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 의자 걷는사람 시인선 69
정정화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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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3.14.

노래책시렁 411


《알바니아 의자》

 정정화

 걷는사람

 2022.9.25.



  배움터도 일터도 삶터도 모름지기 어우러지면서 즐겁습니다. 얼싸안기에 따뜻하고, 어루만지기에 반갑습니다. 어긋나니 고단하고, 엇갈리니 헤매지요. 억누르니 고단하고, 어거지로 밀어대니 슬픕니다. 기쁘게 얹으면 하나도 안 어렵지만, 섭섭하거나 서운하게 얹어대면 짐입니다. 아기를 업는 마음은 오롯이 사랑입니다. 마냥 업히거나 업으려고 들면 사랑하고 멉니다. 삶은 뚝딱 만들 수 없습니다. 물처럼 흐르면서 모든 곳에 스미거나 드나드는 삶입니다. 삶을 다독이면 살림이고, 삶에 옭매이면 굴레예요. 살림을 하는 길이니 스스로 생각하면서 하루를 짓고, 이동안 문득 사랑이 깨어나면서 활짝 꽃피웁니다. 《알바니아 의자》를 읽고서 덮습니다. “낱말을 엮거나 짜야 글(문학)”인 듯 여기는 분이 많습니다만, 바느질이나 뜨개질 모두 힘을 들여 억지로 하려고 들면, “겉보기로는 예쁘되, 입기에는 뻑뻑하거나 작거나 크”게 마련이에요. 밥짓기도 옷짓기도 집짓기도 오직 사랑이라는 마음 하나로 풀어놓을 적에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뚝딱뚝딱 올라가는 높다란 잿집은 “집을 짓는 길”하고 먼 “시멘트를 들이부어 똑같이 짜맞추는 굴레”입니다. 짜맞추려고 하면 굴레예요. 짜거나 엮지 말아요. 삶을 노래하면 될 뿐입니다.


ㅅㄴㄹ


빨갛게 물든 피클을 포크로 찔러대면서 / 소라게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 / 왜 넌 자꾸 숨어 버리는 거니 / 재미없는 갑각류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 난 기차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인데 (늪이었을 거야, 아마도/26쪽)


폴란드에서는 코를 치켜세우고 있는 코끼리들이 행복을 물어다 준다고 합니다 (폴란드 그릇/31쪽)


+


《알바니아 의자》(정정화, 걷는사람, 2022)


식탁 아래에서는 아이들 발바닥이 날마다 넓어졌다

→ 밥자리 밑에서는 아이들 발바닥이 날마다 늘어난다

11쪽


종 모양의 단추를 찾았습니다

→ 방울꼴 단추를 찾았습니다

16쪽


어둠을 이끌고 가고 있다

→ 어둠을 이끌어 간다

→ 어둠을 이끈다

19쪽


잔디밭 스프링클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이해해

→ 잔디밭 물뿜개에서 나오는 물을 알아

20쪽


퉁퉁 부은 심장은 불규칙적이고 테이블보를 깔면

→ 퉁퉁 부은 가슴은 들쑥날쑥이고 자리천을 깔면

21쪽


소라게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

→ 소라게를 이야기하려 했다

→ 소라게 이야기를 하려 했다

26쪽


벤치 위에 해변과 파도를 올려놓고

→ 걸상에 바닷가와 물결을 올려놓고

50쪽


이어폰을 꽂고 있으면 여행자가 된 것 같아

→ 소릿줄을 꽂으면 나그네가 된 듯해

66쪽


수평을 맞추지 못하지

→ 똑바로 맞추지 못하지

→ 나란히 맞추지 못하지

10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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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창비시선 402
이근화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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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3.8.

노래책시렁 410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이근화

 창비

 2016.9.30.



