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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두 얼굴의 역사 인류의 작은 역사 1
실비 보시에 글, 장석훈 옮김, 메 앙젤리 그림, 한정숙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은 사랑을 배우며 자라야지요
 [푸른책과 함께 살기 90] 실비 보시에, 《전쟁과 평화, 두 얼굴의 역사》(푸른숲,2007)

 


- 책이름 : 전쟁과 평화, 두 얼굴의 역사
- 글 : 실비 보시에
- 그림 : 메 앙젤리
- 옮긴이 : 장석훈
- 펴낸곳 : 푸른숲 (2007.3.26.)
- 책값 : 1만 원

 


 실비 보시에 님이 푸름이한테 읽힐 뜻으로 쓴 《전쟁과 평화, 두 얼굴의 역사》(푸른숲,2007)를 읽다 보면, 싸움터 군인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놓고 아주 또렷하게 잘 간추렸습니다. “어떤 군인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직업 군인이라면 그것이 직업이기 때문에, 어떤 군인은 군복이 멋있어서, 어떤 군인은 전쟁에 참가하는 게 정의롭다고 사람들이 얘기해서, 어떤 군인은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군인은 국법에 의해 전쟁에 끌려왔기 때문에(72쪽).”라 하면서, 어리석게 믿는 사람이나 슬프게 휩쓸리는 사람 모두 싸움터에서 서로서로 죽고 죽이는 짓을 하고야 만다고 밝힙니다.

 

 책을 읽으며, 프랑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알맞고 좋은 이야기를 찬찬히 들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린이한테나 푸름이한테나 이처럼 이야기할 줄 아는 어른이 몹시 드물거든요.

 

 군인이란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만, 군인이란 무엇보다 ‘사람 죽이는 짓을 하는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법으로 사내들을 군대로 내모는 일이란 하나도 올바르지 않아요. 법으로 무언가를 세우려 한다면, 아름다운 삶을 세워야 합니다. 아름답게 꿈꾸고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는 길을 튼튼히 세울 때에 비로소 법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어떤 나라에서는 군대에 들어가 총을 들고 사람을 죽여야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군대에 스스로 들어가지 않고서야 도무지 살아남을 길이 없게끔 꽉 막히거나 닫힌 나라가 있어요. 정치를 거머쥐거나 경제를 움켜쥔 이들이 사람들 삶을 옥죄거든요. 언론이 제구실을 못하고 교육이 참길을 이끌지 않거든요.


.. 모두가 평화를 원한다고 하면서 왜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 수 없을까요 …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 전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전쟁이 목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평화를 얻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  (12쪽)


 사람들 스스로 평화를 바랄 때에는 평화로이 살아갑니다. 사람들 스스로 평화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평화로이 살아가지 못합니다. 마음 한구석에 ‘평화를 바란다며 무기를 갖추지 않으면 두렵잖아?’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화가 깨집니다. 마음 한켠에 ‘평화를 바라지만 군대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고 근심하기 때문에 평화가 흔들립니다.

 

 전쟁과 평화는 서로 두 얼굴이 아닙니다. 전쟁은 평화를 갉아먹으면서 무섭게 퍼집니다. 평화는 전쟁을 타이르며 보드랍게 녹입니다. 전쟁은 죽음을 먹으면서 사람을 괴롭힙니다. 평화는 삶을 사랑하면서 사람을 살립니다.

 

 나는 군대에 끌려가서 스물두 달을 보내며 어느 하루도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나는 군대에서 사랑을 배우거나 들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군대에서 스물두 달 내내 죽음과 죽임을 듣고 보며 지내야 했습니다.

 

 평화를 생각하는 총이나 칼은 없습니다. 평화를 부르는 총이나 칼이 아닙니다. 평화를 부수는 총이나 칼입니다. 평화를 짓밟는 총이나 칼이에요.

 

 군인으로 지내야 하던 스물두 달 동안 들판과 멧자락을 군화발로 짓이깁니다. 참호를 파고 교통호를 낸다며 애먼 멧자락을 파헤칩니다. 멧등성이를 빙 두르면서 지뢰를 묻고 쇠가시그물을 새로 칩니다. 방공호를 짓는다며 조용하며 맑은 숲을 망가뜨립니다. 군사훈련을 한다며 나무를 베고 들판을 더럽힙니다. 쓰레기를 아무 데나 묻습니다. 수백 사람에 이르는 군인은 군사훈련을 하는 동안 깨끗한 멧자락 어디에나 똥오줌을 내갈깁니다. 고된 행군을 하며 건빵이나 밥 봉지를 들길과 멧길에 함부로 버립니다.

 

 환경을 헤아리지 않는 군인입니다. 환경을 헤아릴 까닭이 없는 군인이랄 수 있습니다. 내 목숨이 간당간당하니까 다른 자리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고된 훈련으로 넋이 빠지니 착한 사랑하고는 동떨어집니다. 주먹다짐과 거친 말이 넘치니 참다운 꿈하고는 등집니다.

 

 사내들은 군대에 간대서 사람이 되지 않아요. 사내들은 군대에 끌려가면서 사람다운 빛과 슬기를 잃어요. 사내들은 군대에서 길들여지며 사랑이랑 평화하고 멀어져요.


.. 갈 길이 멀지만,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을 접어서는 안 됩니다. 평화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평화가 실현될 날도 그만큼 앞당겨질 테니까요 … 간디는 영국인들의 부당한 지배에 폭력으로 맞서는 대신 자신의 목숨을 걸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싸워 나갔습니다. 비폭력 투쟁은 폭력 투쟁보다 더 힘겨운 일입니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  (31, 117쪽)


 누구나 사랑을 배우며 살아야 아름다울 수 있다고 느껴요. 사랑을 배우지 못하며 살아간다면, 산 목숨이 아니라 죽은 목숨이 아닌가 싶어요. 사랑을 꿈꿀 때에 비로소 사람이요, 사랑을 꿈꾸지 못하다면 살가죽만 사람 모양이 아닌가 싶어요.

 

 사랑으로 살아가는 어른일 때에 사랑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되도록 도울 수 있어요. 사랑을 배우며 기뻐하는 어른일 때에 사랑을 배우며 기뻐하는 아이들이 되도록 이끌 수 있어요.

 

 평화란 사랑하는 삶입니다. 전쟁이란 사랑하지 않는 죽음입니다. 평화란 서로 믿고 좋아하는 꿈입니다. 전쟁이란 서로 등치거나 들볶는 미움입니다.

 

 평화를 아끼는 나날이기에 내 손으로 땀흘려 흙을 일굴 줄 압니다. 전쟁에 사로잡힌 나날이기에 내 손으로 땀흘리지 않고 내 몸으로 흙을 일구지 않습니다. 평화를 돌보는 사람이기에 이웃하고 어때동무를 하며 두레를 합니다. 전쟁에 휘둘리는 사람이기에 따돌림과 괴롭힘을 내세워 등수와 계급을 세웁니다.

