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솔시선(솔의 시인) 4
허만하 지음 / 솔출판사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2.3.

노래책시렁 402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허만하

 솔

 2002.12.10.



  우리 곁에 아이가 있으면 언제나 아이랑 어깨동무하는 마음으로 말빛을 펴게 마련입니다. 우리 곁에 아이가 없으면 아이하고 나눌 말씨를 잊게 마련입니다. 살아가는 곳에서 말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마음을 소리로 옮깁니다.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에는 ‘문학이라는 시를 엮느라 흘리는 땀방울’이 가득합니다. 땀냄새 나는 글을 읽으며 우리 집 아이들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두 아이를 수레에 태우고서 두바퀴를 달려 멧골을 오르내리거나 바닷가를 돌거나 들판을 가를 적이면, 머리부터 샘솟는 땀이 볼을 타고서 길바닥으로 줄줄줄 떨어집니다. 등판에는 소금꽃이 하얗게 핍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안 힘들어?” 하고 묻고, “수레에 앉아서 노래를 불러 주면 언제나 즐겁지.” 하고 대꾸합니다. 아이들은 수레에 앉아 노래하다가 잠들고, 아이들이 잠들면 이 두바퀴를 달리면서 숨이 가쁘더라도 찬찬히 고르면서 자장노래를 부릅니다. 허만하 님은 ‘알뜰히 짜고 엮은 글’을 남깁니다. 다만, 아이한테 남겨 줄 만하지 않습니다. ‘머리로 짜는 꾸밈새’만으로는 빛이 나지 않고, 씨앗으로 싹트지 않거든요. 모든 새는 다 다르게 노래하는데, 다 다른 새소리를 글로 옮기려 한다면 ‘머리로 짜낼’ 수 있지 않겠지요.


ㅅㄴㄹ


무너지기 위하여 물결은 몸을 안으로 말아올리며 힘껏 솟아오르나 붕괴 직전 잠시 숨을 죽이는 시간을 가진다. 높이뛰기 선수가 뛰어오른 하늘에서 잠시 머무는 것과 같다. (물결에 대해서/35쪽)


물결은 자신이 자기의 해답이 될 때까지 탄생의 갈등을 몸으로 고해하고 있었다. 곰소 포구 지나 선운사 감나무 추운 가지 끝 노을 머금은 까치밥 찾는 길에 개펄빛 물결이 흐느끼는 것을 보았다. (선운사 감나무/47쪽)


+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허만하, 솔, 2002)


