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책으로 보는 눈’을 끝내며

 


  2007년 4월부터 ‘책으로 보는 눈’이라는 이름을 붙여 원고지 다섯 장쯤 되는 글을 썼습니다. 2007년 4월은 제가 고향 인천으로 돌아가던 때입니다. 이때부터 인천 배다리에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열었습니다. 이때까지 충청북도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이오덕 님 책과 글을 갈무리하는 일을 했고, 이 일을 끝내고는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돌이켜보면, 나는 1994년에 대학교에 처음 발을 들이면서 고향을 떠났습니다. 모두들 서울바라기만 하는 모습이 못마땅하고 달갑지 않아, 대학교에 가더라도 고향 인천을 떠날 생각이 없었지만, 나도 ‘서울로 가는 흐름’에 함께 휩쓸렸습니다. 군대에 갔다 오고 나서 대학교를 그만둔 1998년 가을에도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그대로 서울에 남아 일자리와 삶자리를 알아보았어요. 이러다가 2003년 가을에 서울을 벗어나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충청북도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돌아가신 이오덕’ 님 발자취를 헤아리면서 삶과 책을 돌아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은 얼마나 될까요. 한 사람은 얼마나 되는 책을 읽어야 아름다울까요. 집에 건사한 종이책 숫자가 ‘읽은 책’을 말할까요. 죽을 때까지 써서 남긴 책 숫자가 ‘읽은 책’을 말할까요.


  나는 내 어머니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가운데 ‘틀린 말’이 있은 적은 없다고 느낍니다.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오면서 우리 아이들이 어버이인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 가운데 ‘틀린 말’이 있은 적은 없구나 하고 느낍니다.


  봄에 찾아와서 가을에 떠나는 제비가 사람들한테 ‘틀린 말’을 하는 적이 없습니다. 개구리가, 잠자리가, 나비가, 메뚜기가, 들꽃이, 나무가, 숲이, 바다가, 들이, …… 사람들한테 ‘틀린 말’을 하는 적이 없어요. 하늘도 구름도 흙도 바람도 언제나 ‘옳은 말’을 합니다.


  종이책만 책일까 궁금합니다. 전자책도 종이책 언저리에 들어가니까,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이렇게 ‘사람이 글로 써서 남긴 이야기’만 책일까 궁금합니다.


  예부터 “날씨를 읽는다”고 말했습니다. 뱃사람은 “바람을 읽는다”고 말했고, “물살을 읽는다”고 말했습니다. 시골사람은 누구나 “풀을 읽는다”고 하는 한편 “나무를 읽는다”고 했으며 “흙을 읽는다”고 했습니다. 차근차근 살피면 그래요. 오늘날이건 옛날이건, 시골에서 흙이나 물이나 풀을 만지는 사람은 종이책을 들여다볼 틈이 없기도 하지만, 애써 종이책을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읽다’라는 낱말은 우리 한겨레한테 아주 오래된 낱말이에요. 국어사전 뜻풀이를 살피면 글이나 책에 적힌 글씨를 ‘읽는’ 뜻만 나오지만, ‘읽다’라는 낱말은 사람들이 글도 책도 모르던 때부터 썼어요.


  더 생각해 봅니다. “책을 읽는다”라고도 하지만 “책을 본다”라고도 합니다. 한겨레는 책을 “읽으”며 책을 “봅”니다. 곧, 종이에 앉힌 글을 살피는 일만 ‘읽기’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오래디오랜 옛날 옛적부터 우리 겨레는 누구나 삶을 읽고 사람을 읽으며 마음을 읽었어요. 사랑을 읽고 숲을 읽으며 하늘을 읽었어요. 뜻을 읽고 꿈을 읽으며 이야기를 읽었지요. 다시 말하자면, 삶을 보고 사람을 보며 마음을 보았어요. 사랑을 보고 숲을 보며 하늘을 보았어요. 뜻을 보고 꿈을 보며 이야기를 보았지요.


  2007년 4월에 인천에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열었습니다. 내가 이제껏 읽은 종이책을 그러모아 서재도서관을 꾸렸습니다. 2010년에 이 도서관을 충북 충주로 옮겼고, 2011년에 이 도서관을 전남 고흥으로 옮겼습니다. ‘책으로 보는 눈’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동안 쓴 글은 내 서재도서관이자 사진책도서관을 꾸리면서 ‘책과 삶’을 나란히 읽은 이야기를 적바림한 사랑 한 마디라고 생각합니다. 책으로 책을 읽으면서, 책으로 삶을 읽습니다. 삶에서 책을 깨닫고, 삶에서 사람과 사랑과 꿈이 이어진 실타래를 느낍니다. 이렇게 깨닫고 느낀 이야기를 2007년 5월에 새롭게 태어난 〈시민사회신문〉에 썼습니다. 〈시민사회신문〉은 처음에는 주마다 나왔지만, 신문사 살림살이가 힘들어 시나브로 달에 한 번 나오더니, 두 달에 한 번 나오기도 했고, 2013년 들어서는 두어 차례 나오고 더는 못 나옵니다. 나는 글을 200꼭지 썼지만, 〈시민사회신문〉은 152호까지 나왔습니다. 내 글 가운데 48꼭지는 아예 신문에 못 실렸습니다. 이 신문이 잘되기를 바라며 주마다 글을 쓰려 했지만, 한 달 두 달 신문이 안 나오고 보니, 나도 주마다 글 한 꼭지씩 쓰려던 몸가짐이 흐트러졌어요. 이 신문이 153호를 낼 수 있는지, 앞으로 꾸준히 나올 수 있는지 하나도 모릅니다. 다시 새힘 얻어 씩씩하게 나온다면 반가울 텐데, 이제 나는 ‘책으로 보는 눈’이라는 이야기는 내려놓으려 해요. 오늘까지 걸어온 200걸음에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아름답게 일굴 삶을 생각합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할 꿈을 생각합니다. 즐겁게 만날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책으로 보는 눈’이라는 글을 쓰면서 “책은 빛이요, 빛은 책”이라고 깨닫습니다. “삶은 책이요, 책은 삶”이라고 느낍니다. 이 땅에 평화와 민주와 통일이 흐르면서, 누구나 사랑과 꿈과 이야기를 곱게 돌볼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4346.8.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으로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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