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65] 튄공, 뜬공

 


  도시인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작은 공 하나와 나무방망이로 하는 놀이를 동무들과 퍽 즐겼습니다. 장갑이나 방망이가 없어도 공이 있으면 놀이를 합니다. 누군가 어디에선가 나무막대기를 줍고, 저마다 모자를 장갑으로 삼으며, 모자가 없으면 맨손으로 공을 받거나 잡습니다. 한 사람이 공을 던지고, 한 사람이 공을 칩니다. 꼭 아홉 사람이 없어도 되고, 아홉과 아홉으로 짝을 이루지 않아도 됩니다. 둘이서도 공놀이를 합니다. 공 받는 이를 벽으로 삼아 둘이서도 신나게 뛰놀고, 셋이면 서로 다른 편을 이룹니다. 공을 쳐서 살면 첫째 자리와 둘째 자리에 ‘없는 사람’이 ‘있다’고 여기며 놀았습니다. 1982년에 프로야구가 생기며 인천에 있는 야구장에서도 곧잘 경기가 벌어졌습니다. 어릴 적에는 돈이 없으니 경기장이 보일 만한 언덕이나 건물 옥상을 찾아다녔는데, 가끔 텔레비전으로 중계를 보면 어른들은 온통 영어를 읊습니다. 처음에는 ‘그라운드볼’이니 ‘플라이볼’이라 했는데, 어느 해부터인가 ‘튄공’과 ‘뜬공’으로 바뀝니다. 그러더니 ‘튄공’은 ‘땅볼’로 말이 또 바뀌고, ‘튄공’은 농구 경기에서만 ‘튄공잡기’로 씁니다. 우리들은 어느 말이든 텔레비전에 나오고 경기장에서 흐르는 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쓰는 말대로 따르기 마련이었습니다. 어른들이 처음부터 고우며 맑은 낱말을 빚었으면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그 말을 즐겁게 쓰겠지요. 어른들은 ‘낯설다’느니 ‘어설프다’느니 하며, 곱고 맑게 다듬는 낱말을 놓고 말다툼을 벌이는데, 아이들을 생각하고 이 나라 앞날을 헤아리면, 새로 짓지 못한 채 영어로만 써야 할 낱말이란 없어요. ‘도움주기’와 ‘가로막기’와 ‘가로채기’ 같은 낱말처럼, 생각을 빛내면 즐겁게 살려쓸 말은 너울너울 넘칩니다. 4346.10.1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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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64] 가랑잎

 


  잎이 떨어집니다. 나무에 달릴 적에는 나뭇잎인데, 나무에서 톡 떨어져 땅바닥을 데구르르 구르거나 풀밭에 살포시 안기면 가랑잎입니다. 나무에 달린 잎사귀일 적에는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햇볕을 듬뿍 받아들입니다. 햇볕은 나뭇잎을 거쳐 나뭇줄기 골고루 따사로운 기운이 되어 퍼집니다. 나뭇잎은 바람을 받아들이고 바람과 노래하며 멧새들이 찾아오면 도란도란 속삭입니다. 나무에서 톡 떨어져 흙땅으로 내려간 뒤에는 흙이 새롭게 살찌기를 바라며 온몸을 맡깁니다. 한동안 울긋불긋한 빛잔치를 벌이면서 풀벌레와 어우러지던 조그마한 잎사귀는 어느새 빗물과 바람과 눈송이를 맞으면서 천천히 삭습니다. 가랑잎은 흙이 됩니다. 흙이 된 가랑잎은 나무뿌리 품에 안기어 나무가 더욱 튼튼히 이 땅을 붙잡고 서도록 밑힘이 되어 줍니다. 그러고는 어느새 새 잎사귀가 돋아 환하게 눈부신 푸른 나뭇잎 됩니다. 4346.10.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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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꼐 살아가는 말 163] 집술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오취섬 조그마한 가게에서 동동주를 팝니다. 조그마한 가게를 꾸리는 할매가 이녁 집에서 손수 빚는 술입니다. 집에서 빚으니 ‘집술’이지요. 예전에 나라에서는 이런 술을 ‘밀주(密酒)’라고 깎아내렸어요. 몰래 빚는 술, 곧 ‘몰래술’이란 이름을 붙였어요. 그렇지만, 술을 빚든 떡을 빚든 두부를 빚든 무엇을 빚든, 손수 흙을 일구어 거둔 곡식으로 빚을 뿐입니다. 나라에서 허가를 하거나 말거나 할 일이 아닙니다. 단술을 담거나 김치를 담가 먹거나, 집살림 꾸리는 사람이 스스로 즐겁게 하는 일입니다. 요사이에는 바깥에서 사다 먹는 것이 부쩍 늘어, ‘집밥·집두부·집떡·집만두’처럼 따로 ‘집-’이라는 앞머리를 붙여야 집에서 손수 차려 먹는 무언가를 제대로 가리킬 수 있습니다. 집살림 돌보는 집일꾼이 집논과 집밭에서 일군 곡식을 갈무리해서 집식구와 즐기려고 집술을 빚는다, 이렇게 말해야겠지요. 4346.10.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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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0-01 09:42   좋아요 0 | URL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오취섬 조그마한 가게에서 할머니가 손수
빚으신 동동주는 무척 만난 술이 될 듯 합니다~*^^*
이거 10월의 첫날 아침부터, 집술과 집두부와 집만두가...^^;; ㅎㅎ