아침노을을 가장 먼저 느끼는 눈부신 정신의 높이를

→ 아침노을을 가장 먼저 느끼는 눈부신 마음길을

15쪽


겨울나무의 혼은 오히려 건조하다

→ 겨울나무 넋은 오히려 딱딱하다

→ 겨울나무 숨은 오히려 깡마르다

16쪽


앞뒤로 겹치는 능선의 선율

→ 앞뒤로 겹치는 등성이를

→ 앞뒤로 겹치는 멧줄기를

19쪽


적설층의 시린 무게를 안고 빙하는 협곡을 서서히 흐른다

→ 시린 눈켜 무게를 안고 얼음은 고랑을 천천히 흐른다

→ 시린 눈더미를 안고 얼음장은 골을 넌지시 흐른다

→ 시린 눈밭을 안고 얼음더미는 골짜기를 가만히 흐른다

24쪽


낯선 지형이 풍경이 될 때까지 날개를 젓는 새

→ 낯선 곳이 그림이 될 때까지 날개를 젓는 새

→ 낯선 땅이 보일 때까지 날개를 젓는 새

31쪽


무너지기 위하여 물결은 몸을 안으로 말아올리며 힘껏 솟아오르나 붕괴 직전 잠시 숨을 죽이는 시간을 가진다

→ 물결은 무너지려고 몸을 안으로 말아올리며 힘껏 솟아오르나 무너지기 앞서 살짝 숨을 죽인다

35쪽


잔모래 풀풀 날리는 모래사장에 내려서서

→ 잔모래 풀풀 날리는 땅에 내려서서

→ 풀풀 날리는 모래밭에 내려서서

40쪽


다른 별의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가 반짝이는 투명한 표면장력

→ 다른 별 하늘에 뜬 무지개가 반짝이는 맑은 볼록뜨기

→ 다른 별 하늘에 있는 무지개가 반짝이는 맑은 겉뜨기

46쪽


물결은 자신이 자기의 해답이 될 때까지 탄생의 갈등을 몸으로 고해하고 있었다

→ 물결은 스스로 풀어낼 때까지 넌출진 첫물을 몸으로 밝힌다

→ 물결은 스스로 풀 때까지 뒤엉킨 첫날을 몸으로 털어놓는다

47쪽


인적 없는 해안선 물가를 걷고 있는 지금

→ 발길 없는 바닷가를 걷는 오늘

→ 조용한 바닷가를 걷는데

→ 허전한 바닷가를 걷는 이때

60쪽


아득한 탄생의 중심에서 밀려드는 파도가 남색 엷은 껍질을 찢고

→ 아득한 첫복판에서 밀려드는 물결이 엷고 검파란 껍질을 찢고

→ 아득한 처음마당에서 밀려드는 물결이 쪽빛 엷은 껍질을 찢고

6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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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들어온 너에게 창비시선 401
김용택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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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26.

노래책시렁 399


《울고 들어온 너에게》

 김용택

 창비

 2016.9.9.



  둘레에 아는 숱한 분들이 잿집에서 삽니다. 잿집 아닌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이웃은 줄어듭니다. 시골에서 그대로 살아가는 이웃부터 적어요. 시골에서 살지 않을 적에는 “마당 없는 겹겹집”에 깃들게 마련이고, 쇳덩이를 부릉부릉 끄는 살림이곤 합니다. 쇳덩이를 안 모는 이웃은 서너 사람뿐이고, 다들 안 걷고 여느발(대중교통)하고 먼 나날입니다. 서울에서 살더라도 아침저녁으로 납짝쿵으로 짓뭉개지는 길을 모른다면, 길막힘은 겪되 휩쓸리고 밟히고 밀리는 수렁에서 스스로 건사하는 삶을 모른다면, 이때에 어떤 글을 쓸는지 곱씹어 봅니다. 《울고 들어온 너에게》를 읽고서 하나부터 열까지 말장난 같다고 느꼈습니다. 햇살은 높다란 잿집에도 눈부시게 들어옵니다. 햇살은 서울하고 시골을 안 가려요. 언제 어디에서나 햇살입니다. 그러나 해는 계집도 사내도 아닙니다. 봄가을이나 여름겨울은 사내도 계집도 아닙니다. 그저 철이고 빛이며 숨입니다. 발은 땅에 딛고 손은 바람을 쓰다듬을 적에 노래한다고 느껴요. 눈은 별빛을 담고 마음은 오늘을 맞이할 적에 노래가 샘솟는다고 느껴요. 뚝딱거리듯 맞추는 틀이 아닌, 바람이 되고 바다가 되어 밭자락에서 피어나는 푸른빛을 옮기는 글일 적에 싱그럽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아파트 창틀을 넘어온 햇살이 좋았다. / 햇살이 찾아오면 먼지들이 피어났다. / 나 없이도 지들끼리 / 잘 놀다 가는 작은 뒷방, / 베고니아를 키웠다. 새벽에 일어나 / 시를 쓰고, 쓴 시를 고쳐놓고 나갔다 와서 / 다시 고치고 (베고니아/17쪽)


계집의 마음 같다. / 계집의 마음 같다 해놓고 / 웃었다. (봄 산은/24쪽)


+


《울고 들어온 너에게》(김용택, 창비, 2016)