 

 학문이 아닌 시험성적이 된 대학교는 평화가 아닌 전쟁입니다. 대학교를 바라보도록 이끄는 학교 틀거리는 평화하고 동떨어진 전쟁입니다. 학문 또한 새 전쟁무기와 더 큰 경제개발에 끄달린다면 전쟁하고 마찬가지입니다. 학문 또한 삶과 가깝지 못하고 돈과 권력하고 가깝고 만다면 전쟁하고 똑같습니다.

 

 총소리 울려퍼져도 전쟁이고, 총소리 없어도 전쟁입니다. 사랑스레 돌보며 어깨동무하는 삶이 아니라면 언제나 전쟁입니다. 사랑을 배우고 가르치며 나눌 수 없을 때에는 늘 전쟁입니다.


.. 전쟁을 일으킨 나라들은 자기 나라의 ‘평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얻고자 하는 ‘평화’는 핑계일 뿐이고, 다른 속셈이 있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요 … 칼과 총은 서로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싸울 때 공정한 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자기 목숨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  (36, 80쪽)


 아이들을 입시경쟁으로 내모는 어버이는 전쟁을 일으키는 셈입니다. 아이들을 대학바라기에 가두는 어버이는 전쟁터 지휘자인 셈입니다. 입시학원을 열어 시험성적만 따지도록 이끄는 어른은 전쟁을 일으켜 돈을 버는 재벌기업하고 같은 셈입니다. 대입시험 이야기로 돈벌이를 일삼는 신문과 방송은 군수공장을 차린 재벌기업하고 같은 셈입니다. 입시공부 아니면 아무것도 못 가르치는 제도권학교 교사는 첨단무기 새로 만드는 과학자하고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삶을 바라보아야 해요. 삶을 사랑하는 눈길을 터야 해요. 삶을 사랑하는 눈길로 꿈을 키우는 마음을 북돋아야 해요.

 

 이런 지식 저런 지식은 덧없어요. 이런 졸업증 저런 자격증으로는 아이들이 즐거이 살아가지 못해요.

 

 아이나 어른이나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누려야 해요. 아이나 어른이나 스스로 가장 기뻐할 만한 놀이를 함께해야 해요.

 

 좋은 삶이거든요. 좋은 하루이거든요. 좋은 이야기 꽃피우는 좋은 벗이거든요.


.. 과연 무엇이 문명이고, 무엇이 야만인가요? 수천 수만의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유럽 정복자들이 문명의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전 세계 인구가 1년 동안 각각 128달러(약 12만 8천 원)를 군사비에 쓰는 셈입니다. 10억 명 이상이 하루에 1달러(약 1000원)도 못 되는 돈으로 살고 있는데 말입니다 … 도대체 이 많은 돈이 어디로 가는 걸까요?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군인들에게 워러급도 주어야 하고, 무기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데에도 돈이 듭니다. 전투기, 폭격기, 전차, 무인 전투기와 같은 첨단 무기를 제작하거나 구입하는 데에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  (55, 89쪽)


 자연은 누구한테나 너그러워요. 자연은 누구한테나 밥과 옷과 집을 내주어요. 자연은 몇몇이 홀로 차지하도록 내몰지 않아요. 자연은 스스로 사랑하는 삶을 아끼는 누구한테나 좋은 빛을 베풀어요.

 

 가난이 있는 까닭은 무엇이든 홀로 차지하려는 권력자와 지배자 때문이에요. 배고픔이나 굶주림이 떠도는 까닭은 사랑을 나눌 뜻이 없는 권력자와 지배자가 자꾸 전쟁을 일으키기 때문이에요.

 

 살아가는 즐거움을 모르니까 돈이나 이름이나 힘을 거머쥐면서 이웃을 아끼지 않아요. 살아가는 보람을 등지니까 평화 아닌 전쟁으로 기울어요. 살아가는 멋과 맛을 누리지 않으니까 사랑을 깨닫지 않아요.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하고 좋은 보금자리를 일구면서 좋은 꿈을 꾸고 싶어요. 우리 집 아이들이 좋은 삶을 누리고 좋은 사랑을 먹으며 자라도록 마음을 쓰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 집 아이들을 보육원이나 유아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으며 함께 지내요. 아버지인 나부터 집에서 일하고 살림을 꾸려요. 아버지로서 집에 머문다면 바깥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아주 적거나 아예 없기까지 하달 수 있어요. 그렇지만, 집에서 아이들이랑 복닥이며 얻는 웃음과 기쁨과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삶도 사랑도 사람도 돈으로는 사지 못하거든요. 비싼값 치르며 바깥밥 사먹는대서 기쁜 하루가 아니거든요. 자가용을 굴리지 못하는 살림이지만, 아이들이랑 나란히 걷고 뛰면서 즐거워요. 들길을 걷고 멧길을 걸어요. 들꽃을 보고 멧꽃을 봐요. 풀포기와 나무를 언제나 벗삼아요.

 

 집에서 아이들과 살아가기에 두 아이는 천기저귀를 쓸 수 있어요. 천기저귀는 아버지가 도맡아 손빨래를 해요. 환경이니 전쟁이니를 떠나, 아이들 몸을 헤아리며 즐거이 천기저귀를 써요. 아니, 천기저귀를 대고 천기저귀를 빨래하는 삶이 즐거워요. 아이들을 씻기고 아이들을 먹이며 아이들하고 얼크러지면서 날마다 새 마음이 될 수 있어요. 내 어린 나날을 돌이키고 아이들 앞날을 꿈꿀 수 있어요.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따사로이 재우고,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작은 가슴에서 샘솟는 좋은 씨앗을 느낄 수 있어요.

 

 전쟁을 막거나 그치도록 하자며 평화를 생각하거나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사랑을 꿈꾸거나 생각하면서 천천히 평화로운 나날을 누리거나 즐길 수 있구나 싶어요. 평화는 평화를 말하거나 외친대서 찾아오지 않으니까요. 평화는 평화로운 삶을 사랑하는 하루하루가 바로 평화일 테니까요. (4345.2.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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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벼라, 인생 고박과 남쌤이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인생론 1
고성국.남경태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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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아이들은 푸르게 사랑해야지
 [책읽기 삶읽기 98] 고성국·남경태, 《덤벼라, 인생》(철수와영희,2012)

 


 이 나라 아이들 푸른 마음을 새까맣거나 잿빛으로 바꾸는 굴레는 대학입시라고 느낍니다. 대학입시 때문에 아이들 푸른 마음은 멍들거나 흐리멍덩해진다고 느껴요.

