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안 하는 책읽기



  책을 손에 쥘 적에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밥상맡에 앉아서 이 밥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하고 근심하지 않습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 이튿날에 못 일어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줌을 누면서 언제까지 누어야 하느냐고 근심하지 않습니다. 지는 해를 보며 이튿날 해가 안 뜨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책방마실을 하다가 책값으로 44만 원을 쓰고 나서 어이구 살림 바닥나겠네 하고 근심하지 않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엄청나게 춤을 추며 내달리는 시외버스를 타고도 다른 차를 박거나 미끄러져서 데굴데굴 구를까 봐 걱정하지 않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칠 적에 우리 집 마당나무가 뽑힐까 근심하지 않습니다. 저는 늘 ‘걱정·근심’ 아닌 ‘생각’을 합니다. 손에 쥔 이 책에 어떤 이야기가 피어나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밥상맡에서 마주하는 이 밥이 얼마나 아름다운 숨결로 나한테 깃들까 하고 생각해요. 잠자리에 들면서 새로운 꿈을 꾸고 별나라를 날아다녀야지 하고 생각하지요. 언제 어디에서나 생각합니다. 생각하고 다시 생각합니다. 걱정이 없이 생각이 있는 책읽기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스스로 글을 써서 책을 짓고, 스스로 생각하는 동안 스스로 책을 손에 쥐면서 슬기로운 마음을 스스로 지을 수 있구나 싶어요. 2017.11.25.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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