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고 안 묻다



  사람으로 물결치는 진보초 책골목이 아닌 사람 발길이 없는 안골을 찾아서 조용히 걷다가 작은 책집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가타가나를 못 읽어 책집 이름도 몰랐어요. 그저 이 작은 책집 가까이에 핀 들꽃내음이 매우 고와서 저절로 발길을 옮겼지요. 그리고 이 책집 앞에 ‘100엔’이란 값이 붙은 책꾸러미를 보고는 살짝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이때에 뜻밖이라 할 만한 선물 같은 한국책을 여럿 보았어요. 한국 백제 유물하고도 맞닿는 ‘한국으로 치면 일제강점기’에 나온 일본 불상을 다룬 책을 보았고, 1950년대에 일본말로 나온 페스탈로치 책을 보았지요. 한글로 된 한국에서 나온 인형극 책도 여럿 보는데, 모두 한국 글쓴이가 일본 아무개한테 선물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 모두 한 권에 고작 100엔. 아, 이럴 수도 있구나. 그런데요, 책값을 셈하려고 책집으로 들어가니 책꽂이에는 온통 바둑 책만 있습니다. 헛! 그래요, 이곳은 오직 바둑 책만 다루는 곳이에요. 그래서 길가에 내놓은 ‘100엔짜리 책’은 책집지기가 바둑 책을 사들이다가 얼결에 딸려서 들어온 ‘바둑 갈래가 아닌 책’이었어요. 바둑을 다룬 책으로만 책집을 가득 채운 곳에서 얼결에 만난 값진 책을 모두 100엔씩, 아홉 권에 900엔으로 장만하면서 속이 벌렁벌렁했습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허리를 깊이 숙여 고맙다는 말을 한국말로도 일본말로도 영어로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지요 ‘바둑 전문 책집에서 왜 한국책도 100엔으로 다루느냐’ 따위는 물어볼 까닭이 없어요. 2018.4.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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