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걸렸어 시 읽는 어린이 85
박해경 지음, 유진희 그림 / 청개구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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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91


토끼춤 추는 아빠 곁에서 시무룩한 까닭은?
― 딱 걸렸어
 박해경 글
 유진희 그림
 청개구리 펴냄, 2017.7.31. 10500원


긴 겨울잠을
자면서도
늦지 않고
빠르지 않게

딱 맞춰
일어날 수 있는
개구리들의
알람시계 (경칩)


  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새벽이나 아침을 맞이하는 아이는 마음속에 새노래를 담습니다.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저녁이나 밤을 맞이하는 아이는 꿈결에 풀벌레노래를 품습니다.

  아침에 새노래가 아닌 다른 소리를 듣는다면, 아이는 이 다른 소리를 마음에 담겠지요. 승강기가 아파트에서 오르내리는 소리라든지, 자동차가 시동을 걸며 달리는 소리 말이지요. 저녁이나 밤에도 이와 같아요. 자동차나 승강기 소리라든지, 어른들이 손에 전화기를 들고 조잘거리는 소리를 듣는 아이는 이러한 소리를 마음에 담습니다.


재개발 공사에 밀려
정든 이웃들은
모두 떠나고
갈 곳 없어 남아 있는
할머니와 지우,

점점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굴착기 소리.

학교에 쓰지 못한
장래희망란에 
써보는
“아파트 주인!” (장래희망)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꿈을 꿀 만할까요? 오늘 이곳에서 아이들은 ‘장래희망’이나 ‘직업’이 아닌 어떤 꿈을 품을 만할까요?

  요즈음 서울을 비롯한 나라 곳곳에 마을책방이 자그맣게 문을 열어요. 이런 마을책방을 겪거나 본 적이 드문 나이 있는 어른들로서는 저 작은 마을책방으로 돈을 어떻게 버느냐고 지레 걱정할 만합니다. 그러나 마을책방을 연 앳되거나 싱그러운 젊은이는 틀림없이 아이였을 때부터 꿈으로 품은 일이었지 싶어요. 스스로 새롭게 길을 열려는 마음이면서, 스스로 힘차게 길을 닦아 보려는 마음이기에 자그맣게 마을에서 즐거움을 지필 만하지 싶습니다.

  가만히 본다면 우리가 이 땅을 조금 더 민주와 자유와 평화와 평등으로 갈고닦는 어른으로 살아간다면, 오늘 이곳에서 아이로 자라는 고운 숨결은 앞으로 새로운 꿈을 품을 만하구나 싶어요. 앞으로 아이들이 꿈을 품을 수 있도록 어른으로서 온힘을 다할 노릇이지 싶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을 팔았다.

엄마, 아빠는
비싸게 팔았다고
토끼춤을 추고
나비춤도 추었다.

새로운 동네
새로운 집
새로운 학교로 왔다.
엄마, 아빠 방,
오빠 방, 내 방 따로따로
있다고 좋아한다.

정든 친구
정든 놀이터
모두 사라진
나는 보이지 않는지! (나는 보이지 않는지)


  보육교사로 일하는 박해경 님이 빚은 《딱 걸렸어》(청개구리, 2017)라는 동시집을 읽으면서 어른이 아이를 돌보는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이 이 땅을 사랑하기를 바라면서 쓴 동시에는 참말로 사랑스러운 손길이 흐릅니다. 아이들이 갑갑하거나 고단한 사회에서 주눅이 들더라도 부디 기운을 꺾지 말고 꿈을 품기를 바라는 따사로운 눈길이 함께 흐르고요.

  마음을 읽는다고 할 적에는 눈높이를 맞추며 어깨동무를 한다는 뜻이지 싶어요. 어른 사이에서도, 어른하고 아이 사이에서도, 여기에 사람하고 개구리나 사람하고 멧새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요.

  울타리를 걷어내려는 몸짓이기에 어깨동무를 합니다. 울타리가 아닌 너른 마당에서 함께 놀고 일하고 어울리고 춤추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기에 어깨동무를 해요.


‘날씨 억수로 춥대이
내 강아지
밥 마니 무꼬 옷 마니 입꼬
학교에 가거레이’

한글을 배우고
세상이 밝아졌다는
우리 할머니가 보낸 문자 (등불)


  낳은 아이가 사랑스럽습니다. 낳지 않았어도 둘레에 있는 아이가 사랑스럽습니다. 우리 아이도 이웃 아이도 모두 이 땅을 새롭게 일굴 당차고 힘찬 넋으로 자랄 테니, 그야말로 아름답습니다.

  아이는 늦깎이로 한글을 익힌 할머니한테서 투박한 손전화 쪽글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이는 할머니한테 신나게 쪽글을 띄워 주겠지요. 예전처럼 손으로 엽서에 이야기를 적어서 띄우지 않더라도, 손전화를 거쳐서 마음하고 마음이 만나요. 곁에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해도 따사롭고, 손전화를 사이에 놓고서 쪽글을 띄우고 받아도 따사롭습니다.


손짓으로 말해야
알아듣는 영식이

감나무 아래서
흙을 만지며 혼자 놀다
감꽃이 떨어지자
주워 귀에 꽂는다

감나무가 들려주는
노래 듣는지
하늘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다. (감꽃 이어폰)


  감나무 곁에서 감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모과나무 곁에서는 모과나무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은행나무나 밤나무 곁에서, 소나무나 느티나무 곁에서, 우리를 둘러싼 다 다른 수많은 나무 곁에서 나무가 오랜 나날을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저어새나 갈매기 이야기는 어떨까요? 노린재나 잠자리 이야기는 어떨까요? 지렁이나 지네 이야기는 어떨까요? 사마귀나 물방개 이야기는 어떨까요?

  우리를 둘러싼 이웃은 사람만 있지 않아요. 작은 풀도 이웃이요, 작은 벌레도 이웃입니다. 작은 이웃을 마주하면서 아낄 수 있을 적에 사람하고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더욱 싱그러이 아끼는 마음이 될 만하지 싶습니다.


벌과 나비는
맨발로 가볍게
이 꽃 저 꽃 옮겨 다녀요.

꽃이 다칠까 봐
신발 신지 않고서. (맨발로 가볍게)


  맨발로 가볍게 이 땅을 밟아 봐요. 맨발로 가볍게 바람을 타거나 구름을 타고 날아 봐요. 두 눈을 살며시 감고서 곁에 있는 동무하고 풀밭을 밟고 무지개를 밟아 봐요.

  함께 지을 꿈을 생각하고, 함께 가꿀 새로운 나라를 헤아려요. 동시 한 줄에 깃든 작은 목소리를 읽으면서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아이들하고 목숨들을 그립니다. 딱 알아보고 딱 느끼며 딱딱 소리가 나도록 손뼉을 치면서 춤을 춥니다. 2017.9.20.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동시비평/어린이문학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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