 

 대학입시는 대학교에 붙으려는 시험만이 아닙니다. 대학입시는 바로 고등학교 교육 얼거리요 중학교 교육 얼거리인데다가 초등학교 교육 얼거리예요. 더 살피면, 유치원과 어린이집부터 대학입시 굴레입니다. 이 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교육과 문화와 복지와 육아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대학입시 때문에 꽁꽁 얽매이거나 갇혀요.

 

 아이들은 아름다운 나날을 꿈꿀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나날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학입시 아닌 참다운 공부를 해야 하고, 대학입시 아닌 착한 삶을 배워야 해요.

 

 아이들은 어머니가 차리는 밥을 먹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밥을 차릴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급식을 먹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먹는 밥이 어디에서 어떻게 일구어 거두는가를 스스로 겪으면서 알아야 합니다.

 

 옳게 배우지 않으니 옳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옳게 부대끼지 않으니 옳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철학을 익히거나 역사를 다룬대서 사회를 올바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책을 많이 읽는대서 사람과 삶과 사랑을 곱게 헤아리지 않아요.


.. 아는 만큼 안 사랑할 수도 있을 거 같아 … ‘성찰’하라는 말이 감정을 버리라는 말은 아니지. 인간은 자기가 느끼는 감정에 충실해야 해. 사랑도 나름의 합리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느낌을 존중하면서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 정말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회는 잘못될 수가 없어 ..  (26, 39, 55쪽)


 푸른 아이들은 푸르게 사랑하며 살아야 아름답습니다. 푸른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들은 푸른 아이들한테 걸맞다 싶도록 푸른 어른답게 사랑하며 살아야 아름답습니다.

 

 푸른 어른들이 낳는 푸른 아이들이에요. 맑은 어른들과 살아갈 맑은 아이들이에요. 고운 어른들이랑 어우러질 고운 아이들입니다.

 

 착하지 않은 어른들 매무새는 착하지 못한 푸름이들 매무새로 이어집니다. 곱지 않은 어른들 말투는 곱지 못한 아이들 말투로 이어져요.

 

 다소곳하며 상냥한 어른들 몸가짐이기에 다소곳하며 상냥한 아이들 몸가짐이에요. 넓으며 포근한 어른들 마음씨인 터라 넓으며 포근한 아이들 마음씨예요.


.. 한순간 배설하듯이 풀고 가다 보면 스트레스는 사라질지 모르지만 문제는 계속 남아 있잖아. 오히려 깊어지지. 그러다 어느 순간 파국이 오는 수가 있다고 … 그 사람의 삶을 돈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서라도 가진 걸 베푸는 게 좋거든 ..  (36, 81쪽)


 고성국 님과 남경태 님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그러모은 《덤벼라, 인생》(철수와영희,2012)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저씨 두 분이 주고받은 이야기처럼, 아줌마 두 분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책으로 그러모으면 참 재미있으리라 생각해요. 학문을 하고 책을 쓰는 아저씨들 이야기도 여러모로 푸름이한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는데, 학문하고도 책하고도 동떨어진 채, 날마다 밥하고 빨래하며 집살림 도맡는 아줌마 두 사람이 삶과 사랑과 사람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삶꽃 사랑꽃 사람꽃을 북돋운다면 얼마나 어여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마, 아줌마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다 할 때에는 “덤벼라, 인생”이 아닌 “좋아라, 내 삶” 하는 실타래를 솔솔 풀지 않으랴 싶어요.

 

 참말 좋으니까 살아가는 나날이거든요. 참으로 좋아서 예쁘게 누리는 하루예요.


.. ‘여성성’이야말로 미래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해. 무엇을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야 … 힘의 지배가 실행되면서 남성이 여성을, 같은 남성끼리도 강한 남성이 약한 남성을 지배하게 되잖아 … 죽음이 너무 멀리 있으면 삶을 성찰하는 게 어려워 … 죽음을 생각하고 자기를 돌아볼 때 우리의 삶이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  (47, 103쪽)


 만화책 《아따맘마》를 읽으며 생각했어요. 《아따맘마》에 나오는 아줌마는 학교를 오래 다니지 않았고, 책을 딱히 읽지 않으며, 날마다 집에서 살림하는 데에 온 품과 땀과 마음을 쏟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는 아줌마 이야기는 끝이 없어요. 하루하루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밭이에요. 언제나 남다른 이야기누리예요. 한결같에 빛나는 이야기꾸러미예요.

 

 아저씨들은 으레 ‘집안일 나눠 맡기’나 ‘아이 함께 돌보기’를 이야기합니다만, 아저씨 스스로 집안일을 도맡아 본다든지 아이를 홀로 돌보아 본다든지 하지는 않아요. 어쩌다 한 차례쯤 집안일을 하루 내내 하거나 어쩌다 하루쯤 아이를 홀로 돌볼 뿐이에요.

 

 우리 푸름이들한테는 어떤 이야기꽃이 예쁠까 헤아려 봅니다. 우리 푸름이들한테는 어떤 이야기열매가 맛날까 헤아려 봅니다. 우리 푸름이들한테는 어떤 이야기밥이 구수할까 헤아려 봅니다.


.. 특정 시기에 좋은 성적을 거두는 개념이 아니라, 내가 어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가장 기본적인 문제부터 생각해 봐야 하거든 … 대학입시와 군대가 한창 나이에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없게 하는 건 사실이야 …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해 진정한 개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필요해 여전히 정신적·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예속된 경우가 많잖아. 그러니 자기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고 스스로 설 기회가 없는 거지 ..  (107, 131, 233쪽)


 아무쪼록 푸름이를 곱게 사랑하는 어른들이면 좋겠습니다. 푸름이한테 이름값이나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학문이나 철학을 바라기 앞서, 푸름이 누구나 고우며 맑게 사랑하는 길을 아끼는 어른들이면 고맙겠습니다.

 

 푸름이들이 굳이 대학교에 안 가도 즐거이 살아가는 길을 밝히는 어른들이면 기쁘겠습니다. 푸름이들이 대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나 초등학교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조차 안 다녀도 아리땁게 살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어른들이면 반갑겠습니다. (4345.2.7.불.ㅎㄲㅅㄱ)


― 덤벼라, 인생 (고성국·남경태 글,철수와영희 펴냄,2012.2.10./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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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2-07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글이 있을 줄 알고 들러 봤지요. 아니나 다를까...ㅋ

덤벼라 인생, 그러면 무서울 게 하나도 없을 것 같네요.

