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걷는 길 2. 자전거와 함께 살기
― 한 해 동안 주마다 300킬로미터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이오덕 님 글과 책을 만지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이오덕 님 곁에서 이녁 말씀을 들은 분들 가운데 막상 이오덕 님 넋을 알뜰히 받아먹으며 스스로 마음을 키운 분은 뜻밖에 몹시 적구나 싶었다. 왜냐하면, 이오덕 님은 ‘나를 따르라’ 하지 않았는데, 모두들 ‘이오덕 제자’라는 이름을 내걸며 ‘이오덕 따르기’만 하기 때문이다. 이오덕 님은 사람들이 이녁을 ‘스승’이나 ‘선생님’으로 모시는 일을 매우 싫어하셨다. 모두 다른 사람이고 모두 다른 목숨이며,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살아가는 넋이라고 말씀하셨고, 이러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멧골학교에서 마흔두 해를 지내셨다. 그러면, 이 넋과 뜻을 제대로 살피면서 모두들 ‘제자’ 아닌 벗님으로서 ‘어깨동무’ 하는 두레나 품앗이를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이오덕 님이 쓴 일기를 날마다 읽으면서 새삼스레 생각했다. 이오덕 님 일기책은 2013년 봄에 드디어 ‘다섯 권으로 간추린 책’으로 예쁘게 나왔는데, 이 일기책에는 알짜 이야기가 많이 빠졌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오덕 님 넋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을 텐데, 이번에 나온 일기책에서 빠진 알짜란 무엇인가 하면, 이오덕 님이 ‘이녁 둘레에서 제자라고 스스로 밝히는 사람(거의 다 현직 교사, 또 거의 다 초등학교 교사)’을 마주하며 느낀 아쉬움을 밝힌 글이다. 한국글쓰기연구회라는 모임을 이오덕 님이 여셨는데, 이 연구회 현직 교사들이 연수모임을 할 적마다 늘 술만 마시고, 제대로 된 공부모임이 이루어지지 않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오덕 님은 이 모임 집어치우고 모임이름을 ‘술 연구회’로 바꾸라는 말까지 자주 하셨다.


  연수모임이 아니더라도, 다른 회원(현직 교사)들이 저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가르치고 배우면서 얻은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내놓지 못하곤 했고, 회원들 스스로 저마다 다른 학교와 다른 아이들을 마주하며 느낀 이야기를 책으로 엮을 만큼 되어야 하는 줄 느끼지 못한다. 오직 이오덕 님만 혼자서 꾸준하게 글을 쓰고 책을 엮었을 뿐이다.


  이오덕 님 일기를 원본으로 읽고, 책으로 나오지 못한 글을 원고지로 읽고, 이오덕 님이 온삶을 걸쳐 읽어 건사하신 책을 아침저녁으로 나란히 읽고, 이정우 님이 들려주는 아버지 이야기를 귀로 듣고, 《우리 글 바로쓰기》 책을 내려고 모은 엄청난 신문자료를 샅샅이 읽었다. 이러는 동안 곰곰이 생각 하나를 키웠다. 나는 이곳에서 이오덕 님 글을 모두 갈무리한 뒤에는 ‘내 넋을 살찌워 내 글을 쓰고 내 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내가 이곳에서 이오덕 님 글과 책을 만지면서 차근차근 갈무리하는 뜻이 하나도 없겠다고 느꼈다.


