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으면서 읽는다



  집에서 밥을 지으면서 책을 읽습니다. 도마질을 할 적에는 손에서 책을 내려놓아야 하지만, 손에 물이 묻는 부엌일을 모두 마친 뒤, 이제 국물 간만 보아도 되면 드디어 손에 책을 쥘 만합니다. 밥내음을 느끼고 국내음을 맡으면서 책을 한 줄 두 줄 읽습니다.


  밥과 국이 거의 다 될 무렵, 입에서 저절로 노래가 흐릅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책을 석 줄 넉 줄 읽습니다. 이제 밥과 국이 다 됩니다. 살짝 뜸을 들이면서 춤을 춥니다. 발바닥을 구르고, 부엌에서 콩콩 뜁니다. 밥을 다 짓고 나서도 손에는 책이 있고, 책을 손에 쥔 채 폴짝폴짝 춤을 추면서 다섯 줄 여섯 줄 읽습니다.


  혼자서 도시로 볼일을 보러 나가면, 버스나 전철에서뿐 아니라 길에서도 책을 펼쳐서 읽습니다. 이렇게 하면 둘레에서 흐르는 모든 시끄럽거나 어수선한 소리가 가뭇없이 사라져요. 나부터 스스로 즐겁고 내 둘레로도 기쁜 기운을 퍼뜨릴 수 있구나 싶어서, 손에 책을 쥐며 걷는 일은 아름답구나 하고 느껴요. 4348.4.19.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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