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삐딱 5교시 삐뚤빼뚤 내 글씨 문학동네 동시집 33
김은영 지음, 강전희 그림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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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61



오늘날 학교는 ‘배움집’ 구실을 하는가?

― 삐딱삐딱 5교시 삐뚤빼뚤 내 글씨

 김은영 글

 강전희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14.12.22.



  아침이 되면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갑니다. 초등학교에 가고, 중학교에 가며, 고등학교에 갑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까닭은 배우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삶을 새롭게 배울 뿐 아니라, 또래동무를 널리 사귀면서 둘레를 더욱 넓고 깊게 바라보는 눈썰미를 키우고 싶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는 뜻은 졸업장이나 자격증 때문이 아닙니다. 두 어버이가 맞벌이를 하느라 바빠서 아이들을 집에서 내보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배워야 한다고 여겨서 학교라고 하는 ‘배움집’을 마련합니다.



선생님이 / 내 알림장에 / 입 모양 하나 그려 주셨다. // 내가 입이 두 개인 듯 / 수업 시간마다 떠들어서 / 입 하나를 그려 준 거랬다. (입 두 개)



  학교는 ‘배움집’입니다. 배우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늘 지내는 집은 어떤 곳일까요? ‘살림집’입니다. 먹고 입고 자는 집은 ‘살림집’입니다. 아이들은 살림집에서 먹고 입고 자는 살림을 어버이한테서 배웁니다. 그리고, 저마다 배움집을 드나들면서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배웁니다.


  학교가 맡은 몫은 배움집인 만큼, 학교는 아이들을 슬기롭게 가르치면서 아름답게 북돋우는 길을 닦아야 합니다. 학교는 아이들한테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주는 곳이 아닙니다. 학교는 모든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기쁨을 저마다 새롭게 누리거나 맞아들일 수 있도록 가꾸는 곳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 꽃은 벌들이 다니는 학교야. / 꿀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 우리들은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 꽃은 벌들이 노는 놀이터예요. / 꿀벌들이 신나게 놀고 있잖아요. (꽃과 꿀벌)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동시를 쓰는 김은영 님이 선보이는 《삐딱삐딱 5교시 삐뚤빼뚤 내 글씨》(문학동네,2014)를 읽습니다. 이 동시집에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부딪히거나 겪거나 마주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무래도 초등학교 교사 눈높이로 아이들을 보기 때문일 테고, 오늘날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때문일 테지요. 동시를 읽을 아이들도 거의 다 학교를 다닐 테니까, 동시집에서도 학교 이야기를 크게 다룰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내가 복도에서 뛰는 건 / 발뒤꿈치를 들고 / 사뿐사뿐 걷다 보면 / 나도 모르게 / 발걸음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복도에서 뛰는 까닭)



  교사인 글쓴이는 “꽃은 벌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말합니다. 교사인 글쓴이를 마주하는 아이들은 “꽃은 벌들이 노는 놀이터”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이 복도에서 뛰는 까닭을 노래한 동시는 교사 목소리일까요, 아니면 아이들 목소리일까요? 아무래도 아이들 목소리가 되리라 느낍니다. 아이들은 참말 그렇거든요. 아이들은 참말 가볍게 뛰거나 달려요. 아이들은 무겁게 뛰거나 달리지 않습니다.



바람이 심었어요. / 씨앗이 바람 타고 날아왔으니까. / 하늘이 심은 거야. / 바람은 하늘에서 부니까. / 땅이 심은 거야. / 씨앗이 땅에서 났으니까. (하늘 농사 땅 농사)



  아이들은 마음껏 놀면서 배웁니다. 놀지 못하는 아이는 배우지 못합니다. 놀지 못하면서 배우기만 해야 한다면, 아이들로서는 이보다 크고 끔찍한 불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문제집이랑 참고서만 손에 쥐고서, 학습도서나 추천도서나 명작도서를 줄줄이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면, 아이들로는 이보다 싫고 미운 불벼락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나마 초등학교에서라면 조금 쉬거나 뛰논다고 하지만, 중학교 문턱을 넘어서면 그예 죽어납니다. 중·고등학교 여섯 해는 입시지옥입니다. 입시지옥에서 아이들이 헤어날 길이 없으니, 아이들은 삶을 배우거나 사랑을 배우지 못하는 채, 이성친구 사귀는 데에 눈길이 뻗습니다. 삶도 사랑도 아닌 그저 이성친구일 뿐입니다. 또는 여린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바보짓으로 휘둘립니다.


  초등학교 어린이하고는 바람이 심고 하늘이 심으며 땅이 심는 씨앗 이야기를 동시로도 나누고 그림책으로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나 고등학교 푸름이하고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는지요? 중·고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학교 텃밭’을 두는 데가 몇 군데가 될는지요?



외할머니 옆에 엄마가 누웠다. / 엄마 옆에 나도 나란히 누웠다. // 외할머니는 / 엄마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하고 / 엄마는 / 외할머니 젊었을 적 이야기를 한다. (외할머니 생신날)



  어린이 나이를 지나서 푸름이 나이를 보낼 적에 입시공부만 해야 한다면, 이 어리고 푸른 넋은 삶이나 사랑을 제대로 배우지 못합니다. 어버이 살내음이나 할머니 할아버지 살결을 느끼지 못한 채 학교에만 갇혀야 하는 아이들이라면, 아이들 앞날에 기쁜 삶이나 즐거운 사랑이 피어나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학교는 배움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학교는 배움집으로 바로서야 합니다. 학교는 배움집답게 거듭나야 합니다.


