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훔친 기적 민음의 시 233
강지혜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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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91



젊은 시인은 걸상을 들고 전철에 올랐다

― 내가 훔친 기적

 강지혜 글

 민음사 펴냄, 2017.3.24. 9000원



  저하고 띠동갑으로 나이가 젊은 분이 처음 낸 시집 《내가 훔친 기억》(민음사,2017)을 읽었습니다. 이 시집을 낸 분은 2013년에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고, 이 시집을 내면서 비로소 시인이라는 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시집 책날개를 보면 《내가 훔친 기억》을 낸 강지혜 님이 1987년에 태어났다고 하는 이야기 말고는 다른 이야기가 없습니다. 오직 시로 이녁 삶과 이야기를 들으라고 하는 뜻이네 싶으면서, 굳이 어느 해에 태어났다는 대목을 밝힌 뜻은 무엇일까 하고 어림해 보았어요. 이러면서 제가 태어난 1975년을 떠올렸고, 저보다 열두 삶 젊은 삶이란 무엇일까 하고 되새겨 보았어요.



입성하지 못한 자들이

일몰에 맞춰 벽을 핥으러 간다


“봄이 되면 담벼락에 수만 마리 무당벌레가 날아와. 걔들을 터트리느라 똑똑해질 시간이 부족했는지도 몰라”


그들은 매일 인도가 없는 아스팔트를 걸었다 (벽으로)



  어느 분은 저보다 열두 살 위일 테니, 제가 그분한테는 열두 삶 젊은 사람이 되겠지요. 이 젊음이란 언제나 서로 맞물립니다. 저보다 젊은 분이 있고, 또 저는 누구한테는 무척 젊은 사람이 됩니다. 저보다 젊은 분도 그이보다 젊은 분이 또 있고요.


  이렇게 본다면 ‘젊은 시인’이라는 말은 좀 안 맞을 수 있지 싶어요. ‘젊다’를 꼭 나이로만 따질 수 없거든요. 나이가 스물 언저리이기에 젊을까요? 나이가 서른 언저리라면 젊을까요? 서울 같은 커다란 도시에서는 스물이 풋풋하게 젊고 서른이 씩씩하게 젊다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서른 줄에만 접어들면 ‘이제 안 젊다’고 여길는지 몰라요.


  이와 달리 제가 사는 시골에서는 일흔 살 나이가 ‘젊은이’예요. 저희 마을에서 가장 ‘젊은’ 분이 일흔 줄이 넘습니다. 다들 여든 줄이나 아흔 언저리랍니다. 이러다 보니 마흔 줄쯤 되는 나이는 젊은이조차 아닌 ‘아기’로 여겨요. 재미나지요. 나이 하나를 놓고서 ‘자리마다 삶마다 다른 이야기’가 태어나요.



아름다운 의자를 들고 퇴근 시간 전철에 탔다 의자는 황홀한 노래를 읊조리고 내 몸은 달아올랐다


이것은 의자, 별처럼 빛나는 의자


의자를 들고 전철에 탔지만 자리가 없었다 나는 분명히 의자를 들고 있는데 앉을 수가 없으니 나와 의자는 슬펐다 그리고 의자는 분명히 외로웠다 (의자 들고 전철 타기)



  시집 《내가 훔친 기억》을 쓴 강지혜 님은 이 시집을 내놓기까지 어떤 삶을 겪거나 마주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이 시집을 읽는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삶을 치르거나 맞닥뜨리는 길을 걸어오다가 이 시집 이야기를 만날 만한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강지혜 님은 시집에서 ‘걸상을 들고 전철을 타던 일’을 들려줍니다. 저도 이렇게 걸상을 들고 전철을 탄 적이 있어요. 언젠가 책상을 둘이서 들고 전철을 탄 적도 있어요. 책걸상을 들고 전철을 타야 하던 그때, 참 눈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어요. 짐차를 부를 수 없던 때였고, 이래저래 전철밖에 없어서 전철로 서둘러 책걸상을 옮겨야 했지요.


