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님한테서 배우는 살림



  나는 집에서 밥짓고 온갖 일을 하면서 살림을 꾸린다고 하지만, 아직 아장걸음처럼 어설프거나 엉성하다고 느낍니다. 곁님은 몸으로 움직이기 힘들어서 곁님이 집에서 밥을 짓는다거나 여러 가지 일을 하거나 살림을 돌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곁님한테서 여러모로 늘 배웁니다. 얼핏 겉으로 보자면 집일을 안 하거나 못 하는 사람한테서 무엇을 배우겠느냐 싶지만, 문득 들려주는 한두 마디라든지 문득 보이는 한두 몸짓으로도 즐겁게 삶과 살림과 사랑을 배워요.


  오는 7월 5일부터 7월 30일까지 미국 옘(Yelm)에서 하는 배움잔치가 있기에 이 자리에 온식구가 다 같이 가거나 적어도 곁님을 이 배움잔치에 보내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가지 삯이나 값을 헤아리면, 네 사람이 모두 가자면 20000달러, 한 사람이 가는 데에 5000달러쯤 들 텐데, 그쯤은 넉넉히 댈 수 있으리라고, 올 7월 이 배움잔치에 네 식구도 갈 만하리라고 생각하며 올해를 맞이했고 1월부터 6월까지 신나게 일하면서 살림돈을 모으려 했어요.


  오늘 7월 1일에 출판사 한 곳에서 선인세 100만 원을 받았습니다. 올 한글날 언저리에 나올 책을 놓고서 글삯을 먼저 받은 셈인데, 제가 그 출판사로 글삯을 먼저 달라고 여쭙지 않았는데 그냥 먼저 보내 주셨어요. 이리하여 우리 살림돈이 빚이 없이 160만 원이 되었기에 ‘적어도 한 사람은 비행기를 태워서 배움잔치에서 즐거이 배우도록’ 보낼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곁님더러 배움잔치에 가라고 얘기했지요. 곁님은 비행기삯만으로 어찌 가느냐고, 이제는 카드로 긁어서 배움길에 나설 뜻이 없다고 대꾸해요. 나도 곁님처럼 앞으로는 카드를 긁어서 어찌저찌 여러 달에 걸쳐서 갚는 배움바라지를 하지 않겠노라 생각하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잘 풀리리라 생각하는데, 곁님은 딱 끊습니다. 이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여요. 꼭 올 7월 배움잔치에만 가야 하지 않는다고, 다음 가을이든 겨울이든 이듬해이든 얼마든지 새로운 배움길이 있다고 얘기해요. 그러니까 나더러 바쁘게 굴지 말라는 뜻입니다. 서두르지 말라는 뜻이에요.


  낮에 빗길을 가르며 우체국에 다녀왔어요. 곁님은 곁님 스스로 입을 옷을 손뜨개로 이레 즈음 걸쳐서 한 벌 지었는데, 다 짓고 보니 곁님 스스로 입기에 크다면서, 이 뜨개옷을 동생한테 보내야겠다고 얘기합니다. 동생은 곁님보다 키나 몸이 크니 곁님한테는 크다 싶은 옷이 동생한테는 꼭 맞춤하리라 얘기해요.


  여러모로 다른 집일을 못 하는 곁님이지만 뜨개질을 할 적에는 밤샘을 하면서 붙잡습니다. 스스로 몸이며 마음을 살리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아무튼 얼추 이레 즈음 낮밤을 모두 손뜨개에 바쳐서 곁님 옷을 스스로 지었는데, 이 옷을 한 번도 입지 못한 채 동생한테 선물로 띄운다고 할까요.


  빗길을 자전거로 달려서 우체국에 다녀오며 ‘스스로 입을 옷을 스스로 실을 고르고 스스로 뜨개를 익혀서 스스로 온사랑을 바쳐서 지은’ 뒤에 스스럼없이 선물할 수 있는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라면 이렇게 할 만할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네, 저도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내 온사랑을 들여서 무엇을 지었다면 기꺼이 누구한테든 선물할 수 있고, ‘그냥 누구’보다는 나 스스로 생각하는 ‘가장 사랑스러운 님’한테 스스럼없이 주겠지요.


  우리 집 곁님은 여태 ‘돈을 버는 일’은 거의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돈이 아닌 살림을 짓는 일’은 늘 천천히 한다고 느낍니다. 돈으로 살 수는 없으나 사랑으로 나눌 수 있는 살림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고흥 시골집 네 식구 살림살이에서 곁님이 베푸는 작으면서 더딘 손길에서 묻어나는 이야기가 기쁨이라고 여겨서 늘 즐거이 배웁니다. 이 배움을 우리 아이들이 곱게 물려받을 수 있기를 꿈꿉니다. 2016.7.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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