  대학교라는 데에 가면 어떻고, 안 가면 어떠할까요. 대학교 졸업장이 없어도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자격증이나 저런 증명서가 없더라도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을 배워서 삶을 가꾸고 삶을 노래하는 아이들로 자랄 때에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배워서 사랑을 가꾸고 사랑을 노래하는 어른으로 거듭날 때에 아름답지요.



앵두 한 움큼 / 한입에 먹으면 / 입 속에서 다디단 풍선이 / 퐁! 퐁! 퐁! / 터진다. (앵두 먹기)



  앵두알은 아이한테도 맛나고 어른한테도 맛납니다. 수박이나 참외는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맛납니다. 아이들이 가야 하는 학교 이야기를 동시로 다룬다면, 학교에서 겪거나 부딪히거나 마주하는 일뿐 아니라, 학교가 배움집다운 몫을 톡톡히 하도록 이끄는 이야기도 담을 수 있기를 빕니다. 교사 눈높이나 학생 눈썰미가 아닌, 삶을 사랑하는 숨결로 꿈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동시로 태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4348.6.1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동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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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철든 날 사계절 중학년문고 31
이수경 지음, 정가애 그림 / 사계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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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60



철이 드는 어른은 동시를 노래한다

― 갑자기 철든 날

 이수경 글

 정가애 그림

 사계절 펴냄, 2014.6.18.



  고단한 아이는 갑자기 코피를 쏟습니다. 어른만 코피를 쏟지 않습니다. 아이도 코피를 쏟습니다. 어른은 몸이 힘든데 억지로 일을 하려니 코피를 쏟고, 아이는 몸이 고단한데 더 놀려고 악을 쓰다가 코피를 쏟습니다. 어른은 할 일이 많다는 생각에 눌려 코피를 쏟고, 아이는 더 신나게 놀고픈 마음에 잠을 미루다가 코피를 쏟습니다.


  오늘 아침에 작은아이 코피를 봅니다. 예전에는 큰아이가 코피를 자주 흘렸습니다. 코가 안 좋기도 했지만, 저녁 늦도록 잠을 안 자고 놀려고 하면, 하루 내내 개구지게 뛰놀고는 저녁에도 잠을 미루고 놀려고 하면, 어김없이 이튿날에 코피를 쏟습니다.


  코피를 쏟은 작은아이를 일으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습니다. 작은아이는 “코피 다 닦았어?” 하고 묻더니 이부자리로 달려갑니다. 저도 몸이 힘든 줄 알 테지요. 장난감 몇 가지를 들고 이부자리에서 꼼지락꼼지락 춤추면서 놉니다.



마당에 쌓인 눈 / 다 녹던 봄날 // 왕 구슬 한 개와 / 누나 머리핀 // 햇살에 반짝반짝 / 빛나고 있더라. (술래가 찾은 것)



  이수경 님이 쓴 동시를 그러모은 《갑자기 철든 날》(사계절,2014)을 읽습니다. 《갑자기 철든 날》을 읽으면 여러모로 시골살이 모습이 흐르고, 시골집에서 수수하게 노는 아이들 모습이 흐릅니다. 눈밭이 봄볕에 스러진 뒤에 찾은 구슬이랑 머리핀을 놓고 살가운 이야기가 흐르고, 한껏 무르익은 봄에 바쁘게 일손을 놀리는 사람들 이야기가 흐릅니다.



나락 담그고 / 모판 내고 / 모 숨구고 / 들깻모 붓고 / 수수 모종 내고 / 깻모 안기고 (우리 마을 사람들)


바구니 / 옆에 끼고 / 터벅터벅 / 사랫길 걷다 보면 // 풍뎅이 / 사슴벌레 / 대벌레 / 사마귀 / 방아깨비 / 주홍박각시 애벌레 / 나비 번데기 (마중)



  이제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바구니를 옆에 끼고 사랫길’을 걷는 아이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도시에는 사랫길이란 없고, 고샅길도 없으며, 오솔길이라든지 냇둑길이란 없습니다. 도시에는 골목길도 많이 줄었고, 풀밭길을 찾아보기도 어렵습니다. 곤충도감이나 그림책을 들추면 풍뎅이도 사슴벌레도 대벌레도 사마귀도 방아깨비도 애벌레도 번데기도 나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사는 도시 한복판에서 이러한 ‘벌레동무’를 만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도시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는 벌레는 바퀴벌레나 파리나 모기쯤입니다. 나비나 벌을 구경하기는 대단히 어려울 테고, 나방조차 좀처럼 구경하지 못할 수 있어요. 도시 아이들은 두 가지 하루살이가 있는 줄 알지 못할 테지요.


  그런데, 요즈음 도시 아이뿐 아니라 요즈음 도시 어른도 벌레동무를 잘 모르기 일쑤입니다. 《갑자기 철든 날》을 쓴 이수경 님은 여러 벌레동무와 꽃동무와 나무동무 이야기를 동시로 빚습니다. 요즈음 도시 아이들한테서 멀어지거나 잊혀지는 살가운 동무를 동시에 곱게 담아서 보여줍니다.



