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살려낸 우리말 : 풀어주기



  어릴 적에 ‘방생’이라는 한자말을 곧잘 들었어요. 어느 종교 때문에 들은 말은 아니에요. 낚시를 가서 물고기를 낚은 뒤에 “자, 이제 방생하자.” 같은 말을 들었어요. 시골집에서 덫에 걸린 짐승을 풀어주면서 “방생한다.” 같은 말을 들었지요. 어머니가 부엌이나 마루에 놓은 쥐덫에 쥐가 잡혔을 적에는 “죽이자니 안쓰럽고 풀어주자니 또 들어올 텐데.” 하는 말을 들었어요.


  어릴 적에는 둘레 어른들이 쓰는 말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생각해 보았어요. ‘방생’이나 ‘풀어주기(풀어주다)’는 틀림없이 같은 자리에 쓰는 말 같은데, 어른들은 두 말을 섞어서 써요. 한국말사전을 뒤적이면 ‘방생’은 올림말로 나오고 ‘풀어주기(풀어주다)’는 안 나와요. 그래도 ‘놓아주다’라는 낱말은 있어요. 더 생각해 보니, ‘풀어주다’라는 말을 쓰던 어른은 ‘놓아주다’라는 말도 함께 썼어요. 다만 ‘풀어주다·놓아주다’라는 말을 쓰던 어른은 ‘방생’ 같은 한자말은 안 썼습니다.


  이제 나는 두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요 어른으로 삽니다. 아이들하고 마당에서 함께 놀다가 나비나 잠자리를 잡으면 “얘들아, 이 아이(나비나 잠자리)들은 우리 손에 잡히면 힘들어 해. 가까이에서 찬찬히 들여다본 뒤에는 곧 놓아주렴.” 하고 말해요. 마을 빨래터에서 놀거나 물이끼를 걷으면서 미꾸라지나 게아재비를 으레 만나는데, 이 아이(미꾸라지나 게아재비)를 그릇에 담아 한동안 들여다본 뒤에도 ‘풀어주자’고 말하지요.


  아이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만한 말을 쓰자는 생각이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저절로 나오는 말이에요. 마음껏 노닐거나 다닐 수 있도록 풀거나 놓기에 ‘풀어주다·놓아주다’라는 말을 써요. 작은 벌레나 짐승이나 물고기가 저희 보금자리에서 마음껏 살아가며 우리 곁에 있기를 바라기에 안 얽매려고 해요.


  사람 사이에서도 ‘풀다·놓다’를 씁니다. 이를테면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마음껏 놀도록 할 적에 “풀어서 키운다”나 “놓아서 키운다”고 해요. 마음껏 뛰놀도록 아이를 가르친다면 ‘풀어키움·놓아키움’이나 ‘풀어배움·놓아배움’쯤 될까요? 2017.3.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꽃말)


기르던 동물을 야생에 함부로 버리거나 풀어줘서는 안 돼

《이주희-야생 동물은 왜 사라졌을까?》(철수와영희,2017) 109쪽


놓아주다 : 억압받던 상태에 있던 것을 자유로운 상태가 되도록 풀어 주다

방생(放生) : [불교] 사람에게 잡힌 생물을 놓아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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