도리를 아는 삶, 착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우리 모두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이 리뷰를 보고 새로운 다짐을 하고 갑니다. ㅋ

숲노래 2012-02-07 13:37   좋아요 0 | URL
좋은 길을 착한 마음으로 걷는다면
누구나 아름다운 삶이 되리라 생각해요~
 
달려라, 탁샘 - 탁동철 선생과 아이들의 산골 학교 이야기
탁동철 지음 / 양철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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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즐거울까요
 [책읽기 삶읽기 97] 탁동철, 《달려라, 탁샘》(양철북,2012)

 


 강원도 양양과 속초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탁동철 님이 1998년부터 2010년 사이에 쓴 교사일기를 그러모은 《달려라, 탁샘》(양철북,2012)을 읽습니다. 탁동철 님은 “아이들한테 행복해지는 걸 가르칠 게 아니라 실제로 행복해 보기도 해야지, 노는 걸 가르치고 배우기만 할 게 아니라 실제로 놀아 보기도 해야지, 이건 뭐 하루 종일 가르치기만 하고, 하루 종일 배우기만 하고,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노는 시간이 하나도 없고……(304쪽)”처럼 이야기할 줄 압니다.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면서 “본 대로 쓴 것은 잘했다. 그러나 사랑이 없다.(318쪽)” 하고 말할 줄 압니다. “사람 패는 버릇 고칠 거냐고, 고친다고 대답하면 나도 너 때린 것 사과한다고 했더니 녀석이 고친다고 해서 그럼 나도 너 때린 것 잘못했다고 했어요.(9쪽)” 하고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줄 압니다.

 

 교사일기 《달려라, 탁샘》(양철북,2012)은 초등학교 평교사로 일하는 어른 한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배우는 나날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좋은 이야기꾸러미라고 느낍니다. 아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삶을 보여주고, 아이들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삶을 찬찬히 적습니다.

 

 교사 탁동철 님은 섣불리 교육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교사 탁동철 님은 어설피 교사론을 드높이지 않습니다. 잘못이라고 느낀 일을 잘못이라 말합니다. 잘했다고 여긴 일을 잘했다고 말합니다.


.. 어수선하다. 그래도 첫날인데 ‘어떤 선생인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으면 좋겠는데, 다들 별 관심이 없다는 얼굴이다 … 공부 시간에 왜 이런 문제도 모르냐고 나는 딱딱한 얼굴로, 사랑 없이 말했고 아이는 한숨을 쉬었다 … 옆에 있던 2학년 예원이가 “선생님은 왜 맨날 야단쳐요?” 한다. 참 야무진 말이다. 그 말 맞다 …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아닌 한쪽 길로 잡아끄는 것 또한 폭력이다. 반성했다 … 내 욕심만 없었다면, 그대로 보아줄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였나 ..  (17, 84, 131, 238, 279쪽)


 책을 펼쳐 찬찬히 읽으며 생각합니다. 내가 초등학생이고, 내 초등학교 담임으로 탁동철 님이 있다면, 나는 하루하루 즐거이 맞이할 수 있을까 하고.

 

 내 어린 나날 국민학교 적을 떠올립니다. 그무렵 국민학교 교사들은 왼손에 출석부 오른손에 몽둥이를 들었습니다. 어느 교사는 오른손에 몽둥이를 든 채 교실로 들어옵니다. 이런 교사가 수업을 할 때에는 당번이 교무실에 가서 미리 출석부를 챙겨야 합니다. 출석부를 미리 챙기지 않으면 맨 먼저 당번이 교탁으로 불리고 흠씬 얻어맞습니다. 다음으로 반장과 부반장이 불리고 이들도 똑같이 얻어맞습니다. 골마루를 울리는 달음박질 소리가 이어지고, 출석부를 받은 교사는 ‘날과 달과 요일’에 따라 번호를 외면, 이 번호에 따라 ‘복습 문제 묻고 말하기’를 합니다.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앞으로 불리고, 열 스물 서른이 줄줄이 앞으로 늘어서면, 두 손바닥을 마주 비빈 교사가 오른손으로 몽둥이를 쥐고는 엉덩이나 허벅지를 펑펑 두들겨팹니다.

 

 나는 내 국민학교 여섯 해를 떠올릴 때에 얼마나 많은 교사가 얼마나 많이 꾸짖고 윽박지르고 때리고 욕하고 했는가부터 떠오릅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담임을 맡다가 다른 학교로 옮긴 한 분만 몽둥이 없이 교실로 찾아와 한 차례도 때리지 않고 한 해를 보냈다고 떠올립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2학기부터 담임을 맡은 분은 가끔 때리기는 했으나 웬만해서는 소리를 높이는 일 없고 몽둥이를 드는 일 없었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에 개구진 짓을 많이 하던 나는 이분 넉살이 좋아 뒤에서 몰래 업히듯 찰싹 달라붙으며 놀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달라붙을 때에 성가셔 하지 않고 웃은 교사는 이때에 딱 한 번 만났습니다.

 

 강원도 양양과 속초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탁동철 님은 학교에서 아이들하고 어떻게 마주할까 궁금합니다.


.. 아무 일 없다는 듯 공부 시작하려는데 남자아이가 따진다. “왜 선생님 책상에는 우유 안 쏟고 우리 책상에만 우유 부었어요?” … 다른 학교에서는 다 하고 있는 급식을 우리 학교만 안 하게 된 것은 처음부터 부모님들이 급식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년 2학기부터 학생 수가 늘어났고, 공수전분교도 급식을 하면 좋겠다는 말을 몇 사람한테 들었습니다. 저도 그게 옳다고 여겨서 올해는 급식이 되도록 해야지, 마음먹었습니다 … 정택이가 내 얼굴을 보며 “저희가 어떻게 하면 선생님 얼굴이 확 펴질까요?” 아, 미안. 잔뜩 굳었나 보다. 아이들도 고민이 많은데 학교에 와서 찌푸린 담임 얼굴을 또 보고 있어야 하는 건 불쌍하다 ..  (29, 126, 231쪽)


 교사일기 《달려라, 탁샘》에 차근차근 적은 이야기가 있을 테고, 이 교사일기에 미처 못 담았다든지 굳이 안 담은 이야기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탁동철 님은 아이들하고 살가이 어울리고픈 꿈을 날마다 새롭게 꿉니다. 그러나, 꽤 자주, 어쩌면 날마다 아이들 앞에서 찌푸린 낯이 되기 일쑤입니다. 아이들한테 괜히 목소리를 높입니다. 곧잘 아이들을 때리거나 윽박지릅니다. 교사 자리에 서면 예나 이제나 어쩔 수 없나, 남자 교사는 다들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나, 싶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참말 교사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길 일이 있어요. 아이들은 학교에서만 아이들이 아니라, 집에서도 아이들이고 마을에서도 아이들이거든요. 탁동철 님은 “나는 다가가서 멱살을 잡았다. 과장되게 화를 냈다. 겁먹고 고분고분 당해 줄 아이가 아니다. 나한테 덤벼들었다. 식식거리며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며 주먹을 쥐고 노려보고 욕을 했다. 이대로 물러서면 끝장이다. 나는 더욱더 크게, 힘껏 소리 질러 가며 화를 냈다.(258쪽)” 하고 밝힙니다. 동무들한테 돌을 던지는 아이를 마주하며, 이 아이 돌팔매를 그치게 할 길이란 이때에 이러는 수밖에 없는지 모르니까요.

