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이미경 지음 / 남해의봄날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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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책으로 삶읽기 602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이미경

 남해의봄날

 2017.2.10.



열 살 꼬마는 어느새 사십 대 중반이 되었지만, 건장했던 서른다섯 아버지의 따스한 등에서 들리던 기분 좋은 심장 소리를 나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19쪽)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아들 실내화를 사 들고 가게를 나왔다. 돌아오는 여름에는 다시 서해, 그곳에 가고 싶다. (85쪽)


처음 가게를 그리기 시작할 무렵인 2000년 초반 해도 30년 이상 된 가게를 종종 볼 수 있었다. 나무로 된 미닫이문, 이끼 낀 빛바랜 붉은빛의 기와지붕, 나무로 된 낡은 장식장 등 시간의 흐름을 오롯이 간직한 진한 생활의 공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속삭였다. (176쪽)


1970년 이후 이곳의 시계추가 멈춰 섰나 보다. ‘간첩신고 113’ 옛 푯말이 그대로 걸려 있고 좁고 길쭉한 툇마루 옆 두어 계단 위의 작은 나무 미닫이문은 옥빛 페인트가 반쯤 벗겨졌다. (190쪽)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미경, 남해의봄날, 2017)을 넘기면 인천이란 고장이 환하게 떠오른다. 다른 어느 곳보다 삽질이 적은 큰고장이 바로 인천이다. 영종섬하고 용유섬을 메워 하늘나루를 때려짓기도 한 인천이요, 갯벌에 흙이며 시멘트를 들이부어 억지섬을 만들어낸 인천이지만, 오랜 골목마을은 오늘도 꽤 넓게 그대로 있다. 서른 해라면 ‘어리다’ 싶은, 쉰 해나 예순 해를 훌쩍 넘은 마을가게가 참 많은 고장이 인천인데, 인천은 마을이며 골목에 나무가 퍽 많고 골목밭도 아름답다. 큰고장 한복판인 옛마을을 보노라면 꼭 시골스러운 데가 인천이랄까. 인천에서 벼슬아치·구실아치는 이 골목마을을 눈여겨보면서 보듬는 손길이 되려나. 인천뿐 아니라 나라지기나 고장지기쯤 되는 일꾼은 온나라 마을살림을 어느 만큼 어루만지는 마음길이 될까. 지나가거나 흘러간 모습이 아닌, 오늘도 어김없이 이 터전을 이루는 이웃이다. 다만, 나는 어릴 적에 군것질을 아예 안 하다시피 살며 ‘10원이며 50원 쇠돈 하나를 아끼고 건사하’곤 했다. 버스조차 안 타고 걸어다녔다. 적은 쇠닢으로 ‘즐겁게 누리던 구멍가게’가 나한테는 없었다고 할까. 어느 한때 모습이기에 아름답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가 깃들기에 아름답게 바라볼 만하겠지. 나는 구멍가게보다는 골목밭이며 골목나무를 바라볼 뿐이고, 골목길에서 누리던 골목놀이를 떠올릴 뿐이다. 그리고 오늘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이 새롭게 맞아들일 들놀이·숲놀이를 헤아린다. 더 짚어 본다면, 옛자취는 ‘간첩신고 119’만 있지 않다. 웬만한 골목집이나 골목가게 어귀를 살피면 ‘조그마한 갖가지 알림판’이 수두룩하고, ‘이름판’에 깃든 오랜 숨결도 읽을 만하다. 1970∼80년대만 애틋이 여기는 ‘추억’도 나쁘지는 않지만, 어쩐지 조금 숨이 막힌다. 그 한때를 넘어서는 숨결이며 발자취이며 손길이 온마을에 함께 감돌 텐데.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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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와일더 - 늑대와 달리는 소녀, 2019 아침독서신문 선정도서 바람청소년문고 9
캐서린 런델 지음, 백현주 옮김 / 천개의바람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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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책으로 삶읽기 579


《울프 와일더》

 캐서린 런델

 백현주 옮김

 천개의바람

 2019.2.1.



