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186] 보고 배우기

 


  아이들은 보고 배웁니다. 둘레 어른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배웁니다. 어른들도 보고 배웁니다. 아이들이 씩씩하게 뛰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아이들은 즐겁게 뛰노는 넋을 배웁니다. 어른들은 해맑은 마음을 배웁니다. 서로서로 따사로운 사랑과 꿈이 되어 고운 빛이 됩니다. 아이들은 ‘학습(學習)’도 ‘견습(見習)’도 ‘수습(修習)’도 ‘견학(見學)’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배웁니다. 차근차근 익힙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견습·수습·견학’은 거의 같은 낱말이고, ‘견학’ 말풀이를 “‘보고 배우기’로 순화”로 적어요.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한국말사전에 ‘배움’이나 ‘배우기’라는 낱말을 따로 실으면 되겠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운 한국말사전을 누구나 즐겁게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사랑스러운 삶을 어른과 아이가 서로 ‘보고 익힐’ 수 있도록, 함께 웃으며 어깨동무하면 참으로 기쁘겠습니다. 4347.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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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85] 바람주머니

 


  어릴 적에는 으레 ‘주부’를 갖고 놀았습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주브’를 갖고 놀았는데, 깍쟁이 같은 동무들은 혀를 굴리며 ‘튜브’라고 말했어요. 어느덧 어른이 되어 혼자 자전거를 따로 장만해서 타다가, 바퀴 안쪽에 바람이 빠져서 갈아야 하면, 드라이버를 써서 겉바퀴를 벗기고 안쪽에 있는 ‘주부’ 또는 ‘주브’ 또는 ‘튜브’를 꺼내어 구멍을 때웁니다. 구멍때우기를 처음 익힐 적에는 자전거집까지 힘겹게 짊어지고 갔어요. 바람이 빠진 자전거를 굴리면 안쪽에 있는 ‘주부’ 또는 ‘주브’ 또는 ‘튜브’가 찢어지거나 갈린다고 했거든요. 자전거집 할배나 아저씨는 언제나 ‘주부’ 또는 ‘주브’라 말했습니다. 어른으로 살다가 어느새 아이를 둘 낳습니다. 두 아이와 살며 살림돈을 버는 어떤 일을 한동안 맡습니다. 서울시 공공기관 공문서 손질하는 일인데, 어느 기관 공문서를 살피다가 ‘구명 부환’이라는 낱말을 보고는 한참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한국말사전을 뒤지니, “= 부낭(浮囊)”이라 나오고, ‘부낭’은 헤엄을 칠 때 몸이 잘 뜨게 하려고 고무로 만들어 바람을 넣는 것이라 합니다. 그래요. ‘바람주머니’가 ‘부낭’이요 ‘부환’이고, 요것이 바로 헤엄칠 적에 쓰는 ‘튜브’입니다. 자전거가 달릴 수 있도록 바퀴 안쪽에 바람을 가득 채우는 주머니도 ‘튜브’였지요. 영어사전을 보아도 ‘튜브’는 바람을 넣는 주머니를 가리킨다고 나오는데, 아직 어느 누구도, ‘주부’나 ‘주브’나 ‘튜브’나 ‘부환’이나 ‘부낭’을 보고 ‘바람주머니’라는 이름을 붙여 주지는 않습니다. 4346.12.3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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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84] 커피 문희

 


  서울에 있는 우리 이웃 한 분이 커피집을 열었습니다. 커피집 이름은 〈커피 문희〉입니다. 커피집 이름을 놓고 여러모로 생각을 기울였을 텐데, 참 예쁘게 붙였다고 느낍니다. 예부터 가게를 차릴 적에 흔히 사람 이름을 썼고, 마을 이름을 썼어요. 제 이름을 당차게 붙이기도 하고, 곁님 이름이나 아이 이름을 붙이기도 해요. 누군가는 동무 이름을 붙이기도 할 테며, 태어난 마을 이름이라든지 고장 이름을 쓰기도 합니다. 스스로 붙이는 이름 하나는 스스로 살아가는 길을 보여준다고 느껴요. 스스로 새롭게 다짐하는 빛이 이름 하나로 스며들어요. 스스로 즐겁게 살아가려는 꿈이 이름 하나에 감돌아요. 영어로 이름을 지을 적에는 영어와 얽힌 빛이 스미겠지요. 일본말로 이름을 붙일 적에는 일본말과 얽힌 뜻이 감돌겠지요. 한글 아닌 알파벳으로 이름을 새길 적에는 이대로 꿈과 사랑이 퍼지리라 느껴요. 수수한 이름에서 수수한 빛이 샘솟고, 고운 이름에서 고운 꿈이 자랍니다. 맑은 이름에서 맑은 넋이 태어나고, 착한 이름에서 착한 삶길 엽니다. 4346.12.23.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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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집 <커피 문희>가 궁금하신 분은 www.facebook.com/coffeemoonhee 로 들어가시면, 이 커피집 찾아가는 길과 이 커피집 모습을 살짝 둘러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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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83] 동그라미