  보리 출판사에서 어린이 국어사전 만드는 일을 할 적에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보리 출판사에서 ‘보리 어린이 국어사전’이 나오는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하지만, 이 국어사전이 나온 뒤에는 내 나름대로 ‘내 넋을 더 살찌워 한결 아름답고 알찬 새 국어사전’을 혼자서 스스로 만들 만큼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저지른 말썽, 창비 김이구 님이 보여준 안쓰러운 모습, 보리 출판사 옛 동료들이 내 가슴에 새긴 생채기,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속이 쓰려 죽을 노릇이었다. 마음속에서 솟는 눈물과 아픔을 달랠 길이 없었다. 이즈음, 2004년에, ‘발바리’라는 모임을 알았다. 서울 광화문에서 한 달에 한 차례 ‘떼거리 잔차질’을 하는 모임이다(http://bike.jinbo.net). ‘두 발과 두 바퀴로 하는 떼거리 잔차질’이라서 발바리 모임이다. 서울 한복판부터 자동차를 줄이고 자전거로 살아가자는 뜻을 알리려는 모임인데, 운영자도 주최자도 따로 없다. 스스로 모이고 스스로 달린다. 집회도 시위도 아닌 ‘자전거 타기’이다. 버스가 경적을 울리며 자전거 타는 사람을 윽박지르건 오토바이가 자전거 앞에서 배기가스 춤을 추건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또 천천히, 서울 시내 한복판을 한 시간쯤 달리는 모임이다.


  처음에는 이 모임에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서 함께했다. 그런데, 어차피 자전거모임에 갈 바에는 아예 충청북도 충주부터 서울까지 자전거로 달려야 제맛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동안 길눈을 익힌다. 길그림책을 펼쳐서 충주에서 서울로 가는 일반국도와 지방도로를 살핀다. 이정우 님과 서울이나 인천으로 볼일 보러 함께 움직일 적에 지나가는 일반국도와 지방도로를 눈여겨본다. 이러고서, 어느 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새벽 여섯 시 즈음 길을 나섰다.


  얼마나 설레던지. 편도 150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린다.


  처음 자전거로 150킬로미터를 달리던 날, 다섯 시간 반이 걸렸다. 사이에 쉬며 도시락을 먹느라 이만 한 시간이 나온다. 한 번 이렇게 달리니 등허리와 팔다리가 되게 저리고 결리다. 도시락 먹느라 쉰 삼십 분을 빼면 다섯 시간 고스란히 달린 셈인데, 다섯 시간을 거의 쉬지 않고 달리자니, 땀이 물꼭지 틀어 놓은 듯이 떨어진다. 등에 멘 가방은 내 땀으로 젖고, 옷은 벗어서 짜면 땀물이 줄줄 흘렀다.


  팔다리 안 쑤신 데가 없지만 마음은 홀가분했다. 그래, 이제부터 자전거로만 다녀 보자.

  첫 주는 충주로 돌아가는 길에 시외버스를 탄다. 다음주부터는 오로지 자전거로만 오간다. 충주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다시 충주로. 여름, 가을, 겨울, 봄, 네 철을 고스란히 자전거로 달린다. 비가 오건 태풍이 지나가건 눈이 오건 자전거로 달린다. 비가 오면 비를 맞는다. 눈이 오면 눈을 맞는다. 이제 150킬로미터 편도를 달리는 길이 익숙해, 한 번도 안 쉬고 달리면 네 시간 반만에 서울에 닿는다.


  바보짓이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네 시간 반을 한 차례도 안 쉬고 엉덩이에 불이 나든 말든 달린다. 비가 와서 온몸과 가방이 옴팡 젖어도 그대로 달린다.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에 손가락과 얼굴과 발가락 모두 꽁꽁 얼어붙어도 그대로 달린다. 한겨울에 너덧 시간 자전거로 달리면, 몸을 녹이는 데에 두 시간쯤 걸린다. 몸을 녹이느라 이불 뒤집어쓰고 새우처럼 몸을 말아 덜덜 떨면 아주 천천히 몸이 녹고, 피가 따스하게 다시 돈다. 이때에 느낀다. 나는 이렇게 살아서 숨쉬는 사람이로구나.


