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도 가시내도 못질·톱질 함께 배우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7] 아이들하고 책상 짜기



곁님·10살 아이·7살 아이하고 함께 살림을 짓고 시골에서 살며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일을 하는 사내(아저씨)입니다. 시골 폐교를 빌려서 도서관학교로 가꾸면서, 우리 집 두 아이는 제도권학교 아닌 ‘우리 집 학교’에서 즐겁게 가르치고 함께 배웁니다. 어버이로서 두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면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살림입니다. 밥·옷·집을 손수 지으며 누리고 나누자는 마음으로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익히려는 사랑을 길어올리려 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아이키우기(육아)·살림(평등)·사랑(평화)’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으로 사는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여성혐오’도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길도 아닌, 새로운 사람길을 밝혀 보고 싶어요. (글쓴이 말)


  제가 어릴 적에 간호원(아직 ‘간호사’라는 이름을 쓰기 앞서입니다)이 되려는 꿈을 품은 동무가 있습니다. 이 동무는 제 꿈을 선뜻 밝히지 못했습니다. 사내라면 마땅히 ‘의사’가 되어야지, 간호원이 뭐냐고, 가시내나 하는 일을 사내가 하려 한다고 아주 쉽게 놀림이나 손가락질을 받았어요.


  제가 스무 살이 될 무렵(1994년) 제 동무 하나는 중장비 면허를 땄어요. 중장비를 다루는 면허야 따는 사람이 제법 있으니 놀랄 만하지 않을 수 있으나, 이 중장비 면허를 딴 동무는 가시내입니다. 으레 사내만 따던 중장비 면허를 가시내가 땄고, 이 동무는 면허로만이 아닌 ‘중장비 기사’로 몸소 일하고 싶어 했어요. 그렇지만 제 동무는 기사로 일하지 못했습니다. 사내 아닌 가시내한테는 ‘기계를 맡길 수 없다’고 한다면서 몹시 슬퍼했어요.


  2010년대를 가로지르는 오늘날에는 택시나 버스나 중장비까지, 굳이 사내만 운전대를 쥐지 않습니다. 가시내도 얼마든지 택시나 버스나 중장비 운전대를 손에 쥡니다. 이와 달리 1980년대를 돌아보면 그무렵에는 자가용 운전대조차 가시내가 쥐기 매우 힘들었어요. 적잖은 사내는 ‘자동차를 모는 가시내’를 보면 일부러 놀리거나 괴롭히기 일쑤였고, 때로는 거친 말을 마구 퍼붓기까지 했습니다.


  더 생각해 보니 고작 서른 해쯤 앞서만 해도 가시내가 손에 망치를 쥐고 못을 박는 일도 말리던 흐름이 있었어요. 가시내가 부엌칼이나 빨래방망이가 아닌 웬 망치나 못을 쥐느냐면서 나무라곤 했어요. 무겁거나 큰 짐을 나를 적에도 으레 이런 일은 사내‘만’ 해야 한다는 듯이 여겼지요.


  이러다 보니 가시내는 형광등 하나 갈 줄 모르도록 내모는 흐름이었어요. 대수롭지도 않은 일에까지 남녀를 뚜렷하게 가르면서, 사내도 가시내도 서로 반쪽짜리 사람이 되도록 하는 흐름이었다고 느낍니다.


  두 아이를 건사하는 우리 집 살림을 짓는 동안 곁님하고 저는 두 아이하고 함께 나아갈 길을 날마다 새롭게 되새깁니다. 어느 일이건 하루 빨리 척척 해치우기보다는 서로 이야기하고 거들고 나누면서 한 걸음씩 나아가려고 해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 배우면서 ‘아이한테 더 쉽고 부드러이 가르치는 길’을 어버이가 스스로 배우도록 돕습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어버이답게 더 따스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가르치는 살림’을 새롭게 배워요. 배우는 사람이 저절로 가르치고, 가르치는 사람이 저절로 배우지요.


  널을 엮은 평상을 맨 처음에는 돈을 주고 장만했어요. 어느덧 열 해가 된 지난 일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쓸 평상을 우리 손으로 짭니다. 평상을 하나 짜고 보니, 새로 짜고 더 짜다 보니, 나무질이 시나브로 손에 익어요. 이러는 사이에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 붙어서 톱질을 구경하고 못질을 구경합니다. 사포질이라든지 옻질을 구경하지요. 하나하나 구경하는 동안 아이들도 저희 깜냥것 톱이나 망치나 사포나 붓을 손에 쥐어 봅니다.


  아버지가 일을 할 적에는 저희도 어렵잖이 해낼 만하리라 여기지만, 막상 아이들이 저희 손에 톱이나 망치나 사포나 붓을 쥐어 보면, 저희 생각대로 하나도 안 됩니다. 아이들 아귀힘으로는 톱으로 나무토막 하나 켜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못 하나 박자면 한나절이 걸릴 만해요.


  아이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어깨 너머로 지켜보면서 천천히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곁에서 작은 심부름을 하면서 ‘작은 손길로 함께 짓는 살림’이란 무엇인가 하고 새롭게 헤아립니다.


  다만 아이들은 심부름을 하며 지켜보다가 다른 놀이를 하러 자리를 떠나지요. 도움이로 아버지 곁에 있다가도 꽃삽을 쥐고서 흙을 파거나 나무를 타고 오르며 놀고 싶어요.


  아직 톱이나 망치를 쥘 힘은 안 되어도 꽃삽을 쥘 힘이 됩니다. 나무줄기를 붙잡고 높이 올라갈 힘이 되어요. 살뜰히 일을 거들며 눈썰미를 키웁니다. 신나게 놀이를 즐기며 몸에 새로운 힘을 붙입니다.


  사내도 가시내도 톱질 못질 옻질을 함께 배웁니다. 가시내도 사내도 부엌일 집안일 살림살이를 모두 배웁니다. 누구보다 어버이 스스로 보금자리를 가꾸는 길을 스스로 익히고 살피려 합니다.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누리는 삶을 걸어가는 동안,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무언가 하나를 바라보면서 배울 만하리라 느껴요.


  서로 돕고 같이 누립니다. 함께 힘을 모으고 나란히 어깨동무를 합니다. 아이들하고 책상을 짜면서 우리 삶은 우리가 스스로 바꾼다고 깨달아요. 서른 해 앞서나 스무 해 앞서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안 받아들이려고 했던 모습을, 오늘 우리가 우리 보금자리에서 하나하나 새롭게 지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자고 생각해요.


  지난 스무 해나 서른 해 사이에 거듭난 모습이 있으면, 오늘부터 스무 해나 서른 해 뒤에는 더욱 거듭나고 더욱 눈부시게 아름답도록 깨어나는 이야기가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못을 박고 나무를 켜며 아이들한테 말합니다.


“아버지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아니?” “음. 몰라.” “평화.” “평화?” “응, 평화롭게 살려고. 평화롭게 우리 스스로 짓고, 평화롭게 우리 스스로 누리고, 평화롭게 우리부터 바꾸는 삶이 되려고.” “그렇구나.” 2017.6.7.물.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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