  포근포근 숨결이 깃든 노래로 새봄을 맞이합니다. 지난해하고 올해에는 첫봄 길턱에 비날을 잇습니다. 앞으로도 이즈음이 비날로 길게 이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온나라가 하도 매캐하니까요. 철바람이 바뀌면서 옆나라에서 먼지바람이 날아오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곳곳에서 내뿜는 모진 먼지바람도 대단합니다. 부릉부릉 그만 달리지 않는다면 파란하늘을 잃을 수 있습니다. 날개를 덜 띄우거나 멀리하지 않는다면, 참말로 푸른들까지 잃을 만합니다.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를 읽는데, 오늘날 숱한 글자락도 서울을 닮는구나 싶습니다. 그리 멀잖은 지난날까지만 해도 고장마다 다 다르게 글꽃이 피어났다면, 이제는 그냥그냥 서울글입니다. 낮에도 땅밑이 넓고 훤한 서울이고, 밤에도 여기저기 번쩍거리는 서울입니다. 어디서나 쏟아지는 사람물결이고, 서울곁에서 일자리를 오가면서 고단한 사람바다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서울에 매이는 삶이자, 온통 서울바라기인 얼개이니, 글 한 줄도 서울노래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서울은 밥을 먹여 주지 않아요. 서울은 돈벌이가 될는지 몰라도, 해랑 바람이랑 비를 누리는 터전이 아닙니다. 무엇을 머금으면서 글줄을 여밀 적에 스스로 빛날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ㅅㄴㄹ


곧 쓰레기가 될 이 비닐장갑은 / 우주선의 이름 같다 / 이백매인지 아닌지 세어보지 않겠지만 / 미아가 될 우주선의 운명처럼 / 내 손은 이백번씩 / 투명하게 빛날 것이다 (코맥스 200/12쪽)


당신의 입술은 회색 / 쉭쉭 바람 소리가 난다 / 당신의 말은 달콤해 / 내가 스르르 넘어간다 (요양원/22쪽)


+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이근화, 창비, 2016)


버려진 분홍 땡땡이 팬티

→ 버린 배롱빛 물방울 속옷

→ 버린 배롱빛 알록 속옷

8쪽


오늘 나의 산책과 명상에는 무늬가 없다

→ 오늘 나는 무늬가 없이 걷고 고요하다

9쪽


한권의 책이 나를 낳았다

→ 책 하나가 나를 낳았다

14쪽


옥수수알들이 옥수수를 향해 결의하듯이

→ 옥수수알이 옥수수한테 곱새기듯

→ 옥수수알이 옥수수한테 다짐하듯

24쪽


우리의 발걸음이 더 아름다워진 걸까

→ 우리 발걸음이 더 아름다울까

→ 우리 발걸음이 더 아름다운가

30쪽


머리카락이 돋았다 그것도 나의 것이다

→ 머리카락이 돋았다 바로 나이다

35쪽


빗줄기가 알고 있는 당신의 어깨를 내가 모르니까 더 즐거운 것 같다

→ 빗줄기가 아는 그대 어깨를 내가 모르니까 더 즐거운 듯하다

41쪽


누군가의 심장을 뚫지 않아도 좋았다

→ 누구 가슴을 뚫지 않아도 기뻤다

→ 누구 마음을 뚫지 않아도 반가웠다

44쪽


이별을 고하는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 헤어지자는 사내를 만났습니다

→ 손을 흔드는 이를 만났습니다

60쪽


비행기에 몸을 싣고 불행의 씨앗들을 날리며

→ 날개에 몸을 싣고 고된 씨앗을 날리며

→ 날개에 몸을 싣고 동티 씨앗을 날리며

103쪽


재가 너의 향기가 되는 죽음 위에 눈사람이 서 있다

→ 재가 네 내음인 죽음에 눈사람이 선다

→ 재가 네 냄새인 죽음에 눈사람이 있다

105쪽


천변은 가지런히 정리가 되었지만

→ 냇가는 가지런히 다듬었지만

→ 물가는 가지런히 손보았지만

11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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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마을 아이들
임길택 지음, 정문주 그림 / 실천문학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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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3.6.

노래책시렁 405


《탄광마을 아이들》

 임길택

 실천문학사

 1990.5.5.