 

 참말 돌팔매 아이는 왜 돌팔매까지 해야 했을까요. 돌팔매 하던 아이는 왜 교사한테까지 욕을 하고 주먹을 흔들어야 했을까요. 이 아이는 집에서 어떤 아이로 살아갈까요. 이 아이는 마을에서 어떤 아이로 지낼까요.

 

 아이들은 몽둥이나 손찌검 맛을 보아야 좋은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오늘 어른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예전에는 어른들한테서 몽둥이 맛이나 손찌검 맛을 보았을 테니, 오늘 어린이로 살아가는 이들도 똑같이 몽둥이랑 손찌검 맛을 보아야 할까요.


.. 4학년 여자아이가 말한다. “아니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어요. 내가 그린 그림을 그냥 콱 찢어 버리고 싶어요.” 아, 그렇구나.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가 … 밥 냄새 맡으며 공부하는 게 즐겁다 … 요즘 아이들은 그런 일 해 본 적 없다. 아이들이 일을 못해 본 건 어른 탓이다. 그러니 아저씨가 버럭 소리 질러야 할 대상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어야 한다 … 오늘은 신나는 시험 보는 날. 학생이야 고생스럽지만 선생은 할 일이 없다. 엉덩이 털썩 붙이고 앉아서 랄랄라, 시험 채점 마치고 나서 이렇게 쉬운 걸 왜 틀렸냐고 물어 보면 그만이다 ..  (37, 93, 250, 293쪽)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우유를 먹입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급식을 먹입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예방주사를 놓습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읽히고 시험을 치릅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은 아이들한테 우유를 마시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은 아이들이 줄을 맞추고 조용하며 얌전히 급식실에 앉아 찌꺼기 남기지 말고 그릇을 비우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은 예방주사가 무엇이요 어떤 성분인가를 헤아리지 않고 모든 아이가 제때 맞을 수 있도록 이끕니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어른은 아이마다 다 다른 삶 다 다른 꿈인 줄 알기는 하더라도 다 같은 교과서 다 같은 지식 다 같은 학년과정을 이끕니다.


.. 광복이 덕에 처음으로 오소리 똥을 보게 되었다. 그걸 보더니 어떤 아이가 “나는 내일 토끼 똥 가져와야지.” 했다. 이거 좋은 공부가 되겠구나 … 오늘 아침에도 과자 너무 먹으면 뼈가 약해진다, 힘들어 번 돈을 함부로 까먹어서야 되겠나, 이야기를 하고 정 먹고 싶으면 일주일에 한 번만 먹으면 어떻겠냐 해서 모두 그러겠다고 하더니 아무 소용없다 … ‘그런 고통도 겪어 보고 분노도 느껴 봐.’ 눈을 부릅뜨고 그 모든 것을 살피는 것 또한 공부 아니겠나. 아니, 또 한편으로는 사람 막 대한다는 그따위 시시한 곳 과감하게 거부하고 자기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사람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  (46, 49, 188쪽)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집이나 마을에서 늘 아이들과 마주하며 삶을 가르치기 어려운 오늘날입니다. 따로 학교로 보내 따로 교사한테서 지식과 삶을 보고 배우도록 맡겨야 합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아이 나이와 몸과 마음을 그때그때 살피면서 아이와 어른이 다 함께 누릴 꿈과 사랑을 보듬기 어려운 오늘날입니다. 수학이든 국어이든 과학이든 영어이든 따로 전문 지식을 쌓은 이들한테서 배워야, 좋다 하는 대학교에 들어가거나 돈 많이 번다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오늘날입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좋을까요. 아이들한테 하나라도 더 옳은 이야기를 보여주거나 가르치기 앞서, 아이들은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좋은가를 듣고 어깨동무해야 할 노릇이 아닐까요. 아이들이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함께 찾고 알아보지 않고서, 학교 울타리 안팎에서 ‘좋은 지식’이나 ‘좋은 공부’만 찾는다면, ‘좋은 놀이’와 ‘좋은 꿈’만 생각하려 한다면, 참말 ‘좋은 무엇’부터 찾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달려라, 탁샘》을 덮습니다. 이 책은 교사일기입니다. 교사일기에서 내가 무엇을 더 바랐는가 곰곰이 헤아립니다. 제도권 울타리인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사람이 스스럼없이 하루하루 밝히는 틀을 넘어, 어떤 사랑과 꿈을 이야기 하나로 그리기를 바랐는가 하나하나 헤아립니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해야 좋은지 생각해 봅니다. 학교에서는 좋은 교사를 만나 좋은 지식을 배워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졸업장을 따야 하고, 아이들은 더 높은 시험성적을 거두어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참말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왜 교사자격증을 따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왜 일기를 쓰며 하루를 뉘우치고, 교사는 왜 교사일기를 쓰며 아쉽거나 안타까운 대목을 뉘우치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런 울타리도 자격증도 이름값도 졸업장도 돈벌이도 없이, 서로서로 두레를 하고 품앗이를 하면서 예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싶습니다.

 

 탁동철 님 할머님은 “(밤) 까먹어. 이 좋을 때 부지래이 까먹어.(416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마따나 이가 좋을 때에 밤을 부지런히 까먹고, 눈이 밝을 때에 책을 부지런히 읽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응어리가 풀리지 않습니다. 탁동철 님은 강원도 양양과 속초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사랑씨앗을 심으려 했느냐 하는 응어리 한 가지가 풀리지 않습니다. 나는 이 대목 하나를 찾고 싶지만, 450쪽까지 읽고 한숨을 쉬며 책을 덮을 때까지 왜인지 모르게 답답합니다. 어떤 글을 쓰고 어떤 말을 하며 어떤 이야기로 서로서로 어깨동무할 때에 다 같이 즐거울까요. (4345.2.2.나무.ㅎㄲㅅㄱ)


― 달려라, 탁샘 (탁동철 글,양철북 펴냄,2012.1.2./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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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가위바위보!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김은하 외 옮김 / 예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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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날이 새롭게 자라는 아이와 어른
 [어린이책 읽는 삶 18] 하이타니 겐지로,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예꿈,2008)

 


- 책이름 :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
- 글 : 하이타니 겐지로
- 그림 : 츠보야 레이코
- 옮긴이 : 김은하
- 펴낸곳 : 예꿈 (2008.7.25.)
- 책값 : 8500원

 


 하이타니 겐지로 님 글에 츠보야 레이코 님 그림이 어루어진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예꿈,2008)를 다 읽고 덮습니다. 책 겉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나온 지 몇 해 되지 않았으나 벌써 판이 끊겨 사라진 까닭이 참 알쏭달쏭하구나 생각하며 가만히 바라봅니다. 문득, 이 책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에는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 하며 노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떠오릅니다. 다만, 살짝 스치듯, 아이들이 가위바위보 놀이를 ‘이쿠’라는 어린이 둘레에서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합니다. 이 대목은 이 책에서 그리 대수롭다 할 수 없습니다. 책이름을 가위바위보 놀이를 한다는 투로 붙일 만한 고빗사위가 아니에요. 더욱이, 책 겉에 적힌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이 들려주는 장애 친구 이야기”라는 작은이름은 더욱 맞갖지 않습니다. 이쿠라는 아이가 여러 차례 수술 받은 가녀린 다섯 살 어린이이기는 하지만,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대서 섣불리 ‘장애 아이’라고 일컬을 수 없어요. 또한, 이 이야기책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가 장애 아이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요.

