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거운 책가방 - 개정판 교육시선집 담쟁이 문고
조재도.최성수 엮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학교를 박차고 나오며 읽던 시
― 교육출판기획실 엮음, 《내 무거운 책가방》



- 책이름 : 내 무거운 책가방
- 엮은이 : 교육출판기획실
- 펴낸곳 : 실천문학사 (1987.4.20.)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교 앞 신문사지국 작은 방에서 대학생 형들이랑 먹고자면서 신문배달을 하던 때, 헌책방마실을 참 신나게 했습니다. 신문딸배 일을 한대서 학비벌이는 꿈조차 꾸지 못하고 술값벌이조차 안 되었으나, 새벽에는 신문 돌리고 낮에는 대학교 구내서점이랑 도서관에서 쉴새없이 일을 하며 푼푼이 돈을 모은 다음, 저녁나절 도서관 문닫을 즈음부터 신문배달 자전거를 몰아 헌책방마실을 했습니다. 가난할 뿐 아니라 똥구녕이 찢어지는 신문딸배 살림이지만 대학교 2학년이니 후배가 있다고 후배한테 술을 사 주어야 하는데, 신문딸배 달삯이나 근로장학금으로는 낮밥 한 끼니 사 줄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강의를 들을 때면 언제나 신문배달 짐자전거 바구니에 책을 싣고 싱싱 달리며 조그마한 한국외국어대학교 이곳저곳을 누볐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려 강의실에 닿아 들어간 다음 1분이라도 아껴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 낮밥 때가 되면 짐자전거를 부리나케 몰아 신문사지국으로 돌아옵니다. 동무들하고 낮밥을 사먹을 돈도 없으나 후배한테 낮밥 사 줄 돈 또한 없으니까요. 아침에 신문사지국 형들과 지국장님하고 먹다 남은 반찬이랑 찌개하고 밥을 후다닥 먹습니다. 후다닥 먹고는 지국 방바닥에 드러누워 책을 읽거나, 자전거를 몰아 학교 앞 헌책방에 찾아가 새로운 헌책을 살폈습니다. 하루에 오천 원이나 만 원어치만 새로운 헌책을 사서 읽자고 생각하고 다짐합니다. 오천 원이나 만 원밖에 못 쓰니까, 이 돈으로 되도록 많이 사서 읽어야 하니까, 더 낡고 더 지저분한 책으로 골라서 사들입니다. 이렇게 하면 더 눅은 값으로 한 권이나마 더 사서 읽을 수 있습니다. 두툼한 책도 좋으나 퍽 묵은 예전 손바닥책이 훨씬 반갑습니다. 작고 낡으면 더 값이 눅으니까요. 그리 사랑받지 못하는 자그맣고 해묵은 시집은 한결 값이 쌉니다. 이제는 이런 책들이 옛책으로 떠받들리며 비싸구려 책으로 탈바꿈하지만, 1995∼1999년 사이에는 꽤 값싼 책이었습니다.


..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작품이 씌어진다는 것은 문학에 있어 보편적 진리이다 ..  (책머리에)


 고등학교 3학년이던 때에 《내 무거운 책가방》을 헌책방에서 만납니다. 이때에도 《내 무거운 책가방》은 새책방에도 있었으나 꽤나 많이 팔리고 읽히며 버려졌기에 헌책방에서도 곧잘 눈에 뜨였습니다. 여러 사람들 시를 한두 가지 또는 여러 가지 그러모아 엮은 시집이라서, 이 시집을 읽으며 이 시집에 실린 시가 담긴 낱권 시집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읽으려고 애씁니다. 대학교 2학년이던 1995년 봄께, 드디어 이 작은 시집에 실린 시가 담긴 낱권 시집을 모조리 찾아내어 읽었고, 이 가운데 〈우리들 소원〉이 실린 《우리들 소원》(풀빛,1985)을 만났을 때에는 참으로 기뻤습니다. 《내 무거운 책가방》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우리들 소원》을 만났을 테지만, 《내 무거운 책가방》에 실린 〈우리들 소원〉 때문에 이 시가 실린 시집을 만나려고 무던히도 헌책방 책시렁을 훑고 살피며 뒤졌습니다.


