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책



  언제부터였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내가 처음 책에 눈을 뜬 날부터 내가 손에 쥐고 싶은 책은 언제나 ‘긴 책’이다. 나는 ‘짧은 책’을 바라지 않는다. 아직 책에 눈을 뜨지 못하던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책다운 책’에는 제대로 마음을 두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으로 접어들 무렵 비로소 ‘책다운 책’을 바라볼 수 있었고, 이즈음부터 내 손에는 ‘긴 책’만 깃들도록 하자고 다짐했다.


  어떤 책이 ‘긴 책’일까. 스스로 길게 읽을 수 있는 책이 ‘긴 책’이다. 오늘 읽고 모레 읽을 수 있을 때에 ‘긴 책’이다. 내가 읽은 책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고, 이 아이들은 또 이녁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이 ‘긴 책’이다.


  ‘긴 책’ 가운데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한테 읽힌 책도 있지만, ‘긴 책’ 가운데에는 고작 백 권 팔렸을까 말까 싶도록 적은 사람한테 읽힌 책도 있다.


  ‘긴 책’은 ‘살아남는 책’이 아니다. ‘긴 책’은 ‘삶을 살리는 숨결’이 깃든 책이다. ‘긴 책’은 돈이 되는 책이 아니다. ‘긴 책’은 사랑을 밝히고 꿈을 노래하는 책이다.


  다시 말하자면, 긴 삶을 바라기에 긴 책을 읽는다. 긴 노래를 부르기에 긴 책을 읽는다. 긴 사랑을 가꾸기에 긴 책을 읽는다. 긴 넋을 건사하고자 긴 책을 읽는다.


  가람이 길게 흐른다. 숲이 길게 뻗는다. 별이 길게 드리운다. 기나긴 온누리에 기나긴 숨결이 감돈다. 4347.6.1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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