  가난살림하고 가멸살림은 따로 없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면 주머니에 돈이 잔뜩 있어도 가엾습니다. 마음이 넉넉하면 주머니가 비어도 가뿐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노래합니다. 마음이 캄캄하면 주머니에 돈이 넘쳐도 안 웃고 안 놀아요. 저는 《탄광마을 아이들》을 1999년 가을에 처음 만났습니다. 한창 새뜸나름이로 일하다가 틈틈이 짐바리를 몰고서 작은 마을책집을 찾아다니던 무렵인데, 이런 노래책이 진작 나온 줄 느끼면서 온몸이 찌릿했습니다. 1990년은 저로서는 푸름이(중3)였고, 그때나 그 뒤로나 이런 노래책을 알려준 어른은 못 봤습니다. 그렇지만 몹시 반가웠어요. 아이 곁에서 하루를 노래하는 어른이 있으니 고맙고, 이 노래에 사랑을 담아서 꿈씨앗을 가만히 편 이웃이 있으니 반갑더군요. 글을 쓰거나 노래를 짓는 이웃한테 으레 이 노래책을 건네거나 여쭈는데, 아직 이 글을 챙겨 읽거나 곱씹는 분은 몇 없습니다. “뭣하러 동시를 읽어?” 하거나 “이렇게 쉽게 쓰면 문학이 아냐!” 하는 ‘시인’만 잔뜩 만났어요. 요즈음 쏟아지는 숱한 글을 보면, ‘마을’도 ‘집’도 못 그리면서 목소리만 우렁찬 듯싶습니다. 목소리는 작아도 됩니다. 마음을 담아서 말 한 마디를 여미어야 노래입니다.


ㅅㄴㄹ


아버지 하시는 일을 / 외가 마을 아저씨가 물었을 때 / 나는 모른다고 했다 // 기차 안에서 / 옆 자리의 아저씨가 / 물어왔을 때도 / 나는 낯만 붉히었다 (거울 앞에 서서/9쪽)


새로 오신 선생님께서 / 아버지 자랑을 해보자 하셨다 // 우리들은 / 아버지 자랑이 무엇일까 하고 / 오늘에야 생각해보면서 / 그러나 / 탄 캐는 일이 자랑 같아 보이지는 않고 / 누가 먼저 나서나 / 몰래 친구들 눈치만 살폈다 // 그때 / 영호가 손을 들고 일어났다 // 술 잡수신 다음날 / 일 안 가려 떼쓰시다 / 어머니께 혼나는 일입니다 (아버지 자랑/27쪽)


나도 커서는 / 광부가 되겠어요 / 거짓말 않고 사는 / 아버지처럼 / 일하는 사람 되겠어요 (여기 이곳에서/32쪽)


내가 조그만 아이였을 때 /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싸우며 / 왜 이곳으로 이사 왔는지 / 나는 몰랐습니다 / 그때는 부엌 구석에서 / 그냥 울기만 했습니다 (이야기/45쪽)


탄광 기계소리 / 하루종일 끊이지 않아도 / 누구 하나 / 시끄럽다 말하지 않아요 / 놀다보면 / 그 소린 듣지도 못해요 (우리는/56쪽)


+


《탄광마을 아이들》(임길택, 실천문학사, 1990)


옆 자리의 아저씨가 물어왔을 때도

→ 옆자리 아저씨가 물어왔을 때도

9쪽


까마득히 모르고 계셨대요

→ 까마득히 모르셨대요

19쪽


새로 오신 선생님께서 아버지 자랑을 해보자 하셨다

→ 새로 오신 샘님이 아버지 자랑을 해보자 하셨다

→ 새로 오신 어른이 아버지 자랑을 해보자 하셨다

26쪽


조금씩 나오는 보상금으로

→ 조금씩 나오는 보람돈으로

→ 조금씩 나오는 꽃돈으로

38쪽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 엄마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40쪽


진료소 세 벽 가득 책을 쌓아놓고 동네아이들 모으신다

→ 돌봄터 세 칸 가득 책을 쌓아놓고 마을아이 모으신다

10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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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47
김바다 지음 / 실천문학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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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3.6.

노래책시렁 407


《싱글》

 김바다

 실천문학사

 2016.11.16.



