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시 읽는 아이 2
황순원 지음, 최승호 엮음, 사석원 그림 / 비룡소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2



모든 말은 언제나 노래

― 오리

 황순원 글

 사석원 그림

 비룡소 펴냄, 2002.11.25.



  오늘날 우리들이 주고받는 말 가운데 노래는 매우 드뭅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나와서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돈을 벌어야 비로소 노래인 줄 잘못 생각하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스스로 노래를 부를 줄 모르고, 이래저래 노래라는 이름이 붙은 것들은 노래가 아닌 장삿속이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주고받는 말 가운데 이야기는 아주 드뭅니다. 소설이나 영화쯤 되어야 비로소 이야기인 줄 잘못 여기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스스로 이야기를 지을 줄 모르며, 이래저래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아니되곤 합니다. 돈으로 사고팔거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장삿속만 넘칩니다.



.. 이빨을 몽땅 / 드러내고 / 웃는다 ..  (옥수수)



  예부터 지구별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노래였습니다. 지구별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주고받는 말은 늘 노래였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서로를 부릅니다. 노래를 하면서 일을 하고 놀이를 합니다.


  예부터 지구별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이야기였습니다. 지구별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주고받는 말은 늘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아낍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살림을 가꾸고 논밭을 돌보았으며 아기를 보살폈어요.



.. 나를 / 혀 위에 / 굴리었다 ..  (앵두)





  황순원 님이 짤막하게 쓴 글에 사석원 님이 가벼우면서 재미나고 살갑게 그린 그림이 예쁜 《오리》(비룡소,2002)를 봅니다. 참말 ‘시’는 가볍고 재미나며 살갑게 쓰기 마련입니다. 참말 ‘그림’은 가볍고 재미나며 살갑게 그리기 마련입니다.


  굳이 어두컴컴하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아요. 괜히 무겁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아요. 억지스레 목에 뻣뻣하게 힘을 주는 글이나 그림을 낳을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이 말을 하고 그림놀이를 하며 흙놀이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셔요. 어른인 내가 바로 이 아이들만 하던 지난날, 나도 이 아이하고 똑같이 놀던 모습을 조용히 떠올려요.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님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아름다운 빛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아름다운 숨결이었습니다. 님이요 빛이며 숨결입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물들지 않거나 학교에 길들지 않은 채 꺼내는 말은 언제나 노래입니다. 아이들이 책에 젖지 않거나 어른들 울타리에 갇히지 않은 채 들려주는 말은 늘 이야기입니다.



.. 별을 / 쓰느라 / 머리가 / 세었소 ..  (갈대)



  모든 말은 언제나 노래이기에, 모든 일과 놀이도 언제나 노래입니다. 모든 살림살이도 언제나 노래입니다. 웃음도 노래요, 눈물도 노래입니다. 삶은 언제나 노래입니다.


  언제나 노래인 터라, 모든 말은 늘 이야기입니다. 일과 놀이도 늘 이야기입니다. 모든 살림살이도 늘 이야기입니다. 웃음도 이야기요, 눈물도 이야기입니다. 삶은 늘 이야기입니다.


  노래와 이야기가 언제 어떻게 누구한테서 태어났는가를 알고 싶으면, 스스로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면서 돌아보면 됩니다. 내 마음속에 깃든 님과 빛과 숨결을 읽으면 됩니다. 나 스스로 노래를 길어올리고, 나 스스로 이야기를 터뜨리면 됩니다.



.. 이 초롱불엔 / 불나방이 / 안 모인다 ..  (꽈리)



  그림책 《오리》를 끝맺는 작품이 〈꽈리〉인데, 황순원 님은 이 말과 노래와 이야기에서 ‘불나방’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불나방’이라니? 뭔가 안 맞습니다. 왜냐하면, ‘나방 = 불나비’이기 때문입니다. 남녘에서는 ‘나방’이라 하지만, 북녘에서는 ‘불나비’라 합니다. ‘불나비’란 밤에 불이 있는 곳으로 날아드는 나비를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그러니, ‘나방 = 불나비’인 만큼, ‘불나방’처럼 적으면 겹말이 돼요.


  아무튼, 그림책 《오리》는 즐겁게 웃고 노래하며 이야기하는 우리 삶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떻게 누리며, 어떻게 나누는가 하는 실마리를 조그맣게 보여줍니다.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며 노래꾼입니다. 어른 또한 누구나 시인이며 노래쟁이입니다. 우리는 다 함께 사랑둥이요 꿈넋입니다. 4347.8.2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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