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아저씨



  일본 진보초 책집골목에서 책을 사고 난 뒤에 언제나 책집지기한테 여쭈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말로 여쭈었지요. 다들 못 알아들어서 수첩에 적은 일본글을 보여주었지요. 그러니 제가 알아듣기 어려운 일본말로 몇 마디를 하셔서 느낌으로 알아챈 뒤에 “아, 이이에?” 하고 되물었어요. 하나같이 ‘책집에서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저는 ‘이 많은 책집 가운데 사진찍기를 받아들이는 곳이 있으’리라 여기면서, 책을 산 뒤에 늘 씩씩하게 물어보았지요. 네 곳쯤 손사래치는 말을 들으며 문득 생각했어요. ‘엉성히 하는 일본말 아닌 영어로 물으면 어떨까?’ 하고요. 그리고 ‘영어로 물어본 첫 곳’에서 살짝 망설이는 눈치를 느껴, “아임 어 코리안 포토그래퍼. 음, 웨잇어 미닛.” 하고는 2004년에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내면서 마련한 사진전시 엽서를 내밀었습니다. “디스 이즈 어 코리아스 올드북스토어 포토. 아이 픽처드 댓. 벗 아임 낫 픽쳐 유. 아이 원트 픽쳐 디스 디스 디스.” 하면서 책꽂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그러니 비로소 책집지기가 “예스. 예스.” 하고 받아들여 주었지요. “땡큐 베리 머치. 아리가또오 고쟈이마스으.” 태어나서 마흔네 해를 살며 영어라는 말이 이토록 고마운 줄 처음으로 온몸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영어를 새롭게 즐거이 처음부터 다시 배우려고 생각합니다. 고마워요 아저씨. 일본 도쿄 진보초 책집지기 아저씨도, 진보초 책집 한켠에 살며시 놓고 온 사진엽서에 깃든, 이제는 문을 닫은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 아저씨도. 2018.4.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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