  저는 어디를 가든 사람낯은 잘 안 쳐다보거나 아예 안 들여다봅니다. 이러다 보니 곧잘 만난 사람 얼굴이 안 떠오르거나 이름까지 잊기 일쑤입니다. 사람살이에서 얼굴을 잊거나 모른다면 참 허술한 셈일 텐데,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바깥에서도 으레 하늘부터 봅니다. 이다음에는 나무하고 풀꽃을 봅니다. 이러면서 새랑 풀벌레랑 벌나비를 보고, 바람에 햇살에 별을 보려고 합니다. 《싱글》을 가만히 읽다가 덮었습니다. 요새는 ‘싱글’ 같은 영어야 아무렇지 않게 쓴다고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길든 말씨로는 스스로 새길을 호젓하게 나아가는 말길이나 글길하고는 좀 멀구나 싶어요. 우리말 ‘혼자’하고 ‘호젓’뿐 아니라, ‘홀가분(자유)’하고 ‘호미’가 서로 얽힌 줄 알아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빗물이 흐르는 ‘홈’하고 ‘혹’도 다 얽힌 낱말인 줄 얼마나 느낄까요. 한 사람은 ‘혼’이고, 다른 한 사람을 마주하면 ‘함’입니다. ‘한’하고 ‘함’은 길이 다르지만 뿌리는 같습니다. 모두 ‘하늘’을 품는 사랑입니다. 말 한 마디가 아무렇지 않을는지 모르나, 바로 이 수수한 말씨 하나를 고르게 여미면서 한참 마주할 적에는, 언제나 스스로 확 틔우는 글자락을 열리라 봅니다.


ㅅㄴㄹ


혼자 산다 /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싱글/12쪽)


아주 작은 구덩이에 다리 오그린 시를 눕힌다 / 이 끓는 시를 내린다 / 빈 젖 물고 숨이 멎은 / 시를 심는다 (은밀하게 위대하게/28쪽)


우리는 접시 위 덜 구운 스테이크를 향해 / 단정히 침을 뱉으며 팔리지 않을 시를 읽는다 / 시를 읽는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물병자리 우리는/101쪽)


+


《싱글》(김바다, 실천문학사, 2016)


유년(幼年)의 한낮

→ 어린 한낮

→ 어릴 적 한낮

11쪽


물이 나와 너를 고의적으로 가르는 곳

→ 물이 나와 너를 굳이 가르는 곳

→ 물이 나와 너를 일부러 가르는 곳

→ 물이 나와 너를 애써 가르는 곳

12쪽


별들의 입은 재갈이 물려져 있다

→ 별은 입에 재갈이 물렸다

12쪽


한 장의 하늘 구름을 펼쳐놓았을 뿐

→ 한 자락 하늘 구름을 펼쳐놓았을 뿐

16쪽


각각의 얼굴 이두박근과 장딴지가 주목받는 동안

→ 딴 얼굴 위팔두갈랫살과 장딴지를 보는 동안

→ 다른 얼굴 위팔두살과 장딴지가 돋보이는 동안

22쪽


서로에 대한 이해와 아무 상관없는 춤이 계속된다

→ 서로 헤아리지 않는 춤을 이어간다

→ 서로 들여다보지 않는 춤을 잇는다

→ 내내 서로 안 쳐다보며 춤춘다

34쪽


칼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 칼은 종이로 빚지 않았을까

→ 칼은 종이로 엮지 않았을까

41쪽


해부시간 팔딱거리던 개구리

→ 몸 째면 팔딱거리던 개구리

64쪽


이것은 인내심의 문제입니다

→ 참는 일입니다

→ 견디느냐입니다

86쪽


우리는 접시 위 덜 구운 스테이크를 향해 단정히 침을 뱉으며

→ 우리는 접시에 올린 덜 구은 두툼고기에 곱게 침을 뱉으며

→ 우리는 접시에 놓는 덜 구은 고기에 멋지게 침을 뱉으며

10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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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의 미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568
황혜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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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2.17.

노래책시렁 404

《겨를의 미들》
 황혜경
 문학과지성사
 2022.4.24.