  서울에서 충주로 돌아갈 적에는 가방이 터지도록 책을 산다. 자전거 짐받이에 책을 십 킬로그램쯤 묶는다. 이러던 어느 날, 짐받이 붙인 안장 조임쇠가 부러진다. 서울을 벗어나 이제 막 용인을 지나는데 안장 조임쇠가 부러지네. 책이 너무 무겁구나. 아슬아슬한 자전거를 천천히 달려, 여느 날보다 한 시간 반쯤 더디 달려 충주에 닿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사람들이 아이들 태우려고 마련하는 수레를 장만하기로 한다. 다른 사람들은 수레를 자전거에 붙여 아이를 태우지만, 나는 서울에서 책방을 돌며 책을 200∼300권씩 장만해서 책을 싣는다. 45킬로그램까지 싣는 수레이건만, 나는 60∼80킬로그램쯤 되는 책을 싣는다.


  이제 수레를 단 자전거를 달려 충주에서 서울로 가자니, 가는 데에 네 시간 오십 분 걸린다. 수레에 책을 가득 채워 충주로 돌아가자면 아홉 시간 걸린다. 자전거가 너무 힘들겠지. 내 몸보다 자전거가 벅차겠지. 이렇게 자전거를 달리니, 바퀴가 이내 닳는다. 체인이 끊어진다. 여러 부속을 모두 갈아끼운다. 내 자전거는 몸통을 뺀 모든 부속을 여러 차례 간다.


  충주 무너미마을은 시골이다. 이정우 님과 읍내마실을 다니다가 장날에 신가게 들러 고무신을 함께 사곤 했다. 이무렵, 고무신을 처음 신으며 아주 좋았다. 비로소 내 발이 내 발답게 숨쉬는구나 하고 느꼈다. 남들은 뒷꿈치 까진다며 고무신을 안 신는다는데, 나는 겨울에도 맨발로 고무신을 꿸 적에 참 즐거웠다. 발가락 꼬물꼬물 숨을 쉬고, 발바닥은 땅바닥을 가까이 느낀다. 맨발 고무신으로 자전거를 달리면, 이 발바닥과 앞꿈치로 발판을 굴러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더 싱그러이 살아난다.


  이오덕 님이 이녁 삶을 언제나 글로 꼬박꼬박 적어서 남기셨듯, 나도 자전거로 이 땅을 달린 이야기를 꼬박꼬박 적어 놓는다. 누가 읽어 주거나 말거나 대수롭지 않다. 자전거를 타고 충주와 서울을 오가는 동안 겪거나 만나거나 느낀 이야기를 그날그날 저녁에 조곤조곤 적바림한다. 자동차들이 얼마나 자전거를 깔보고, 때로는 갑자기 밀어붙이며 괴롭히는지 적는다. 아주 드물게 ‘자전거를 지켜 주려’고 밤에 내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며 다른 자동차를 막아 주는 분을 만나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화이팅!’ 외쳐 주는 분을 만나는데, 이런 분들 이야기도 적는다. 바보스러운 사람들을 많이 겪은 만큼, 아름다운 사람들도 많이 겪는다. 그래, 그렇지. 이오덕 님 곁에서 ‘이오덕 제자’라고 내세우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바보스럽게 스스로 삶을 못 가꾸는 사람이 있을 테고, 조용히 아름답게 삶을 잘 가꾸는 사람이 있을 터이다. 왜 모든 사람들이 다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러나, 이런 생각에 이를 때마다 슬프다. 왜 모든 사람들이 다 아름답게 살아가지 못하는가?


  자전거로 국도를 주마다 300킬로미터 달리며 느낀다. 어느 국도이든 사람이 걸을 자리가 없다. 사람이 걸을 자리가 없으니 자전거가 달릴 자리가 없다. 국도란, 시골에 난 길이다. 도시 한복판에는 따로 ‘인도’가 있다. 사람들 거니는 자리가 도시에는 있다. 그런데,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사람이 다닐 길’은 송두리째 사라진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할매와 할배가 어디 마실을 다닐라면, 찻길 가장자리에서 아슬아슬하게 움직여야 한다. 시골에서는 자동차가 할매와 할배 들이받아 죽이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시골 할배들은 자전거에 불을 안 붙이고 밤마실을 다니시는데, 시골 국도에서 사람들은 100킬로미터나 120킬로미터까지 마구 달리곤 하니, 그만 밤에 할배 자전거를 치고는 뺑소니로 사라지는 일이 잦다.