중간고사 준비하는 동안 // 쑥부쟁이 지나갔습니다. / 꽃향유도 지나갔습니다. / 개여뀌도 지나갔습니다. (본 척도 못한 가을)


“얘들아, 눈 왔어.” / 그 소리에 // 큰형 / 벌떡 일어납니다. // 나도 / 발딱 일어납니다. (우리를 일으키는 말)



  눈이 왔다는 소리에 벌떡 일어날 만한 아이들이 아직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록 주차장 한쪽에서 눈뭉치를 겨우 굴리더라도,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눈이 올 적마다 길이 막힌다고 떠들더라도, 눈이 내리는 겨울을 기쁘게 맞이할 아이들이 도시에도 아직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가 온다는 소리에도 벌떡 일어날 만한 아이들이 아직 있으리라 생각해요. 비록 도시에서 빗물놀이를 하기는 어렵더라도, 도시에서 빗물놀이를 하다가 자동차에 치일까 걱정하는 어른이 많더라도, 웅덩이를 찰방찰방 밟으면서 옷을 다 적시고는 까르르 웃는 아이들이 도시에도 아직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놀면서 자라는 아이요, 놀면서 꿈을 키우는 아이입니다. 놀면서 서로 아끼는 마음을 가꾸는 아이요, 노는 동안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기쁨을 배우는 아이입니다.



외할아버지가 / 전화하시면 // 미역 딴 거 보냈다. / 끊자! / 뚝… // 물고기 몇 마리 보냈다. / 끊자! / 뚝… (이상한 전화)



  우리 어른은 모두 어른이면서 아이입니다. 아기로 태어나서 아이로 자라지 않고서는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마흔 살이건 여든 살이건 모두 아기와 아이 나이를 지나왔습니다. 마흔 살 어머니나 아버지라 하더라도 여든 살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는 그저 ‘아기’이거나 ‘아이’입니다.


  이리하여,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이녁 아이인 ‘아이들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시골에서 거둔 여러 가지를 틈틈이 보냅니다. 도시에서 돈을 잘 벌는지 몰라도, 밥은 제대로 챙겨서 먹는지 걱정스러우니 ‘마흔 살 아이’한테 이것도 보내고 저것도 보냅니다.


  《갑자기 철든 날》에 나오는 〈이상한 전화〉 같은 동시를 아이들은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요? 이 동시는 아이한테 재미나거나 사랑스러운 동시가 될 수도 있을 테지만, 아이보다는 어른한테 재미나거나 사랑스러운 동시가 되리라 느낍니다.



소윤이 네 단점? // 신경질 잘 부리고 / 짜증 잘 내고 / 불뚝불뚝 화 잘 내고 / 투덜투덜거리고 / 잘 삐치는 것 빼곤 / 없을걸? // 나 꼬집는 거 말곤 / 없을걸? (좋아하게 되면)



  곰곰이 따지면, 동시는 어린이한테 읽히는 노래가 아닐 수 있습니다. 동시를 쓰는 어른이 저마다 이녁이 어릴 적에 무엇을 하면서 놀았는가 하는 이야기를 풀어놓은 노래가 동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른이 저마다 ‘오늘날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 이녁 옛이야기’를 동시라는 틀에 담아서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새롭게 태어나서 자라는 아이들한테 ‘앞으로 마음에 담아 고운 꿈을 키우는 길에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씨앗 한 톨을 이야기로 엮는 글을 동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기에 동시를 쓴다고 할 적에는, 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란, 어른인 내가 아이로 뛰놀던 나날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오늘 이곳에서 아이로 뛰노는 ‘이웃사람(몸이 작고 나이가 어린 사람)’이 걸어갈 길을 사랑하는 마음이지 싶습니다.


  철이 드는 어른이 동시를 씁니다. 철이 드는 어른이 아이들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동시를 읽습니다. 철이 드는 어른이 아이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웃고 노래하기에 동시가 한 줄 태어납니다. 철이 드는 어른이 아이다운 마음으로 삶을 사랑하기에 동시가 새삼스레 두 줄 석 줄 넉 줄 자라납니다. 4348.6.12.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동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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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악수하는 법 삶의 시선 26
고선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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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99



풀 한 포기를 사랑하는 노래

― 꽃과 악수하는 법

 고선주 글

 삶이보이는창 펴냄, 2008.1.30.



  흰줄갈풀이 있습니다. 이 들풀이 우리 집 뒤꼍에서 넓게 자랍니다. 이 들풀이 왜 이곳에서 자라는지 잘 모릅니다. 먼 곳에서 씨앗이 날아와서 이곳에 내려앉았을 수 있고, 새가 풀씨를 먹고는 이곳에 똥을 누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뒤꼍은 무척 오래 빈터요 빈집이었는데, 예전에 이곳에서 살던 사람이 심어서 길렀을 수 있습니다.


  흰줄갈풀은 곧고 길게 뻗는 잎에 흰줄이 생깁니다. 어릴 적부터 흰줄이 생기지는 않고, 차츰 키가 자라면서 흰줄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얼핏 보면 시드는 모습이지만, 가만히 보면 잎에 생기는 하얀 무늬입니다.


