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 없는 도서관은 때려부수자



  어릴 적부터 곧잘 들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도서관에는 만화책이 없다.”이다. 왜 도서관에 만화책이 없지? 도서관이 얼마나 대단한 곳이기에 만화책을 안 두지?


  책을 무엇으로 보기에 이 따위로 하는가 하고 그동안 생각했다. ‘십진분류법’을 살펴본다는 생각은 여태 품지 않았다. 오늘 비로소 십진분류법을 살펴본다. 어디 보자, 만화책은 어디에 들어가야 할까? ‘예술’ 갈래에? ‘문학’ 갈래에? 또는 ‘총류’ 갈래에?


  십진분류법을 살펴보는 김에 ‘한국 십진분류법’뿐 아니라 ‘일본 십진분류법’을 살펴본다. 어라. 일본에서도 ‘만화’가 들어갈 자리가 없네?


  그렇구나. 도서관에서는 아예 만화책을 책으로 다루지 않는구나. 만화책을 아예 십진분류법 갈래에 안 넣었으니, 도서관에서는 만화책을 둘 까닭이 없구나. 만화책은 어디에도 낄 자리가 없으니, 얌전히 공부해서 자격증을 딴 도서관 사서가 스스로 만화책을 장만해서 갖출 일이 없을 뿐더러, 도서관 책손이 만화책을 갖추어 달라고 말해도 만화책을 챙겨서 갖출 까닭조차 없구나.


  더 재미있는 대목이 있으니, 도서관 십진분류법에는 ‘어린이책’이 없다. 어린이책도 만화책과 똑같이 도서관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래서 예전에는 도서관에 참말 동화책도 동시집도 없었다. 요즈음은 ‘어린이책 도서관’을 새로 짓고 ‘어린이책 십진분류법’도 새로 만든 줄 아는데, 이렇게 하더라도 도서관이라는 곳이 어른만 다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마땅히 어린이책을 갖추어야 하지만, 도서관 사서는 이러한 대목을 헤아리지 않는다. 아름다운 어린이책을 ‘어른도 함께 읽’도록 이끌거나 알려주는 도서관 사서가 한국에 몇이나 있을까? 아니, 어린이책을 함께 읽지 않는 어른이 어떻게 아이들을 사랑하거나 아끼거나 돌볼 수 있는가? 어린이책을 함께 읽지 않는 어른이 어떻게 교육정책이나 사회정책이나 문화정책 따위를 내놓을 수 있는가?


  그리고, ‘환경책’도 십진분류법에서 들어갈 자리가 없다. 지구 환경을 생각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은 언제나 엉뚱한 자리에 꽂혀야 한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도서관 십진분류법은 책을 알맞게 나누어 갈무리하는 얼거리가 아니다. 사람과 삶 사이에 높다랗게 세우는 울타리가 십진분류법이다. 십진분류법에 따라 책을 나누어서는 안 된다. 삶에 따르고 사람에 따라 책을 살펴야 한다. 이야기에 따라 책을 가누고, 이야기를 헤아리면서 책을 갖추어 꽂아야 도서관이다.


  만화책 없는 도서관은 때려부수어야 한다고 느낀다. 어린이책 없는 도서관도 함께 때려부수어야 한다고 느낀다. 만화책과 어린이책이 없는 곳은 도서관이 아니다. 책무덤일 뿐이다. 4347.6.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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