엄마가 외동인 페오의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페오는 늑대들을 가리키곤 했다. “저 아이들이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43쪽)


“우리는 늑대에게 사람의 이름을 붙이지 않아. 늑대들은 이미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가 다시 이름을 붙여 줄 필요는 없지. 그래서 그냥 색깔이나 다른 특징으로 불러. ‘막내’처럼 말이야.” (69쪽)


“제 친구 늑대는 가슴속에 불을 지니고 있었어요. 라코프 장군은 살아 있는 생명체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을 두려워해요.” (271쪽)



《울프 와일더》(캐서린 런델/백현주 옮김, 천개의바람, 2019)를 읽으며 늑대라는 숨결을 한결 새롭게 바라볼 만할까 하고 생각했지만, 줄거리나 얼거리나 옮김말 모두 엉성하구나 싶다. 임금(황제)이란 이름인 우두머리 무리가 하는 짓을 바탕으로, 군인이 얼마나 바보스러운가, 여기에 숲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이 마음 깊이 어떤 빛을 품는가를 엮으려고 한 글쓴이 뜻은 알겠지만, 낡은 러시아를 뒤집어엎는 마무리를 끌어내려고 억지를 부렸구나 싶다. 억지를 부리지 않고서 늑대살림에 마음을 기울였다면, 또 아이가 늑대하고 마음으로 나누는 말이며 생각을 옮기려 했다면 사뭇 달랐겠지. 더욱이 서툰 번역 말씨가 너무 춤춘다. ‘번역 말씨’가 아닌 ‘한국말’로 옮기기를 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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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초등학생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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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책으로 삶읽기 574


《어른 초등학생》

 마스다 미리

 박정임 옮김

 이봄

 2016.4.28.



“어른이 되니까 좋아?” “응. 하지만 처음부터 어른으로 태어났다면 재미없었을 거야.” (2쪽)


책을 찾은 기쁨에 내 눈에는 눈물이 살짝 맺혔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직원도 무척 기뻐해 주었습니다. 그림책은 엔화로 400엔 정도였습니다. (74쪽)



《어른 초등학생》(마스다 미리/박정임 옮김, 이봄, 2016)은 그린님이 ‘소학교(초등학교)’를 다니며 마음에 남았다고 하는 그림책 몇 가지를 더듬더듬하면서 그림하고 글로 엮는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무렵에는 그림책이라 할 책이 아예 없다시피 했고, 인천에서는 그때 하나 있던 시립도서관에는 어린이책을 찾아볼 길 없었고, 집에서 가깝던 율목도서관에는 어린이가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학교에 학교도서관 따위란 없었으니, ‘어린 날을 떠올릴 책’은 형하고 푼푼이 아껴서 사다 읽은 만화책만 있다. 그나저나 《어른 초등학생》은 따분했다. 그린님이 그림책을 더없이 사랑하거나 그리워하면서 엮은 책이 아니로구나 싶으니 따분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녁 어린 날을 자랑하려는 마음으로 어릴 적에 본 어린이책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다면, 마스다 미리는 팬시상품으로 꾸미려고 어릴 적에 본 그림책 이야기를 책으로 묶은 듯하다. 그림책을 오롯이 그림책으로 바라보려면 어른이란 옷을 입든 어린이라는 옛생각에 잠기든, 스스로 속내를 말끔히 틔워야 한다. 그리고 매우 느긋하게 찬찬히 소리내어 숱하게 되읽어야지. 이러지 않고서 쓴 그림책 이야기는 모두 덧없는 치레질로 그친다. 덧붙여, 52쪽 ‘마쓰타니 미요코’ 님이 쓴 동화책은 진작에 한국말로 나왔는데 빠뜨리고 한국판 겉그림을 안 붙였네? 2004∼2005년에 “모모네집 이야기”란 이름을 붙인 한국말판이 나왔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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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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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572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이승수 옮김

 마음산책

 2015.9.15.



