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 것도 없는데 또, 봄을 받았다
정헌재(페리테일) 지음 / 예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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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괜찮아요, 우리는 누려도 돼요
― 잘한 것도 없는데 또, 봄을 받았다
 페리테일 글·그림·사진
 예담 펴냄, 2017.6.20. 14000원


  겨울이 가면 봄이 옵니다. 겨우내 이 추위를 잘 견디었든 이 추위에 벌벌 떨었든 누구한테나 봄이 옵니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옵니다. 봄에 새로운 철을 기쁨으로 맞이하면서 씨앗을 심었든 씨앗을 심을 땅이 없어서 어영부영 보냈든 누구한테나 여름이 옵니다.

  그리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와요. 이 여름을 알차게 보냈든 허술하게 보냈든 참말 누구한테나 가을이 옵니다. 잘 한 이한테도 잘 하지 못한 이한테도 똑같이 가을이 와요. 이다음에는 누구한테나 고르게 겨울이 다시 찾아오고요.


나의 섬이 거대한 대륙이 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 조그만 섬에서 행복해지는 법을 알게 되었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이 섬에 같은 바람이 불고 같은 비가 내리고 같은 햇살이 내린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섬을 사랑하게 되었다. (22쪽)

사람이든, 자연이든, 무엇이든, 아무 일 없이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는 것을 봤을 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28쪽)


  페리테일 님이 글하고 그림하고 사진으로 엮은 《잘한 것도 없는데 또, 봄을 받았다》(예담,2017)는 이 땅에서 ‘잘 하지 못한 이웃하고 벗’한테 띄우는 글월입니다. 나도 너도 잘 하지 못했지만 봄은 우리 모두한테 새삼스레 찾아온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글월이에요. 나도 너도 어수룩하거나 어설프거나 어쭙잖게 하루하루 보내는데, 이런 우리한테도 따스한 봄은 고르게 찾아오는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띄우는 글월이에요.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바람이 보입니다. 생각해 보면 바람은 소리도 들려주고 모습도 남겨 놓습니다. (39쪽)

별거 아닌 것 같은 작디작은 일이지만 그런 한 모금 한 모금을 놓치지 않는다면 전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138쪽)


  아파 본 사람이 아픔을 씻어낸 뒤에 이 아픔을 더 뼛속 깊이 헤아리면서 ‘튼튼한 몸’을 한껏 즐긴다고 해요.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늘 튼튼하게 살아왔어도 ‘튼튼한 몸’이 얼마나 대단한 선물이고 기쁨인가를 미처 못 느낀다고 해요. 비록 튼튼한 몸 말고는 아무것이 없다 하더라도 튼튼한 몸이야말로 엄청난 선물이라고 합니다.

  페리테일 님은 《잘한 것도 없는데 또, 봄을 받았다》라는 책에서 스스로 아파 본 일을 털어놓으면서, 아픈 몸일 적에 무엇을 바랐고 아픔을 씻어낸 뒤에는 무엇을 바라는가를 이야기해요.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적에는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요, 아픔을 씻어낸 뒤에는 다른 눈치를 보지 않고서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길대로 나아가려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그 시간들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 (167쪽)

그저 봄을 그렸고 그 봄이 와서 내 안이 조용해졌다는 것. 그 안이 뭉클해졌고,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이 생겼다는 것. 다시, 봄이다. (252쪽)


  아파 본 뒤이기 때문에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바람이 남기는 자국을 읽을 수 있는지 몰라요. 실컷 아파 보았기 때문에 작디작은 일로 기쁨을 느끼면서, 하루하루 사랑하는 나날을 보낼 수 있는지 몰라요.

  그저 봄이 오기를 바랐고, 봄이 어느새 찾아왔다고 합니다. 딱히 잘 한 일이 없어도 봄은 찾아와 주고, 아픈 사람한테도 아픔을 씻어낸 사람한테도 오래오래 튼튼한 사람한테도 고르게 찾아와 주었다고 해요.

  참말 누구나 봄을 받습니다. 우리 스스로 못 느끼더라도 우리 누구한테나 봄이 찾아옵니다. 비록 너무 고단한 나날이라서 봄이어도 봄을 못 느낀다든지 여름이어도 여름을 못 느낄 수 있다지만, 그래도 봄이며 여름은 해마다 꾸준히 우리한테 찾아와요.

  때가 되니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 되지 않아요. 때가 되니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 되지 않아요. 그냥 흐르는 시간이 아닌, 늘 우리한테 선물처럼 스며들려고 찾아오는 아침저녁이요 봄여름이지 싶어요. 잘 하는 분도 잘 하지 못하는 분도, 다 괜찮으니 이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넉넉히 누리면서 살아가는 기쁨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2017.8.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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