숲노래 2013-10-01 09:52   좋아요 0 | URL
읍내나 면내 막걸리는 한 통에 2500원이지만, 그 할매 동동주는 5000원이에요. 가끔 그곳까지 자전거를 달려 두 통씩 장만하곤 하는데, 그 섬(이 아닌 섬)에까지 자전거로 다녀오는 데에 한 시간 반 즈음 걸리지요~ ^^
 

[함께 살아가는 말 162] 물고기사람

 


  여섯 살 큰아이와 그림을 그리며 놀던 어느 날, 큰아이가 불쑥 ‘물고기사람’을 그려서 가위로 오리며 놉니다. “물고기사람! 물고기사람!” 하고 노래하며 노는데, ‘물고기사람’이 도무지 무엇인지 알쏭달쏭하다고 생각하다가, “얘야, 그 (종이)인형 좀 줘 보렴.” 하고 말하며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하, 우리 어른들이 으레 말하는 ‘인어(人魚)’ 모양입니다. 아이가 어디에서 ‘인어’ 나오는 그림을 보았나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물고기에서 사람이 된’ 줄거리 보여주는 만화영화를 한동안 자주 보았습니다. 그 만화에서 물고기가 ‘웃몸만 사람이고 다리는 물고기’인 모습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금붕어 머리가 꼭 사람 모양이고, 다른 곳은 모두 물고기 모습이었어요. 여섯 살 아이는 그 만화영화에 나오는 ‘사람이 된 물고기’를 여섯 살 아이 나름대로 ‘물고기사람’으로 새롭게 그려 종이인형으로 만들어 논 셈입니다. 표준말로는 ‘인어’요, 이 낱말은 앞으로도 오래 쓰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섯 살 아이가 불쑥 터뜨린 이름 ‘물고기사람’ 말느낌이 퍽 곱고 잘 어울린다고 느껴, 나는 앞으로 이 낱말을 즐겁게 쓰려 합니다. 4346.9.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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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61] 깜다람쥐

 


  어릴 적에 ‘생쥐’라 말하면, 어른들은 으레 ‘새앙쥐’로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예전 어른들은 아이들이 준말을 쓰면 달가이 여기지 않았습니다. 준말 아닌 제말을 옳게 쓰도록 타일렀습니다. 요즈음 어른들을 가만히 살피면,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쓰도록 타이르거나 이끄는 모습을 거의 못 봅니다. 아이들이 엉터리로 말하든, 아무 때에나 영어를 섞든,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요즈음 어른들 스스로 옳거나 바른 말을 모르거나 잊은 탓이라고도 할 테지요. 며칠 앞서 “까만 다람쥐”를 길에서 보고는 문득 ‘쥐’와 얽힌 말이 떠올랐어요. ‘다람쥐’는 “달리는 쥐”라서 ‘다람쥐’가 되었다고 해요. ‘날다람쥐’란, “날기도 하는 달리는 쥐”라는 뜻이에요. 요즈음 어른들은 ‘청설모(靑鼠毛)’라는 말을 함부로 쓰는데, 이 낱말에 붙은 한자에서도 나타나듯 ‘청설모’란 “청서(靑鼠) 털(毛)”입니다. 한자말로 가리키자면 ‘청서’라 말해야 올발라요. 그런데, 며칠 앞서 길에서 만난 “까만 다람쥐”를 보면서, 내 입에서는 “까만 다람쥐”라는 말이 터져나왔습니다. 여섯 살 우리 아이한테 저 다람쥐를 ‘청서’라 한들 알아들을 수 없겠구나 싶기도 했고, 참말 이 다람쥐는 까만 털빛이라 ‘깜다람쥐’라 이름을 붙이면 잘 어울리겠다고 느꼈어요. 잘 달리는 쥐를 보며 옛사람이 ‘다람쥐’란 이름을 붙였듯, 나는 잘 달리면서 털빛 까만 쥐를 보며 ‘깜다람쥐’란 이름을 붙입니다. 4346.9.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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