  왜 국도 한쪽에 시골사람 걸어다닐 자리를 안 만들까. 왜 국도 한쪽에 시골사람이 걷고 자전거로 다닐 자리를 안 만들까. 관광상품으로 ‘자전거 나들이’ 하는 길을 수백 수천 억 원을 들여 짓지 않아도 된다. 아니, 이런 관광상품을 만들기 앞서, 마을사람이 자동차 걱정을 하지 않고 느긋하게 다닐 자리를 마련해야 옳지 않은가. 제대로 된 거님길을 마련하면 자전거길은 저절로 생긴다.


  응어리진 마음을 풀려고 타는 자전거였는데, 두 달 넉 달 여섯 달, 이렇게 흐르고 흐르는 동안 외려 마음이 더 아프다. 이 나라 행정과 정치와 문화와 산업 모두,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새삼스레 몸으로 배우니, 자꾸자꾸 아프다.


  뼈빠지게 자전거로 달려 한밤에 충주에 닿는다. 아홉 시간을 달린 끝에 다리힘이 거의 풀려 마지막 오르막을 가까스로 달린다. 땀에 젖은 옷을 벗는다. 알몸인 채 방바닥에 드러눕는다. 처음 이곳에 오던 일을 떠올린다. 나는 서울에서 무너미마을로 올 적에 시외버스를 타고 생극이나 무극에서 내린다. 되도록 생극에서 내리는데, 생극에서 내리려 한 까닭은, 생극면에서 신니면 광월리 무너미마을까지 걷는 길이 무척 곱기 때문이다. 무극(금왕읍)에서 내려 걸으면, 자동차가 너무 많아 한갓지지 못하다.


  생극면에서 내려 무너미마을까지 오는 데에 12.4킬로미터이다. 빠른걸음이라면 한 시간 사십 분이면 닿는다. 숲바람 마시고 들내음 맡으며 느긋하게 걸으면 두 시간이나 두 시간 반쯤 걸린다. 걸어서 오느라 땀투성이 되면, 보리밥집에서 일하는 노금옥 아주머님이 “전화 하지, 왜 걸어왔어요. 이 더운 날에(또는 이 추운 날에).” 하고 말씀하신다. “길이 좋아서 걷고 싶어서요.”


  이오덕 님 글을 갈무리하던 네 해를 더듬는다. 자가용 안 몰고 버스를 타고 면소재지에 내려 천천히 걸어서 이오덕 님 무덤으로 찾아온 손님이 다섯손가락으로 꼽을 만큼밖에 없다. 모두들 자가용으로 달려오고, 또 자가용을 몰아 무덤 언저리까지 간다. 이오덕 님이 굳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새소리·바람소리·개구리소리·풀벌레소리 누리면서, 숲노래와 풀노래 듣던 넋을 짚거나 헤아리지 않는다. 꼭 글쓰기연구회 교사들한테뿐 아니라, 다른 분들, 이른바 스스로 ‘이오덕 제자’라는 분들을 볼 때면, 부디 큰길가 보리밥집부터 무덤까지라도 걸어서 오십사 하고 바라지만, 이렇게 걷는 사람이 없다. 이오덕 님이 듣던 꾀꼬리 노래를 듣거나 소쩍새 울음을 들으려 하는 사람이 없다. 감잎 지는 빛깔과 구름 흐르는 빛결 받아안으려는 사람이 없다. 자가용 유리창으로 어떤 소리와 빛을 맞아들일 수 있을까. 자가용에서 어떤 이웃을 사귈 수 있을까. 자가용 달리면서 시골 논흙 밭흙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문득 생각한다. 이오덕 님은 운전면허증을 딴 적 있을까. 아마 면허증을 딴 적이 없지 싶다. 이오덕 님은 자가용을 몬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가만히 보면 처음부터 ‘자가용과 사귀지 않’았다. 그래, 맞구나. 처음부터 자가용하고 사귀지 말아야지. 4346.11.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내가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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