 

 몸이 여리고 아프면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다섯 살 어린이 이쿠가 좋은 동무들을 사귀면서, 다른 좋은 동무들이 한결 씩씩하면서 착하게 살아가는 길을 스스로 찾는 예쁜 이야기를 다루는 이야기책이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름도, 작은이름도 모두 내키지 않습니다. 수수한 삶 수수한 믿음 수수한 사랑을 곱게 헤아리는 몸짓으로 “우리 모두 좋은 동무”라든지 “우리 모두 착한 동무”쯤으로 이름을 붙여야 마땅하지 않으랴 싶어요.


.. 이쿠를 한참 쳐다봤지만, 손도 발도 꼼짝하지 않았다. “이쿠는 아기였을 때 크게 아팠어요. 그래서 아직은 여러분처럼 말하거나 움직이지 못해요.” … “다섯 살이면 우리랑 같은 초록반 아니에요? 네?” 지로는 보채듯 미유키 선생님 팔을 잡아끌었다. “원장 선생님이 친구가 되어 주라고 했는데 반이 다르면 어떻게 친구가 돼요?” …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 의사 선생님이 아직은 이쿠의 몸이 갓난아기와 비슷하다고 하셨대. 그래서 …….” “몸이 갓난아기 같으면 마음도 갓난아기 같나요?” 요시오가 물었다 ..  (17, 19쪽)


 아이들은 웃어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울어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넘어져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씩씩하게 달려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밥을 잘 먹어도 예쁩니다. 아이들은 밥알을 흘려도 예쁩니다. 즐거우니 웃고 슬프니 울어요. 기뻐서 웃고 아파서 울어요. 발밑을 미처 못 보았거나 다리에 아직 힘이 튼튼히 붙지 않았으니 넘어져요. 시멘트나 아스팔트 땅에서는 무릎이 금세 까지거나 갈려 피가 나고, 흙땅에서는 살짝 긁히지만 이내 나아요. 깨진 무릎은 며칠 지나면 아물고, 다친 자리도 곧 새살이 돋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씩씩하게 자랍니다. 씩씩하게 자라는 아이들처럼 어른들도 무럭무럭 씩씩하게 큽니다. 스무 살 어른은 서른 살로 씩씩하게 자랍니다. 서른 살 어른은 마흔 살 어른으로 씩씩하게 자랍니다. 마흔 살 어른은 쉰 살 어른으로 씩씩하게 자라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늘 지켜보며 저희 나름대로 씩씩하게 큽니다. 어버이는 제 아이들이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을 옆에서 언제나 바라보며 당신 나름대로 씩씩하게 자라요.

 

 함께 웃어요. 같이 울어요. 함께 밥을 먹어요. 같이 누워 잠자요. 서로 발을 맞추어 천천히 걸어요. 가장 어린 아이 발걸음에 맞추어 다부지게 걸어요. 가장 여린 아이 발걸음에 맞추다가는, 가장 여린 아이를 안거나 업으며 나란히 걸어요.


.. “아픈 친구가 있으면 골치 아프니? 정말 그럴까?”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골치 아프대요.” “정말 그럴까?” “같이 노래를 부를 수도 없잖아요?” “정말 그럴까?” “같이 놀 수도 없구요.” “정말 그럴까?” … “이쿠는 여러분의 친구이긴 하지만, 여러분과 조금 달라요. 일곱 번이나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도 병과 한참 싸우고 있거든요.” ..  (23, 25쪽)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면서 어떤 삶길을 걸어갈까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들은 아이들처럼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 서른 마흔 쉰 예순이 될 무렵 어떤 삶길을 걸어갈까요.

 

 오늘 하루 어디쯤 선 아이들인가요. 오늘 하루 어디쯤 선 어른들인가요. 아이들은 얼마나 좋은 밥과 꿈과 잠과 집과 들과 터를 누리는가요.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른들은 얼마나 좋은 밥과 꿈과 잠과 집과 들과 터로 어른들 삶을 북돋우는가요.

 

 더없이 좋은 일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어른인지 궁금합니다. 스스로 가장 사랑할 만한 일에 넋과 얼을 기울이는 어른인지 궁금합니다. 서로서로 아주 흐뭇하고 매우 기쁜 꿈누리를 일구는지 궁금합니다.

 

 여린 아이를 안거나 업듯, 여린 이웃을 안거나 업는 어른인가요. 아픈 아이를 달래며 보살피듯, 아픈 이웃을 달래며 보살피는 어른인가요. 배고픈 아이한테 따순 밥을 차리듯, 배고픈 이웃한테 따순 밥을 나누는 어른인가요.

 

 아이가 다리 아파 더 못 걷겠다는데, 아이가 졸립다고 하는데, 어느 어른이 아픈 아이와 졸린 아이를 못 본 척할 수 있나요. 아이가 아프다는데, 아이가 넘어져서 엉엉 우는데, 못 본 척 지나치는 어른이 있나요. 아이가 배고파서 으앙 하는데, 멀뚱멀뚱 텔레비전만 보는 어른이 있나요.


.. “…… 글쎄, 어딜 보고 있을까나. 그건 할머니도 모르겠다만, 우리 이쿠짱은 지금 온몸으로 꼬마 친구들 이야기를 듣고 있을 거야.” “흐∼음.” “여기가 어딘지, 착한 꼬마 친구들이 이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끼고 있을 거야.” 히로시도, 지로도, 요시오도, 치히로도, 아키라도, 세이코도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였다 ..  (38쪽)


 하이타니 겐지로 님과 츠보야 레이코 님이 《우리 모두 가위바위보!》라는 책으로 아이들과 어른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까 하고 찬찬히 헤아립니다. 나부터 오늘 하루 아이들이랑 옆지기랑 어떤 날을 보냈는가 하나둘 돌아봅니다.

 

 잘 살았을까. 잘 웃었을까. 잘 어우러졌을까. 잘 놀았을까. 잘 사랑했을까.