나의 시는 어느 날의 일이고

→ 내 노래는 어느 날 일이고

10


그런 빛깔의 꽃이 풀 그늘 속에 가려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 그런 빛깔인 꽃이 풀그늘에 가린 줄 떠올린다

→ 그런 빛깔 꽃이 풀그늘에 가린 줄 생각한다

11


한 아이가 동전을 들고 가다가

→ 아이가 돈을 들고 가다가

→ 아이가 쇠돈 들고 가다가

12


자연이 하는 말을 받아 땅 위에 적었다

→ 들숲이 말하면 땅에 받아적는다

→ 숲이 말하면 땅에 적는다

15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 흙지기 아들로 태어났다

→ 시골집 아들로 태어났다

18


꼬막 껍데기 반의반도 차지 않았다

→ 꼬막 껍데기 조금도 차지 않았다

→ 꼬막 껍데기 거의 차지 않았다

→ 꼬막 껍데기 얼마 차지 않았다

18


귀환은 평화롭고 안착은 아름답다

→ 돌아와 아늑하고 앉으며 아름답다

→ 돌아가 고요하고 깃들며 아름답다

28


한일자로 누운 노을도

→ 반듯이 누운 노을도

→ 곧게 누운 노을도

→ 반반히 누운 노을도

→ 한 줄로 누운 노을도

29


내 귓속이 환해졌어

→ 내 귓속이 환해

→ 내 귓속이 트였어

68


아버지에 대한 시를 쓰면서 편안함을 얻었다

→ 아버지 노래를 쓰면서 포근했다

→ 아버지를 노래하면서 오붓했다

99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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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 창비시선 74
안도현 지음 / 창비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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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25.

노래책시렁 308


《모닥불》

 안도현

 창작과비평사

 1989.5.5.



  지난 1989년에 읽던 노래를 1999년이나 2009년에 되읽을 적에 깜짝 놀랐습니다. 1989년만 해도 집이나 마을이나 배움터에서 으레 주먹질이 판쳤고, 숱한 길잡이나 꼰대는 아이들을 마구 때리거나 막말을 일삼았어요. 이런 나라 얼거리가 예전 글자락에 고스란히 흐르는 줄 1989년에는 미처 몰랐으나, 2019년을 넘어서면서 새삼스레 보이더군요. 《모닥불》을 되읽다가 놀랐다고도 할 만하고, 썩 놀랍지 않다고도 할 만합니다. 그때에는 누구나 그랬다고 둘러댈 수 없습니다. 그때에도 아이를 아끼는 ‘꼰대 아닌 어른’은 있었어요. 어린이한테 함부로 말을 안 깎는 어진 분이 제법 있었습니다. 예나 이제나 가시내를 옆에 끼는 줄거리를 ‘시·소설’이란 이름으로 쓰는 분이 수두룩하고, 예전에는 으레 그런 글을 쓰다가 요새는 싹 감추는 글바치도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무엇을 갈아엎어야 할는지 돌아봅니다. 우두머리나 벼슬꾼도 갈아엎어야 할 노릇이요, 바로 우리 스스로도 갈아엎을 일입니다. 지난날 얼룩도 갈아엎고, 글담도 이름값도 모조리 갈아엎어야지 싶어요. 지나간 글을 섣불리 ‘달콤(낭만)’으로 덮어씌울 수 없습니다. 창피한 어제를 뉘우치고서 다 내려놓지 않는다면, 모두 거짓이자 허울일 뿐이라고 느낍니다.