 


  우리 집 큰아이가 다섯 살부터 ‘네모빵’을 말합니다. 어른들은 ‘식빵’이나 ‘샌드위치빵’이라 말하지만, 큰아이로서는 이도저도 못 알아들을 만한 이름이라 여겼는지, 그냥 ‘네모빵’이라 말해요. 그래서, 곁님과 나는 큰아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네모빵’이라 말합니다. 아무래도 우리 두 사람이 ‘사각형’이라는 한자말을 안 쓰고 ‘네모’라는 한국말을 쓰니, 큰아이도 이 말을 배웠구나 싶어요. 우리 집 작은아이는 세 살로 접어든 어느 날부터 ‘동그라미’를 말합니다. 처음에는 ‘동그람’이라고 했고 한동안 ‘동글암이’처럼 말하기도 하는데, 무얼 가리키나 궁금했는데, 동그랗게 생긴 과자나 빵이나 소시지나 장난감을 모두 ‘동그라미’로 가리켜요. 훌라우프도 아이들한테는 아직 ‘동그라미’입니다. 고구마를 동그랗게 썰어서 자주 내밀면, 작은아이는 고구마도 ‘동그라미’라 가리키겠지요. 아무래도 곁님과 내가 ‘원’이라는 한자말은 안 쓰고 ‘동그라미’라는 한국말만 쓰니, 작은아이도 이 말을 시나브로 물려받았지 싶어요. 아이들이 조잘조잘 예쁘게 들려주는 말을 가만히 들으며 내 어린 날을 곧잘 돌아보곤 합니다. 국민학교에서 교사인 어른들이 ‘원’이라 말하면 무얼 가리키는지 좀처럼 못 알아들었어요. 그러다가 ‘동그라미’라 하면 아하 하고 알아차렸어요. 아마 우리 어머니도 어린 나한테 ‘동그라미’만 말씀하지 않았을까요. 어느 어머니이든 갓난쟁이 앞에서, 또 두어 살 아기 앞에서, 그리고 서너 살 너덧 살 대여섯 살 어린이 앞에서 ‘동그라미’만 말할 테지요. 4346.12.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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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81] 한국말사전

 


  오늘을 살아가면서 어제에 쓰던 말을 애써 떠올려야 하지는 않다고 느껴요. 그렇지만, 곧잘 어제에 쓰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곰곰이 되새겨 보곤 합니다. 이를테면, 1800년대 사람들은 ‘감사합니다’ 같은 일본 한자말을 썼을까요? 1500년대 사람들은 이런 일본 한자말을 썼을까요? 신문도 방송도 따로 들어오지 않던 1960∼70년대 시골에서 이런 한자말 쓰던 사람 있었을까요? 어제를 살던 사람과 시골서 살던 사람이라면 모두 ‘고맙습니다’ 하고만 말했으리라 느껴요.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어버이는 아이한테 어떤 말을 물려줄까 궁금합니다. 이냥저냥 쓰는 말을 아이한테 물려줄는지, 앞으로 삶을 빛내고 사랑을 꽃피우도록 북돋울 만한 말을 아이한테 물려줄는지 궁금합니다. 어느덧 스무 해가 되는 일인데, 1995년 8월 11일부터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초등’학교로 바꾸었어요. 일제강점기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찌꺼기를 털자는 뜻이었어요. 그런데 대통령을 비롯해 참 수많은 사람들이 ‘국민’이라는 낱말을 버젓이 써요. 우리가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배우는 과목은 ‘국어’예요. 한국말 아닌 ‘국어’ 교과서에, ‘국어’사전이에요.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즐겁게 나눌 우리들 어제를 밝히던 말은 스러지면서, 얄궂거나 슬프거나 아프게 짓밟히던 우리들 어제가 드러나는 말은 외려 단단히 뿌리내려요. 우리 말은 어떤 이름을 붙인 사전에 담아야 할까요. 우리 삶은 어떤 낱말과 말투로 엮는 이야기로 살찌워야 할까요. 우리 꿈은 어떤 사랑으로 빛내어 어깨동무해야 할까요. 4346.1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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