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에서 책을 읽을 적에



  골짜기에 깃들어 책을 읽으면 대단히 재미있다. 깊고 깨끗한 골짜기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만 해도 아주 우렁차고, 이 우렁찬 물살 소리를 가로지르는 멧새 노랫소리에다가, 바람이 나뭇잎하고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가 어우러진다. ‘데시벨’로 치면 아주 높은 소리가 퍼지는 골짜기인데, 이런 데에서 책을 손에 쥐면 아뭇소리가 안 들린다. 아주 고요하고 차분하게 책에 사로잡힌다.


  골짜기에 깃들어 책을 읽더라도 눈길을 다른 데에 두면 괴롭다. 이를테면 여름날 휴가철을 맞이해서 시골로 놀러오는 사람들이 골짜기에 함부로 버린 온갖 쓰레기가 눈에 뜨이면 ‘책’이 아니라 ‘쓰레기’에 자꾸 눈길하고 마음이 가고 만다. 골짜기에는 ‘쓰레기를 보러’ 오지 않는데, 휴가철 언저리에는 그만 ‘쓰레기에 눈길이 가’니, 이를 어쩌나? 한 마디로 말해서 마음을 제대로 모으지 못하는 셈이다.


  도시에는 자동차가 아주 많다. 여느 때에 ‘자동차 노래’를 부르는 작은아이는 장난감 아닌 실물 자동차가 쏟아질듯이 넘치기에 눈을 뗄 줄 모른다. 도시에서는 작은아이 손을 붙잡고 걷지 않으면 자동차에 휩쓸리겠다고 느낀다. 그런데 도시에서 사는 사람은 자동차를 안 쳐다본다. 너무 많으니 안 쳐다볼 수 있을 테고, 자동차를 쳐다보면 ‘내 할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하지 못하니, 쳐다보아야 할 까닭도 없다.


  골짜기에서 책을 읽는다고 할 적에, 골짝물하고 골짝바람하고 골짝나무하고 골짝이웃이 모두 내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도록 돕는다. 그러고 보면, 배우려는 사람들이 깊은 숲이나 절집으로 깃들려고 하는 까닭을 알 만하다. 숲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곳인가? 사람들이 고요하면서 차분한 마음이 되도록 이끄는 데가 바로 숲이다. 도시라는 곳에도 찻길하고 건물만 있지 않고 너른 숲이 함께 어우러진다면, 도시에서 일하거나 사는 사람 누구나 고요하면서 차분한 마음이 되어 사랑과 평화를 꿈꾸는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4348.8.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