ㅅㄴㄹ


아내를 남쪽에 두고 / 나는 죄짓는 마음도 모르고 / 헝클어진 머리카락 미역냄새를 맡으면 / 부끄럼없이 굵어지는 어깨와 팔뚝 / 한반도의 허리를 꼭 껴안 듯이 / 더 깊은 신천지 속으로 / 힘차게 나를 밀어 넣으면 / 온 바다로 파도 치는 / 청진 여자, 그녀와 하룻밤 자고 싶다 (청진 여자/7쪽)


젖은 손 번들거리는 검은 얼굴로 / 마른 빵을 나누어 먹는 / 이 거칠은 조선의 어머니들이다 / 가난의 넉넉함이여 / 망둥어 피조개 꽃게가 퍼뜨리는 (군산선/14쪽)


김치 쉰내가 왁자그르 찰랑거리는 오후에 / 나는 그곳으로 갑니다 / 내가 가면 아이들은 먼지처럼 / 무릎을 굽히면서 가라앉습니다 / 순종에 아주 길들여졌다는 뜻이겠지요 / 해서 언젠가 들려줄 고백이 있습니다 (그곳/54쪽)


도선장으로 가는 길 선술집에서 / 피조개 한점 고추장 찍어 먹고 나면 / 바깥을 겹겹이 둘러싸고 퍼붓는 눈발이 / 바로 우리 편이다 우리를 지켜주는 노여운 사랑이다 / 젖가슴까지 올려치는 강대국 전투기 / 그 비행사들 시커먼 폭격 속에 까무러치고 싶어한다는 / 썩을 년, 미국 가고 싶은 내 누이여 / 저 폭설의 바다를 보아라 / 드디어 통일된 우리 조국 아니야 (군산행 1/87쪽)


+


《모닥불》(안도현, 창작과비평사, 1989)


더 깊은 신천지 속으로

→ 더 깊이 새마을로

→ 더 깊이 새누리로

7쪽


청진 여자, 그녀와 하룻밤 자고 싶다

→ 청진 순이, 이이와 하룻밤 자고 싶다

→ 청진 색시, 이녁과 하룻밤 자고 싶다

→ 청진 아씨, 그대와 하룻밤 자고 싶다

7쪽


대명천지에 똥차는 와서 진정 참다운 일 가르쳐 주고 간다

→ 똥수레는 대낮에 와서 참다운 일 가르쳐 주고 간다

→ 똥수레는 낮에 와서 참일 가르쳐 주고 간다

28쪽


고관의 저택에도 하수도는 흐른다

→ 나리 큰집에도 수챗길은 흐른다

→ 벼슬꾼 집에도 밑물은 흐른다

29쪽


내 지금 발 딛고 선 교단이 세계의 중심임을

→ 내 오늘 발 디딘 배움턱이 온누리 복판이니

→ 내 이제 선 배움터가 푸른별 한복판이니

35쪽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조국입니다

→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나라입니다

→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멧숲입니다

→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들숲입니다

52쪽


어느덧 가투가 시작되고 있어싸

→ 어느덧 길너울이야

→ 어느덧 길물결이야

84쪽


저 폭설의 바다를 보아라

→ 저 함박눈 바다를 보아라

→ 저 눈보라 바다를 보아라

8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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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창비시선 452
정현우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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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18.

노래책시렁 395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정현우

 창비

 2021.1.15.



  어린이는 아직 말을 다 알지 않으니, 으레 틀리고 바로 고치고, 다시 어긋나다가 또 추스르면서 차근차근 마음을 읽고 배웁니다. 이와 달리 숱한 어른은 아직 말을 잘 알지 않으나, 도무지 말을 배우려는 마음을 안 일으키더군요. 우리가 쓰는 말은 한낱 소리이지 않습니다. 모든 말은 마음입니다. 말을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면, 또 나이가 든 뒤로도 꾸준히 말을 익히지 않는다면, 내 마음도 네 마음도 우리 마음도 등돌리는 셈입니다.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처럼 ‘-에게·-한테’를 잘못 쓰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노래에 적는 말씨라서 넘어가도 되지 않습니다. 글쓴이가 놓치면 엮는이가 짚어서 알려줘야지요. “나는 천사한테 줍니”다. “나는 천사한테서 받습니”다. “나는 천사한테 갑니”다. “나는 저쪽에서 옵니”다. ‘가르치다·주다’는 ‘가다’이니 ‘-한테·-에게’를 붙입니다.‘배우다·받다’는 ‘오다’이니 ‘-서·-한테서’를 붙입니다. 아이들처럼 ‘틀린말’이어도 요조모조 재미나게 말놀이를 해보며 삶을 새롭게 볼 수 있습니다만, 따로 꾸러미로 여미는 이야기라면 말재주가 아니라 삶과 살림과 사랑을 차근차근 갈무리하고 갈피를 잡을 일이지 싶어요. 가는지 오는지 읽어야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요?