  그나저나 흰줄갈풀은 어디에 썼을까요? 댓잎으로 바구니를 짜듯이 흰줄갈풀로도 바구니를 짰을까요? 예부터 갈풀은 논을 갈 적에 뿌려서 땅힘을 북돋우는 거름으로 삼았다고 하니, 흰줄갈풀도 거름으로 삼는 풀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흰줄갈풀은 잎이 퍽 부드러우니, 집에서 소를 키우면서 소먹이로 쓸 수 있어요.



나무들이 생년월일, 연락처 없이도 / 어찌나 조화롭게 사계를 꾸려가는지, / 까마귀밥여름나무, 당단풍나무, 국수나무, 개암나무, / 굴참나무, 조릿대, 산철쭉, 소나무 / 모두 내게는 지인들이다 (나무들이 웃는다)



  먼 옛날부터 얼마 앞서까지 이 땅에서는 어떤 풀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잡초’라는 한자말을 한겨레가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지난날에는 ‘김’이나 ‘지심’이라는 낱말만 썼습니다. ‘김’이나 ‘지심’은 어떤 풀을 가리키는가 하면, 사람이 손수 심은 씨앗이 싹이 터서 자라는 풀(남새나 곡식)이 아닌 ‘저절로 싹이 터서 돋은 풀’을 가리킵니다. 김매기(지심매기)를 하는 까닭은 ‘남새나 곡식’을 더 알뜰히 돌보려는 뜻입니다. 뽑거나 베어서 없애려는 뜻으로 김매기를 하지 않습니다. 김매기를 해서 뽑거나 벤 풀은 언제나 짐승먹이로 삼았고, 잘 말려서 다시 흙한테 돌려 주어 땅힘을 북돋우는 데에 썼습니다. 김매기를 한 풀을 잘 말려서 흙바닥에 덮으면, 웬만해서는 다른 풀이 다시 돋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김매기를 해서 말린 풀을 고랑마다 깔면, 저절로 ‘풀막이’가 되는 셈입니다.


  요즈음은 시골에서 농약을 뿌리거나 비닐을 덮습니다. 이제 시골에서는 흔히 ‘잡초’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시골에서 소를 기르는 분도 논밭을 갈려고 소를 기르지 않을 뿐더러, 고기소로 길러서 팔더라도 풀이 아닌 사료를 먹입니다. 시골 어디에서나 저절로 돋는 너른 풀은 이제 ‘풀’도 ‘들풀’도 ‘나물’도 ‘약초’도 ‘김’도 ‘지심’도 아닌 ‘잡초’일 뿐입니다.



꽃은 봄에 피지 않는다 / 십구 개월 된 딸아이 입에서 먼저 발화한다 // 한창 말하는 재미에 푹 빠진 아이 / 꽃, 꽃, 꽃 했더니 껏, 껏, 껏 한다 (꽃)



  고선주 님 시집 《꽃과 악수하는 법》(삶이보이는창,2008)을 읽습니다. 고선주 님은 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시를 쓴다고 합니다. 신문사 기자하고 시인이라는 이름은 얼핏 동떨어진 자리일 수 있지만, 시를 쓰는 마음으로 기사를 쓰고, 삶과 사람과 사회를 헤아리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면, 이 숨결은 언제나 고운 노래로 흐를 만하리라 봅니다.



라면 한 그릇 먹으러 그곳에 갈 때마다 / 할머니의 위태로운 날들과 대면한다 / 칠순이 되고도 식당일과 손자 육아까지 / 덤으로 얹어진 날들 / 식탁 하나 의제 네 개가 전부인 식당에는 / 할머니의 손때 묻은 것들 / 할머니와 같이 늙어 있다 (할머니 분식집)



  유월을 맞이한 시골은 밤꽃내음이 흐릅니다. 들과 숲을 밝히던 온갖 풀꽃과 나무꽃은 거의 저물면서 풀잎과 나뭇잎은 한껏 짙푸르게 물듭니다. 오월까지만 해도 노란 기운이 감돌던 감잎은 어느새 푸른 빛깔만 가득합니다. 뽕나무에서 오디가 익고, 벚나무에서 버찌가 익습니다. 유월에 피는 나무꽃은 유월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유월에 익는 나무알(나무 열매)은 유월에 싱그러운 숨결을 퍼뜨립니다.


  유월바람을 느끼면서 《꽃과 악수하는 법》을 새롭게 읽어 봅니다. 꽃하고 손을 맞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꽃하고 이웃이나 동무가 되면 손을 맞잡을 만하겠지요. 꽃하고 이웃이나 동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꽃을 살뜰히 아끼고 너그러이 사랑할 줄 알아야겠지요. 꽃을 살뜰히 아끼거나 너그러이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커다란 꽃송이뿐 아니라 작은 들꽃도 곱게 바라보면서 돌보는 마음이 되어야겠지요.



2년이 흐른 지금, 학교는 그 어느 것도 되지 못한 채 버려졌다 학생들 웃음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금방이라도 넘어올 것 같은 교정에는 염치없는 잡풀들만 높이뛰기 시합을 하고 그간 마을의 오랜 전통처럼 깨어진 유리조각들이 교실바닥을 굴러다녔다 (폐교 가다)



  꽃하고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사람은 나무하고도 손을 맞잡을 수 있습니다. 나무하고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사람은 숲에서 부는 바람하고도 손을 맞잡을 수 있습니다. 꽃하고 손을 맞잡으니 꽃이 들려주는 노래를 귀여겨듣습니다. 나무랑 바람하고 손을 맞잡으면 나무랑 바람이 우리한테 들려주는 노래를 귀여겨들어요.


