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글쓰기


 한국방송국에서 이틀을 사이에 두고 두 군데 취재 연락이 왔다. 먼저, 라디오방송에서 녹음 취재 연락이 오고, 이틀 지나 ‘북쇼’를 맡은 분한테서 연락이 온다. 북쇼를 맡은 분한테는 대꾸를 하지 않고, 라디오방송국 분한테도 따로 대꾸를 하지 않다가 느즈막히 ‘나갈게요.’ 하고 이야기한다. 집식구하고 “방송에 나갈까 말까”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집식구는 내가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나로서는 집식구랑 집에서 조용히 지낼 때가 훨씬 좋다. 그러나 내가 뜻을 크게 두며 하는 일인 ‘우리 말’하고 ‘헌책방’ 이야기 나누기를 생각하며 퍽 망설였다. 나로서는 1992년 8월 28일에 헌책방 책맛을 느끼고 나서 오늘까지 헌책방 책맛을 늘 즐길 뿐 아니라 둘레에 나누면서 살아가지만, 헌책방 즐김이 모임이라든지 헌책방 이야기 나누기라든지 옛날부터 오늘까지 고이 이어가는 사람은 둘레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전문가라든지 권위자가 될 마음이 없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우리 말글 이야기를 글로 적바림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헌책방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엮는다. 좋은 헌책방을 나들이하고 나서 이 좋은 헌책방을 즐긴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 엮어 사람들한테 보여주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헌책방 삶터를 사진으로 처음 찍으면서 생각했다. 내 둘레에서 나보다 훨씬 사진을 잘 찍는 분들이 헌책방 삶터를 꾸밈없이 즐거이 사진으로 담아내어 준다면 난 언제든지 헌책방 삶터를 더는 사진으로 담지 않겠다고. 그러나 예나 이제나 헌책방 삶터를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보이지 않으며, 어쩌다가 한두 번 찍었을지라도 꾸준히 찍지 않는다. 이래저래 나 혼자만 남는다. 방송 취재 연락을 손사래치고 싶어도, 방송사이든 신문사이든 잡지사이든 ‘헌책방 이야기를 예나 이제나 즐거이 나누며 살아가는 책쟁이나 글쟁이’란 소설쓰는 장정일 님 빼놓고는 거의 없는데, 장정일 님한테 이런 이야기를 여쭙지는 않는다. 장정일 님한테는 문학 이야기를 여쭈어야 할 테니까. 그렇다고 간행물윤리위원회라든지 문화체육관광부라든지 독서진흥이 어쩌고 하는 숱한 ‘책읽기 모임과 시민단체’에서 이와 같은 일을 하지도 않는다.

 시골집에서 도시인 서울이나 인천으로 나오자면 대여섯 시간은 넉넉히 잡아야 한다. 우리 시골집에서 시골버스를 타고 면내나 읍내로 나가는 버스가 많지 않기에 아침 일찍 어수선을 떤다. 이렇게 어수선을 안 떨었다가는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야 하고, 이러다 보면 저녁 다섯 시 반 녹음 시간을 아주 가볍게 놓친다. 이렁저렁 빨래를 하고 도서관을 치운 다음 아이 엄마 아픈 몸을 쓰다듬고 아이 얼굴을 살살 꼬집는다. “아빠 다녀올게요. 벼리는 엄마 많이 아프니까 엄마 잘 돌봐 주고 엄마가 힘들어서 같이 못 놀아 주더라도 혼자 즐겁게 놀아 줘요. 아빠는 일 잘 마치고 돌아올게요.” 스물여섯 달을 꽉 채우고 이제 스물일곱 달째 접어드는 딸아이는 아직 모든 말을 마음껏 하지는 못하지만, 말투와 말느낌으로 아빠랑 엄마 이야기를 알아듣는다. “안녀엉, 안녀엉!” 하면서 손을 흔들어 아빠를 배웅한다. 시골버스 시간에 늦을까 싶어 논둑길을 헐레벌떡 달린다. 여느 때에는 이십 분 남짓 걸리는 길을 십사 분 만에 온다. 땀을 훔치며 시계를 본다. 꼭 10시. 생극면으로 가는 버스는 충주 시내에서 9시 53분에 떠난다. 이 버스는 언제쯤 들어올까. 부디 일찍 들어와서 서울 가는 버스를 붙잡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이제 오나 저제 오나 하염없이 기다린 끝에 10시 29분에야 들어온다. 생극면 버스 타는 곳에는 10시 37분에 떨어진다. 후다닥 들어가 표 끊는 데에서 아저씨한테 여쭌다. “동서울 버스 갔어요?” “금방 갔는데.” 젠장. 여느 때에는 거의 10분쯤 늦게 들어오는 버스가 오늘 따라 1∼2분 일찍 들어왔나 보다. 또 코앞에서 놓친다. 하는 수 없다. 그런데 마침 10시 50분 성남 가는 버스가 있다. 성남 가는 버스는 10시 58분에 들어온다. 들어와야 할 때보다 8분 늦게 온다. 서울 가는 버스도 8분 늦게 왔으면 잡아탔을 텐데.

