 넉넉하며 스스로 너그러운 마음을 되찾자는 하루일 때에 즐거울 만하지 싶습니다. 더 많은 곳을 둘러보지 않아도 돼요. 더 많은 뭔가를 느끼거나 보거나 누려야 하지 않아요. 섬 한 곳도 좋고, 골짜기 한 곳도 좋으며, 바닷가 한 곳도 좋아요. 그냥 수수한 시골집 한 곳도 좋습니다.

  매캐한 바람에 둘러싸인 채 살아온 나날을 며칠쯤 말끔히 잊고서 달콤한 바람을 마시는 마실길을 누려 봐요. 고작 서울에서 한두 시간을 벗어날 뿐인데 바람맛이 달라지는 하루를 누려 봐요. 때로는 솜사탕처럼 달고, 때로는 사탕수수보다 달며, 때로는 코코아는 댈 수 없도록 달디단 바람을 누려 봐요.

  달콤한 바람 한 줄기가 우리 몸을 감돌 적에 온갖 티끌을 씻어 줍니다. 달콤한 바람 두 줄기가 우리 몸을 스치면서 웃을 적에 갖은 앙금을 달래 줍니다. 달콤한 바람 석 줄기가 우리 몸을 어루만지면서 노래할 적에 바야흐로 맑은 마음으로 거듭나면서 새롭게 기운을 차립니다. 책 한 권으로 바람마실을 함께 누립니다. 2017.8.8.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 본문사진을 보내 주셔서 고맙게 싣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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