  그리고, 꽃하고 손을 맞잡듯이 이웃사람하고 손을 맞잡습니다. 꽃이 들려주는 노래를 귀여겨듣듯이 이웃사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귀여겨듣습니다. 꽃하고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듯이 이웃사람한테 어려운 일이 닥치면 기쁘게 돕고, 이웃사람한테 즐거운 일이 찾아오면 함께 웃습니다.


  꽃을 노래하면서 사람을 노래하고, 사람을 노래하면서 꽃을 노래합니다. 꽃을 사랑하면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면서 꽃을 사랑합니다.



나는 집 한 채 없다 / 살기는 살 뿐이지 / 어디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남의 집, 남의 회사, 남의 학교 다니는 / 나는 내 것이라곤 없지 / 딸과 아내와 살 집 한 칸 없다니 / 한참 잘못된 자본주의 아닌가  (두껍아, 새 집 줄게)



  2008년에 《꽃과 악수하는 법》을 선보인 고선주 님은 이무렵 아직 ‘내 집’이 없었다고 합니다. 2015년에는 ‘내 집’을 장만하셨을까요? 곁님하고 아이랑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보금자리를 이루셨을까요?


  풀 한 포기를 사랑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시 한 줄을 쓰는 마음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나 곁님하고 아이랑 기쁘게 삶을 지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 ‘내 집’을 장만할 수 있을는지 까마득하더라도, 들꽃이 들과 숲뿐 아니라 도시 한복판 골목길에서도 곱게 피어나서 맑게 웃듯이 아름다운 하루를 지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랑이 흐르는 마음으로 삶을 노래하는 사람한테는 지구별 어느 곳이나 ‘내 보금자리’요 ‘내 쉼터’이며 ‘내 삶자리’입니다. 사랑이 흐르지 않는 마음이 되면 삶을 노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으리으리하게 커다란 집을 거느린다고 하더라도 노래 한 가락조차 못 부르는 가난한 마음이 됩니다. 그러고 보면, 시를 써서 노래하는 사람은 ‘내 집이라고 하는 재산이 번듯하게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구별을 온통 내 집으로 삼는 사랑으로 꿈꾸는’ 사람이지 싶습니다. 4348.6.10.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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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맛있게 먹는 법 문학동네 동시집 34
권오삼 지음, 윤지회 그림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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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59



노래하는 마음이면 다 맛있지

― 라면 맛있게 먹는 법

 권오삼 글

 윤지회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15.2.15.



  권오삼 님이 쓴 동시를 모은 《라면 맛있게 먹는 법》(문학동네,2015)을 읽습니다. 책이름으로도 나온 〈라면 맛있게 먹는 법〉이라는 동시를 보면 “노란 양은 냄비에다가 / 파르르 라면 끓인 뒤 / 냄비 뚜껑 안쪽에다 / 건더기를 올려놓고 / 젓가락으로 집어 / 후후 입김 불며 / 후루룩후루룩 / 먹으면 된다”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양은 냄비를 썼다고도 하고, 라면은 양은 냄비에 끓여서 먹어에 제맛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라면은 구공탄에 끓여야 제맛이라고 말하며, 라면봉지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먹어야 맛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라면맛은 사람마다 ‘처음 먹어 본 맛’이 맛있다고 마음에 남기 마련입니다. 무엇보다도 배고플 때에 먹으면 다 맛있습니다. 배고프지 않을 때에는 맛도 잘 못 느끼기 마련이고, 외롭거나 힘들 때에 혼자 먹는다면 맛이 덜 할 수 있어요. 동무랑 함께 먹으면 더 맛있을 수 있고, 한식구가 오순도순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자리에서 먹으면 한결 맛있을 수 있습니다.



곤충도감에는 없어도 / 국어사전에는 있는 // 엄마들이 / 제일 좋아하는 벌레 (공부벌레)



  요즈음 어머니라면 ‘공부벌레’를 가장 좋아하거나 반긴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공부벌레나 책벌레보다는 ‘공부박사’라든지 ‘공부천재’가 아니라면 좀처럼 쳐다볼 마음을 안 둘 텐데 싶기도 합니다. 이제 도시에서는 바퀴벌레조차 쉽게 보기 어려울 만큼 벌레가 사람 곁에서 멀리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어머니가 아무리 ‘공부벌레’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어버이로서 낳아 돌보는 아이’보다 더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입시지옥 현대사회가 초등학교까지 옭아매는 터라, 수많은 어머니는 이녁 아이가 이 수렁에서 허덕이거나 헤매지 않기를 바라니 자꾸 공부를 닦달하지요.


  우리 사회가 입시지옥이 아닐 때에도 수많은 어머니가 이녁 아이를 공부벌레나 공부박사나 공부천재가 되도록 몰아세우지는 않으리라 느낍니다. 대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고, 자격증이나 졸업장이 있어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면, 수많은 어머니가 이녁 아이를 다그쳐서 공부만 시키려고 하지는 않으리라 느낍니다.