 

 성적을 매기려는 일이 아니라, 그야말로 뿌듯하고 보람차게 하루를 마감하며 기쁘게 눈을 감고 잠들 수 있을까요. 살살 이마를 쓰다듬고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새 하루를 기다릴 수 있을까요.


.. 이쿠는 소리 없이 울었다.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조용히 울고 있었다 … “세이코, 이쿠는 갓난아기가 아냐. 그러니까 아기처럼 대하면 안 돼! 이쿠는 우리 친구잖아.” ..  (41, 44쪽)


 나날이 새롭게 자라는 아이와 어른이라고 느껴요. 어느 날은 한결 빛나듯 새롭게 자라요. 어느 날은 안쓰럽고 딱하게 흔들리거나 기우뚱하거나 자빠지거나 비틀거리며 고단하게 자리에 누워요. 어느 날은 웃음꽃 예쁘게 피우며 조잘조잘 즐거이 노래해요. 어느 날은 시무룩하거나 찌뿌둥하게 이맛살을 징그려요.

 

 그런데, 어떻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어 이듬날을 맞이하든, 새날은 똑같이 찾아듭니다. 새 아침은 똑같이 밝습니다.

 

 찡그린 얼굴에도 햇살은 곱게 비춥니다. 찌푸린 이맛살에도 햇살은 곱다시 내리쬡니다. 싱그러운 얼굴에도 햇살은 어여삐 듭니다. 환한 얼굴에도 햇살은 아리따이 흘러들어요.

 

 즐거운 일은 더 즐거이 피워요. 슬픈 일은 찬찬히 슬픔을 털어요. 고마운 일은 더 고마움을 느껴요. 서운한 일은 찬찬히 서운함을 씻어요.


.. 미키의 오른쪽 다리가 의자에 끼어 버린 것이다. 미키는 교실이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울어댔다. 이쿠는 엉엉 우는 미키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어느새 이쿠의 큰 눈에도 눈물이 고이더니 똑똑 한 방울씩 떨어졌다. “이쿠는 참 착하구나.” 요시오가 말했다 … 히로시는 이쿠가 탄 휠체어를 꼭 잡고 걸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쿠에게 말했다. ‘이쿠짱, 네가 우리 반에 와서 너무 기뻐. 우리도 좋은 친구가 될 거야. 내가 너를 꼭 붙잡아 줄게.’ ..  (81, 85쪽)


 인권이나 교육이나 복지나 문화로 따지는 일은 부질없어요. 인권이나 교육이나 복지나 문화는 다른 자리를 살펴야 해요. 아픈 아이한테 더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란 사랑이에요. 배고픈 아이한테 밥을 차려서 내미는 일은 사랑이에요. 헐벗거나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은 사랑이에요.

 

 교육을 생각하거나 인권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복지를 누리거나 문화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감싸안을 노릇이에요. 믿음이 샘솟는 몸가짐으로 서로서로 어깨동무할 노릇이에요.

 

 우리 집 살림살이를 비추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교육이라 한다면, 어버이와 아이가 어떠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어떻게 돌보거나 손질하거나 가꾸며 살림을 꾸려야 아름다울까 하는 길을 찾는 일이 되어야 해요. 먹을거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하는가를 스스로 찾도록 도와야 비로소 교육이에요. 흙과 물과 바람과 햇살을 어떻게 느끼며 맞아들여야 하는가를 깨닫도록 이끌어야 비로소 교육입니다.

 

 나는 이제껏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어요. 제대로 배우지 못했어요.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른이니, 아이들을 낳아 살아간대서 아이들한테 제대로 된 삶을 가르치거나 물려주지 못해요. 나부터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제대로 옳게 배워야 해요. 삶을 배우고, 밥이랑 옷이랑 집을 배워야지요. 먹을거리를 배우고, 사랑을 참다이 느껴야지요.

 

 사랑으로 살아가는 하루를 착하게 깨달아야 해요. 사랑으로 얼크러지는 사람들 꿈을 곧게 느껴야 해요. 착한 아이들은 착한 삶을 꾸리는 길을 어버이와 어른한테서 씩씩하게 배워 튼튼한 삶길을 걸어야 해요. (4345.1.1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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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아이 타로오 창비아동문고 230
마쯔따니 미요꼬 지음, 타시로 산젠 그림, 고향옥 옮김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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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 가운데 별 하나만 매기는 일이란 너무 슬프다.

그러나 내 마음을 속일 수 없다.

마음이 움직이지 못한 작품에 별 둘조차 붙일 수 없다.

 


 나한테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어린이책 읽는 삶 15] 마쯔타니 미요꼬, 《용의 아이 타로오》(창비,2006)

 


- 책이름 : 용의 아이 타로오
- 글 : 마쯔타니 미요꼬(마쓰타니 미요코)
- 그림 : 타시로 산젠
- 옮긴이 : 고향옥
- 펴낸곳 : 창비 (2006.11.30.)
- 책값 : 8500원

 


 밤에 쉬를 누러 마당으로 나와 논둑에 섭니다. 시골마을 고샅길 곳곳에 등불이 밝습니다. 고샅길 등불이 없다면 이 시골마을은 아주 깜깜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샅길 등불이 있더라도 밤하늘 별이 초롱초롱합니다. 맑고 환하게 빛납니다. 불빛 하나 없다면 달빛이랑 별빛이 훨씬 맑고 환하겠다고 느끼지만, 시골마을 등불은 달빛이랑 별빛을 못 누리게 할 만큼 거치적거리지 않습니다.

 

 겨울날 밤바람이 차갑습니다. 겨울이니 마땅히 차갑겠거니 생각하며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땅에 불빛이 적으면 하늘에 별빛이 가득하고, 땅에 불빛이 많으면 하늘에 별빛이 사라집니다. 땅에 풀빛이 가득하면 하늘에 파란빛 넘실거리고, 땅에 까만 아스팔트빛 넘치면 하늘에 시커먼 잿빛이 그득합니다.


.. 뚝배기 깨지는 소리로 노래만 불러댔습니다. 배가 고프면 일어나서 경단을 먹었습니다. 토끼가 있으면 토끼와 함께, 쥐가 있으면 쥐와 함께 먹었습니다 ..  (11쪽)


 밤에 별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살아가니 좋구나 하고 생각하다가는, 막상 밤에 별을 볼 수 있는 이 시골에서 밤에 한두 시간 즈음 아주 느긋하게 별을 올려다본 적은 없구나 싶습니다. 살짝살짝 나와서 올려다보았을 뿐입니다. 파랗고 높은 낮하늘을 올려다볼 때에도 이와 비슷해요. 살짝살짝 나와서 올려다볼 뿐, 막상 흙을 밟거나 보살피며 오래오래 올려다보지 못합니다.

