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실



  책방으로 책마실을 나오면, 두 팔 가득 책을 짊어진다. 한 권을 골라도 두 팔 가득 책을 품고, 열 권을 골라도 두 팔 한가득 책을 안는다. 가벼운 책이든 무거운 책이든, 적든 많든, 언제나 가슴으로 따사롭게 책을 품는다.


  즐겁게 장만한 책은 즐겁게 읽는다. 사랑스레 장만한 책은 사랑스레 읽는다. 고맙게 장만한 책은 고맙게 읽는다. 이리하여, 얄궂게 훔친 책은 얄궂은 기운이 고스란히 남은 채 읽어야 하고, 우악스레 빼앗은 책은 우악스러운 기운이 그대로 남은 채 읽어야 한다.


  책을 마주할 때뿐 아니라 책을 장만할 때에도 가장 너그러우면서 넓고 넉넉한 마음이 되도록 다스린다. 아이를 돌보거나 밥을 지을 때뿐 아니라 말을 섞거나 글을 쓸 때에도 가장 따스하면서 고운 마음이 되도록 추스른다.


  아름답게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책을 장만해서 읽는다. 아름답게 꿈꾸는 삶을 짓고 싶어서 책을 장만해서 집안에 갖춘 뒤 틈틈이 읽고 또 읽는다. 책마실을 하는 사람은 ‘삶을 가꾸는 이야기를 찾으려는’ 마실을 누린다. 책마실을 아이와 함께 즐기는 사람은 ‘사랑을 짓는 꿈을 물려주는’ 하루를 밝힌다. 4348.5.3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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