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끈 애지시선 41
이성목 지음 / 애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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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85



늙은 소파가 노란 꽃을 피우다

― 노끈

 이성목 글

 애지 펴냄, 2012.9.27. 9000원



  실이나 삼이나 종이를 가늘게 비벼서 꼬아 길게 늘어뜨려서 ‘노끈’입니다. 종이를 꼬아 엮기에 ‘노’이고, 이 노로 그릇이나 바구니를 엮는 일을 ‘노엮개’라고 합니다. 아주 단단하지 않아도 제법 단단한 노끈이고, 이 노끈은 숲에서 자란 나무에서 비롯해요. 노끈을 손으로 만질 적에는 한결 보드라우면서 푸른 숨결을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이성목 님 시집 《노끈》(애지,2012)을 읽으면서 노랑 노엮개랑 노끈을 새삼스레 떠올립니다. 이 시집에서는 노끈 이야기나 노나 노엮개 이야기는 흐르지 않습니다. 이 시집에서는 사람하고 사람 사이에 이어진 끈을 이야기합니다. 아주 단단하지 않으나 제법 단단하게 이어진 사람 사이 끈을 이야기합니다. 물에 젖으면 쉬 끊어질 수 있는 노끈처럼 사람 사이에 이어진 끈도 아주 작은 일 하나로 끊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마당을 쓸자 빗자루 끝에서 끈이 풀렸다 / 그대를 생각하면 마음의 갈래가 많았다 / 생각을 하나로 묶어 헛간에 세워두었던 때도 있었다 / 마당을 다 쓸고도 빗자루에 자꾸 손이 갔다 (노끈)



  우리가 입는 모든 옷은 천으로 짭니다. 천을 가만히 보면 수많은 실이 얼기설기 있습니다. 공장에서 화학섬유로 짠 옷이라 하더라도 모든 옷은 가느다란 실오리를 엮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얼핏 못 느낄 수 있는 실오리인데, 숲에서 온 실오리이든 석유에서 뽑은 실오리이든, 가느다란 실오리를 엮기에 비로소 옷이 태어나요.


  사람하고 사람 사이도 늘 이와 같다고 느껴요. 얼핏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문득 보면 가볍게 스쳐 지나가기도 하는 사이입니다. 가까이에 이어진 듯하고 멀리 떨어진 듯하기도 한 사이입니다. 우리는 서로 튼튼하게 잇닿은 사이가 될 수 있고, 우리는 따로 떨어지며 멀어지는 사이가 될 수 있어요.



저, 몸을 함께 짜 맞춘 아비와 어미도 / 올 하나 풀어내지 못하였다 / 그는 매듭을 가졌다 몸속에 질긴 / 생이 올가미처럼 묶인 스무 살이었다 / 의사는 눈동자에 고인 검은 호수를 들여다보거나 / 일렁이는 수면에 청진기를 대 볼 뿐이었다 / 어미가 앞섶을 열어 헤쳐 꺼낸 / 돌덩이 같은 실몽당이 하나 / 아비는 실을 풀어주고 어미는 다시 옷을 짰다 (풀어 다시 짤 수 없는 옷)



  어버이는 아이하고 실오리가 엮입니다. 아이는 어머니 아버지하고 실오리가 엮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처음 나고 자라는 곳에서 수많은 동무나 이웃을 만납니다. 반가운 동무나 이웃이 있을 테고, 보기 싫은 동무나 이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살가운 동무나 괴로운 이웃이 있을 수 있어요.


  때로는 구경꾼처럼 팔짱을 낍니다. 때로는 감정노동이라는 말처럼 얼굴에 억지로 웃음을 띱니다. 때로는 억지스러운 웃음조차 없이 차갑거나 매몰찹니다. 때로는 모든 앙금을 털어내면서 환하게 노래합니다. 때로는 이도 저도 아니어서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이 땅을 떠나고 싶습니다.



팔순의 할머니를 아기처럼 무릎에 올려 앉히고 예순의 자원봉사 할머니가 흰밥 한 숟가락 퍼 올려 입에 댄다. 자아, 드세요. 입술만 꼼지락 꼼지락 움직이다 마는 입맛에 게 왜 안 드세요? 말하고 한 숟가락 먹어보고, 맛있어요! (첫눈)


모든 육체는 목숨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품고 태어나는 것이다. 몸에서 시간이 비곗덩어리처럼 분리되는 아버지 임종을 지킨 다음, 사내는 시간의 심복이 되었다. (새김꾼)



  여든 살 할머니 곁에서 밥을 떠먹이는 예순 살 할머니가 있다고 합니다. 아흔 살 할머니 곁에서 똥오줌을 치우는 일흔 살 할머니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스라한 지난날에는 서른 살 어머니가 열 살 아이를 돌보았을 테고, 한 살 아기를 보살폈을 테지요. 서로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돌보거나 보살피는 사이가 달라집니다. 천천히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끈으로 이어집니다. 또는 예전 끈이 끊어집니다. 곁에 있던 사람이 멀어지고, 아주 동떨어진 데에 있었지 싶은 사람이 가까이로 찾아옵니다.



소파가 꽃을 피우려는지 인조 가죽이 여러 갈래로 튼다. 갈라진 틈새로 노란 스펀지가 올라온다. // 의자는 몇 해 전에 이미 꽃을 피웠다. 굵고 탄력 있는 스프링 꽃대가 아직도 등뼈처럼 구부정하다. (이제 꽃피면 안 되겠다)



  늙은(또는 낡은) 소파가 노란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폭신하던 걸상은 낡으면서 목숨이 다하여 이제 스러지려 한답니다. 사람은 늙고 살림은 낡습니다. 그런데 낡아서 스러지려고 하는 걸상은 어느 모로 보면 꽃을 피우는 모습 같다고 합니다. 용수철이 구부정한 등뼈처럼 보이고, 스펀지가 봄꽃처럼 노랗게 빛난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입은 옷은 보풀이 올라오고 해진 자리는 구멍이 납니다. 낡은 옷은 오물조물 조그마한 꽃이 잔뜩 피어나는 모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스무 해 즈음 입어서 해진 바지에 천을 대어 기우다가, 시집 《노끈》에 나오는 노란 꽃 피우는 소파 이야기를 읽다가, 꽃이란 무엇일까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꽃피우다’라는 말을 으레 젊은 사람한테 쓰는데, 어쩌면 ‘꽃피우다’는 나이가 젊은 사람한테만 쓰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꿈을 지어서 새롭게 깨어나려는 사람한테 쓰는 말이 아니랴 싶습니다.


  꽃이 피면서 한동안 눈부시지만, 이내 꽃이 지면서 씨앗을 맺어요. 꽃이 필 적에는 곧 꽃이 지며 씨앗을 맺는다는 뜻입니다. 불꽃이 일기에 따스하다가 곧 불길이 사그라들어요. 나이가 들며 무르익는 사람도 살림도 천천히 거듭나는 사이가 되겠지요. 노끈에 서린 숲내음을, 사람 사이에 감도는 마음을 돌아봅니다. 2017.2.2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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