ㅅㄴㄹ


꿈속의 잠을 벗겨내면 나무들의 흉터라고 부를 수 있겠다. 가슴이 숭숭 뚫린 몸의 껍질, 햇볕에 마른 주둥이, 바스락대는 몸을 줍는다. (꿈갈피/28쪽)


나의 아홉살은 얼음 감옥. / 쌀은 씻어도 묵은 냄새가 났다. // 엄마, 사람에게도 겨울잠이 있으면 좋겠어요. / 사람이 어는 점을 알고 싶어요. / 지루한 속도는 언제 떨어질까. (빙점/128쪽)


+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정현우, 창비, 2021)


인간은 기형의 바닷바람

→ 사람은 비틀린 바닷바람

→ 사람은 넝쿨진 바닷바람

10


바깥을 쌓아도 세워지지 않는 나의 성 안에서

→ 바깥을 쌓아도 서지 않는 이 울타리에서

→ 바깥을 쌓아도 세우지 못 하는 이 담에서

16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다

→ 나는 빛한테서 말을 배웠다

→ 나는 별한테서 말을 배웠다

18


일정하지만 오차가 난무하는 곳

→ 가지런하지만 마구 틀리는 곳

→ 고르지만 어긋나서 날뛰는 곳

21


두 눈은 울기 위해 만들어졌지

→ 두 눈은 울려고 있지

→ 두 눈은 울려고 생겼지

23


이팝나무 아래서 재채기를 하면

→ 이팝나무 밑에서 재채기를 하면

→ 이팝나무 곁에서 재채기를 하면

→ 이팝나무 둘레서 재채기를 하면

27


읽히지 않는 당신을 붙들고, 나는 틈과 틈 사이를 다닌다

→ 읽히지 않는 너를 붙들고, 나는 틈과 틈을 다닌다

→ 읽히지 않는 자네를 붙들고, 나는 틈새를 다닌다

40


물고기의 귀는 어디에 달린 걸까

→ 헤엄이는 귀가 어디 달렸을까

61


거미의 귀는 바람이 가진 선 속에 있을 것

→ 거미는 귀가 바람금에 있다

→ 거미는 귀가 바람줄에 있다

61


벌목된 숲, 식물들이 새들의 발목을 움켜잡고 있었다

→ 베어낸 숲, 풀이 새발목을 움켜잡는다

69


과육을 도려내듯

→ 살점을 도려내듯

→ 살을 도려내듯

10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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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달이 떠오릅니다 삶창시선 70
박영선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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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10.

노래책시렁 390


《분홍달이 떠오릅니다》

 박영선

 삶창

 2023.4.13.



