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41. 내가 생각하는 사진



  내가 생각하는 사진은 내가 생각하는 삶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진은 내가 사랑하는 삶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진은 내가 꿈꾸는 삶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진은 내가 걸어가는 삶입니다.

  나는 늘 내 사진을 찍습니다. 마땅한가요? 안 마땅한가요? 내 사진이 아닌 남 사진을 내가 찍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주 많은 분들은 ‘스스로 내 사진 찍기’를 하지 않습니다. 남이 찍은 사진을 가만히 흉내내기에 바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멋져 보인대서, 예뻐 보인대서, 좋아 보인대서 …… 자꾸자꾸 ‘남이 찍는 사진에 휩쓸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스스로 배우려는 뜻에서 ‘남이 찍는 사진’처럼 ‘나도 따라서 찍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이 찍는 사진을 따라서 찍는들 하나도 못 배웁니다. 왜냐하면, 흉내내기는 늘 흉내내기로 그칠 뿐 아니라, 흉내내기가 몸에 배기 때문입니다.

  된장국을 끓여도 남이 하는 대로 똑같이 못 끓입니다. 걸레를 손으로 복복 비벼 빨아서 방바닥을 훔쳐도, 남이 하는 대로 똑같이 못 합니다. 걸음걸이를 생각해 보셔요.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르게 걸어야 합니다. 키가 다르고 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남이 걷듯이 똑같이 따라 걸을 수 없어요. 키가 크면 키가 큰 대로 걷고, 키가 작으면 키가 작은 대로 걷습니다. 누구 걸음이 예쁘거나 누구 걸음이 못나지 않습니다.

  내 사진은 내가 스스로 생각할 때에 ‘내 사진’입니다. 스스로 내 사진을 ‘내 눈길’로 바라볼 수 있어야, 내 둘레에 있는 ‘다른 사람 사진’을 제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 사진을 바라보면서 ‘사진읽기’가 안 된다면,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사진을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이 사진에 깃든 넋이나 마음은 무엇일까’ 하는 대목을 느끼지 못한다면, 내가 찍는 내 사진에 깃든 내 넋이나 마음이 무엇인지 스스로 못 느끼고 말아요.

  그런데, 내 사진을 찍자면 내 삶이 있어야 합니다. 내 삶을 아직 세우지 못한 사람은 내 사진을 못 찍습니다. 다만, 스스로 내 삶을 아직 못 세웠다면 ‘스스로 삶을 못 세운 모습’을 꾸밈없이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요. 그러나, 언제까지나 ‘삶을 못 세운 모습’만 사진으로 찍는다면 갑갑합니다. 재미없습니다. 세우지 못한 삶을 사진으로 담으려 하더라도, 살짝 담고 그치셔요. 이제는 삶을 세워야지요. 이제는 삶을 열어야지요. 이제는 삶을 가꾸고 누리며 사랑해야지요. 사진을 가꾸고 누리며 사랑해야지요. 4347.9.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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