사전은 지도이자 나침반이 된다 ㅣ사전이 없다면 길을 잃을지 모른다. (16쪽)


예전에는 단어의 뜻을 영어로 적었다. 이젠 이탈리아어로 적는다. 그렇게 나만의 개인적인 사전, 독서의 과정이 담겨 있는 나만의 어휘집을 만든다. (41쪽)


나는 왜 글을 쓸까? 존재의 신비를 탐구하기 위해서다. 나 자신을 견뎌내기 위해서다. 내 밖에 있는 모든 것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75쪽)


“당신 혼자 번역하는 게 좋겠어. 다른 사람이 옮기는 것보다 당신이 하는 게 좋아. 당신 뜻을 온전히 번역해내지 못할 위험이 있잖아.” (96쪽)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줌파 라히리/이승수 옮김, 마음산책, 2015)를 읽었다. 단출하게 나온 책이라 ‘이 책이 작기’ 때문에 ‘이 작은 책이 크다’고 말하는가 했더니 아니더라. 글쓴이는 좀 말을 질질 끌고, 여러모로 덧씌우는구나 싶던데, ‘사전이라고 하는 책’이 언제나 이녁보다 크다는 이야기를 펴더라. 그렇다면 사전은 뭘까? 그저 낱말을 줄줄이 엮어서 이 낱말을 저 낱말로 알려주는 책일까? 미국사람이 펴는 이탈리아사전은? 한국사람이 펴는 영어사전은? 오늘날 웬만한 사전은 사전이 아닌 ‘단어장’이기 일쑤이다. 낱말마다 서린 숨결이나 자취나 이야기를 안 담거나 못 담기 일쑤이다. 왜 일본을 빼고 사전을 읽는 사람이 드물까? 일본은 ‘사전 낱말풀이에 이야기를 담는 길’을 진작부터 걸었다. 그래서 일본은 아직 사전을 읽는 사람이 많다. 이와 달리 한국을 비롯한 꽤 많은 나라는 단어장 틀을 안 벗어나는 사전이 많은데, 그래도 옥스포드 사전이나 롱맨 사전처럼, 꾸준히 이야기라는 살을 입히는 사전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사전은 늘 우리가 스스로 우리 삶이라는 자취를 손수 담아서 누리면 된다. 남이 지은 사전도 좋으나, 늘 우리 사전을 우리가 스스로 지을 노릇이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라는 책은 ‘글쓴이 삶을 담은 글쓴이 사전을 글쓴이가 스스로 느껴서 비로소 찾아나서는 길’을 들려주는 셈인데, 같은 말을 너무 자주 되풀이하느라, 이 작은 책이 꽤 헐겁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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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걸어가거나 바다를 날아오거나 - 박남준의 악양편지
박남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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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삶읽기 571


《하늘을 걸어가거나 바다를 날아오거나》

 박남준

 한겨레출판

 2017.8.21.



다 마른 곶감 어디에 담을까 여기저기 뒤적쥐적 궁리를 하다가, 보내온 선물 모두 나누어 먹은 빈 바구리가 눈에 띄었다. (14쪽)


달래꽃이 피었다. 부족한 빗방울 탓하지 않고 꽃 송이송이 이슬처럼 매달고서 감사의 고개 숙인다. (53쪽)


천 재료는 남해에서 천연염색을 하는 이가 제공한 것이다. 요새는 시도 잘 써지지 않는데, 어디 한번 바느질 연습을 더 연마해서 본격적으로 찻잔받침 장사로 나서 봐? (97쪽)



《하늘을 걸어가거나 바다를 날아오거나》(박남준, 한겨레출판, 2017)는 악양이란 고장에서 숲을 품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글쓴님은 ‘시를 쓰기 힘들다’면서, 시 말고 토막글하고 사진을 엮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름드리숲에 깃든다면 시를 쓸 일이 없으리라. 거꾸로 아름드리숲에 깃들기에 숲이 들려주는 노래를 고스란히 옮겨적을 만하다. 아름드리숲에서 푸르게 빛나며 고요히 지내면 되겠지. 또는 아름드리숲에서 스스로 푸르게 빛나는 하루를 더욱 짤막하게 옮겨도 되리라. 시가 대수로운가. 한 줄도 시요, 두 줄도 시인걸. 무엇보다도 문학이나 시라고 하는 이름을 내려놓고서 마주하면 언제나 노래가 술술 흐르겠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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