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없는 사진말

24. 사진에 안 찍힐 권리



  사진을 찍을 자유가 있다. 사진기만 있으면 누구나 무엇이든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 대단히 자유롭다. 글을 쓸 자유가 있다. 연필만 있으면 누구나 무엇이든 글로 옮길 수 있다. 더없이 자유롭다. 그림을 그릴 적에도 노래를 부를 적에도 춤을 출 적에도 모두 자유이다.


  사진에 안 찍힐 권리가 있다. 둘레에서 마구 사진기 단추를 눌러대지 못하도록 막을 권리가 있다. ‘초상권 침해’라는 어려운 이름까지 안 쓰더라도 ‘난 사진 안 찍히겠어요. 나를 사진으로 찍지 마셔요.’ 하고 말할 권리가 있다. 글에 안 적힐 권리가 있다. 누가 나를 글감으로 삼아서 쓰려고 한다면, ‘나는 누가 나를 글로 쓰면 싫어요. 내 이야기를 쓰지 마셔요.’ 하고 말할 권리가 있다.


  아무리 사진을 찍고 싶다 한들 ‘우리를 마주한 사람’이 찍히고 싶지 않다면 곧바로 사진기를 거두어야 한다. 이는 ‘사진 찍을 자유’를 누릴 사람이 지킬 다짐이다. 의무라기보다 다짐이요 마음이다. 사진을 찍을 자유란, 사진기를 손에 쥔 사람이 이웃에 있는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마주하면서 서로 어깨동무하려는 마음을 나누려는 자유이다. 아무 사람이나 함부로 찍는 일은 자유가 아니다. 이는 폭력이다.


  ‘네 얼굴이 못생겼네’라는 말은 주먹질이다. 폭력이다. ‘네 다리가 예쁘네’라는 말도 주먹질이다. 폭력이다. 어린이한테든 어른한테든 모두 주먹질이다. 젊은이한테든 늙은이한테든 언제나 주먹질이다.


  한국 사회는 참으로 오랫동안 신분·계급 사회였고, 일제강점기를 거쳤으며, 군사독재를 지났다. 이동안 자유가 끔찍하도록 짓밟혔다. 이러다 보니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자유’를 잘못 받아들인 사람이 많다. ‘표현할 자유’는 지켜야 마땅하지만, ‘표현받지 않을 자유’를 살짝이라도 건드릴 적에는 어떤 ‘표현’도 자유라고 할 수 없이 그저 폭력이 될 뿐이다. ‘폭력 아닌 표현’을 하고 싶다면 자유란 무엇인지 새롭게 배워야 하고, 무엇보다 ‘사랑’을 배우고 나누며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2017.5.4.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사진넋/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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