엄마가 나보고 공부만 하라고 한다면 / 나도 오늘부터 내가 좋아하는 / 쇠고기, 돼지고기만 먹을 거야 / 햄만 먹을 거야 / 닭볶음만 먹을 거야 / 김치는 안 먹을 거야 / 시금치도 안 먹을 거야 / 가지고 안 먹을 거야 (용감한 어린이)



  동시집 《라면 맛있게 먹는 법》을 읽으면, ‘어머니’는 아이한테 공부만 시키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꼭 이 동시집이 아니더라도 다른 분 동시집이나 동화책에서도 어머니는 으레 ‘공부 닦달 도깨비’처럼 그리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동시나 동화에서 아버지는 잘 안 나옵니다. 아버지는 으레 회사에 가서 돈만 벌고, 집안일은 거의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사회가 성평등으로 나아간다고 하지만 막상 그리 평등하지는 않기 때문에 동시와 동화에서도 ‘집안일’하고 ‘아이키우기’ 몫은 오직 어머니한테만 있는듯이 그리는 셈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아버지가 집안일하고 아이키우기에 등을 돌리거나 마음을 안 쏟으니, 언제나 어머니만 ‘공부 닦달 도깨비’라는 이름을 뒤집어써야 하는지 모릅니다.


  어린이문학에서도 아버지는 으레 ‘아이와 놀아 주는 사람’으로 나오지만, 거의 ‘주말에만 놀아 주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주말에도 낮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게임을 하느라 바쁜 사람이 아버지로 나옵니다. 아무래도 아직 한국 사회에서 수많은 아버지가 이런 모습이니까 어린이문학도 이런 모습으로 아버지를 그릴 수밖에 없을 수 있으나, 어린이문학은 ‘다른 길’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엄마’나 ‘아빠’는 아기 말입니다. 아기한테는 ‘맘마’나 ‘쭈쭈’나 ‘까까’ 같은 말을 쓰면서 입술과 혀를 잘 놀리도록 이끕니다. 어린이가 읽는 문학인 동시쯤 되면 ‘아기 말’은 이제 내려놓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제대로 써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왜 / 세상에서 제일 예쁜 / 봉숭아꽃이냐 하면 / 우리 집 화분에서 / 피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



  가장 맛있는 밥은 바로 내가 손수 지어서 먹는 밥입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차려 주는 밥도 맛있고,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차려 주는 밥도 맛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스스로 씩씩하게 자라서 ‘내 손으로 비로소 밥을 차려서 먹을’ 수 있을 때에, 또 아이가 어머니와 아버지한테 ‘처음으로 밥상을 차려서 내밀’ 수 있을 때에, 이 밥맛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라면을 어떻게 끓이면 그야말로 맛있을까요? 양은 냄비이든 스탠 냄비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부침판에 끓이든 주전자로 물을 끓이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기쁘게 노래하는 마음이 되어서 즐겁게 끓이는 라면이라면 다 맛있습니다. 기쁘게 노래하는 삶을 누리면서 언제나 웃고 춤추는 홀가분한 사랑이라면 김치 한 조각이랑 간장 한 종지만 밥상에 올려도 매우 맛있는 밥이나 라면이 됩니다.



해님도 / 사진 찍어요 / 곧은 나무는 곧게 / 굽은 나무는 굽게 / 동그란 것은 동그랗게 / 네모난 것은 네모나게 / 꼭 그대로 찍어요 (그림자)



  어린이문학이 그릴 이야기는 바로 ‘사랑’이어야지 싶습니다. 오늘 이 땅에서 살아가는 어린이가 가슴에 품을 사랑을 그릴 때에 어린이문학이고, 오늘 이 땅에서 괴롭거나 힘든 어린이가 가슴에 고이 담아서 씩씩한 기운을 잃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을 때에 아름다운 어린이문학이 되리라 봅니다. 예쁘장한 말을 구슬처럼 들려주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쁘장한 말이나 말짓이나 말투보다도 ‘아름다운 사랑’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날마다 새롭게 기운을 내도록 북돋울 때에 비로소 환하게 빛나는 어린이문학이 된다고 느낍니다.


  “포로들처럼 / 꽁꽁 / 한 줄에 묶여 / 우리 집에 온 / 조기들(조기 한 두름)” 같은 동시는 비유법이나 표현법이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포로’는 ‘전쟁 포로’를 가리킵니다. 아이들한테 ‘전쟁 포로’를 굳이 빗대어서 말해야 할는지 곰곰이 되새길 노릇입니다.


  “우리나라에 일하러 온 / 방글라데시 아저씨 / 처음 배운 말이 이거래요. / “야, 너 이리 와!”(야, 너 이리 와)” 같은 동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한국에 수십만 사람이 있다는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넌지시 짚는 동시로 보아야 할까요?


  그런데 말이지요, “야, 너 이리 와!” 같은 말은 이주노동자한테만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나라 수많은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흔히 뇌까리는 말입니다. 나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면서 학교에서 어른(교사)들한테서 “야, 너 이리 와!”를 날마다 들었습니다. 군대나 회사에서도 이런 말을 늘 들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야, 너 이리 와!” 하고 외치는 어른들이었습니다. 이런 말을 늘 듣고 살던 어린이가 요즈음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습니다. 이주노동자한테만 이런 말을 다그치듯이 하지 않습니다. 한국사람끼리도 이런 말을 으레 읊습니다.