  한밤에 마당에 서면 별자리를 읽습니다. 곧 봄빛이 퍼져 둘레가 따뜻하면 시골은 모를 내려고 못자리를 마련합니다. 하루하루 아이들하고 보금자리를 일구고, 우리 하루를 차분히 갈무리하면서 살림자리를 노래합니다. 어떤 사람은 벼슬자리를 얻으려고 용쓰는데, 즐겁게 일하면서 보람으로 삶을 빚는 일자리가 아니라면 부질없구나 싶어요. 《겨를의 미들》을 읽는 내내 말꼬리를 붙드는 올가미를 느꼈습니다. 오늘날 글자리란, “삶을 이루고 일구며 이으는 마음을 담은 말”을 글로 옮기는 길하고는 사뭇 동떨어지는구나 싶어요. 이름자리나 힘자리 같달까요. 지난날 중국을 섬기던 어리석은 사내들은 임금을 우러르면서 조아리는 한문을 끝없이 폈다면, 오늘날 문학은 삶자리에 발을 디디지 않으면서 꿈자리도 마음자리도 생각자리도 아닌, 서울자리에 스스로 갇히는구나 싶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글만 꿸 적에는 그릇이 아닌 굴레로 치닫습니다. 글 한 줄 없던 아스라이 먼 옛날에도, 모든 사람은 사랑으로 만나서 아이를 낳고 돌보면서 숱한 이야기자리를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헛바람을 걷어내어 노래자리라는 수수하면서 빛나는 길을 다시 찾아야 할 때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갑자기 왜 그래?라고 했니 갑자기는 아니야 어디서부터 얼마 동안 준비해야 갑자기가 아니지? 어중간한 네가 그동안 그걸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야 겨를이 없는 건 (겨를의 미들/14쪽)

완숙 토마토가 과하게 익는 것처럼 무차별적으로 무르는 육肉의 소식들 단단한 이 밤이 잠재우려고 해 (Open/49쪽)

+

《겨를의 미들》(황혜경, 문학과지성사, 2022)

기다림의 속도는 마지막에 빨라질까
→ 마지막에는 빨리 기다릴까
→ 마지막에는 얼른 기다릴까
→ 마지막에는 바로 기다릴까
9쪽

벌레의 이동을 흙과 바람이 돕고
→ 벌레길을 흙과 바람이 돕고
→ 벌레 나들이를 흙과 바람이 돕고
13쪽

어중간한 네가 그동안 그걸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야 겨를이 없는 건
→ 두루뭉술한 네가 그동안 생각하지 않아서 겨를이 없어
→ 어정쩡한 네가 그동안 생각하지 않아서 겨를이 없어
14쪽

애초부터 잘못된 지적도地籍圖 위에
→ 처음부터 잘못인 길짜임에
→ 워낙 잘못 담은 판짜임에
→ 이미 잘못 빚은 땅그림에
22쪽

나의 어린이 친구와 노인 친구와 먼저 사계절 친구가 되어야
→ 어린 동무와 늙은 동무와 먼저 줄곧 동무여야
→ 어린 벗과 늙은 벗과 먼저 늘 동무로 지내야
25쪽

넓어지려는 마음에는
→ 넓히려는 마음에는
30쪽

오프너를 찾는 사람 하려는 것들의 시작
→ 병따개를 찾는 사람 하려는 첫 몸짓
→ 따개를 찾는 사람 하려는 첫걸음
48쪽

완숙 토마토가 과하게 익는 것처럼 무차별적으로 무르는 육肉의 소식들 단단한 이 밤이 잠재우려고 해
→ 익은 땅감이 너무 익듯 답치기로 무르는 몸 이야기 단단한 이 밤에 잠재우려고 해
49쪽

측은한 언사가 곱다면 인사의 기원부터 읽기로 하자
→ 가엾은 말이 곱다면 고갯짓 뿌리부터 읽기로 하자
→ 딱한 말곁이 곱다면 절하는 밑동부터 읽기로 하자
82쪽

7일간의 잠을 휴식이라고 한다면
→ 이레를 자며 쉰다고 한다면
→ 이레를 자는데 쉰다고 한다면
110쪽

안녕, 초로初老를 향해가는 어린이들 몇 번씩 죽으며 전진하고
→ 반가워, 늙어가는 어린이들 몇 판씩 죽으며 나아가고
126쪽

수치羞恥의 진가를 가늠하라고 했다
→ 얼마나 창피한가 가늠하라고 했다
→ 부끄러운 값을 가늠하라고 했다
12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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