  열네 살로 접어든 작은아이는 자꾸 ‘어려운 말’을 쓰려고 합니다. 작은아이는 낱말책을 주루룩 뒤지면서 “국립국어원 및 국어학자 낱말책이 뜬금없이 어렵게 적은 뜻풀이”를 달달 외우려 합니다. 이 아이가 왜 이러나 하고 여러 해 지켜보며 이따금 “얘야, 네 입에서 흐르는 소리는 ‘네 말’이 아니야. 왜 네 마음을 네 말로 그리지 않고, 남이 적어 놓은 대로 외워서 너를 크게 세우려고 하니?” 하고 짚어 줍니다. 《분홍달이 떠오릅니다》를 읽는데, 무늬는 한글이되 영 우리말일 수 없는 글씨가 주루룩 흐르는구나 하고 느껴요. 우리는 설마 입으로도 이렇게 말을 할까요? 입으로는 이렇게 말을 않지만, 글로는 이렇게 써야 한다고 여기나요? “작은 구김들이 소란스럽다”는 오직 ‘시문학’에서만 나옵니다. “두드림은 경쾌하다”라든지 ‘비상구·잡초’ 같은 한자말도 으레 ‘시문학’에서 튀어나옵니다. 길을 바라보지 않으니, 풀을 마주하지 않으니, 나를 나로서 헤아리지 않으니, 자꾸 덩치만 키우려는 말잔치에 사로잡혀요. 삶을 여는 길로 글을 가다듬어서 펴려고 할 적에는, 겉무늬가 아니라 속살을 가꾸어 열매를 맺고 씨앗을 심을 노릇일 텐데요. “말에 흐르는 빛과 별과 씨앗”을 읽고 잇고 이곳에 있기에 임(님)입니다.


ㅅㄴㄹ


셔츠를 펼치자 / 작은 구김들이 소란스럽다 / 천천히 뜨거운 기운으로 밀고 나간다 / 누르고 지나간 자리마다 / 반듯하게 평등해진다 (다림질/34쪽)


발목까지 젖는다 / 젖은 신발은 두렵지 않아 // 돌아가거나 / 떠나거나 / 빗소리는 진행 중이다 (빗소리/45쪽)


지하철, 거울로 얼굴을 반쯤 가린 여인이 / 화장을 한다 / 콤팩트의 두드림은 경쾌하다 / 길다란 펜을 꺼낸 그녀 / 눈 위에 갈매기 한 쌍을 날렵하게 그린다 (눈―화장하는 여인/86쪽)


+


《분홍달이 떠오릅니다》(박영선, 삶창, 2023)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 모두 고맙다

5쪽


마른 풀 위로 사과가 떨어지고

→ 마른풀에 능금이 떨어지고

12쪽


쓸쓸한 나의 노래는 늘 낮은음자리

→ 쓸쓸한 내 노래는 늘 낮은자리

12쪽


나에겐 두 개의 심장이 있어요

→ 나한텐 가슴이 둘 있어요

→ 나는 두 가슴이 있어요

14쪽


소리 없이 떨어지는 잎들은

→ 소리 없이 떨어지는 잎은

18쪽


낡은 비상구만 즐비한 이곳에서

→ 낡은 뒷길만 가득한 이곳에서

→ 낡은 구멍만 넘치는 이곳에서

20쪽


잡초처럼 자라나 녹슨 꽃을 피웠다

→ 들풀처럼 자라나 고린 꽃을 피웠다

→ 수수하게 자라나 낡은 꽃을 피웠다

21쪽


셔츠를 펼치자 작은 구김들이 소란스럽다

→ 윗도리를 펼치자 작은 구김이 시끄럽다

→ 적삼을 펼치자 작은 구김이 시끌거린다

34쪽


반듯하게 평등해진다

→ 반듯하고 나란하다

34쪽


빗소리는 진행 중이다

→ 빗소리는 흐른다

→ 빗소리는 이어간다

45쪽


마트를 다녀온 그의 검은 봉지 안에서 커다란 쏘세지가

→ 가게를 다녀온 그이 검은 자루에 커다란 고기떡이

54


타오른다는 것은 발화점을 넘어섰다는 것

→ 타오른다면 불눈을 넘어섰다는 뜻

→ 타오를 때는 타는길을 넘어섰다는 말

59


콤팩트의 두드림은 경쾌하다

→ 꽃가루를 가볍게 두드린다

→ 꽃물가루를 톡톡 두드린다

8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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