  “꽃은 아기 손톱만 해도 / 씨는 개 불알 닮았다고 / ‘큰개불알풀꽃’(큰개불알풀꽃)” 같은 동시는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개불알풀꽃’이라는 꽃이름은 일본사람이 쓰는 이름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이 동시를 쓴 권오삼 님이 ‘개불알풀꽃’이라는 꽃이름을 재미있다고 여겨서 말놀이를 하듯이 이 이야기를 썼구나 싶습니다.


  ‘개 불알’이라는 이름을 쓰니 재미있을까요? ‘며느리밑씻개’ 같은 이름을 쓰면 재미있을까요? ‘개불알풀꽃’이나 ‘며느리밑씻개’ 같은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학자한테서 배운 한국 식물학자가 잘못 퍼뜨린 이름입니다. 한국에서 먼 옛날부터 이야기한 이름은 ‘봄까지꽃(← 개불알풀꽃)’이고, ‘사광이아재비(← 며느리밑씻개)’입니다. 동시를 쓴 분이 한국 역사와 문화를 조금 더 깊이 살피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이야기꽃을 새롭게 돌아보려고 했다면, ‘개 불알’ 말놀이 동시가 아닌 다른 동시를 쓸 만하리라 봅니다. 꽃이름이나 풀이름 하나에 맺힌 아픔과 슬픔이 어떠한가 하는 대목을 다시 바라보고 새롭게 마주하면서 ‘다른 동시’로 풀어낼 만하리라 봅니다.



해가 나왔다. / 장맛비 그치자 나왔다. // 빨래들이 좋아서 /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네! / 한다. (지화자 흉내)



  노래하는 마음으로 끓여서 함께 먹는 라면이 참으로 맛있습니다. 그리고, 노래하는 마음으로 논밭을 일구어 거둔 열매를 손수 갈무리하고 다루어 차근차근 지은 밥이 대단히 맛있습니다. 아이가 손수 콩씨를 한 톨 심어서 얻은 콩알로 지은 콩밥이라면 아주 맛있습니다. 아이가 손수 토마토나 오이나 고추를 꽃그릇에 길러서 열매를 얻으면, 이 또한 몹시 맛있습니다.


  어린이한테 들려줄 문학에는 ‘어린이가 손수 지으면서 이웃하고 동무랑 사랑을 함께 나누고 가꾸는 길’을 곱고 정갈하게 담을 수 있으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문학은 삶을 아름답게 살찌우는 마음밥 구실을 합니다. 문학을 읽고 쓰는 까닭은, 아이도 어른도 삶을 아름답게 맞아들여서 생각과 마음을 사랑으로 북돋우려는 길을 걸어가면, 즐겁고 재미나면서 신나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사회 현상을 살펴서 담는 어린이문학’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아름답게 나아갈 새로운 꿈과 사랑’을 조금 더 슬기롭게 헤아리면서 빚는 어린이문학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4348.6.5.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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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6-05 06:58   좋아요 0 | URL
야, 너 이리 와.....

참 생각없이 많이들 하는 말이 아닌가 싶어요.
아이들에게 다짜고짜 하는 말들이 마음에 상처가 될 때도 많지요.
우리 한솔이는 택시 기사님들이 던지는 농담을 제일 싫어해요.
아이들 곯려주는 재미로 하는 말들이긴 하지만, 아이는 엄청 싫어하더라구요.

숲노래 2015-06-05 10:26   좋아요 1 | URL
많은 어른들이 농담 아닌 농담을 말장난으로 하는데...
참(진실)이 안 담긴 말을 아이들은 다 안다고 느껴요.
저도 저 스스로 참을 제대로, 따스하고 사랑스레
말하고 나누자고 아침마다 새롭게 생각하면서 엽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결같이 따스한 마음으로
따스한 말을 하자고 자꾸자꾸 저를 담금질합니다...
 
거문도
이생진 / 작가정신 / 1998년 8월
평점 :
절판


시를 말하는 시 96



시와 섬노래

― 거문도

 이생진 글

 작가정신 펴냄, 1998.8.17.



  섬은 바다로 둘러싸인 터전입니다. 뭍은 커다란 땅덩이입니다. 그런데 지구별을 통틀어서 헤아리면, 뭍도 바다에 둘러싸인 터전입니다. 제아무리 커다란 땅덩이라 하더라도 바다가 훨씬 넓어서 뭍을 널따랗게 껴안습니다. 그러니까, 지구별이라는 테두리에서 보면 섬도 섬이고 뭍도 뭍인 셈입니다. 굳이 ‘섬’이라는 낱말을 지었다면, 조그마한 땅덩이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뭍’은 커다란 땅덩이라는 뜻이라고 할 만합니다.


  눈길을 넓혀 수많은 별이 반짝이는 온누리를 헤아리면, 지구별은 대단히 작은 별입니다. 그야말로 가없는 온누리에 조그맣게 뜬 별조각입니다. 커다란 땅덩이 옆에 조그마한 섬이 있듯이, 드넓은 온누리에 조그마한 지구별이 있습니다.



.. 갈매기와 나는 한배에서 태어났으니까 / 나는 구름 타고 가고 / 저는 바람 타고 오고 / 나는 끝없는 데로 가고 / 저는 끝없는 데서 오고 ..  (시인과 갈매기)



  이생진 님이 빚은 시집 《거문도》(작가정신,1988)를 읽습니다. 이생진 님은 거문도에서 고즈넉히 지내면서 시를 길어올립니다. 거문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아니면서 거문도에서 지냅니다. 거문도가 이녁 보금자리가 아니면서도 거문도에 머물면서 바닷바람을 마십니다. 그저 거문도를 마음으로 담아서 사랑하려는 손길이기에 거문도에서 시를 씁니다. 그예 거문도를 마음으로 마주하면서 껴안으려는 하루이기에 거문도에서 시를 읊습니다.