 고속버스를 탄다. 고속버스를 탈 때부터 버스에 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아, 이 냄새는 도시 냄새일 테지. 괴롭구나. 가뜩이나 요새 몸이 퍽 힘겨운데 자꾸 콧물이 나온다.

 버스는 도시와 가까와진다. 성남 버스역에 닿는다. 버스에서 내린다. 사람들 담배 피우는 냄새가 금세 내 코에 닿는다. 코가 나빠 냄새를 잘 못 맡는데, 시골에서 지내고 나서는 이런 도시 냄새가 내 코를 아주 세게 찌른다. 거의 숨을 못 쉬겠다. 야탑역으로 들어서려는데 나들목 옆에서 무슨 큰 교회 젊은이들이 부채춤을 추면서 ‘예수 믿고 천국 가셔요’ 하고 외친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에서도 쇳가루 섞인 짙은 냄새가 난다.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꺼내어 읽으려 하지만 머리가 띵하다. 몹시 괴롭다. 아이 엄마랑 아이랑 나왔으면 둘 모두 죽는다고 했겠지. 나부터 이렇게 힘겨운데.

 시간을 잡은 때까지 한 시간 반 남짓 남을 듯해서 천호동 헌책방으로 가 보기로 한다. 천호역에서 내린다. 어디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피시방을 찾아 들어간다. 피시방에서도 이곳에 깃든 사람들 담배 내음이며 여러 가지 내음이 내 몸으로 파고든다. 뒷간에 가서 똥을 눈다. 조금 시원하지만 속이 답답하다. 인터넷을 뒤지며 〈강동헌책방〉 자리를 눈에 익힌다. 〈강동헌책방〉 가는 길목에 있는 〈천호헌책방〉 길도 눈에 익힌다. 그런데 걸어가는 길에 〈천호헌책방〉 간판은 안 보인다. 아마 문을 닫았나 보구나. 〈강동헌책방〉은 고맙게 잘 남아 있다. 〈강동헌책방〉 할배는 “예전에는 이 둘레에도 헌책방이 열다섯 군데쯤 있었는데 이젠 다 없어지고 우리만 남았어요.” 하고 말씀한다. 책을 스무 권 남짓 고른다. 오두본 그림책 두툼한 녀석이 있는데, 집에 있는 책이랑 같은 책이 아닌가 싶다. 집에 있는 오두본 두툼한 녀석은 겉종이가 없으나, 이 책은 겉종이가 있으며 아주 깨끔하다. 8만 원. 사고 싶다. 그러나 집에 있는데 또 산다면 좀 그렇다. 오두본 그림책이 8만 원이면 대단히 눅은 값이다. 이 책은 10만 원뿐 아니라 15만 원을 받아도 싸다 할 만하니까.

 김밥집에 들러 김밥 석 줄을 주문한다. ‘석 줄’이라는 말을 못 알아들으시기에 ‘세 줄’이라 고쳐 말한다. 숫자를 세며 말할 때에는 ‘석’과 ‘넉’이라 하고 “세 군데”에서는 ‘세’이지만, 이제는 이처럼 옳게 숫자를 세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나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바보가 되고 만다.

 천호역에서 내려 헌책방 오던 길과는 다른 길로 걷는다. 천호시장과 옆 골목을 걷는다. 태영아파트라는 곳 건너편에 〈현대헌책방〉 간판이 보이고, 헌책방 안쪽에 할배가 앉아 있다. ‘뭐야, 헌책방 또 있네?’ 이곳 〈현대헌책방〉도 들르고 싶으나 들를 겨를이 없다. 다음에 또 온다면 들러야지. 틀림없이 천호역으로 간다고 생각했는데, 큰길로 나오니 강동역. 난 어느 골목을 거쳐 이렇게 왔을까.

