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위기’란?



  ‘위기(危機)’란 “위험한 고비나 시기”를 뜻한다 하고, ‘위험하다(危險-)’는 “해로움이나 손실이 생길 우려가 있다”를 뜻한다 합니다. 출판인이나 기자나 작가나 평론가 같은 분들이 흔히 ‘출판 위기’를 말하는데, 이는 “책을 내어 돈을 잃거나 출판사가 문을 닫을까 걱정스럽다”를 뜻하는 셈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렇다면 출판 위기란 옛날부터 늘 있는 셈입니다. 어쭙잖은 책을 내다가는 돈이고 뭐고 다 잃겠지요. 그러나 어쭙잖은 책도 잘 알리면 뜻밖에 잘 팔려서 돈을 얻기도 합니다. 이를 놓고 영어로 마케팅이라 하는데, 알맹이가 허술한 책을 껍데기를 잘 씌워서 돈을 많이 벌려고 할 적에는 마땅히 책장사가 어려울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다른 장사에서도 이와 같아요. 알맹이 없이 껍데기로 알려서 널리 팔면, 사람들은 어느새 알아보고서 등을 돌려요. 이때에는 속이거나 거짓을 편 셈이라 이 같은 일에 사람들 마음도 멀어집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책다운 책을 가까이하지 못한 채, 알맹이 없이 잘 팔리는 책을 손에 쥔다면 시나브로 책하고 멀어지겠지요. 다시 말해서 출판 위기라 할 적에는 그동안 책살림 아닌 책장사로 기울어진 우리 모습을 찬찬히 짚고 살펴야지 싶습니다. 아니, 위기이냐 아니냐 같은 모습을 따지지 말고, 책을 쓰거나 엮거나 펴내는 사람들 모두 알맹이를 고이 갖춘 책을 즐겁게 낼 노릇이라고 봅니다. 책다운 책을 알뜰살뜰 펴내어 사람들이 시나브로 책을 사랑하면서, 책에 깃든 아름다운 이야기를 제 삶으로 받아들여서 저마다 기쁜 삶짓기를 하도록 북돋우면, 우리는 넉넉하고 즐거운 책누리를 지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제대로 쓴 책은 사람들이 알아보기 마련입니다. 다만 일찍 알아볼 수 있고 뒤늦게 알아볼 수 있겠지요. 책이란 하루아침에 빨리 읽힐 슬기꾸러미가 아닙니다. 우리 몸을 살찌우는 바람은 숲에서 비롯합니다. 숲에서 온갖 풀하고 꽃하고 나무가 베푸는 바람을 우리가 늘 마시면서도 ‘숲이 있어 고맙다’고 생각하는 일은 드물어요. 그냥 숨을 쉬면서 우리 할 일을 합니다. 책은 숲에서 왔지요. 나무라는 숲이 책이 됩니다. 그러니까 책이란 숲처럼 우리 곁에 ‘있는 듯 없는 듯 느끼는 듯 마는 듯’ 늘 있으면서 우리가 새롭게 생각을 지피는 슬기를 가꾸려고 하는 길에 살며시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 길벗이 될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책을 반드시 사자마자 읽어야 하지 않고, 모든 책을 자꾸자꾸 되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갓 나온 책을 바로바로 사야 하지도 않습니다. 배워야 할 때를 스스로 느껴서 기꺼이 장만하거나 손에 쥐어서 읽으면 될 책입니다. 내가 읽어서 오늘 즐거운 책이요, 아이들한테 물려주어 먼 모레에 아름다운 책입니다. 2018.1.1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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