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을 흘려넘길 수 있나요



  도쿄 진보초에 ‘adult shop’이라는 곳이 여럿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 들어간 일이 없고, 겉에서 사진만 찍었어요. 그런데 ‘adult shop’이 어떤 곳인지 한동안 몰랐지요. 영어로 적힌 글씨를 읽으며 ‘내 나이를 헤아리면 나도 어른이니, 나는 들어가도 되는 곳인가 보네’ 하고 여기면서 굳이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누가 알려주어 그 ‘adult shop’은 알몸인 가시내가 나오는 사진책이나 영화만 갖춘 책집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얼핏 보기로 그 ‘adult shop’ 비슷한 책집을 어제 진보초에서 보았어요. 다만 ‘adult shop’ 비슷하기는 한데 ‘adult shop’이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안 붙더군요. ‘total visual shop’이라고만 적혔어요. 이곳에 ‘adult shop’이란 말이 붙었으면 안 들여다보았을 텐데 ‘total visual shop’이라는 이름을 보고는 ‘그러면 사진책이 있겠네’ 하고 여기며 들여다보기로 했어요. 그러나 안에는 들어가지 말고 길에서만 보자고 여겼어요. 이러면서 길가 책꽂이를 살피는데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살피다가, 이 책집 앞에 ‘1000엔’짜리 값싼 사진책이 있다는 알림글을 일본말로 읽었고, 구경이나 해 보자는 생각으로 쳐다보았지요. 이때에 ‘알뜰한 사진책 세 가지’를 보았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한동안 생각이 멎었어요. 어, 어, 이 사진책이 여기에? 아니, 왜 여기에? 아차, 그렇구나, 그래, 맞아, 그렇지. …… 아, 이 사진책 《朝鮮民族》을 한 권 더 만나고 싶어서 그토록 별렀는데, 바로 이곳에서, 가시내 알몸 사진책을 안쪽에 잔뜩 갖추었다는 ‘total visual shop’ 길가 책꽂이에서 이 엄청난 사진책을? 아무 말이 나오지 않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볼을 타고 길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야말로 아찔했습니다. 넋을 잃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녁 여덟 시가 거의 다 된 무렵, 일본 도쿄 진보초 ‘ARATAMA total visual shop’ 앞에서 두 무릎을 길바닥에 꿇고서 사진책을 가슴에 품어 보았습니다. 이러고는 다시 책상자에 얹고서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구나. 이곳은 책집 안쪽 너른 책꽂이에는 알몸 가시내 사진책을 비싼값으로 갖추어 놓지만, 알몸 가시내가 아닌 재일조선인을 비롯한 한겨레 이야기를 담은 사진책이며, 아시아 여러 겨레 수수한 살림살이를 담은 사진책이며, 일본 인간문화재 삶을 담은 사진책은 길가에 1000엔짜리로 값싸게 팔려고 내놓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른바 ‘주력 상품’은 햇빛에 스러지지 않고 먼지도 먹지 않고 아무 손이나 타지 않도록 안쪽에 고이 모신다면, ‘비주력 상품’은 길가에 값싸게 내놓는 셈입니다. 처음에 저는 ‘ARATAMA’라는 책집은 굳이 들여다보지 말자고 여겼습니다만, ‘adult shop’이라고 해서 이 겉얼굴에 얽매일 까닭이 없이, 저로서는 제가 바라는 책이 길가 책꽂이에 있을 수도 있으니, 게다가 어떤 책집이건 참말로 길가에 버젓이 나올 수 있으니, 제가 바라는 책만 생각하면서 바라보면 될 뿐인 줄 새삼스레 뉘우치며 배웠습니다. 진보초 책집 앞 길바닥에 눈물을 떨구고 마음속으로 웃음을 지으면서 사진책 세 권을 3000엔에 선물처럼 장만했습니다. 2018.3.3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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