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200 : 책으로 보는 빛

 


  빛을 읽는 책입니다. 우리가 이제껏 살아온 빛을 읽고, 저마다 앞으로 살아갈 빛을 읽는 책입니다. 책에는 수많은 빛이 서립니다. 책을 쓴 사람이 누린 빛이 서리고, 책을 엮고 만든 사람 빛이 서리며, 책을 다루는 사람들(책방지기) 빛이 서려요. 여기에, 책을 읽는 사람 빛이 어우러집니다. 책 하나는 책을 쓰거나 만들거나 다루는 사람들 손길과 빛만으로는 환하지 않아요. 이 책을 알아보고 사랑하며 아끼는 책손이 새삼스럽게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질 때에 환하게 거듭납니다.


  책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 이웃과 동무와 아이한테 물려주는 선물입니다. 풀과 나무와 벌레와 새와 짐승과 물고기는 책을 쓰지 않고 책을 읽지 않습니다. 풀과 나무는 씨앗에 온 삶과 이야기를 담습니다. 벌레와 새와 짐승과 물고기는 새끼한테 온몸으로 삶과 이야기를 물려줍니다. 곰곰이 따지면, 사람들도 얼마 앞서까지 책을 쓰지 않고 읽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책을 쓰거나 읽은 발자국을 살펴도 천 해나 이천 해, 또는 삼천 해쯤 헤아린다 하지만, 이무렵에도 책을 안 쓰고 안 읽은 사람이 훨씬 많았어요. 곧, 누구나 어버이가 되면 삶과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물려주었어요. 눈빛과 말빛과 마음빛과 몸빛으로 먼먼 옛날부터 이어온 슬기와 꿈과 사랑을 물려주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버이나 어른이 되어도 아이들한테 슬기와 꿈과 사랑을 좀처럼 물려주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뿐입니다. 아이들한테 책을 읽히고 어떤 강의를 듣게 할 뿐입니다. 어버이나 어른 스스로 이녁 아이를 똑똑히 가르치지 못하고, 어버이나 어른 스스로 나서서 둘레 아이를 슬기롭게 이끌지 못해요.


  디팩 초프라 님이 쓴 《우주 리듬을 타라》(샨티,2013)를 펼쳐 “눈이 거룩해질 때 당신은 치유된다(148쪽).”와 같은 대목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둘레를 바라보는 내 눈이 거룩해진다면, 집일을 건사하는 내 손이 거룩해진다면, 살붙이와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내 몸이 거룩해진다면, 참말 내 삶은 아름답겠지요. 아픔이나 미움이나 괴로움이란 하나도 없겠지요.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면서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스스로 사랑스레 다시 태어나며 스스로 사랑을 누립니다.


  이오덕 님이 남긴 일기를 갈무리한 《이오덕 일기》(양철북,2013) 다섯 권 가운데 셋째 권에서 “그러나 나는, 아무리 기계가 발달해도 인간의 정신을 그 기계가 높여 주지 못할 것이고, 편리한 생활을 한다고 문화의 질이 높아진다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편리한 생활을 한다고 인간이 행복해진다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인간 정신이 타락하는 것 아닐까? 농경시대보다 지금은 확실히 편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행복하지는 않다. 정신은 황폐해지고 한층 더 불행해졌다(59쪽/1986년 10월 11일).”와 같은 대목을 읽습니다. 차근차근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넉넉한 웃음을 보여줄까요? 돈을 못 버는 사람은 홀가분한 웃음을 보여주나요? 돈을 잘 벌거나 못 벌거나 똑같이 어두운 얼굴은 아닐까요?


  책은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삶도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밥 한 그릇, 물 한 모금, 바람 한 숨,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모두모두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빛을 먹으며 빛으로 삽니다. 빛을 나누고 빛을 가꾸며 빛을 돌봅니다. 동이 트며 날이 밝을 때에 온누리 눈부시게 무지개빛 되면서 즐겁습니다. 새 하루 깨우고, 새 마음 이끌어, 새 사랑 샘솟도록 하는 빛입니다. 빛이 되는 책을 읽습니다. 4346.8.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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