 

 이 겨울이 가고 봄을 맞이하면 아주 흙에서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겨울에 겨울대로 겨울흙을 마주하지 않는다면, 봄이라 해서 갑작스레 달라지는 삶이 될까요. 아이들이 모두 더 자라 스스로 걷고 달리고 호미를 쥘 무렵에야 비로소 흙하고 마음껏 뒹굴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부터 만날 흙이고, 바로 오늘부터 부대낄 바람이며, 바로 오늘부터 등에 질 햇살이에요. 내 삶이 집에서 빨래하고 밥하며 청소하는 삶이 아니라 한다면, 빨래랑 밥이랑 청소는 이대로 즐거이 누리면서 흙을 보듬는 삶이라 한다면, 이 좋은 결을 곱게 즐기면서 누리는 쪽으로 조금씩 거듭나야 합니다.


.. “할머니는 어른이 돼야 한다고 했지만 난 못 기다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엄마를 찾아올게. 옛날처럼 사람의 모습으로 만들어서 할머니한테 데려올 거야. 갑자기 용이 됐으니까 틀림없이 다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할머니, 꼭 기다려야 해!” ..  (42쪽)


 마쯔타니 미요꼬 님이 쓴 동화책 《용의 아이 타로오》(창비,2006)를 읽는 내내 곰곰이 생각합니다. 곡식 얻을 땅뙈기가 너무 모자란 멧골 깊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널따란 논을 얻는 줄거리가 나오는 동화책인데, 어쩐지 그닥 가슴이 울렁울렁 뛰지 않습니다.

 

 왜 논에 모를 심고 벼를 거두어 쌀을 얻은 다음 밥을 해서 먹어야 하나요. 사람은 쌀만 먹어야 살아갈 수 있나요. 사람이 목숨을 건사할 만큼 먹을 곡식은 어느 만큼 거두어야 하나요. 사람한테 얼마나 널따란 땅뙈기가 있어야 하나요.

 

 무나 당근이나 감자나 고구마나 온갖 푸성귀랑 열매랑 다른 곡식이 있지 않나요. 풀을 뜯고 잎을 먹으며 뿌리를 캘 수 있지 않나요. 물고기를 잡거나 들짐승을 잡을 수 있지 않나요.


.. 타로오는 얼굴까지 시뻘게져서 화를 냈습니다. “농부들에게 가장 소중한 물줄기를 가지고 못된 짓을 서슴지 않는단 말이지. 좋아, 내가 꼭 없애 주겠어.” ..  (70쪽)


 용이 되고 말았다는 어머니를 다시 사람으로 돌리고픈 꿈을 품은 아이 타로오는 머나먼 길을 떠나고, 온갖 모험을 거친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흙일꾼을 성가시게 구는 이를 죽여서 없애는 일이 참말 흙일꾼을 돕는 일인지 궁금합니다.

 

 나쁜 동화나 아쉬운 작품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한테 집어넣으려 하는 교훈이 너무 뻔하게 드러납니다. 전쟁이 싫으면 더 힘이 세져서 전쟁에서 이기면 될까요. 주먹다짐으로 괴롭히는 이가 못마땅하다면 주먹힘을 더 키워서 이 몹쓸 녀석을 물리치면 되나요.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전쟁을 전쟁으로 이길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밴 어머니가 얼마나 크게 잘못을 했기에 ‘용이 되는 벌’을 받고 ‘두 눈까지 잃어야 하는’지 참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다르게 느낍니다. 논일을 하기에 흙일꾼한테 물줄기가 “가장 소중하다” 말할 수 있을 테지만, 물이란 “흙일에서 가장 소중한” 무엇이 아니라, 모든 목숨이 살아숨쉴 때에 밑바탕이 되는 무엇이 아닌가 싶어요. 물과 바람과 햇살이 없으면 어떠한 목숨도 살 수 없어요. 곧, 흙일을 하는 흙일꾼한테는 무엇보다 ‘흙’이 가장 대수로우며 거룩하지 않느냐 싶어요.


.. “그렇지만 이런 보물을 그저 아낌없이 죄다 먹어치울 순 없어. 씨앗으로 둠세. 어때, 우리도 벼농사를 짓자고.” ..  (130쪽)


 《용의 아이 타로오》를 덮습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이 동화책을 쓴 분은 아이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까 찬찬히 돌아봅니다. 나는 내 옆지기와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에 무엇보다 ‘나한테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나한테 아름다운 길과 옆지기한테 아름다운 길과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길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다 함께 아름다운 길을 걷는 삶이라면 어떠한 모습과 매무새와 몸짓이어야 할까 하고 찬찬히 돌아봅니다.

 

 옆지기는 나한테 교훈을 들려줄 수 없습니다. 나는 옆지기한테 교훈을 들려줄 수 없습니다. 서로서로 가장 사랑하는 꿈을 나눌 뿐입니다.

 

 꿈이란 무엇일까, 그래, 동화라 한다면, 동화 아닌 어른문학이라 하더라도 이와 마찬가지일 텐데, 어린이문학이든 어른문학이라 하든 문학이라 한다면, 바로 ‘어떤 꿈을 들려줄 이야기’인가 하는 대목을 깊고 넓게 다룬다고 느껴요. 그러니까, 나는 《용의 아이 타로오》를 읽는 내내, 이 문학에서 아이들하고 나누고픈 ‘꿈’이 무엇인가를 도무지 읽지 못했습니다.


.. 용은 말없이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이 아이의 생각에 힘을 실어 주는 거야.’ ..  (164쪽)


 옛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일이 훌륭하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옛날 옛적 이야기이든 오늘날 이야기이든 앞으로 맞이할 이야기이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면, ‘어떤 사랑을 담는 사람들 꿈’인가를 조곤조곤 밝혀야지 싶어요. ‘어떤 사랑을 담는 사람들 꿈’인가를 낱낱이 드러내지 못한다면, 살가이 꽃피우지 못한다면, 어여삐 북돋우지 못한다면, 이러한 작품은 어린이문학으로나 어른문학으로나 글맛이 없는 노릇이구나 싶어요. 글맛이 없다면 삶맛 또한 없는 셈이구나 싶어요.

 

 애써 옛이야기를 빚으려 하지 않아도 좋아요. 꼭 문학이나 작품이나 예술이나 문화라는 틀에 넣지 않아도 돼요. 좋은 사랑과 착한 꿈과 빛나는 슬기를 이야기 한 자락에 담으면 기쁘겠어요. 나 스스로 오늘 하루 아름답구나 싶은 삶을 누리면, 나는 오늘부터 가장 좋은 문학이 될 이야기를 일군다고 느껴요. 이 이야기는, 내가 눈을 감고 흙으로 돌아간 뒤에, 내 아이들과 내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한테 사랑스러울 ‘옛이야기’가 되리라 믿어요. 굳이 ‘오늘 옛이야기 틀을 만들어 뭔가를 써야’ 문학이 되지 않아요. (4345.1.14.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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