  저는 두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어쩔 수 없이 출퇴근 지옥철 시간’에 갓난쟁이를 안고서 전철을 타야 하던 일이 몇 차례 있습니다. 저처럼 갓난쟁이를 업거나 안은 채 ‘어쩔 수 없이 출퇴근 지옥철 시간’에 전철을 오르는 분을 더러 보기도 했고요. 이때에 서로서로 참 괴롭지요. 고달파요. 아기 어머니나 아버지도, 다른 손님도, 누구보다 아기가 참으로 힘겨워요.



먼지들은 내가 자주 쓰는 의성어를 엮어

노래를 만들었다

소리는 분명히

내 몸 안에서부터

공중으로 퍼져 나갔다 (화단을 가꾸려 했다)



  이 힘겨운 삶이란 무엇일까 하고 되새겨 봅니다. 걸상을 들고 전철에 올라야 했는데, 막상 전철에서 ‘내가 들고 간 걸상’에 앉지 못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하고 그려 봅니다.


  우리는 우리 지친 다리를 쉴 걸상이 저마다 있는데, 막상 이 걸상에 느긋하게 앉지 못하고, 쉬지 못하고, 숨을 돌리지 못하고, 한갓지지 못하다면, 이러한 삶이란 무엇이라고 할 만할까요.



누나는 번번이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했다

누나는 단지 풍경을 기록하는 사람

진짜 이야기는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동어반복)



  ‘화단을 가꾸려 했다’라는 시를 가만히 읊습니다. 노래가 되는 소리는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이야기를 저도 늘 느낍니다. 제 마음이 스스로 노래로 흐르지 않는다면 즐겁게 노래를 하지 못해요. 제 마음을 스스로 기쁨으로 일구지 않는다면 마음껏 노래를 하지 못해요.


  시인이란, 등단한 사람을 일컫는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인이란, 시집을 낸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쓰기에 시인이고, 시를 노래하기에 시인이며, 삶을 시라는 글로 가만히 갈무리해서 이웃한테 속삭이기에 시인이라고 느껴요. 비록 “진짜 이야기는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몸짓이거나 하루라 하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라고 느껴요. 우리는 우리 삶을 노랫가락처럼 잔잔하게 들려줄 수 있으니 누구나 시인이에요. 동생한테 언니한테 아버지한테 할머니한테 우리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우리는 저마다 시인이지 싶습니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척 하면서

나는 내 머리를 토닥인다


모두의 바람처럼

거울이 나무를 비추면 좋겠지만

나는

숲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의자에 앉아

무릎의 위치는 왜 언제나 여기인지

생각하는 (껍질)



  머리카락을 쓸어서 넘기면서 제 머리를 토닥여 봅니다. 머리카락도 쓸어서 넘기고, 머리도 토닥여 줍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볼 일이 없습니다. 곁에서 누가 제 머리를 토닥여 주기를 바라지 않고, 제가 스스로 제 머리를 토닥여 줍니다. 씩씩하게 서려 합니다. 기운을 내어 서고자 합니다.


  ‘바람’처럼 거울이 나무를 비추어 줄 수 있고, 숲을 마음에 담고서, 또 걸상에 가만히 앉아서, 이제 ‘껍질’에서 깨어날 수 있습니다. 한 걸음씩 뗍니다. 두 걸음으로 나아갑니다. 천 리라고 하는 길은 처음에 참 아득하구나 싶었으나, 아장아장 아기처럼 떼는 걸음을 꾸준히 잇고 보니 어느새 우리 꿈 앞에 다다릅니다.


  시집 《내가 훔친 기적》이 밝히는 ‘우리가 저마다 훔친 놀라움’이란 우리 스스로 미처 모르는 사이에 이룬 사랑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우리 마음속에서 고요히 피어난 사랑을 시나브로 알아채면서 홀가분하게 걸상에 앉아 다리를 쉴 수 있는 오늘 살림이지 싶어요. 마음이 젊고 생각이 젊으며 꿈이 젊은 시인이 걸어갈 길은 ‘꽃이 피어날 수 있는 흙이 있어 숲으로 짙푸른 길’이 되리라 봅니다. 2017.4.3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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