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의 유산 VivaVivo (비바비보) 1
시오도어 테일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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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77


흑인 할아버지한테서 배우는 평화
― 티모시의 유산
 시오도어 테일러 글/박중서 옮김
 뜨인돌, 2007.10.1.


나는 겁이 나기는커녕 신이 나서 죽을 것 같았다. 전쟁, 전쟁.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보긴 처음이었다. 지금은 전세계가 전쟁 중인데, 이 따뜻하고 새파란 카리브 해에까지 그 여파가 밀려온 것이다. (10쪽)

파나마를 떠난 지 이틀째 되던 1942년 4월 6일 오전 3시경, 우리가 탄 배는 어뢰 공격을 받았다. 나는 위쪽 침대에서 튕겨져 나왔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선실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34쪽)


  아이들이 즐기는 숱한 누리놀이(인터넷 게임)를 살피면 죽이고 죽는 사람이나 목숨이나 기계가 잔뜩 나옵니다. 무기를 아주 쉽게 손에 쥐며, 이 무기로 다른 사람이나 목숨이나 기계를 매우 쉽게 죽입니다.

  누리놀이가 퍼지기 앞서는 오락실에서 죽이고 죽는 놀이를 하던 아이들입니다. 왜 누리놀이를 하나같이 죽이고 죽는 얼거리로 짜는가 알 수 없습니다만, 어쩌면 아이들을 죽음에 무디게 길들이는 셈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인 군인도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단추를 누르면 미사일이나 총알을 멀리 쏘아서 눈에 안 보이는 자리에서 숱한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짓을 해도 가슴에 아무 느낌이 없도록 할 수 있어요.


“나이는 몇 살이야, 티모시?” “그게 참말로 아리송한 건데 말이죠. 아마 육십은 더 됐을 겁니다. 이놈의 다리 근육이 늘 말을 안 듣고 말썽만 피우니까 그건 잘 알죠. 하지만 정확히 몇 살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53쪽)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데?”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내 눈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듯했다. 그는 팔꿈치를 받쳐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살아남는 거죠, 도련님. 바로 그걸 해야 되는 겁니다.” (54쪽)


  어린이문학 《티모시의 유산》(뜨인돌, 2007)은 1969년에 처음 나왔다고 해요. 한국말로는 거의 마흔 해 만에 나온 셈인데, 이 책은 1942년 어느 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전쟁바람이 휘몰아치는 유럽이지만 전쟁바람이 거의 안 불던 한갓진 섬에서 지내는 아이들 모습을 그려요.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날마다 전쟁 이야기가 흐른다지만, 외딴섬이라 할 만한 곳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미사일도 총도 전차도 잠수함도 좀처럼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곳 아이들하고 다르게 평화를 누리는 아이들이지만, 평화보다는 전쟁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 가운데 하나는 바다 한복판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쟁’을 만나요. 더 근심이 없을 만한 곳으로 아이를 보내려던 어른인데, 그만 독일 잠수함이 쏜 어뢰에 맞고 배가 가라앉는다지요. 이러면서 ‘전쟁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는 큰 배에서도 구명 배에서도 어머니 손을 놓칩니다.


“나 티모시하고 친구 하고 싶어.” 내가 티모시에게 말했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련님, 우리야 지금껏 쭉 친구 아니었습니까.” “그럼 이제부터 도련님이라고 하지 말고 필립이라고 부를 거야?” (98쪽)


  겪어 보지 않을 적에는 너무 모르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아이들더러 전쟁을 겪어 보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더러 총알에 맞아 보라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이들더러 미사일이나 폭탄이 마구 터지는 데에서 살아남아 보라 할 수 없어요. 총알이 빗발칠 뿐 아니라 핵폭탄이 떨어져서 한꺼번에 죽어 버리고 마는 끔찍한 삶을 아이들더러 겪어 보라 할 수 없지요.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전쟁무기 아닌 따사로운 손길로 우리 삶터하고 마을하고 보금자리를 가꾸자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봅니다. 죽이고 죽는 짓은 멈추고서, 서로 살리고 도우며 보살피는 몸짓으로 거듭날 적에 다 함께 즐거우며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해요.

  전쟁이 아닌 평화일 적에는 웃사람하고 아랫사람을 가르지 않아요. 오로지 평화일 적에는 종을 부리지 않아요. 참말로 평화로 나아갈 적에는 신분도 계급도 인종도 없이 서로 동무가 되어 마음을 나눌 수 있어요.


“왜, 물고기도 색깔은 전부 제각각 아니냐. 꽃도 그렇고 말이야. 안 그래? 물론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지, 필립. 하지만 내 생각에 피부색만 다르지 그 속의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을 거야.” (102쪽)

“알았지, 필립? 이젠 너도 눈이 필요없어졌어. 눈이 없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수 있단 말이야.” (131쪽)


  어린이문학 《티모시의 유산》은 아이들이 전쟁을 한낱 놀이로 여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들려줍니다. 이러면서 1960년대에 한창 피어나던 흑인 인권을 함께 건드립니다. 배가 가라앉아 두 사람이 따로 떨어져서 사람이 아무도 없는 작은 섬에 닿았다고 하는데, 이때에 이 두 사람은 백인인 어린이하고 흑인인 할아버지요, 흑인인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노예하고 엇비슷한 신분이었다고 합니다.

  철없는 아이가 철든 할아버지 곁에서 삶을 하나하나 배우고 사람을 새롭게 배운다고 해요. 여기에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살림을 짓는 손길을 나란히 배운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아이가 앞으로 꼭 살아남아서 전쟁 아닌 평화로 사랑스레 나아가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고 해요. 이 마음,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저마다 따사롭게 가슴에 품을 수 있기를 빕니다. 2017.10.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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