.. 외롭다는 말을 꽃으로 한 거야 / 몸에 꽃이 필 정도의 외로움 / 이슬은 하늘의 꽃이고 외로움이지 / 눈물은 사람의 꽃이며 외로움이고 / 울어보지 않고는 꽃을 피울 수 없어 ..  (혼자 피는 동백꽃)



  이생진 님은 ‘성산포’를 노래하는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젊은 날부터 ‘바다’를 노래했고, ‘섬’을 그렸으며, ‘갈매기’와 놀았습니다. 그러니, 《거문도》라는 시집을 내놓을 만합니다. 그러면, 거문도에 머물면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거문도에서 지내는 동안 어떤 이야기가 마음으로 하나둘 스며들었을까요.


  “담쟁이덩굴이 소나무를 감고 /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구나 / 거기서 하늘이 보이느냐 / 줄기가 있으면 너랑 나랑 감고 올라가 / 하늘을 보자꾸나(가는 곳마다 무덤이)” 같은 이야기처럼, 섬에서 담쟁이덩굴을 보고, 소나무를 보며, 하늘을 봅니다. 담쟁이덩굴이랑 함께 하늘을 보고, 소나무랑 함께 바닷바람을 마십니다.


  시 한 줄은 풀줄기처럼 뻗습니다. 시 두 줄은 풀꽃처럼 피어납니다. 시 석 줄은 하늘처럼 파랗게 열립니다. 시 넉 줄은 바닷내음을 물씬 실어나르는 바람처럼 흐릅니다.



.. 고개 넘어가다가 돌에 챘다 / 그래서 무릎에서 피가 났다 / 돌이 내게 돌 던질 리 없으니 / 이는 돌의 잘못이 아니라 / 내 잘못이다 하고 지나가니 / 아무 탈이 없다 ..  (돌의 성품)



  거문도에서 나고 자라서 늙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문도에서 나고 자랐으나 거문도하고 사뭇 먼 곳에서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문도라는 이름을 한 번조차 못 들으며 사는 사람이 있고, 한두 차례 거문도를 마실한 적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디에서나 삶이 흐릅니다. 어디에서나 우리 이야기가 흐릅니다. 거문도에서도 뭍에서도 다른 섬에서도 “쑥 냄새 풍기는 섬 / 가을걷이 한창인데 / 돌담 너머 쑥밭은 / 아직 철모르는 봄이다(동도 쑥 냄새)”와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디에서나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볍씨를 심으며, 가을에 나락물결을 만나고, 겨울에 눈밭이 됩니다. 어느 고장에서나 봄에 쑥을 캐고, 여름에 시원한 바람과 소나기를 맞으며, 가을에 너른 하늘을 누리고, 겨울에 얼어붙은 별빛을 마주합니다.


  섬에서 살며 섬노래를 부르고, 바다에서 살며 바다노래를 부릅니다. 시골에서 살며 시골노래를 부르고, 서울에서 살며 서울노래를 부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는 누구나 노래를 즐깁니다. 아이도 노래와 함께 놀고, 어른도 노래랑 같이 일합니다. 노래 한 마디를 읊으면서 빙그레 웃고, 노래 두 마디를 듣고는 신나게 춤을 춥니다.



.. 등대로 가다가 갯쑥부쟁이꽃을 만나 / 그 옆에 나란히 누워 / 엷은 가슴에 별을 묻고 자다가 들킨 기분 / 우리는 깨어나기 싫었다 ..  (녹산 등대로 가는 길 2)



  시집 《거문도》를 덮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시를 쓰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부산’이나 ‘광주’라는 이름으로 시를 쓰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거문도에 뿌리를 내려서 사는 시인은 거의 없다시피 할 텐데, 시집 《거문도》는 섬노래가 되어 태어납니다. 서울에 뿌리를 내려서 사는 시인은 대단히 많은데 ‘서울’이라는 이름을 척 붙이면서 서울살이와 서울사람과 서울사랑과 서울내음을 곱게 삶노래로 부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아이가 태어납니다. 섬에서도 뭍에서도 아이가 태어납니다. 아이가 자랍니다. 시골에서도 서울에서도 아이가 자랍니다. 어버이는 어디에서나 어버이입니다. 모든 어버이는 모든 아이를 오직 사랑으로 돌봅니다. 모든 아이는 모든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습니다.


  거문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줄 두 줄 적은 싯말은 고요히 번지는 노래가 됩니다. 삶을 사랑하고 이웃을 아끼는 마음으로 석 줄 넉 줄 쓰는 싯말은 어느새 환하게 퍼지는 노래로 거듭납니다.


  나는 오늘 우리 보금자리에서 우리 집 두 아이랑 곁님하고 오늘 하루 부를 노래를 차분히 곱씹습니다. 두 아이는 아침부터 마당에서 앵두알을 훑습니다. 그저께까지는 시큼하기만 하더니 오늘은 달달한지, 두 아이 손이 멈출 새가 없습니다. 4348.6.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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