 전철에서 김밥을 먹으며 여의도로 간다. 몸이 몹시 무겁다. 그래도 가야겠지. 집에서 집식구한테서 쪽글이 온다. 아주 힘들다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어떡하지. 애 아빠 된 사람으로서, 또 옆지기 된 사람으로서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 엄마가 아프면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훌쩍 날아서 돌아가야 하지 않는가. 나 또한 도시로 볼일 보러 나와 움직이며 눈알이 핑핑 돌며 쓰러질 듯하다. 가까스로 버티며 손에 책을 쥔다. 〈강동헌책방〉에서 장만한 《돈 까밀로와 빼뽀네》 백제출판사 판을 읽으며 겨우 숨을 돌린다. 좋은 책에 깃든 줄거리로 내 고된 몸을 다스린다.

 여의도역에서 내린다. 아, 여기에서 어떻게 찾아가야 할까. 방송국 일꾼이 방송국 찾아오는 길을 알뜰히 적바림해서 편지로 띄워 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방송국 일꾼들은 방송국을 찾아오는 사람이 으레 알아서 잘 찾아오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방송국 갈 일이 거의 없는 나 같은 시골사람이 어떻게 방송국을 잘 찾아갈까. 택시를 잡을까 하다 그냥 걸어가며 길을 물어물어 찾아간다.

 25분쯤 녹음하면 된다는데 31분쯤 녹음을 한다. 아마 31분치를 다 내보내 줄 듯하다. 녹음을 하러 들어가며 휴지를 한 장도 못 챙겼다. 깜빡 잊었다. 말을 하는 내내 자꾸자꾸 콧물이 흐른다. 전철로 오고 걸어서 오는 동안에도 코를 훌쩍였지만 콧물이 흐르지는 않았는데 녹음실에서는 콧물이 줄줄 흐른다. 코 훌쩍이는 소리를 내면 안 되기 때문에 코가 질질 흘러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를 한다. 사회를 맡은 분은 이런 일은 으레 겪으니까 걱정없이 잘 넘겨 준다. 내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 동안 왼손과 오른손으로 쉴새없이 코를 훔쳐 옷에 닦는다.

 녹음을 마치고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홍대 앞으로 간다. 만화책집에 가서 만화책 몇 권을 산다. 좋은 벗님을 만나 밥을 먹고 나서 전철을 탄다. 동인천 가는 빠른전철 막차를 용케 탄다. 아주 고맙다. 큰 가방을 품에 안고 찡겨 탄다. 그나마 인천으로 가는 전철에서는 콧물이 많이 흐르지 않는다. 그런데 주안역에서 내려 여관에 들어서니 다시금 콧물이 줄줄 흐른다. 코를 풀어도 자꾸 콧물이 난다. 새벽이 되니 몸마저 으슬으슬 떨린다. 고단하다. 몸이 비쩍 마르는 느낌이고 얼굴이 바싹 여위는 느낌이다. 얼른 시골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틈틈이 찍으려 하는 인천 골목길 사진을 한두 장이라도 찍을 수 있나 모르겠다. 이런 몸으로는 아무것 못할 듯하다. 도시 골목동네에서 살다가 멧기슭 시골집으로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지 모르겠는데, 한 주나 두 주쯤 시골집에서만 머물다가 도시로 한번 나오면 참말 몸이 몹시 무겁다. 볼일을 마치고 버스나 기차를 타고 시골집으로 가는 동안 시골과 가까와지면 몸이 차츰 가벼워진다.

 으슬으슬 떨리는 몸으로 콧물을 질질 흘리며 여관집 셈틀로 글 몇 줄 끄적이며 생각한다.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콧물을 흘리지 않는가.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무슨 냄새를 맡으며 살아가나. 이 도시에서 살아가며 글을 쓰는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글에 담지? 도시사람이 쓰는 글이란 무엇을 다루는 글일까. 조금 누워 등허리를 편 다음 답동성당 앞에 있는 가톨릭생협 문 여는 때에 찾아가서 몇 가지 먹을거리를 장만한 다음 시골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4343.10.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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