.. 16세에 안내원 생활 시작해 벌써 2년 / 같은 또래 여학생 실었을 때 굴욕스럽고 / 되지 못한 손님 만나 욕도 많이 먹고 / 하루 17∼18시간 중노동에 시달린 몸은 / 그저 소원이 실컷 잠자는 것이다 ..  (101∼102쪽/최명자-우리들 소원)


 국민학교 5학년 어린이가 쓴 〈내 무거운 책가방〉이라는 이름 그대로 시집 이름이 되었는데, 지나온 나날을 돌이키면 나 또한 국민학생 때에 가방이 몹시 무거웠고, 중학생 때에는 더 무거웠으며, 고등학생 때에는 역기 하나보다 무거운 가방을 끙끙 짊어지면서 어깨가 무너지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이십 킬로그램쯤 되는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면 몸이 기우뚱기우뚱합니다. 등에 메는 가방에는 다 넣기 힘들 만큼 교과서와 사전과 참고서와 문제집을 챙겨서 다녀야 하니까 언제나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그래도 이런 가방에 교과서 아닌 책을 여러 권씩 챙기면서 틈틈이 읽었습니다. 대학생 때에는 터무니없다 싶은 강의를 구태여 들을 까닭이 없었지만, 전공 과목을 가르치는 분 가운데에는 어처구니없구나 싶은 강의를 하는 분이 있어서 이런 강의라면 차라리 안 들어야겠다 싶어 강의를 안 듣고, 이동안 골마루에서 다른 책을 꺼내어 읽거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헌책방 책꽂이를 찬찬히 살폈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교과서 하나로 한 해를 때운다더라도 거의 날마다 수업이 있었다지만 대학생 때에는 얄팍한 교재 하나로 한 학기를 때우면서 한 주에 기껏 한두 시간 수업만 있으니, 이런 엉터리 수업은 받아들이기 퍽 힘들었습니다. 얄팍한 교재는 휘리릭 읽으면 그만인데, 이 교재를 외우다시피 해야 하면 대학교 수업이란 도무지 무슨 보람이 있나 궁금했습니다. 대학생쯤 되면 날마다 새로운 책을 스스로 먼저 읽어 와서 깊이 따지거나 파헤치거나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교과서이든 교재이든 ‘가르치는 책’이라지만, 막상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 수 없었어요. 아무래도, 가르치는 책이라기보다 주어진 틀대로 지식을 외우도록 하는 책인지 모를 노릇이요, 지식만 주워섬기면서 정작 한 사람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슬기는 보여주지 못하는 셈 아닌가 여겼습니다. 대학생으로 지내는 노릇 그만두자고 아주 자연스레 다짐합니다. 1998년 12월에 마지막으로 강의를 들은 다음 휴학계를 내고는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 선생이 되고, 아비가 되어 / 아무 걱정도 없이 어느새 / 우리는 아름다움을 잊어버리고 / 뉘우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 가르치지 않아도 / 식민지 시인의 토혈 같은 싯구를 / 아이들은 곧잘 외워대는데 / 꽃이 피고 지는 참담함으로 / 오월은 오고 ..  (199∼200쪽/최동현-오월에)


 2010년 12월, 《내 무거운 책가방》이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납니다. 그예 헌책방 책시렁에서 고이 잠들려나 싶던 시집이 새삼스레 다시 태어납니다. 아마, 1987년이나 1997년이나 2007년이나 2017년이나 아이들 책가방은 무거울 뿐 아니라 갖은 짐덩어리만 가득 차니까, 이 시집이 읽혀야 한달 수 있습니다. 좋은 배움터로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 나라이니, 언제까지나 《내 무거운 책가방》 그대로 우리들 무거운 책가방이 되고 만다고 느낍니다.

 2010년 12월에 새로 나온 《내 무거운 책가방》은 1987년판하고 사뭇 다릅니다. 책이름은 똑같으나, 시집에 실린 시는 거의 모두 바뀝니다. 버스 차장 최명자 님 시는 빠집니다. 2010년대에 걸맞는다는 새로운 시들이 넘실넘실합니다. 아무래도 서른 해쯤 묵은 시들은 서른 해쯤 묵은 이야기를 다룰 테니까 오늘날하고는 걸맞지 않을 만합니다. 새로운 터전 새로운 나날에는 새로운 시집을 읽힐 노릇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시집에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야 마땅하지 않나 하고 갸우뚱갸우뚱합니다. 《내 무거운 책가방》은 내 무거운 책가방이네 하고 노래를 불러야 하던 1987년 앞뒤 이야기일 텐데, 새로 내놓을 새로운 시들로 엮인 새 시집이라면 새 이름을 붙이는 한편, 예전 시집은 예전 시집대로 고스란히 되살려야 알맞은 일 아닌가 갸웃갸웃합니다.

 이제 버스 차장이야 모조리 사라졌으니 버스 차장이 쓴 시쯤이야 읽거나 읽힐 값이 없다고 느낄는지 모릅니다. 버스 차장은 없어졌어도 보충수업과 자율학습과 입시지옥은 그대로이니까, 이런 삶자락대로 시집을 새로 엮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2010년 《내 무거운 책가방》에는 대안학교 다니는 아이들이나 학교를 박차고 나온 아이들 모습도 몇 자락 담아야 할 텐데요. 아, 학교 문턱은 예나 이제나 몹시 높습니다. 시인이 되어 시를 쓰는 담벼락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참말 까마득합니다. (4344.2.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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